이갑철, 〈해탈을 꿈꾸며-2〉, 해인사, 1993 © 이갑철

예쁜 것들이 넘친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너나없이 곱고 장식적인 것 투성이다. 여기에 이미 반세기 전 죽은 서구 망령에 ‘한국적’이라는 근거 없는 수사를 붙여 재탕하는 작품도 수두룩하다. 고객의 취향과 금전의 향락에 예술을 맞춘 결과요, 상품화의 가능성이 미적 기준이 되는 동시대 미술동네가 낳은 일그러진 소산이다.

이갑철의 흑백 사진은 예쁘기는커녕 음산하고 투박하다. 강하며 불안정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고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아마 우리 민족의 기저에 켜켜이 앉은 한국인의 정신과 혼, 그 영적인 분위기를 사실적인 언어로 내뱉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갑철은 2002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충돌과 반동》으로 한국적인 감흥과 무의식을 끄집어내며 사진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는 인간의 잠재의식을 낚아채는 ‘결정의 순간’을 통해 독자적 세계를 인정받았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탐구함으로써 마침내 홀로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만큼 ‘충돌과 반동’은 사진계는 물론 이갑철 개인사에서도 하나의 획을 그은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사실 《충돌과 반동》에서 발표한 작품들은 척 봐도 한국인이 찍은 한국인의 사진, 가장 우리 것에 가까운 원형을 포착한 사진이었다. 단지 보이는 대상을 프레임에 가두는 재현과 기록을 넘어 조상 대대로 전래된 애환과 넋을 토해내는, 우리네 인생사의 음과 양을 읊조리는 진혼곡 같은 것이었다. 원시성과 샤머니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소머리를 머리에 인 무당〉(1992), 얼굴에 피칠갑을 한 무당이 세상의 멍울을 뭇칼질하는 듯한 〈무당〉(1992)이 대표작이다.

〈해탈을 꿈꾸며-2〉는 정제된 언어로 잔잔한 여운을 덧대는 후기 작업의 복선에 속한다. 이 작품은 1993년 11월 합천 해인사에서 거행된 성철 큰스님의 다비식에서 촬영됐다.

그날, 가야산과 해인사는 인산인해였고 다비식은 엄숙하게 진행됐다. 많은 사진가들이 행사의 이모저모, 한 장면도 놓칠세라 진행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큰스님이 남긴 기운을 하늘과 바람과 나무에서 보았다. 사찰을 감싸고 도는 형용 불가능한 에너지를 지붕 위 한 스님의 조용한 묵상에서 읽었다. 침묵이었으나 해탈의 연장이었고, 큰스님의 맑고 진한 향기가 다비의 불과 연기를 따라 가야산 골골이 흩어짐을 배웅하는 것이었다. 이갑철은 이 순간을 직감적으로 카메라에 옮겼다. 생사의 궁극을 자연의 일부로 관조하면서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과 정서 뒤에 놓인 아련함과 아릿함을 적막과 고요로 담아냈다.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온 ‘충돌과 반동’ 이후 이갑철의 사진 미학은 더욱 깊어졌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과 사, 삶과 번뇌, 혼과 마음, 현실과 기원 같은 주제들은 하늘과 땅, 나무와 풀, 물과 바람 같은 자연 아래 숨어들었고 형상이 아닌 전국 방방곡곡 산천에 서려 있는 기(氣)가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지평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분명 여타 흔한 사진들처럼 세련되게 포장한 작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피사체만 한국적일 뿐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한국적이지 않은 것과 확실히 다른 무엇이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