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 〈나는 누구인가 16〉, 1996-1998, C-print, 가변 크기 © 사비나미술관

1990년대 초반에 개화한 디지털 사진 시대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진은 제작과 편집, 유통, 창작, 전시 방법 등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한국 현대사진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학술적 담론이 부족한 시기에 강홍구의 사진 실험은 사진 매체의 특성과 디지털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당시 사진계가 고수한 사진의 형식미 즉, ‘순수/비순수 혹은 스트레이트/메이킹’을 와해하며 이미지로서 사진의 확장을 시도한 점과 ‘하위문화(대중문화, 혹은 강홍구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매긴 B급 작가)적 상상력과 실천’은 진실에 접근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했다.

또한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도 강홍구는 새로운 사진 언어의 개발과 창의적 구성에서 활력을 보이며 유쾌한 카이로스(Kairos)를 낳았다. 디지털 사진 1세대로서, 사진의 다양한 기법과 변모를 통해 한국 사회 현실을 상징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 하면 소위 강홍구식 알레고리-몽타주와 포토샵으로 분할된 화면을 잇기, 재구성하기, 사진 위에 물감을 칠하거나 흘러내리게 하기, 사진으로 찍히지 않은 사물을 그리거나, 사진인지 페인팅인지(찍었는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가 지속적으로 생산되며 사진계에 파장을 낳는다.

강홍구의 작품세계는 연도별로 크게 다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가 처음 컴퓨터를 구입한 1992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상용하기 전인 1998년까지는 다양하게 매체 실험을 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잡지에 실린 사진이나 기성 엽서를 스캔하고 합성해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필름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고 인화해 스캐너를 거쳐 재구성하는 포토몽타주와 포토콜라주 기법을 주로 활용한다. 디지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핸드헬드 스캐너(hand held scanner)’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발표한 주요 작품으로 〈자화상〉(1992), 〈나는 누구인가〉(1998), 〈도망자〉(1996)를 꼽을 수 있다. 예술 창작자와 일상인으로서 자기 위치를 계속 검열하고 회의하며 작가/개인의 정체성을 좇는 작업이다. 가족제도와 가정생활의 모순을 드러낸 〈행복한 우리집〉(1997)에서는 행복하지 아니한 모습을 통해 가족의 실상을 살피고, 〈전쟁 공포〉(1998) 시리즈는 6 · 25전쟁 이후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내재한, 작가의 잠재된 공포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초기 작업은 두 번째 개인전 《위치 · 속물 · 가짜》(금호미술관, 1999)로 묶여 전시된다. 이 전시에서 강홍구는 본격적으로 스스로를 ‘B급 작가’라고 선포하며 세간의 주목을 이끈다.

두 번째는 강홍구의 독자적인 디지털 풍경연작이 제작되는 시기로 디지털카메라를 상용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이다. 형식적으로 흑백 파노라마와 컬러 파노라마로 나뉜다. 〈그린벨트〉(1999~2000), 〈한강시민공원〉(2001), 〈바다〉(2002), 〈부산〉(2002), 〈드라마 세트〉(2002), 〈물고기가 있는 풍경〉(2002)이 흑백 파노라마 연작에 해당한다. 강홍구가 산책 중에 만난 일상적인 풍경들인데 우리 시대의 묘하게 어긋나고 뒤틀린 풍경이 언캐니(기묘)하게 펼쳐진다. 특히 서울 근교 개발제한구역인 그린벨트를 촬영한 사진들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사진 속 그린벨트 풍경은 작가의 말대로 결코 ‘그린(Green)하지 않다’. 개발 열풍 속에서 ‘무질서’하고 ‘오염’되고 급기야 쇠락하고 노후된 흔적이 흑백 사진 속에 숨어 있다.

〈한강시민공원〉, 〈바다〉, 〈부산〉은 내용과 형식에서 일정 부분 공통감을 갖는데, ‘홍상수’식 영화의 한 장면이 실제로 펼쳐진다. 느닷없고 난데없고 기이한 것들이 버젓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물고기가 있는 풍경〉에서는 외계의 낯선 타자가 자기 서식지인 것처럼 누비는 모습이 날것으로 펼쳐진다. 난데없이 등장한 생선 때문에 사진은 꿈이 되고, 영화가 되고 판타지로 변했다. 이 시리즈는 이후 오브제(object)를 활용한 사진 연작 〈미키네 집〉과 〈수련자〉로 이어진다. 〈드라마 세트〉는 실재하는 세트장을 통해, 이미지 세계에서 모든 것이 보여주기 위해 허술하게 세팅되고 가공되어 여기저기 복제되는, 떠도는 이미지의 정체를 사유하게 한다. 실체가 없는데도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미지라면, 〈드라마 세트〉는 이미지의 덧없음을 정교하게 세팅한 작업이다.


강홍구, 〈미키네 집-구름〉, 2005-2006, 디지털 프린트, 100 × 240 cm ©강홍구

세 번째는 흑백 파노라마 풍경 연작 이후, 컬러 파노라마 연작을 발표한 시기다. 김포공항 바로 옆 마을 ‘오쇠리’의 풍경이 기묘하게 펼쳐지는〈 오쇠리 풍경〉(2004), 재개발 지역을 떠돌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자, 압축성장이라는 가림막 뒤의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 편에서, 한낱 작은 몸짓이긴 하여도, 움직여주는 무사 (武士)의 스토리를 다룬 〈수련자〉(2005~2006), 마을을 떠난 사람들, 장난감 집을 미처 챙기기 못하고 떠난 아이가 살고 싶은 ‘행복한 우리 (나의) 집’을 향한 꿈이 허허롭게 펼쳐지는 〈미키네 집〉(2005~2006)이 연달아 발표된다. 대표작에 해당할 〈사라지다-은평뉴타운〉(2009)은 작가가 불광동으로 이사한 해인 2001년 여름부터 2024년 현재까지 계속되는 작업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저 일단 찍어 두자, 내지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 하지만 결국 이 사진들은 뉴타운에 대한 우연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 사진의 성격을 띠고 말았다.”1 강홍구의 사진 작업은 대부분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인덱스성을 기초로 하기에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기록성이 근간을 이룬다. 서울의 ‘은평뉴타운’을 비롯해 ‘청주’와 ‘부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도시 연작이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의 힘이 배가되는 이유일 것이다. 기록성이 높은 작업으로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2013)과 〈청주-일곱 마을의 도시〉(2016)가 있다. 빠른 변화와 적막한 멈춤이 공존하는, 낡은 도심을 바라보는 그의 웅숭 깊은 시선이 더해지며 우리 시대의 ‘집’과 ‘도시’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연작이다.

초기작이 사진 이미지를 만들고 메시지를 전하는데 주력했다면, 2000년대는 사진 매체의 특성에 천착하면서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다룬다. 2010년 이후는 사진과 미술 사이를 긴장감 있게 오가며 작업한 ‘사진-회화’의 시기이다. 〈그집〉(2010), 〈녹색연구〉(2012), 〈서울山景〉(2013), 〈언더 프린트〉(2016), 〈안개와 서리〉(2017), 〈녹색연구2〉(2020), 2005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신안바다〉(2005~) 연작 등을 작업한 시기는 사진과 페인팅, 오브제 설치가 혼융하는 시기다.

사진을 프린트한 후,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덧입혀 사진의 기록적인 속성과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해 물감 너머의 사진 세계(실제 )를 살피게 한다. 수많은 녹색의 계조가 켜켜이 쌓인 〈녹색연구〉 시리즈는 녹색의 함의를 질문한다. “현대사회에서 ‘녹색’은 연구 가치가 높은 대상이다. 녹색, 자본, 권력의 공생 관계가 견고해질수록 강홍구의 ‘녹색연구’도 집요해질 것이다. 사진 재현의 무력감과 불가능 속에서 실재를 드러내려는 ‘그린green한 그림’”2이 되었다


강홍구, 〈녹색연구-서울-공터-송현동 1〉, 2019, 아크릴릭에 프린트 90 × 200cm ©강홍구

마지막으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신안 바다〉 연작이다. 강홍구는 2022년과 2023년 세 번에 걸쳐 〈신안 바다〉 연작을 전시한다. 세 번째 열린 《무인도와 유인도 –신안바다Ⅱ》(사비나미술관, 2023 )에서는 난숙에 달한 사진의 경지를 치밀하고 풍요롭게 담아내고 있다. 신안의 섬을 에워싼 바다와 바람, 갯벌과 파도, 사람과 동식물은 강홍구의 사진 속에서 작가와 함께 생생하게 살아난다.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풍경이 곧장 작품으로 옮겨오고, 사진의 말을 운용하는 방법과 대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따스한 엘레지가 더해 전시는 진한 공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천진성이 사진적 상상과 어우러져 지금의 세계를 열고,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섬들은 작가에 의해 새롭게 깨어난다. 두 시간대의 만남은, 글자 하나만 다를 뿐인 ‘무인도’와 ‘유인도’의 차이처럼,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삶을 존속해야 하는 섬과 작가의 숙명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 강홍구가 태어난 ‘어의도’에서 작업의 중심이자, 현재 거주지이기도 한 ‘은평뉴타운’까지, 30년의 작업세계를 시기별, 주제별로 톺아보았다. 강홍구는 슬리퍼를 신고, 디카를 들고, 가깝고 먼 동네의 재개발과 변화의 현장을 촬영한다. 산책자 강홍구가 무분별한 개발 현장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다. ‘오쇠리’에서 ‘은평뉴타운’까지, 그의 곡진한 풍경연작은 동질화하고 문화적 차이를 말살하는 보편적인 개발 행태에 대해 물러날 수 없는 강력한 저항의 산물이다.

강홍구는 부르주아 모더니티의 축복으로 태어난 ‘사진’으로, 찍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촬영한 후, 수만의 이미지를 엮어 이미지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빠르게 파괴되는 지구 환경과 생태계의 이면에 이미 포화에 이른 과잉 이미지들이 포진하고 있고,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 같은 자본주의가 견고하게 자리한다. 자연과 자본이 자연스레 뒤엉킨 상황과 표면만 매끈하게 제시할 뿐인 사진의 한계는 강홍구의 사진-이미지 세상에서 삐딱한 붓질과 그리다 만 것 같은 불확실하고 모호한 사진-그림 속에서 유영한다.3 결국 강홍구는 사진-이미지의 가벼움을 통해 사람과 도시, 자연의 건강한 생태계의 연결망을 회복하려는 것이 아닐지, 어의도에서 은평뉴타운까지 작가가 추구한 세계는 어린 시절 뒹굴던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처럼, 지금-여기의 삶도 건강하게 거듭나길 꿈꾸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1 강홍구 작업노트. 은평뉴타운의 기억 강홍구 사진전 도록『집 꽃 마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2021 p.203
2 최연하 『서울아트가이드』 2020년 6월호
3 최연하 『한국사진의 힘 –최연하 평론집』 월간미술 출판사 2020 pp.19~20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