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에 개화한 디지털 사진 시대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사진은 제작과 편집, 유통, 창작, 전시 방법
등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한국 현대사진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학술적 담론이 부족한 시기에 강홍구의
사진 실험은 사진 매체의 특성과 디지털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사유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당시
사진계가 고수한 사진의 형식미 즉, ‘순수/비순수 혹은 스트레이트/메이킹’을 와해하며 이미지로서 사진의 확장을 시도한 점과 ‘하위문화(대중문화, 혹은 강홍구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매긴 B급 작가)적 상상력과 실천’은 진실에 접근한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했다.
또한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도
강홍구는 새로운 사진 언어의 개발과 창의적 구성에서 활력을 보이며 유쾌한 카이로스(Kairos)를 낳았다. 디지털 사진 1세대로서, 사진의 다양한 기법과 변모를 통해 한국 사회 현실을 상징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 하면 소위 강홍구식 알레고리-몽타주와 포토샵으로 분할된 화면을 잇기, 재구성하기, 사진 위에 물감을 칠하거나 흘러내리게 하기, 사진으로 찍히지 않은 사물을 그리거나, 사진인지 페인팅인지(찍었는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가 지속적으로 생산되며 사진계에
파장을 낳는다.
강홍구의
작품세계는 연도별로 크게 다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가 처음 컴퓨터를 구입한 1992년부터 디지털카메라를 상용하기 전인 1998년까지는 다양하게
매체 실험을 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잡지에 실린 사진이나 기성 엽서를 스캔하고 합성해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필름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고 인화해 스캐너를 거쳐 재구성하는 포토몽타주와 포토콜라주 기법을 주로 활용한다. 디지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핸드헬드 스캐너(hand held scanner)’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발표한 주요 작품으로 〈자화상〉(1992), 〈나는 누구인가〉(1998), 〈도망자〉(1996)를 꼽을 수 있다. 예술 창작자와 일상인으로서 자기 위치를 계속 검열하고 회의하며 작가/개인의
정체성을 좇는 작업이다. 가족제도와 가정생활의 모순을 드러낸 〈행복한 우리집〉(1997)에서는 행복하지 아니한 모습을 통해 가족의 실상을 살피고, 〈전쟁
공포〉(1998) 시리즈는 6 · 25전쟁 이후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내재한, 작가의 잠재된
공포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초기 작업은 두 번째 개인전 《위치 · 속물 · 가짜》(금호미술관, 1999)로 묶여 전시된다. 이 전시에서 강홍구는 본격적으로 스스로를 ‘B급 작가’라고 선포하며
세간의 주목을 이끈다.
두
번째는 강홍구의 독자적인 디지털 풍경연작이 제작되는 시기로 디지털카메라를 상용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이다. 형식적으로 흑백 파노라마와 컬러 파노라마로 나뉜다. 〈그린벨트〉(1999~2000), 〈한강시민공원〉(2001), 〈바다〉(2002), 〈부산〉(2002), 〈드라마 세트〉(2002), 〈물고기가 있는 풍경〉(2002)이 흑백 파노라마 연작에
해당한다. 강홍구가 산책 중에 만난 일상적인 풍경들인데 우리 시대의 묘하게 어긋나고 뒤틀린 풍경이 언캐니(기묘)하게 펼쳐진다. 특히
서울 근교 개발제한구역인 그린벨트를 촬영한 사진들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사진 속 그린벨트 풍경은 작가의
말대로 결코 ‘그린(Green)하지 않다’. 개발 열풍 속에서
‘무질서’하고 ‘오염’되고 급기야 쇠락하고 노후된 흔적이 흑백 사진 속에 숨어 있다.
〈한강시민공원〉, 〈바다〉, 〈부산〉은 내용과 형식에서 일정 부분 공통감을 갖는데, ‘홍상수’식 영화의 한 장면이 실제로 펼쳐진다. 느닷없고 난데없고
기이한 것들이 버젓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물고기가 있는 풍경〉에서는 외계의 낯선 타자가 자기 서식지인
것처럼 누비는 모습이 날것으로 펼쳐진다. 난데없이 등장한 생선 때문에 사진은 꿈이 되고, 영화가 되고 판타지로 변했다. 이 시리즈는 이후 오브제(object)를 활용한 사진 연작 〈미키네 집〉과 〈수련자〉로
이어진다. 〈드라마 세트〉는 실재하는 세트장을 통해, 이미지
세계에서 모든 것이 보여주기 위해 허술하게 세팅되고 가공되어 여기저기 복제되는, 떠도는 이미지의 정체를
사유하게 한다. 실체가 없는데도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미지라면, 〈드라마 세트〉는 이미지의 덧없음을 정교하게 세팅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