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궤적 자체가 이전과는 다른 궤도로 옮겨가고 있다는 미세한 징후를 선보였던 때다. 1995년에 만난 박이소, 김범, 송현숙 등은 그 핵심에 위치해 있던 작가들이었다. 이후 홍명섭, 김용민, 이옥련, 안규철 등을 비롯해 정광호, 배준성, 한수정, 허구영, 김동유, 황혜선 등의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분히 개념적인 미술작업을 새삼 접하면서 다분히 습관적이고 인테리어적인 혹은 지나친 심각함으로 위장되어 있던 기존의 미술과는 다른 미술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이전과는 분명 질적으로 다른 미술개념이었고 그 작업 역시 전통적인 미술관행, 즉 조형적 구성 또는 재료에 대한 과도한 숭배, 장인적 기술의 과시와 개인적 터치에의 신경질적 집착 등을 가급적 배제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유성을 지녔다. 그러니까 기존 회화는 재료와 과정을 강조한 일러스트레이션들에 불과하며 조각은 커다란 스케일과 재료가 혼합된 공예품에 머물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서양의 본격 모더니즘 미술이 한국에서는 결국 공예의 감성과 전통 안으로 선별 수입·흡수되는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사의 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진단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안에는 우리 미술에 지배적인 무조건적인 감각지상주의, 시각적 쾌락주의에 대한, 생각의 과정이 빠져 있는 미술을 양산하는 패션으로서의 미술에 대한 강한 비판적 입장이 서식한다. 그래서 이들 작업에서는 형식요소들에서 출발하는 대신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술내용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까 이는 결국 기존 한국 미술에 대한 본격적인 반성과 비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셈이었다. 1970~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다소 거칠고 평면적인 이해 및 그 반대급부로서 설정된 미술 모두를 차분하게 돌이켜보는 한편 서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속에서 제대로 한국 현대미술을 풀어나가는 움직임들이 앞서 언급한 작가들로부터 기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분명 박이소가 돌올하게 위치해 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박이소가 당시 한국 미술에 염증을 느끼고 '본토 아방가르드'를 찾아 뉴욕으로 가서 마주친 문제는 무엇보다도 한국인 에술가로서의 정체성이라는 지극히 '개념적'인 동시에 '모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스스로 정체성 문제에 관한 한 도사가 되었다고 고백한 적도 있는데, 이는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리고 결국 그것이 평생 작업의 화두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서양과 한국의 중간에 서서 주어진 자신의 출신성분에 토대가 다른 문화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들이다는 수입과 번역의 관계이다. 아울러 게토화된 전통의 문제, 진정한 문화적 교류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그 바탕에 자리하고 있다.


박이소, 〈그냥 풀〉, 1987, 종이에 먹, 25 x 85 cm © 박이소

박이소가 1987년에 그린 〈그냥 풀〉은 무척이나 시니컬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이루어져온 사군자를 그대로 모방하고 복제하는 모든 작업들을 조롱하고 위반하고자 하는 제스처다. 오늘날 그려지는 사군자가 결국은 박제화된 전통이란 얘기다. 누런 갱지에 먹으로 의도적으로 서툴게, 엉망으로 그리고 쓴 이 가짜 난 그림은 자연과 사물에 '이름'과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인문적 상상력에 대한 일종의 해학적 몸짓이기도 하다. 전통에 대한 지나친 자의식이나 역오리엔탈리즘(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위해 지역적 특성이나 전통적 요소를 과장해 보여주기)의 부작용에 대한 비평적 언급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술적 전통과의 맥락 속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은 그를 암울한, 다분히 추상적인 무게로만 억누를 뿐이다. 그가 자신을 연결 지을 수 있는 전통의 실체는 관념으로 증발되고 남아 있는 것은 껍데기뿐이다. 즉 서화적 전통의 껍데기로서의 '바보서예'와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먹의 무게와 자취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통이 아니다. 가짜 전통이고, 비전통이다. 그냥 풀에 불과하다. 이 그림은 모두 어디론가 증발되어버린 우리의 예술적 전통에 대한 여러 겹의 패러디인 셈이다, 한지에 먹으로 그려진 선은 이 작품을 순간적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지조와 군자의 덕목을 상징하는 사군자의 난초 그림같이 보이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 위에 '그냥 풀'이라고 낙서하듯이 서투르게 흘려 써놓았다. 썰렁한 농담이다.
 
그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개념적' 지향과 모더니즘 전통의 중요한 일부로서의 '다이아그램'적인 정교함을 지니면서 '기능주의자적 정밀성' 및 매우 인식적이고 정보적이라는 점에서 개념미술적인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술의 언어적 환원과 같은 의미에서의 '개념미술'과는 달리 그의 개념적 미술은 '생각이 들어 있는' 미술작품이라는 좀 더 미술방법적인 면에 근접해 있다. 사실 그의 모든 작업은 미학적 혹은 지적 게임의 정교한 산물들이다.

그는 언어와 개념에 의한 사고가 만들어주는 설계도에서 출발해서 그 발상에다 재료와 형태라는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가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하나의 사물에서부터 생각이 출발하는 한편 사물과 재료의 상식적 속성들이 그것에 대한 작가의 연상, 해석 혹은 의견과 만나는 지점, 그 지점에서 서로의 실오라기가 얽혀드는 관계의 단면'도가 그의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 원칙적인 모더니스트였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통해 자율적 주체의 가능성과 조건을 탐구하는 정신적 태도"이며 "과거 전통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정립하는 태도"임을 상기해볼 때 그의 문제의식의 뿌리는 다분히 모더니스트적인 것이다.
 
따라서 작업 이전에 '프로페셔널 작가란 어떤 사람이냐'라는 담론의 테두리를 문제 삼는 것이 결국 작업의 주제였다. 그는 인문주의와 탈인문주의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독특한 작가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모더니티에 반발하는 인문주의자들의 속성에서 냉소, 허무, 거리두기 등으로 의미효과를 돌출시키는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예술가의 정체성 자체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는 화가라는 존재 자체도 그렇게 가능하지 않는 것 중 하나로 본다.

그 자신의 생존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작품제작의 큰 동기이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작품의 투명한 일부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가 던진 최초의 질문이 "그림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예술가란 누구인가"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예술은 예술을 통해 예술가가 이루려 하는 정신의 경지가 중요한 것이지 표현의 형식이나 예술형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훌룡한 작품이란 오브제로서의 물리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이며, 중요한 것은 상품으로서의 작품이 아닌 정신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점이 그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고 정직한 문제였다.
 
또한 이는 자신이 다루는 재료에 대한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각목이라든가 비닐, 콘크리트, 철근, 장판, 스티로폼, 상자, 스펀지, 유리병 등 건물의 골조공사에서 쓰이다 폐기되는 재료들이다. 허접하고 싸구려들이며 기존 미술작품의 재료로는 잘 선택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는 그간 미술작품이란 것 역시 영구성, 불변성, 기념비성과 자본과 결합되어 있는 관행에 맞서 작품이란 것 역시 일정한 시간의 입김 속에 소멸되고 자연스레 풍화되고 사라져버려야 할 것들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이 가난하고 허접한 재료들은 이후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것은 늘 공사중이자 날림성인 한국의 문화상황에 대한 박이소식 반응이고, 도대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고급예술이건 경제개발이건 간에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하는 욕망은 결국 낭비이고 허망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예술이건 경제개발이건 문명의 모든 우위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그가 도달한 '무상'의 지점은 문화적 주류에 대항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끈질긴 반성의 연장선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삶의 허무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기치료적 탈주수단, 이를 좀 더 생산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철학적 유희를 즐기면서 그것을 재미있게 물질화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거나 "인간이 만든 모든 종류의 의미 있는 생산물들도 언젠가는 쓰레기가 되어버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또는 "모든 것이 끝난 뒤, 우리 모두의 삶은 한순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우리의 삶의 속도는 사실 떨어지는 물체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 삶의 무상함은 낙하의 속도와 관계가 있다" 혹은 "진실이나 세상을 바꾸기에 대한 관심보다는 멍하게 가만히 있는 것, 힘없음, 예상할 수 없음, 행방불명, 목적 없음에 더 흥미가 있다"라는 진술은 그의 의식의 배면에 깔린 도저한 허무주의와 무상함, 또는 불교적 사유의 한 편린을 강하게 접촉시킨다.
 
"좋은 예술작품은 불교 승려의 깨달음과 같다. 승려의 큰 어려움은 최초의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바로 그 깨달음을 유지하고 갱신하는 것이다. 좋은 예술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작가는 불교 승려처럼 영구적인 자기 혁명에 자신을 연관시켜야 한다. 승려든 작가든 간에, 자신이 이룬 바에 지나치게 만족하는 그 순간부터 퇴보하기 시작한다."(작가노트)
 
선이란 인도어로 조용히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 화두 하나하나에 몰입해서 그것이 무엇이냐를 치열한 의심으로 파고 들어가는데 박이소 역시 자신이 구체적으로 작업을 하는 순간부터 죽기직전까지 그가 남긴 노트에 고스란히 그 사색의 과정이 남겨져 있고 이를 하나씩 실현한 것이 그의 작업이다. 작가의 사물관은 삼라만상에 담긴 획일화된 통념을 거부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인데 이는 불교적 사유방식에 닮아 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심안의 새로운 눈뜸 말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도저한 허무주의가 있다. 모더니스트 화가의 허무주의는 사물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발견을 위한 단독자의 차가운 열정이다.

박이소의 미적 전략이 불교와 친연성을 맺는 것은 전통의 철저한 회의, 통념의 과감한 전복을 추구하는 인식론의 기반에서 연유한다. 이는 철저한 단독자, 인간의 새로운 발견과 인식이 추구하는 문명적 진보를 의심하지 않는 모더니스트의 오연한 인간 주체와 겹친다. 해서 그는 선승 같은 삶을 살다간 이다. 이 세상이 공허하다는 것을 알고 그럼에도 그 공한 삶에서 산다는 것과 작업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문한 그는 이를 금욕과 절제를 통해 달성하고자 했다.
 
스님들의 출가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매우 미묘한 지점에서 삶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붓다는 지상에서 다른 왕국이나 낙원을 만들려는 마음도 없었다. 그는 낙원 같은 것은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가능하다면 그 사이, 부정과 긍정이 틈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미술이란 것 역시 그 사이 어디선가 홀연히 집착하지도 않고 떠 있지도 않으면서 거리를 유지하고 균형을 잡는 것은 아닐까? 박이소의 작업 역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