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개인전을 열었던 1985년 이래 지난 38년 동안 최진욱이 그려온 450여 점의 그림들은 소재 상 3가지 유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 화실 안을 그린 유형(A)과 바깥세상을 그린 유형(B), 그리고 B가 포함되어 있는 A유형의 그림(C)이 그것이다. 두손 갤러리가 이번에 기획한 최진욱과 이혁의 《2인 전》에는 그중 1992년의 자화상 2점(a)과 2020~21년 사이에 그린 실내 그림 8점(b), 2023년에 그린 화실 그림 2점(c)을 선별한 A유형의 그림들 12점만이 전시된다.

이런 제한된 선별 방식은 최진욱의 대표작들을 두루 접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 유형 전체를 일종의 ‘미니어처’처럼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점이 있다. A유형에 속하면서도 B-C유형과 일정한 접점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 절반 이상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배열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른 방식의 배열에서는 초점화되기 어려웠던 두 가지 측면에 생각을 집중하게 해준다는 데에 있다.
 
1) 먼저 100호를 훌쩍 넘는 그림들이 다수임에 반해 이번 전시에서는 20호~60호 사이즈가 다수이고, 100M 사이즈 2점이 가장 크다. 이는 대형 작품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최진욱 붓 터치의 ‘기운생동’하는 역동성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두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신 최진욱 그림의 특수한 측면, 즉 ‘자신과 대상의 관계를 그린다’고 하는 그만의 고유한 회화적 방법론이 초점화될 수 있다.

2) 이번에 출품작들이 초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던 A유형의 그림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30년 전에 그린 자화상 2점(a)과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포함한 화실의 전경을 그린 현재의 그림 2점(c)이 마주침으로써 발생하는 특수한 효과를 통해 최진욱 그림만이 지닌 고유한 회화관을 전면에 드러나게 한다는 점이 또 다른 측면이다. ‘화가 자신과 화가의 작업장이라는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운동’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측면은 서로 맞물려 있다. ‘자기 자신과 대상의 관계를 그린다’는 방법론에서 ‘대상’의 항에는 자기 자신, 작업장, 작업장 바깥의 세계 등 다양한 범주들이 포함된다, ‘자기 자신’의 항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상반신이나 하반신, 또는 전신, 손이나 팔과 같은 부분, 젊은 시절 또는 중년이나 노년의 모습 등등으로 그 내용들이 변화해 왔다. 자화상의 경우에도 거울에 비친 자기를 그리는 것은 자기를 대상화한다는 것이다. 반면 외부 대상을 그릴 때에도 캔버스를 분할하거나 형상을 어긋나게 그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자기의 흔적이 다양하게 화면에 기입된다. ‘관계를 그린다’는 행위는 자기와 대상이라는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궤도’와 같은 양상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진욱 그림을 다른 그림들과 구별해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 자신의 항이나 대상의 항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 것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변화할 수밖에 없는 자기의 항목들과 대상의 항목들 사이의 ‘특이한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의 작업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사조나 구상화 또는 추상화와 같은 범주로 쉽게 분류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진욱 작품은 평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적이지만 구체적인 대상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리얼리즘적이며 두 측면이 서로 충돌하거나 중첩되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그림들은 지극히 구체적인 형상들을 그린다는 점에서 구상화에 속하지만 또 다른 그림들은 형상을 지워버리거나 단순한 패턴을 그린다는 점에서 추상화에 속한다. 실제로 이런 면모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는 40여년에 걸친 그의 화력은 미술사의 모든 사조와 방법들을 연습하고 변형하면서 자기만의 화법을 실험해온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다각적인 실험들은 이미 1980년대에 상당 부분 성취되었다. 이런 실험들을 거쳐 1990년을 전후로 획득한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을 그는 ‘감성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하면서 ‘그림의 시작’ 시리즈를 개시한 바 있다. 이 명법과 그림들은 당시 치열했던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논쟁, 민중미술 대 순수미술 논쟁으로 요동치던 미술계의 엉클어진 지형을 가로지르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감성적인 것과 리얼리즘의 마주침은 환원주의적으로 분할되었던 미술의 지형 전체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 난처하다. 나의 그림엔 대상이 없다.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도 없으며 무엇을 추구하고자 한 목표도 없다. 어떤 작가가 권투선수라면 싸우는 대상이 있고 그것의 결과가 작품인데 내겐 상대방 선수가 없는 셈이 된다. 누구나 무대 위에 올라 무엇인가 관객에게 보여준다면 나의 작품은 무대의 뒤를 보여준다. 어지러운 소도구며, 배우들이 놓고 간 옷가지며, 먹던 도시락 (···) 그런 것, 이것을 화가에 빗대면 곧장 화실 풍경으로 이어진다. 주전자며, 의자, 이젤, 석고상 등. 배우를 강조한 연극, 배우를 주제로 한 연극이 멋대가리 없듯이 내 그림도 화가를 주제로 한 멋대가리 없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90% 이상의 미술작품들이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내보여진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연극적 긴장이 싫고,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대의 뒷면을 그리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나는 무대 위에 서지도 않을 테지만 무대 뒷면에 계속 머물러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극장 밖으로 나가 넓은 세상을 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림이 이 세상에 대한 미적 해명이라면 이 세상은 내가 확실히 해석하기에는 너무 넓다. 너무 방대하다. 나는 일단 극장으로 구획되어진 이곳, 이 확실히 알 수 있는 세상을 확실하게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진욱, 작업 노트, 1990.7.8)
 
그러나 당시에는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주장에는 그리는 대상이 무대인가(모더니즘), 극장 자체인가(화실), 바깥세상인가(리얼리즘)를 선택하는 문제 이상의 것이 있었다. ‘그리는 행위’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칸트)이라는 혁명적인 문제 설정이 그것이다. 이후 그의 작업은 화실을 그리든, 바깥세상을 그리든, 또는 두 유형의 그림들이 포함된 그림을 그리든 항상 이 ‘전환’의 문제 설정이 관통해 왔다고 생각된다. 이 전환의 문제 설정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해 칸트의 문제 설정과 비교해 보자.
 
칸트는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에 별들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지구의 공전 방식을 먼저 파악해야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자신의 철학 혁명의 비유로 삼았다.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우리 자신의 선험적인 인식 구조 자체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에게는 외부 대상이 무엇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대상과 대상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인식론적 구성 행위 사이의 ‘관계’가 문제였듯이, 최진욱에게는 어떤 대상을 그리는가에 앞서 대상과 대상을 그리는 화가의 ‘감성적 인식 및 구성 행위’ 사이의 ‘관계’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칸트는 당시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 오늘날 칸트주의자들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 이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초월론적 관념론(x)과 경험적 유물론(y)의 결합’이라는 일종의 매트릭스 구조(또는 타원 구조)로 이루어진 독특한 방법론을 제시한 바 있다. 최진욱이 자신의 회화적 방법론을 ‘신비하고도 과학적인 리얼리즘 또는 감성적 리얼리즘’이라고 칭했던 이유도 바로 대상과 ‘그리는 행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명명하기 위함이었다. 당시에는 그 자신은 물론 이에 대해 글을 썼던 필자 역시 이 ‘관계’의 특이한 구조를 깊이 천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와 돌아보면, ‘신비하고-과학적인-감성적인’이라는 표현이 칸트의 ‘초월론적 관념론’(x)과 상응한다면, “감각으로 필연코 느낄 수 있는” ‘리얼리즘’은 칸트의 ‘경험적 유물론’(y)에 상응한다고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런 유비가 어떻게 타당할 수 있을지 칸트의 방법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2.

칸트에게서 우리의 인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월론적 관념론과 경험적 유물론의 결합은 단순한 융합이나 절충이 아니라 변증법적 결합이다. 『순수이성 비판』의 1부 3장 「초월론적 변증론」에서 복잡하게 설명된 이 변증법적 결합 방식의 핵심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칸트의 초월론적 변증론은 우리의 정신이 올바른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치닫기 쉬운, ‘초월적 존재’를 향한 추상적 갈망과 구체적인 현상들에 대한 과학적 발견 사이에서 강한 긴장 관계를 설명하는 인식론적 방법이다.

대립되는 상대방을 서로에게 끌어당기도록 하는 역설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인식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은 추상적 무제약자를 향해 전진하려는 초월적 본성을 가진 이성과 구체적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오성이라는 대립되는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여기서 하나의 중심이 상실되면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구조는 해체되고,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으로 바뀌고 만다. 칸트 당시에 서로 대립하고 있던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은 바로 하나의 중심을 가진 두 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의 철학이 이해하기 어렵고, 종종 오해되는 이유도 그의 철학의 핵심이 칸트 이전과 이후에 지속된 이 두 가지 환원주의라는 두 개의 전선 사이에서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자는 –쇼펜하우어 같은 칸트주의자조차– 물 자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 그 결과 칸트는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주관성 철학의 시조로 간주된다. 그것은 칸트가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방향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 자신이 곧 그러한 관념론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칸트는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그저 비판적으로 절충하려고 했을 뿐일까?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코페르니쿠스 자신의 전회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 중요한 것은 천동설인가 지동설인가가 아니라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나 태양을,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것과는 별도로 어떤 관계 구조의 항으로 파악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지동설로의 ‘전회’를 가져다 준다. 즉 코페르니쿠스의 전회 자체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 칸트가 초래한 것은 감성의 형식이나 오성의 범주처럼 의식되지 않은, 칸트의 말로 하면 초월론적 구조이다.”(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송태욱 역, 한길사, 2005, 67~68쪽)

『순수이성 비판』에서 “이 의식되지 않은” ‘초월론적 구조’는 두 개의 이항식(감성-오성, 오성-이성)을 가진 타원 궤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칸트 이후의 철학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해 드러난 이 타원궤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이항식의 하나만을 자신의 기질에 따라 선택한 결과 헤겔식의 절대적 관념론과 콩트의 경험적 실증주의로 양극 분해되었고, 철학적 인식론 자체는 불구화되었다.

“칸트는 항상 주관성의 철학을 연 사람으로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칸트가 한 것은 인간의 주관적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형이상학을 그 범주를 넘어선 ‘월권’ 행위로 보는 것이었다. (…) 칸트가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주관성 철학으로 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이루어진 ‘물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로 전회하는 것이다. (…) ‘물자체’란 무엇인가? ‘물자체’는 실천이성 비판에서 직접적으로 말해지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다시 말해 ‘타자’의 문제인 것이다.”(가라타니 고진, 앞의 책, 72~73쪽)

요약하자면 칸트의 ‘초월론적 변증론’은 주관성과 물 자체(『순수이성 비판』), 자기와 타자(『실천이성 비판』), 자연과 사회(문화)(『판단력 비판』)라는 이중의 중심을 가진 여러 개의 타원 구조를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으로 환원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가를 실례를 들어 논증한 것이다. 인간 인식의 구조 자체가 이와 같이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자기 자신과 세상이라는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운동에서 발생하는 강한 긴장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 “신비롭고도 과학적인” 발견이라는 탄성이 터져 나올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정상 시각이 두 눈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차’에 의거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과도 유사하다. 최진욱이 자기와 대상의 관계를 그리는 방법론에 ‘신비롭고 과학적이며 감성적인 리얼리즘’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이제 칸트의 초월론적 변증론을 매개로 삼아 최진욱의 작품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자. 앞서 말했지만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는 화실 안의 그림(A) 유형이지만 그 안에는 B, C유형과 접점이 닿아 있는 그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다시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1) 〈108. 자화상〉(1992)(50 F), 〈109. 자화상〉(1992)(60 P), 〈361. 너의 세계 4〉(2020)(30 F), 〈362. 너의 세계 5〉(2020)(30 F)는 모두 자화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 번호 361과 362 모두가 거울에 비친 화가 자신의 하반신이라고 해석한다면 말이다. 이럴 경우 ‘너의 세계’라는 제목은 자신을 타자처럼 대상화한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반면 〈434. 2인 전을 위하여 1〉(2023)(100 M)와 동일한 크기로 그려진 〈435. 2인 전을 위하여 2〉(2023)는 자기가 포함된 화실의 전경을 그리고 있는 자기의 팔이 화면의 일부로 포함된 그림이다.

2) 나머지 그림 5점은 대부분 작업실이 아니라 화가의 아파트 실내 벽의 일부와 그 벽에 걸린 달력이나 벽에 기댄 캔버스의 일부에 외부 세계의 이미지가 그려진 그림들이다(C유형 = B를 포함한 A유형). 반면 완전히 화실 바깥세상을 그린 그림은 〈학교를 떠나며〉 1점이다(B유형). 그런데 이 경우 학교 연구실이 실은 화가의 외부 작업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A유형과 접점이 있다.
 
이렇게 ‘A-B-C(B를 포함한 A)’의 계열로 이어지는 이 12점은 대상의 내용을 괄호치고 방법론의 측면에서만 보면 최진욱 그림-세계의 전모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미니어처라고 할 수 있다. 그려진 시간상으로 보면 30여 년 전 얼굴 위주 자화상 2점(X)과 최근의 화실 그림 2점(Y) 사이에 나머지 그림 8점이 배열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30년의 시간적 진행이 X라는 한 중심과 Y라는 다른 중심으로 구성된 타원의 궤도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방식으로 전된 셈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자기에서 시작해 바깥세상으로 나갔다가 다시 자기로 되돌아오는 일종의 공전 운동과도 같은 것이다.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인지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두 가지 유형의 크고 작은 인지생태학적 회로와 유사하다.
 
1) 먼저 생명체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큰 회로가 있다. 오토포이에시스(물질적-정신적 자기조직화 X)라는 하나의 중심과 어포던스(환경이 제공하는 다양한 약과 독 Y)라는 또 다른 중심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내는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하는 미메시스(긍정적-부정적 동화와 이화 작용)의 회로가 그것이다. 자기와 대상의 인지생태학적 상호작용이라는 관계.

2) 이 회로와 상응하는 뇌 내부 회로가 있다. 좌뇌와 우뇌가 뇌량을 매개로 연결되는 전기화학적 흐름이 그것이다. 인류의 뇌(신피질)가 포유류의 뇌(변연계)를 매개로 파충류의 뇌(뇌간-시상하부)와 연결되는 지각-감정-욕망의 회로.
 
1)의 큰 회로의 관점에서 보면 1) 속에 2)의 작은 회로가 포함된다. 반면 2)의 관점에서 보면 2)의 회로 속에서 1)의 회로가 재-현 또는 반영된다. 이 이중의 인지생태학적 회로를 통해 생산되고 수용되는 ‘지각-정동-충동-행동-반성-관계 이미지’라는 ‘운동-이미지’의 제 형식(들뢰즈)을 밀고 당기는 힘은 무의식적인 에너지의 동역학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던 ‘이드’, 즉 끌어당기는 에로스와 밀어내는 타나토스의 합력으로 발생하는 무의식적인 에너지의 벡터가 그것이다.
 
오토포이에시스 차원에서 발생하는 이 에너지의 벡터가 이미지의 지각-생각-행동의 흐름에 느낌을 부여하는 1차적인 동력이다. 한편 환경이 제공하는 어포던스의 흐름이 주체에게 느낌을 발생시키는 2차적인 계기가 있다. 가령 날씨, 자연의 지형, 동식물의 상태, 도시의 구조, 사람 및 사물들의 교통, 사람들과의 대화 등등과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순간 발생하는 정동 혹은 지속되는 기분 등이 그것이다. 이 두 상태의 마주침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화하지만 크게 보면 4가지 순환 국면으로 구별된다. 선순환, 악순환, 교착, 안정 상태가 그것이다. 그림 그리기의 행위와 그 결과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4가지 순환 국면의 산물인 감정 구조의 변화에 직접 의존한다. 최진욱의 그림 450점도 실제로 이 4가지 순환 국면에서 발생하는 감정 구조를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2인 전에 출품한 작품들의 감정 구조는 어떨까? 크게 대별하면 A유형의 그림 4점의 지배적인 색조가 청회색이라면, 6점은 핑크색이 지배적이고, 나머지 2점은 혼합적이다. 앞서 이번 전시의 작품 선정은 전자가 후자를 감싸는 방식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보면 청회색이 핑크색을 감싸고 있으며 2점의 혼합색이 양자 사이에 교량을 이어준다고 볼 수 있다. 핑크색은 레드의 열정과 에너지, 화이트의 순수함과 천진함이 섞여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에너지와 개방적인 젊음을 연상케 한다. 반면 청회색은 무거움과 칙칙함, 사방을 둘러싸는 어둠에 폐쇄되는 느낌을 준다. 핑크색의 개방적인 그림들이 어두운 화실 그림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이런 구도 속에서 핑크색 터치가 격정적으로 칠해진 〈381. 천장에 가까운 그림〉을 보다가 필자에게 갑자기 이런 연상이 떠올랐다. 쿵쿵하는 큰 드럼 소리가 끝나면서 잔잔히 시작되는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와 풍경 이미지의 단편들이 그것이다.

 
“어두운 사막의 고속도로에서 (…) 공중으로 솟는 콜리타스의 따뜻한 냄새 (…) 저 멀리 반짝이는 빛…”

“머리가 무거워지고 시력이 흐려져” 하룻밤 머물다 가려고 멈춘 그곳, 들어가면 “체크아웃 할 수는 있어도 결코 떠날 수는 없도록” “프로그램된” 그곳. 어두운 사막 한 가운데서 희미한 빛을 발하는 호텔 캘리포니아의 “천정에 거울이” 달린 객실의 벽은 〈381. 천장에 가까운 그림〉처럼 핑크색 벽지가 발려 있지 않았을까? 이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달력 그림이 벽면에 걸린 객실 넘버 381호실에 투숙한 화가가 천장과 그 벽면에 초점을 맞춰 그렸던 게 아닐까? 물론 이 그림에는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처럼 천장에 거울이 달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최진욱, 〈385 호퍼 달력 2〉, 2022, 캔버스에 유채, 97 × 145.5 cm © 최진욱

벽면과 천장 구석을 거의 클로즈업으로 그린 이 그림을 다시 미디엄 숏과 풀 숏으로 그린 ‘호퍼 달력’ 연작(1, 2, 3)를 훑어보다 보니 이런 연상이 터무니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0년대 공황기 미국 사회의 고독한 풍경을 그렸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최근 한국 미술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그려진 그림이니 말이다. 1920~30년대 아메리칸 드림과 대공황의 공포가 뒤섞여 있던 미국과 오늘의 미국, 그리고 이런 미국에 의존해온 한국 사회의 문화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중첩되어 있다는 점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이런 맥락을 배경으로 삼아 화가는 핑크색 벽면에 걸린 호퍼 달력을 그린 이 그림들을 통해 우리 모두가 어쩌면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프로그램’되어 100년이 지나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최진욱 그림의 분위기는 호퍼 그림과는 크게 다르다. 일상의 단면을 스냅사진처럼 보여주는 호퍼의 사실적인 풍경화는 도시 공간 속 몰개성화된 개개인의 일상과 고독감을 잘 표현했기에 지금의 감상자들에게도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호퍼를 화면에 소환한 최진욱의 그림에서는 고독감, 소외와 같은 어두운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아비 바르부르크가 강조했던 ‘격정의 형식(파토스 포멜)’과 같은 에너지의 징후가 느껴진다. 그는 적어도 격정적으로 칠해진 - 작은 그림이라 비록 그 효과가 작지만 - 핑크색 화면을 통해 일상 속에서 다른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 아닐까? 텅 빈 화면에 노랑색으로 바탕을 칠하면서 노동당사 사진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붓을 휘두르는 그림 〈394. 철원 노동당사 그리기〉처럼 말이다.
 
만일 이번 전시에서 그가 과거에 그렸던 성공적인 풍경화들이 함께 선보였더라면 우리는 이 그림들을 다른 경로를 가진 출구와 연결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가령 〈서울의 서쪽〉(1994), 〈제부도〉(1996), 〈그림 속의 생각〉(1997), ‘이끼’ 연작 (1997), 〈동강은 흐른다〉(1999), 〈살아 있다는 것〉(2002), 〈러브 이즈 리얼〉(2005), 〈해수욕장-화실〉(2005), ‘웃음’ 연작(2008), 〈서서히〉(2013) 등과 같은 생태적 회화의 출구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기획자는 그 출구를 화가가 수십 년 동안 일했던 미술대학을 퇴직하고 나서는 순간의 모습을 매개로 삼아 돌아온 집의 실내와 시골의 화실이라는 작업실 공간으로 연결했다. 서두에서 잠시 말했지만 이런 기획은 작가 고유의 회화적 방법론을 보는 일에 집중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최진욱에게는 다른 작가들처럼 대상이 특정한 방식으로 주제화되어 있지 않기에 그에게는 고유한 주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내가 보기에 “아무거나” 그리는, 또는 그릴 수 있는 화가다. 하지만 이는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놀라움의 표현이다. 아무거나 그려도 그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주제를 특정 대상에 한정하지 않는 ‘자기와 대상과 관계 그리기’ 자체가 최진욱에게는 고유한 주제이자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는 것은 최진욱 그림의 입체적이고 과잉결정된 특성을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으로 한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앞서 칸트의 방법론과의 비교에서 혹자는 칸트의 순수한 형식의 미감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칸트의 방법론에서 중요한 것은 오성의 초월론적인 개념의 형식은 반드시 직관이 수용하는 물질적 세상의 감성적 경험과 결합해야만 인식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종종 오해되지만 칸트의 미학은 그린버그가 오독을 통해 이끌어내는 형식주의 미학으로 한정되지 않는데, 칸트 미학의 정수는 바로 형식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는 역동적인 숭고의 미학에 있기 때문이다.
 
숭고의 미학에서는 외부의 감당할 수 없는 양적, 질적 대상 앞에서 감성적 질료와 오성적 개념의 아름다운 조화가 깨질 때 무능력해진 상상력의 고통을 경유해 이성의 윤리적, 정치적 이념이 구원투수로 나서 자기 자신을 외부의 거대한 대상과 대등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 이성의 힘으로 일종의 ‘자가 발전’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자연미에서는 순수한 조화의 형식미가 중요한데 반해, 예술에서는 조형적 형식에 인간적 삶의 내용적인 요구나 자유의 이념과 같은 실천적인 이질적 요소들이 반드시 결합되기 마련이기에 예술미는 ‘불순한’ 미라는 것이다. 예술에서는 순수한 형식을 교란시키는 외부와 자기의 갈등이 강조되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초월해내는 숭고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소재 상으로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나 화실과 같은 폐쇄된 화실을 그려온 최진욱의 그림들은 정적인 그림으로 보인다. 하지만 깨진 거울에 비치는 화실의 이중반영, 다양한 사물들의 어긋난 구도에서 발산하는 강렬한 진동의 느낌, 화가의 모습이 마치 자유의 여신상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 등은 칸트가 말한 숭고미와 연관이 있다. 숭고미란 현실의 장애와 고통을 경유하는 자유의 이념의 물리적 현현이니 말이다.

한편 최진욱 그림에는 아비 바르부르크의 ‘파토스 포멜’ 같은 개념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격정적인 붓질이 있다. 이는 칸트에게서처럼 이성이 스스로를 끌어올리는 것과 달리 지성이 알 수 없는 신체의 어떤 힘이 아래로부터 창발하는 형식이다. 벤야민, 메를로-퐁티, 들뢰즈가 중시했던 “촉지적 시각”을 드러내는 힘차고 빠른 터치, 동양화 공부를 통해 습득한 ‘기운생동’하는 그의 붓질은 반 고흐의 터치를 훨씬 넘어서는 강렬함의 순간적 발산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특이하게도 숭고미의 측면(칸트)과 파토스 포멜(바르부르크)이 강렬히 결합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중 반영으로 중첩된 그의 화실 그림이나 생태적 회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변증법적인 시각과 붓질의 파토스 포멜에서 솟아나는 질료적 힘의 결합이 그의 작품의 고유한 화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는 미술사가 막스 라파엘의 통찰에 의거해 평론가 존 버거가 다시 강조했던 바, 즉 세잔의 변증법과 쿠르베의 유물론이 결합된 그림의 방법, 변증법적 유물론의 회화에 해당하는 것이다.
 
“세잔 이전에는 모든 그림이 창문 너머로 보는 광경과 비슷했다, 쿠르베는 창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자 노력한 반면 세잔은 창을 깨뜨렸다. 방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고, 보는 사람은 경관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 쿠르베의 유물론과 세잔의 변증법은 19세기가 20세기에 물려준 유산이 되었다. 남은 과제는 이 둘을 결합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두 사례는 따로따로 이어지고 있다. 즉 대부분의 그림은 진부하고 기계적인 자연주의이거나 아니면 추상이다. 그러나 1907년부터 몇 년 사이에 그 둘은 결합했다.”(존 버거,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박홍규 옮김, 아트북스, 2003, 95쪽)
 
이 글에서 말하는 모든 측면이 결합된 상태를 최진욱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호퍼의 풍경은 그림의 일부가 되었고, 화가 자신도 그림의 일부가 되어 있으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팔 역시 그림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변증법적인 회광반조의 현란한 각성이 격정적인 붓질의 틈새 사이에서 번쩍이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화실 그림들. 〈그림의 시작〉에서 시작해 〈2인 전을 위하여〉 같은 최근 그림에 이르는 전체 여정을 관통하는 화가의 회화적 방법을 다양하게 전개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상연 과정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결국 이는 인식론적으로 보자면, 초월론적 관념론과 경험적 유물론을 결합한 칸트의 ‘초월론적 변증론’, 즉 우리의 지각과 인식의 통합적인 메커니즘의 회로 전체를 자신의 방법론으로 삼는 회화를 말하는 것이다. 존 버거는 입체파 시대의 피카소에게서 이런 방법의 유일한 결실을 보았지만, 나는 최진욱의 그림에서 이런 방법론이 지속적으로 만개되고 변주되는 한국적인 형태를 본다.
 
하지만 이것을 현대 회화의 종착점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회화의 출발점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현대적인 회화적 방법론이라면 결국 다시 문제되는 것은 회화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 구조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존 버거가 주제의 문제라고 말했던 것도 이 문제에 다름 아니다. 존 버거에 의하면, 19세기에 들어 화가들이 궁정과 교회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귀족과 부르주아가 아닌 일반 민중과 자신을 일체화하여 민중의 관점에서 낡은 주제를 새롭게 보거나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는 길이 그 하나다(고흐나 고갱). 다른 하나는 자기 내부에서 주제를 찾는 길, 즉 ‘보는 방법’ 자체를 그림의 새로운 주제로 삼는 것이다(쇠라와 세잔). 존 버거는 양자를 결합시킨 예술가의 사례로 흑인 시인 세제르의 사례를 들었지만 입체파 시대의 피카소 이외에 다른 화가의 사례는 들지 않았다. 아마도 존 버거가 젊은 시절 옹호하던 이탈리아 화가 레나토 구투소를 그 예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국내 화가로는 신학철이나 김정헌, 민정기 같은 실험적인 작가들의 1980년대 민중미술 작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진욱의 그림은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민중적인 관점에서 발생하는 비판과 공감의 감정 구조보다는 보는 방법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바깥세상을 그린 그림에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보통 사람들의 관점, 알바생, 비정규직, 학생들의 시선에서 본 어긋난 세상의 뒤틀린 이미지가 야기하는 격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그림들은 구투소나 한국의 민중미술과 일정한 접점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성과들과의 접점 정도에 있지 않다. 자기와 대상, 지각과 인식, 인식과 행동의 두 중심을 가진 타원 궤도를 계속 확대함과 동시에 중첩시키면서 보다 유쾌하고 깊고 역동적인 감정 구조를 실어내는 그만의 그림을 향해 밀고나가는 일일 것이다. 존 버거가 역설했듯이, 늙어가면서 오히려 “더 심오함과 독창성을 더해가는” 화가로 거듭나는 일이 그것이다.
 
“화가들은 여느 시인들과 달리 발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며 서서히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낸다. 위대한 화가와 조각가 중에 늙어가면서 오히려 심오함과 독창성을 더해가지 않은 예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벨리니, 미켈란젤로 (…) 세잔, 모네, 마티스, 브라크 모두 자신의 몇몇 최고 걸작들을 예순 다섯이 지나서 제작했다. 그것은 마치 그 매체를 통달하는 데 평생이 걸리고, 그것에 통달했을 때 미술가는 자신을 단순화시켜 상상력의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존 버거, 앞의 책, 275쪽)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