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 미술관 2층 ㄷ자 공간 한 가운데에 섰다. 우측 벽에는 〈북아현동1〉과 〈처녀〉가, 마주선 벽에는 〈Prelude〉, 〈북아현동2〉, 〈북아현동3〉, 그리고 좌측 벽에 〈엄마와 아들〉, 〈우리 동네〉가 걸려 있다.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리, 건물, 버스, 인물들의 게슈탈트가 불규칙한 현실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 혹은 그림이 현실이 된 듯한 착각이다. 그것은 초점 맞춰 응시하지 않지만 각막 위를 스치는 풍경, 지나가는 시간, 무의식적 경험, 내 안의 현재와 외적 현실이 경계없이 엇갈리는 순간이다. 세잔이 변화와 본질의 양가적 진실을 위해 구성한 풍경과 정물처럼, 최진욱의 그림 역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요동치는 대상을 구성하고 그것을 하나의 현실로 만든다.
그의 화면에는 수많은 시공의 유린, 색채의 반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놀랍도록 현실인 것은 우리가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고, 내가 나를 인지하는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것은 사물도 의식도 아우르며 나의 신체에 담기는 현상학적 경험이다.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확신은 그 확신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계에 다가간다. 최진욱의 리얼리즘은 세계에 대한 확신과 계속해서 멀어지면서, 어떤 확신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 90년대 그의 화실 그림과 자화상들은 직접적인 체험의 영역으로 사실을 축소시키되, 그것이 화가의 감각으로 소유하고 움켜쥔 현실임을 보여준다. 그는 이것을 "감성적 리얼리즘"이라 칭한다.
그림이 이 세상에 대한 미적 해명이라면 이 세상은 내가 확실히 해석하기에는 너무 넓다. 너무 방대하다. ... 나는 내 그림이 리얼리즘이라고 불리든 그럴 수 없든 개의치 않지만 나는 내 자신의 그림이 그 어떤 리얼리스트의 그림보다도 리얼하다고 믿는다. ... 나는 나의 리얼리즘을 신비한 리얼리즘, 혹은 신비하고도 과학적인 리얼리즘, 또는 감각으로 필연코 느낄 수 있는 '리얼함'이기에 감성적 리얼리즘으로 부른다.(「내 그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990년 7월 8일)
92년에 그린 두 점의 흑백 자화상에서 거울 속의 화가는 우리를 바라본다. 화가는 거울을 빌어 그림으로 그려진 공간 안에 있었던 자신의 현존을 알린다. 거울 앞에 있던 화가는 거기에 있었고, 그림 안에 있으며, 그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화가가 보았던 세계를 본다. 이렇게 현실의 층위를 둘러싸고 화가와 그림과 관객 사이의 다소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다. 우리는 거울과 같은 스크린에 우발적으로 영사되는 현실로 각자의 세계를 직조한다. 이 점에서 최진욱의 감성적 리얼리즘은 보편적 현실의 일시 정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현실이 존재하는 방식을 다룬다. 그것은 개별적인 경험의 미시 세계와 거대한 세계의 구조 사이에서 발견해 가는 끊임없는 교환과 관련된다. 이 과정에서 익숙한 대상은 불현듯 낯설어지고, 대상의 보편은 상징적 메타포로 상승한다.
최진욱의 풍경들은 화가로서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자기 의식의 투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시선을 겹겹이 접고 펴서 만들어진 구축적 공간이자, 붓을 만지고 바르고 누르는 힘과 운동의 결합이다. 먼저 사진을 찍은 뒤 그것을 그리는 작업방식은 현실 공간의 동시성을 허물어뜨리며, 이를 다시 편집하고 배치한 생경함을 만든다. 1991년 작 〈하교길 2〉은 여러 이미지가 일상의 광경 위에서 중첩되고 있는데, 이러한 대비는 인과, 희비, 서사와 같은 것들로, 화면의 구조는 다양한 시간의 교차를 이루어낸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이미지의 기표가 충돌하는 긴장이며, 이 지점에서 감성적 리얼리즘의 형식적 차원은 역사적 맥락으로 이동한다. 화면의 구축과 장면의 선택, 그리고 회화의 요소 간의 조응이 의미를 매개하며 그의 그림을 감성적 사실성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루카치와 브레히트 간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논쟁이 합의에 이른 상태를 연상시킨다. 루카치는 리얼리스트가 개별자의 체험과 동시에 역사적 총체성과 관련하고 있으며 사회적 사실들을 일상적 세부로 제시한다고 했다. 반면 브레히트는 이 세부가 개인들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추상화를 필요로 하고 이를 통해 '전체성'을 더듬어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전체성은 이미지가 구축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즉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긴장은 전체와 개별 사이의 인용과 환유를 통해 가능하며, 최진욱의 경우, 이것은 회화가 지닌 표현적 기능과 의미의 시대성이 공존하면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