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내 작품이 여기저기서 인기를 끌게 되었지?”
그런 맥락에서 최정화의 작품 〈퍼니 게임〉은 의외다.
98년 초 국제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 ‘진짜’ 경찰 모형들을
세워 놓고 이런 제목을 붙였는데, 알다시피 이들은 도로변에 과속 차량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세워 놓는 눈속임용
마네킹이다.
탈옥수 신창원에게 권총을 빼앗기는 무능력한 경관, 불법
영업의 대가로 각종 상납을 받는 비리 경관 또는 성실한 민중의 지팡이로서 표창 받는 모범 경관들과 전혀 다르게 이 경찰관들은 큰 키에 뚱뚱해 보일
정도로 두툼한 체격과 잘생긴 얼굴을 한껏 자랑할 뿐이다. 미술관 안에서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침묵을 지키고 서 있는 이 ‘가짜’ 경찰들이 미술 제도를 운영하는 ‘진짜’ 경찰력을
시뮬레이트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착종된 한국의 컨텍스트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나이브한 이야기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의 도상적 효과나 DP점이나
여행사 앞에 서 있는 등신대 모형 사진의 인덱스적 연상조차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우리의 이 경찰관들은, 내가
보기에 오히려 완전한 허구적 ― 말 그대로 텅 빈 ― 상징물이다. 그것은 한국 관료제의 실상, 짜증 날 정도로 비경제적인 관행과 거의 가족적
수준의 비논리적 담론, 그리고 끝없는 전시 행정과 필사의 경력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이 총체적 부실 상태를
아주 완벽하게 지워 버린다.
늠름한 경찰관들은 이런 복잡한 사태를 ‘입
싹 씻어’ 버린 채, 마치 어느 날 엉뚱하게 솟아난 관립 문화예술회관
건축물처럼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자신의 백치미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퍼니 게임〉은 정작 미술관 언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별 환영을 못 받았지만, ‘진짜’ 무지한 경찰들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이 작품 때문에 작가는 서울시 경찰청에 가서 각서를 쓰고 그 밖에 몇 가지 합의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제도 내 게임과 제도 밖 게임을 명쾌히 가르지 못하게 하는 우리 삶의
지형은 최정화가 인테리어한 ‘올로올로’나
‘오존’, ‘살’ 등에서 다른 각도로 시각화된다. 노출 콘크리트와 호마이카, 원시적 벽화와 철망, 녹슨
철판과 알전구, 인조 모피와 샹들리에가 만나는 그곳은 의식의 봉건성과 홀로코스트적 미래의 결합 또는 뉴욕의
뒷골목과 가리봉동 안방의 교차를 혼성 모조하고 있다.
이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지 장교용 모자, 장난감 총, 군용 운동화, 상패용 동상 등 권력 지시적인 오브제들을 늘어놓고 명찰형 제목들을 붙여 놓은 〈슬기로운 생활과 필수 영양소〉에서
막상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도 그렇다고 비판적 미술의 문맥도 명확하게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나열된
사진 이미지들을 보며 연상의 순열 법칙을 찾아내려는 관객들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경찰관-최정화를
감지할 뿐이다. 물론 이때의 최정화는 경찰관 복장을 하고 놀이하는 소년처럼 흥미진진하고 꼭 그만큼 심각하다.
그리하여 그는 경찰의 지휘도 같은 작품을 지구상의 여러 장소들로 공수시킨 후
그 이동 거리에서 생겨나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짐짓 놀란다. 10미터의 주대 위에 서 있는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가 호주의 쇼핑몰에서는 화려하고 날렵한 금박의 천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면 상파울로 비엔날레 전시장에서는 이 여신상의 전모가 드러났다. 둔하고 퉁명스럽고 천박한 이 여신의 자태가 3층 높이 전시된 미술사의 걸작품
자코메티 조각의 시야를 방해한다고 해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때도 여전히 이 ‘유니폼
애호증’에 걸린 최정화는 불온하게 낄낄 웃고 있었을 것이다. 이동 거리의
조합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들면 이런 사태도 생겨난다. 호주 멜버른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로댕의 〈발자크〉 조각과
최정화의 〈퍼니 게임〉, 최정화의 〈앙코르…〉와 헨리 무어의 〈어머니〉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된다. 직접 전시되지는 않았지만 최정화의 또 다른 작품 〈어머니〉를 배경으로 깔 경우
이 작품들이 만들어 내는 나선의 내러티브는 한 번 더 꼬이게 될 것이다.
확실히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엔 비정치성의 정치력, 다른 말로 하면 게임의 정치라 할
만한 유희적 태도가 좀 더 끈질긴 생명력을 보장한다. 흥행성과 대중적 인기를 보장하는 작가 최정화의 작품
세계는 그의 활동 범위만큼이나 다양하다. 미술관과 화랑, 부티크와 주점, 거리, 영화에서 우리는 그의 사진, 디자인, 설치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물건들을
버무려 기발하고 신선한 미술 작품으로 변신시키는 그의 작업은 동시대의 시각적 토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