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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기봉: 텍스트의 현전을 무화하는 몸의 현존
2012
이선영 | 미술평론가

이기봉, 〈독신자 - 이중 신체〉, 2003, 플렉시글라스, 철, 물 펌프, 조명, 150 x 65 x 195 cm © 이기봉
이기봉의 《흐린 방》에 등장하는 물, 거품, 수증기 같은 축축한 물질은 단단하고 차갑고 거대한 구조물을 통하여 발생하고 소멸하는 유동성 미디어로, 관객의 오감에 스며든다. 거기에는 평면과 입체를 불문하고 텍스트의 형식을 취하는 구조들을 무화시키는 모호한 움직임이 있다. 그것들은 붙잡을 수 없기에 더욱 은근하며 강력하다. 몸으로부터 발원하는 감각의 불안정성은 텍스트로 대변되는 안정된 형식과 충돌한다.
이 충돌의 드라마에서 텍스트는 악역을 맡는 듯하다. 텍스트로 대변되는 언어는 감각보다 늘 나중에 오지만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보다 확실한 전유의 형식을 통하여 감각을 고정시키고 지식의 형태로 정리하며, 관념으로 환원하는 일련의 권력처럼 다가온다. 시스템화 된 사회에서 감각은 더 촘촘한 그물망으로 코드화 되기에, 작가는 구조들 사이의 틈을 감각으로 가득 채우며, 더 나아가 감각을 고정시키는 구조를 상대화 한다.
가령 심오하고도 묵직한 지식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책을 푸른색 수족관 속에 정처 없이 떠돌게 한 작품 〈Bachelor - The Dual Body〉(2003), 텍스트가 새겨진 평면을 수직 수평의 움직이는 레이저 광선으로 절단하는 듯한 〈Sense Machine〉(2012)이 그렇다. 망각과 기억을 대조시킨 한 쌍의 작품 〈지속되기 위하여〉(2012)에서 아스라한 녹색 풍경을 기억하게 하는 장면은 텍스트가 제거되어 있다. 여기에서 지속을 유지하는 것은 지식이 아닌 감각이다. 작품 〈There is No Place〉(2012)에서 유리 막 안에 안치된 나무는 수증기가 채워지고 가라앉는 과정 속에서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나무 그림에 상응하는 이 설치물은 명확한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는 사물의 두터운 층을 드러내기 위해 시간을 개입시킨다.
전시부제와 같은 제목의 가장 큰 작품 〈Cloudium〉(2012)은 얇고 평평하게 조성된 검정 수조에 하얀 구슬 형태들을 텍스트 형식으로 배열하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거품으로 텍스트를 뒤덮는다. 주변에 설치된 화면에는 퍼포머가 거품을 내며 몸을 씻는 장면이 나와서, 불확실한 형태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거품의 발원지를 가늠하게 한다. 텍스트를 베일처럼 가리는 비누거품은 몸의 경계에서 발생한 것이다. 텍스트의 현전을 모호하게 하는 것은 몸의 현존이다. 〈Romantic Soma〉(2012)는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중의 거품 그 자체만을 부각시킨다. 기계 장치와 붉은 레이저 빔은 거품이 발생되고 변형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조명하지만, 관객의 시선이 모이는 곳은 어떤 형태를 잡자마자 매순간 무너지는 형상이다.
이기봉의 작품에서 물, 수증기, 거품은 구조나 텍스트 사이에 끼어들면서 명확한 인식과 재현을 불확실한 과정으로 만들며, 퍼포머 정영두의 액션에서 드러나듯이 몸과 감각적 현상을 대변한다.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문자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의 형식을 취하는 단위구조의 배열은 쓰기나 인쇄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문자성(literacy)을 상징한다.
월터.J.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와 마샬 맥루한의 『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지각과 기억에 있어 전신감각을 요구하는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문화가 추상적인 문자로 고정되는 흐름을 밝힌 바 있다. 르네상스의 원근법이나 인쇄술은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처럼, 일련의 지배적 구조와 질서가 있는 곳 어디에서고 다시 작동한다. 인류의 기나긴 소통의 역사 속에서 문자성의 확립은 명확한 선적 논리와 재현주의의 강화를 가져왔다. 문자성이 전제하는 선적 논리는 오감 중에서 시각을 추출하고 전문화, 형식화시켰다.

이기봉, 〈Romantic Soma〉, 2012, 혼합 매체, 100 x 370 x 65 cm © 이기봉
그러나 모더니즘에서 정점을 찍은 추상적 시각성과 형식주의는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타자들의 복귀를 가져왔다. 고정된 구조라는 공간적 형식보다는 발생과 소멸이라는 시간적 과정에 방점을 찍는 이기봉의 작품에서, 몸과 몸의 부산물처럼 보이는 유동적 매체의 역할은 중요하다. 물론 몸 역시 텍스트로 간주된다. 그러나 탄생과 죽음, 고통과 환희의 과정은 아직도 명확히 기호화되지 않았다.
몸이 텍스트라면, 그것은 매번 다시 씌여질 수 밖에 없는 텍스트일 것이다. 몸은 텍스트를 생성하는 원천이며 텍스트의 보이지 않는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기호로 환원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현대예술을 추동하는 욕망은 불투명한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려는 과학의 임상의학적 시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단단한 구조위에 새겨진 텍스트들 사이로 명멸하는 유동성 매체들은 지식의 선조적 재현을 거부하고, 몸의 두께와 사물의 두께를 직접 맞추어 보려는 반복된 시도에서 생성된 차이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