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 Kim Tschoon Su

화가 김춘수의 예술적 궤적은 청색(靑色) 단일 색채를 중심축으로, 회화의 근원적 본질을 탐구하는 쉼 없는 구도(求道)의 기록이다. 그의 작업은 재현의 언어를 해체하고 순수한 현전(現前)의 상태를 모색하는 깊은 철학적 질문들을 내포한다. 이러한 예술 철학은 서울대 및 미국 유학을 통한 학술적 배경에 기반하며,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그의 작업 핵심으로 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대학 시절 접한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명쾌한 ‘평면성 논리’에 공감하며 회화의 대전제를 내면화했지만, 이후 논리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영역을 탐구하는 역설적인 동기를 얻었다. 1980년대 ‘사진작업’을 통해 재현의 문제에 대한 초기 질문을 던졌던 작가는, 이후 푸른색 단색조 회화로 회귀하며 색채를 존재의 근원으로 삼는 선언을 하게 된다. 청색 안료를 주된 매체로 고수하며 그 물성(Materiality)과 상징성을 극한으로 탐구하였고, 이러한 단색성에 대한 천착은 1996년 제2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 선정 등의 국제적 성과를 통해 그 미학적 정당성을 공고히 하였다.


김춘수, 〈삼각형 그리기〉, 1980 © 김춘수

김춘수 작업의 조형적 단독성은 1990년 ‘수상한 혀’ 시리즈에서 감행된 붓 대신 손(핑거페인팅)을 사용하는 행위에서 가장 독특하게 드러난다. 붓을 ‘설명적인 언어’로, 손을 ‘원초적인 소리’로 개념화한 그는, 붓 작업 시 드러나는 주관적 자의식에 대한 근원적 거부감 때문에 이 전환을 선택한다. 1990년부터 35년 이상 지속된 이 육체적 행위는 신체화(Corporeality) 개념의 실천이며, 얇은 비닐장갑을 겹쳐 사용하는 방식은 작가의 시간과 노동이 밀도로 쌓이는 수행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복적 행위는 형식 속에서 미묘한 차이(Difference)를 발생시켜 새로운 회화적 현장성을 창출한다. 청색 안료에 대한 천착은 높은 투명도를 활용하여 평면성 논리를 수용하면서도 회화적 깊이감을 탐구하려는 미학적 시도라 할 수 있겠다.

1990년부터 35년간 ‘핑거 페인팅’ 외길 고수

‘수상한 혀’ 시리즈는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문제를 다루며, 그림 속 형상과 재현은 결국 일루전(환영)이라는 입장을 설정한다. 작가는 청색과 터치로 관람객을 교묘하게 ‘바다’로 유도하지만, 작품의 본질은 “네가 보는 것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수상한 형상’임을 강조한다. 대표작 〈Sweet Slips-3〉(1993년), 〈희고 푸르게〉(2000년대) 등은 이러한 페이크 장치를 통해 관람객의 해석에 질문을 던진다. 또한 〈Untitled-98-3〉(1998년)은 색채의 깊은 침잠을 유도하며 물성적 깊이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며, 수행의 결과물인 〈ULTRA-MARINE 08-3〉(2008년)은 손에 의한 물감의 중첩을 통해 시간을 응축적으로 시각화한다.  

김춘수의 작업은 한국의 단색화 정신성을 계승하면서도 재료의 물성과 행위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자신만의 단독성을 확립했다. 1996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직을 병행하며, 철학적 사유를 형태 없는 푸른 추상으로 치환하고 깊이를 더했다. 그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재현의 언어를 해체하는 동시에 순수한 회화 행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푸른 지평을 제시하며, 색채의 현전을 통해 우리 시대의 첨예한 예술적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대변할 것이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김춘수 작가와의 심도 있는 대화는, 단 하나의 청색이 어떻게 무한한 사유의 깊이와 조형적 극한을 품어낼 수 있는지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김춘수, 〈Sweet Slips〉, 1999 © 김춘수

1980년대 초반 사진을 이용한 작업 시리즈를 전개하게 된 배경과 구체적인 동기는 무엇이었나.

“당시 미술계의 주요 화두가 ‘본다는 것’, ‘보이는 것’ 같은 시지각 중심의 탐구였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사진(렌즈=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자기 언어가 정립되지 않은 시기에 사진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후 회화작업 등으로 넘어오면서 신체성을 탐구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이는 대학 시절 서양 미술을 공부하며 접한 평면성 개념에서 출발했다 할 수 있겠는데, 특히 재스퍼 존스가 ‘평면에는 평면 이미지를 그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공감하며 이 평면성에 대한 인식이 나중에 ‘수상한 혀’ 시리즈를 작업할 때 신체성과 연결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수많은 색채 중 청색 계열에 몰두하게 된 결정적인 미학적 계기는 무엇인가.

“청색 계열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게 된 시점은 1990년으로, ‘수상한 혀’ 시리즈를 시작한 때와 일치하는데, 당시에는 그저 투명도 높은 안료를 사용함으로써 화면에 레이어를 쌓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최근에는 청색 사용 동기에 대한 반복된 질문에 ‘이건 파랑이 아니다’라고 역설적으로 답하고 있다. 이 대답은 관람자에게 ‘왜 파랑이 아닌가, 진정 파랑인지아닌지 함께 따져보자’는 물음을 던져, 단순한 색채를 넘어선 개념적 논의를 시작하려는 나의 의도를 담고 있다.”

작품 활동 초기부터 붓 대신 손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처음에 붓을 놓고 휴지 뭉치를 이용해 물감을 찍어 묻혀 보았다. 그랬더니 이전에 가졌던 나름의 불만족들이 가라앉고 좀 더 원시적이고, 심지어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의 어떤 내면까지 드러나는 것 같았다. 붓으로 그리면 붓이 가진 한계성 외에도, 나의 모습이 너무 잘 보이는 듯싶었는데, 여기서 ‘나의 모습’이란 테크닉이나 손맛을 포함하지만, 더 나아가 나의 소심함, 주저함 등의 감추고 싶은 약점들까지도 내 눈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싫었고 답답했다. 사실 작가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하는 배움과는 모순이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김춘수, 〈수상한 혀〉, 1996 © 김춘수

작품을 통해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형상이나 물질, 단색화 같은 논쟁을 떠나서, 내가 추구하는 예술의 핵심은 ‘그리움’이라 할 수 있겠다.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실존적 불확실성을 포함한다. 죽음 앞에서 현재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그리움의 한 부분이며, 다른 사람과의 교감이나 소통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데서 오는 갈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이나 사랑 등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그야말로 혼돈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그리움이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그리움’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 ”

손으로 그리는 청색 작업을 쉽게 바꾸지 않고 계속할 생각이라고 하셨다.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태도이다. 이는 ‘이것은 파랑이 아니다’라고 역설하거나 평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취향과 소명에 맞는 예술의 본질을 찾아 꾸준히 파고드는 태도를 작품에 반영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묵묵히 작업하여 후대에 미술사적으로 그 위대함을 인정받은 세잔의 태도와 로스코 작품에서 느껴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와 마력을 품고 싶다. 진정한 회화는 논리적 분석을 넘어 미스터리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와 인공지능의 세상에 진입하였고 그러한 세계에서 회화가 과연 인간 존엄에 관한 진지한 질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조심스레 물음을 가져본다.”


(왼쪽) 김춘수, 〈무제〉, 1996, (오른쪽) 김춘수, 〈울트라-마린〉, 2010 © 김춘수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