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충실하게 재생산하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역사적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Raymond Aron
Ⅰ. 프롤로그: 뒤엉킨 시간의 순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에이디 2002년 팔월 새벽 여섯 시 삽으로 정방형으로 땅을 자른다. 비씨 2000년경 토기 파편들, 돼지뼈, 염소뼈가 나오고 진흙으로 만든 개가 나오고 바퀴가 나오고 드디어는 한 모퉁이만 남은 다진 바닥이 나온다. 발굴은 중단되고 청소가 시작된다. 그 바닥은 얼마나 남았을까, 이 미터 곱하기 일 미터? 높이를 재고 방위를 재고 바닥을 모눈종이에 그려 넣는다. 이 미터 곱하기 일미터의 비씨 2000년경, 사진을 찍고 난 뒤 바닥을 다시 삽으로 판다.
한 삼십 센티 정도 밑으로 내려가자, 다시 토기 파편들, 돼지뼈, 소뼈, 진흙개, 바퀴, 이번에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곡식알도 나온다. 비씨 2100년경의 무너진 담이 나온다. 담 높이는 이십 센티, 다시 밑으로 밑으로 합쳐서 일 미터를 더 판다. 체로 흙을 쳐서 흙 안에 든 토기 파편까지 다 건져낸다. 일 미터를 지나왔는데 내가 파낸 세월은 한 오백 년, 내가 서 있는 곳은 비씨 2500년경, 압둘라가 아침밥을 먹으러 간 사이 난, 참치 캔을 딴다. 누군가 이 참치 캔을 한 오백년 뒤에 발굴하면 이 뒤엉킨 시간의 순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 시간언덕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Ⅱ. ‘역사’라는 문턱 앞에서 서성거리다: ‘낯선 시간’을 찾아서
들어갈 수 없는 문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넘지 못할 문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문턱 앞에서 사람들은 큰 걸음 한 폭 정도면 충분히 넘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실수로 문턱에 발끝이 걸려 휘청 거릴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높이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렇듯 문턱은 쉽게 넘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문턱은 높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넘지 못할 정도로 높아서 그곳에서 멈추게 한다.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문턱 앞에서 주저하며 서성거리게 한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문턱이다.
이 문턱 너머에 있는 공간은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기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범주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들에게 이러한 범주는 무용지물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에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시간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가능태들이 뒤엉켜 있을 뿐이다. 질러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러한 공간에 존재하는 시간을 초시간적이라는 의미에서 ‘낯선 시간’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높디높은 문턱에 가려 역사도 알지 못하는 까마득히 먼 시간.
〈아쉬켈론의 개〉(2000), 〈구림마을 프로젝트〉(2000), 〈이서국(伊西國)으로 들어가다〉(2002)로 이어지는 조덕현의 ‘발굴 프로젝트’는 이러한 ‘낯선 시간’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역사의 문턱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뒤엉킨 시간에게 자료, 기록, 유물 등의 실증적 체계라는 살을 붙여 새로운 컨텍스트를 구성한다. 이것은 ‘낯선 시간’에 위치한 것들을 끌어 올려 역사의 문턱을 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역사의 틀에서 개연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한 그들만의 자리를 찾아준다. 여기서 조덕현은 이러한 서사의 주체이다. 이것이 조덕현이 진행하고 있는 발굴 프로젝트의 소략 된 전모이다.
그러기에 조덕현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이 “가상적이며 신비한 과거를 발굴하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술(그것이 현대이건 과거이건 상관없이)에서 시대적 사건이나 인물을 회고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사실을 현재에 끌어들여 재평가 한다. 조덕현 역시 이러한 맥락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가 다루고 있는 과거의 층위는 ‘낯선 시간’까지를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두텁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일관되게 과거의 역사를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더불어 그것이 역사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일반적 인식의 ‘역사’에서는 소외된)까지 보여준다. 그래서 ‘역사’를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한다. 수잔 손탁의 말에 기대어 이야기하자면,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역사에 대한)이해가 시작”된다.
Ⅲ. 기록과 자료를 배태하고 있는 무덤(無-덤): 〈매장을 위한 발굴〉
그렇다면, 왜 조덕현은 ‘낯선 시간’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발굴(매장을 동반한)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일까. 그것은 땅(무덤)이 가지는 의미망 안에서 발견 될 수 있다. 조덕현에게 땅(무덤)이란 ‘고인의 육신을 간직한 지점’ 이다. 그는 50마 정도 되는 광목을 아버지 무덤 근처에 묻었다. 땅에 퍼져있는 아버지의 기운이 광목에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5개월 만에 흙과 분간이 되지 않는 최소한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조덕현은 땅(무덤)에 내재되어 있는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덕현은 그것이 마치 아버지의 유해인 양 조심스럽게 수습한다. 《삶의 계보학-아버지에 대하여》展(국제갤러리, 1996)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전시에 출품된 〈매장을 위한 발굴〉에서 조덕현은 아버지, 땅(무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을 다루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무덤을 보면서 30여 년 전의 의문 하나를 떠올린다. 당시 7살이었던 작가는 ‘돌아가(故)’신 아버지가 과연 어디로 ‘돌아가(回歸)’셨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심연에 가라 앉아 있던 아버지의 존재감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떠오르는 순간” 즉, 30여 년이 지나 아버지를 빼닮은 자신의 아들을 아버지의 기운이 스며있는 땅에 내려놓으면서 풀린다.
아버지가 돌아가(回歸)신 곳은 그를 빼닮은 아들이 서 있는 땅(무덤)이었던 것이다. 죽음의 자리에 있는 아버지와 삶의 자리에 있는 나(작가), 그리고 탄생의 자리에 있는 아들. 이 세 주체는 땅(무덤)에서 개인의 계보학을, 그리고 가족의 계보학을,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 보편적)삶의 계보학을 그린다. 조덕현에게 무덤은 이러한 세 가지 계보학을 담지하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 또한 범상치 않다. 〈매장을 위한 발굴〉. 시간의 순차성을 고려한 언어적 수식구조에 따르면, 이 제목은 ‘발굴을 위한 매장’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발굴을 하기 위해서는 매장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장이 없는 상태에서 발굴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덕현은 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발굴과 매장의 순차적 역전은 아버지와 아들이 등가적 층위에 놓이게 되면서, 아버지로 대변되는 죽음과 아들로 대변되는 탄생이 뫼비우스 띠를 형성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인류의 보편적 역사를 드러낸다. 그러기에 작가에게 ‘매장을 위한 발굴’이든, ‘발굴을 위한 매장’이든 별 상관없다. 아버지는 아들로 돌아가(回歸)셨고, 아들은 아버지로 돌아가(回歸)는 지점, 그리고 다시 아버지가 돌아가(故)신 지점. 그곳이 바로 무덤이다.
조덕현에게 무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발굴 프로젝트의 중요 행위인 ‘매장-발굴’이 무덤을 통해서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의미를 캐내기 위해 삶의 계보학의 장(場)인 ‘무덤’을 다르게 읽어보자. 무덤을 ‘無-덤(추가의 의미)’으로 읽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매장’의 방식은 흙을 덮는 것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부재시키는 방식은 아니다. 그저 가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은 땅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현존을 부재(無)로 전환시킨다. 마치, 땅에 묻고 5개월 만에 찾아간 광목이 최소한의 흔적으로 흙과 동화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발굴’은 어떠한가. 그것은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는 것이다. 매장이 가져오는 부재(無)의 측면을 고려한다면, 발굴은 부재를 확인하는 하나의 절차로 인식 된다. 그러나 프롤로그에서 제시한 허수경의 시(詩)에서 알 수 있듯이,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것은 시간의 누적된 내력이다. 매장이 무덤에서 현존을 부재로 전환시켰다면, 발굴은 현존했으나 부재로 인식되는 것을 누적된 시간에 ‘덤’으로 올려놓는 것이다. 발굴하기 전까지는 부재로 인식되었던 공간. 그러나 발굴이 시작되면서 이 공간은 ‘덤’, 다른 ‘덤’, 그리고 또 다른 ‘덤’이 쌓여 또 다른 현존까지를 야기하는 공간이 된다.
조덕현이 아버지가 ‘돌아가(回歸)’신 깊이만큼 내려가,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을 내려놓았을 때, 아들은 아버지이기도 하면서, 아들이기도한 존재였다. 이것은 부재했던 것이 현존하게 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아버지 개인의 시간적 내력에 아들의 시간적 내력이 ‘덤’으로 추가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이어가는 가족 계보학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밑으로 더 밑으로 내려간다면, 가족 계보학을 ‘덤’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또 다른 계보학을 만날 수 있다. 삶의 계보학.
이러한 ‘매장-발굴’은 깊이가 세월과 등가를 이루는 고고학의 세계와 닮아 있다. 즉, 일 미터를 내려가면 예전의 모습을 만날 수 있고, 그보다 일 미터를 더 내려가면 훨씬 예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이 고고학이다. 고고학의 큰 과제는 오래 동안 누적된 세계의 물적 양태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고학적 상상력은 수평적인 것을 거부하고, 지구 중력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뻗어 있다.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드러나는 토기 파편들, 돼지뼈, 소뼈, 진흙 개, 바퀴 등은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뒤엉켜 있다. 발굴이 되기 전인 어둠의 공간에는 ‘낯선 시간’이 포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굴되면서 그것들은 현재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역사 흐름에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그곳에 정박한다.
매장에 의해 돌아가(故)신 아버지가, 발굴에 의해 아들로 돌아(回歸)온다. 그리고 〈매장을 위한 발굴〉에서 아들은 광목에 쌓여 관(나무박스, 비닐박스)에 들어가 있고, 그 옆에는 매장을 위한 흙과 삽이 있다. 발굴된 아들은 또 다시 매장 될 것이다. 무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반복되고 순환되는 시간의 누적. 끝이면서도 끝이 아닌 이 세계에 누적된 많은 이들의 삶은 땅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이런 의미에서 땅(무덤)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시간에 대한 기록과 자료들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땅은 아직 역사의 문턱에서 주저하고 있는 것들을 배태하고 있는 자궁이다. 그들은 탄생(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Ⅳ. 뒤엉킨 시간의 실타래를 풀어 ‘역사’라는 천을 꿰매다: 〈이서국(伊西國)으로 들어가다〉
조덕현은 매장하고 발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낯선 시간’을 끌어 올린다. 그 결과물들은 이러하다. 프랑스 주드 폼(Jeu de Paume)에서의 〈아쉬켈론의 개〉(2000),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서의 〈구림마을 프로젝트〉(2000), 경북 청도군 화양읍 백곡리에서의 〈이서국(伊西國)으로 들어가다〉(2002). 조덕현은 이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땅을 파고 그곳에 FRP로 제작된 개 형상을 묻는다. 그리고 역사적 자료와 근거(문학, 고고학)들을 그곳에 배치시켜 다시 발굴한다. 그리고 다양한 문헌들을 남김으로써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 아니 아직 진행 중이니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경북 경주시의 보문단지와 청도군 백곡산성에서 발견된 것은 구림마을의 것에 비해 시기적으로 앞설 뿐만 아니라……(필자 강조)”라고 말하고 있는 이서국 프로젝트의 가상 시나리오를 쓴 최원오의 글 때문이다. 이것은 독립적으로 존재 할 수 있는 작업을 ‘발굴 프로젝트’로 묶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구림마을 프로젝트〉 역시 가상 시나리오에 기반한다. 조덕현은 구림마을의 ‘구’가 비둘기 ‘鳩’가아닌 개 ‘狗’라는 가정을 세우고, 구림마을에서 철제 개 형상 유물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쓴다. 가상의 역사를.
그러나 이것이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에 와서는 가상이 아닌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등장하여 실증적 증거로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발굴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의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이다. 이런 점에서 FRP로 제작한 개를 묻고 다시 발굴하는 공통된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속되는 그리고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의 배경에는 서림의 동명 시집이 놓여있다. 서림의 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언급된 단 한 줄로부터 상상력을 증폭시켜 나간다. 그것은 경북 청도군 화양읍 백곡리 마을에 ‘이서국’이라는 부족 국가가 있었는데, 금성(신라)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이다. 서림은 이서국이 멸망하고 사라졌지만, 기나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청도군 사람들에게 그 기운이 아직도 흐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림은 이 시집에서 고대의 이서국에 대해 단순히 회고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이서국을 오늘날의 청도의 구체적인 현실 안으로 재림 시킨다. “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끝도 시작도 없”으며, “청도에서는 모든 사물이 이서국의 입구고 끝”인 것이다.
조덕현은 이러한 서림의 시집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상력을 내포한 가설을 세운다. 그것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교체되는 시기에 존재했던 이서국을 그 당시 최고의 철기문화를 향유하는 나라로 설정 한다. 1995년(서림의 시집이 출판 되 해)에 힐튼 호텔이 별관 신축 공사를 중단 했는데, 그 곳에 서 철제 유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발굴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왜냐하면, 철제 유물의 정체를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2002년 영남대박물관 발굴 팀은 대량의 개 형상을 하고 있는 철제 유물을 발굴하게 된다. 2000년 영암의 구림마을에서 이와 유사한 개 형상의 철제 유물이 발견 되었기에, 1995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것을 2002년에서야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시나리오는 허구다. 여기서 사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서국’의 존재뿐이다. 조덕현은 청도군 화양읍 백곡리 마을 김일손 가의 정자 일취정 자리와 경주시 보문단지 내 보문 호수 근처에 FRP로 제작한 개 형상을 묻는다. 그리고 발굴 팀은 이것을 실제 발굴 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발굴한다. 그리고 고고학 자료보고서(나선화)와 발굴과 관련된 시나리오(최원오)를 작성한다. 미술(조덕현) / 고고학(나선화) / 문학(서림, 최원오)은 〈이서국으로 들어가다〉라는 큰 틀 안에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해가면서 서로의 빈 공간을 채우고 엮어간다.
미술, 고고학, 문학의 한 올 한 올의 실들은 직조되어 역사라는 촘촘한 천을 생산한다. 2000여 년 동안 아무런 의미 없이 땅에 묻혀 있던 개 형상 유물은 이러한 허구적 고고학을 통해 맥락화 되면서 역사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증거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발로 따라 가며 답사하는 관객들은 그것을 가상이 아닌 사실에 기반한 ‘역사’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역사는 믿어져 왔던 것이다.
조덕현의 〈이서국으로 들어가다〉는 2000여 년 동안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의 누적된 내력에 머무르고 있었던, 다른 말로 하자면, ‘낯선 시간’에 있었던 철제 개 형상 유물을 끌어 올려 역사의 문턱을 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매장-발굴에서 파생하는 ‘낯선 시간’이 역사로 변해가는 전 과정을 목도(目睹)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구림마을 프로젝트〉), 그러나 허구적인 사실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역사의 굴곡을 형상화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믿어져 왔던 역사를 허구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조덕현의 작업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역사’라는 허울을 쓰고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은폐했던 진실을 허구로써 드러내면서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은 허구이면서 실재의 체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다. 조덕현은 말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역사 한 번 믿어 보라고. 역사를 그저 믿어 왔듯이 믿어 보라고 말이다.
역사가 사실인가. 그것은 믿을 만 한 것인가. 이 질문은 다시 전시장으로 옮겨와 관객들을 기다린다. 전시장에 자리한 거울은 중요하다. 전시장에 설치된 개 형상들은 거울 앞에 놓이면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거울은 안과 밖의 관계를 무화시키면서, 끊임없이 철제 개 형상 유물을 무한반복 시킨다. 마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유물인 듯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FRP로 만들어진 철제 개 형상 유물은 허구이다.
그러나 이 허구는 거울에 투영되어 또 다른 허상을 낳는다. 이 전시장에서 어느 것이 실재이고, 또한 어느 것이 허구인지에 대한 물음은 필요치 않다. FRP로 만들어진 개이거나 거울에 반사된 개, 그 어떤 것이건 하나의 허구 덩어리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의 전체적 재현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것들 중에 일부분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것을 논리적 이성이라는 무기를 들고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면서 조각난 퍼즐을 배치시켜 전체를 구성한다.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기록과 유물은 불완전한 재현의 체계를 완성하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단지, ‘믿음’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가는 역사의 흐름에 개연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조덕현은 역사가이다. 그는 ‘낯선 시간’에 있는 뒤엉킨 시간의 실타래에서 실을 한 올 한 올 풀어 상호간의 개연성을 생산해내면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빈 공간을 채우고 촘촘히 역사를 꿰맨다.
그렇다면, 역사는 허구인가 사실인가. 조덕현은 이러한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는 않는다. 그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숨겨진 부분까지 드러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매장-발굴 그리고 역사화 되는 과정을 보지 않았던가. 그것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것으로서 충분한 답이 되지 않았을까.
Ⅴ. 역사적 ‘가상’이거나 혹은 가상적 ‘역사’이거나: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가상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구성되는 조덕현의 발굴 프로젝트는 기존의 역사에 다른 판본을 만든다. 이것은 역사가 자명하게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덕현의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는 ‘낯선 시간’을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이 재구성된다.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의 가상 시나리오에 따르면, 청도의 발굴 작업은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철제 유물들이 나오는데, 그것의 정체를 밝힐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2년 철제 개 형상이 발굴되면서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2000년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의 발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역사는 개연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 둘째는 발굴 자체가 직접적으로 역사로 편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개연성을 근거로 하는 일종의 재구성이다. 이서국 프로젝트의 기반이 된 서림의 시집이 1995년 발간되었고, 조덕현의 작업이 2002년 시작되었으니, 그 7년간의 시간을 비어있다. 조덕현은 그 자리에 개연성을 부과해서 구림과 청도의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랑케를 중심으로 형성된 실증주의 역사관에서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역사라 했지만, 역사가의 판단 아래, 선택되는 사실과 버려지는 사실이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충실하게 재생산하기만 하면 되는 그러한 역사적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Raymond Aron)”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건의 절대성은 더 이상 역사학의 기본 전제가 아니다. 역사와 허구의 이분법은 붕괴된다. 역사는 허구화되고, 허구는 역사화된다. 우리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거리를 움직이며 또는 거의 제자리에서 그냥 머물고 있는 듯 한 데도 어느 아득한 경계를 넘어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과거의 의미를 거부하는 것은 허무주의로 흐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덕현은 전혀 무관한 과거의 흔적으로 이루어진 가상 시나리오로 빈 공간을 제멋대로 채우는 포스트모던 경향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다시 수잔 손탁에 기대어 이야기해야겠다.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역사에 대한)이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조덕현은 허무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역사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것, 그래서 우리의 삶을 담지하고 있는 역사를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Ⅵ. 에필로그: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영남대에서 온 유물 조사단이 / 청도읍 뒷들 남방식 고인돌 밑을 조심스레 파고 들었을 때 / 땅속은 아직 동쪽 하늘이 눈을 뜨지 않았다 / 그들은 가만가만 층계를 내려 / 새벽의 어두운 이서국 밤거리를 밟았다 / 검문소 무사히 통과하여 경찰서 소방서 약국 / 중권회사 빌딩 빠징코를 지나 부족장 관저 옆 / 상수리 나무 소나무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 그 시대 여느 박물관에서나 마찬가지로 / 그곳엔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모형, 팩시, 컴퓨터, 서태지와 아이들 콤팩트 디스크, 각종 신용카드, 방독면, 일회용 기저귀, 콘돔, 헬스기구, 다이어트용 야채효소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 조사단이 박물관 부설 연구소 한 방에 이르니 / 죠다쉬 청바지 꽉 죄게 입은 한 여자연구원이 밤을 새워 1992년의 청도시내 재개발 청사진을 / 컴퓨터로 그래픽하고 있었다 / 통나무와 진흙과 갈대로 만든 군청, 돌로 쌓은 성벽, 죽창과 돌멩이 활이 들어 있는 무기고, 쓰레기 버리는 곳, 馬舍, 좁은 골목길, 군수 소실이 살 후원, 군민들이 살 토담집 등이 / 질서정연하게 배열되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가, 그들의 소리가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역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낯선 시간’의 외침들이. 역사를 이해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이 외침을 들을 때, 역사는 넓어 질 것이다. 그리고 미술 또한 넓어 질 것이다. 조덕현은 지금 ‘낯선 시간’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듣고 분주하게 역사라는 천을, 미술이라는 천을 한 올 한 올 꿰매고 있다. 촘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