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가 서늘해질 때
이국의 정글을 관광하며 사람들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사자나 치타를 보면 환호성을 내지른다. 자연생태계에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관광이라는 안전한 문명형식 속에서는 쾌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통념상 ‘인간<맹수’식 힘의 대소 관계는 그렇게 세상의 사파리에서 역전된다. 인간이 ‘갑’인 구조다. 거기서 관광객 자격의 구경꾼은 인간이 순치시킨 자연의 진실을 알아도 모른 체하며, 호들갑스럽게 문명 프레임 안에 조성된 호러와 서스펜스를 즐기면 된다.
마치 비극적 드라마를 일부러 찾아보며 눈물 흘리기를 즐기듯이(데이비드 흄의 “비극의 역설”), 마치 미술관에서는 세상사를 털어내고 순수한 미적 경험만 한다는 듯이(칸트의 “무관심성”). 그렇게 잠시 사실적 이해관계 따지기를 멈추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작품-사물의 질료적 속성이나 사회적 리얼리티에 대해서는 시선을 내리깐다. 그런데 가령 당신이 옛날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본 것 같은 장면, 원래 화질도 좋지 않았지만 복제된 탓에 노랗게 열화된degraded 비디오 속에서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육중한 치타와 그 치타를 덮치는 작은 가젤을 발견하면 어떨까.
금세 지나가는 장면 속에서 처음엔 잘못 봤나 싶겠지만, 볼수록 의도적으로 포식자와 사냥감을 전도시킨 영상에 어이없어 할 수 있다. 또 이내 그 영상이 기성의 동물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관성을 비틀고 통념의 허를 찌르는 재/창작물임을 눈치 챌 것이다. 1분 7초의 짧은 편집영상 속에 감춰진 위트를 발견하며 재미있어하다가 약육강식의 생존 논리를 뒤집는 비판적 이미지에 머리와 등허리가 약간 서늘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내 글의 가정이 아니라, 현재 명망 높은 미술관에 전시 중인 김범의 〈볼거리〉(2010)임을 알면 그 가벼운 느낌은 더 복잡 미묘한 생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요컨대 그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품은 ‘미술(생태)계’에서는 가젤에게 쫓기는 치타를 ‘미술작품’으로 즐기는 미술관-사파리의 ‘관(광)객’이 최상위 포식자인데, 그 자가 바로 나나 당신이라는 각성.
범주적으로 간극적인
리움미술관이 기획한 《바위가 되는 법》(2023. 7. 27 – 12. 3)은 김범 작가가 13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미술관 측은 그가 199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작업한 회화, 드로잉, 설치, 조각, 영상 등 70여 작품을 집대성했다. 그 30여 년 동안 김범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중요한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구축했다(이 말을 국제미술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그의 작업은 서구 근현대미술사의 예술이념으로 느슨히 정의하면 ‘개념미술’에 속한다. 그리고 작가는 컨템포러리 아트 다수가 그렇듯이 미beauty를 넘어 다원적인 미학을 실행에 옮겨왔다. 이렇게 보면 김범의 미술이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주장하는 김범의 유일무이한 독창성은 그가 언어, 기호, 생각, 이미지, 텍스트, 논리, 물질, 사태, 뉘앙스를 서로 코를 꿰고 사이를 잇는 그물 형국으로 관계 지어 특이한 지대zone를 구현해낸다는 데 있다. 그 지대는 어렵고 어색한 표현이지만 ‘범주적으로 간극적인categorically interstitial’ 성질을 띤다. 이를테면 기성의 인식과 문화 관습이 구분해놓은 범주들의 극단들 사이를 김범의 작품은 실체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존 경계를 넘어서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위치하는 것도 아니다. 내 뜻은 이미 존재하고 작동하는 범주들의 평범성 때문에 우리 안에서 생성되기 어려운 어떤 잠재성을 만드는 일을 의미하는데, 김범이 그 일을 한다는 말이다.
그는 ‘미술’이라는 규범적 틀을 이용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여러 종류의 잠재성을 발생시키고 그것을 지각 가능하도록 물질화한다. 그것은 작고 얇은 종이에 ‘검은 잉크로 해골을 그리는 손과 붓의 궤적을 그린’ 드로잉(〈무제〉, 1991)처럼 그림의 그림을 통한 그림의… 연쇄모방 또는 회화의 거울구조를 짚는 허약한 물질화일 수 있다. 또 높이 5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캔버스에 엄청나게 복잡하고 확장된 미로를 그린 회화(〈무제(친숙한 고통 #13)〉, 2014)처럼 단순성과 중독성 사이의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강력한 물질화일 수도 있다.
사실 앞서 〈볼거리〉에 대해 진부한 통념과 기발한 위트, 다큐와 허구, 생태와 인위 등 양극의 범주를 도치시켰다고 평하는 건 별 의미 없다. 위치 뒤집어보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양극 사이에서 가능한 잠재성을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범주적으로 간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형이상학이나 배타적 순수미술로부터 나오지도 않지만 그로 동일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김범은 상식이나 통념 같은 평범한 인식의 범주와 사람들의 사고방식 및 행동패턴의 틀을 들고 나오는in/out, 타고 넘는, 흩트리고 새로 구성하는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그것을 소박하고 겸손한 질료를 써서 심플한 예술 오브제로 구현해낸다. 많은 작품이 있지만, 나는 다음에 주목해 김범의 미술에서 그간 범주적으로 간극적인 잠재성이 실현된 실체를 보여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