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Chung Seoyoung: With no Head nor Tail (March 21—April 20, 2024) at Tina Kim Gallery © Tina Kim Gallery

티나킴 갤러리는 정서영(서울, b.1964)의 개인전 《머리도 꼬리도 없이/With no Head nor Tail》을 3월 21일부터 4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정서영은 1994년 첫 개인전, 《수 십 개의 그림과 몇 개의 조각으로 만든 일》 (HP Schuster Gallery, 1994)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1996년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비현실적인 것에서 일상적인 것,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 사이의 왕복 운동"[1]이라고 언급한다. 조각의 전통적인 정의를 우회하고 있는 이 설명은, 우리가 인식하고 구분해 왔던 관념의 사이에 있는 어떤 ‘공백’에서 조각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년 간 정서영이 거쳐온 재료와 형태를 중심에 두고, 조각의 범주 밖에 있던 ‘참고 가능한 모든 조건’[2]으로 부터 조각이라는 매체를 재고한 전환기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머리도 꼬리도 없이》에서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보편적인 사물을 등장시키고 순수한 미적 자율성을 실험한 1990년대 초기작업과 언어와 그림을 통해 인식의 사각지대를 연결하는 드로잉이 소개된다. 또한 장판, 플라스틱, 합판, 인조 식물, 가구 그리고 오래된 글씨체와 같이 사회적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형태의 사물에서 나아가 브론즈, 세라믹 등 질료들의 세밀한 감각을 활용해 예민하게 포착한 ‘조각적 순간’에 대한 신작들을 전시한다.

Installation view of Chung Seoyoung: With no Head nor Tail (March 21—April 20, 2024) at Tina Kim Gallery © Tina Kim Gallery

각각의 작업들은 특정 아이돌 그룹 노래 제목을 그대로 작품 제목으로 차용하였다. 작가는 그룹 내 한 멤버의 모습을 포착하여 조각했는데 이에 대해 ‘특정 멤버에 대한 선호보다는 안무와 의상을 표현하기 좋을 것 같은 대상에 주목하여 작업했다’고 설명한다. 회화 작업은 제작된 조각을 회전대 위에 올려두고 회전하는 조각을 파노라마로 촬영하여 나온 이미지를 보고 그린 것으로, 조각을 보고 재현하되 양감을 가진 대상보다는 조각에서 나타나는 색채와 질감을 2차원 평면에 옮기려는 의도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작품 ‘Not Shy’를 포함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들은 작가의 기존 작품들보다 한 층 더 선명하고 다채로워진 색채가 돋보인다. 색채와 움직임이 더해진 이동훈의 작품은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고, 보는 이에게 유희와 즐거움의 대상으로 다가간다.

Installation view of Chung Seoyoung: With no Head nor Tail (March 21—April 20, 2024) at Tina Kim Gallery © Tina Kim Gallery

머리에서 꼬리까지. 들어간 입구에서 나오는 출구를 찾듯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두 점을 연결해보다가 우리는 묻는다. 머리와 꼬리는 원래 어디에 붙어 있었을까? 꼬리가 붙어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어딘 가에 붙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중요한 것일까? 정황과 맥락이 해체된 이 의아한 글귀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상황에 집중하고 떠오르는 장면을 연상해보는 것이다.

그가 선택해 온 모티브 중 다수는 유령, 파도, 불과 같이 추상적인 관념과 일시적인 형상이 만나는 순간들이다. “머리도 꼬리도 없이”는 어쩌면 언어가 되기 어려운 유령의 신체를 다시 유머러스한 제목으로 인도하고 있다.

〈Road〉와 〈Sink〉는 일상적인 사물이 등장하는 정서영의 대표작이다. 1995년 이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Road〉(1993)는 징엔(Singen, Germany)의 버려진 변전소에서 있었던 그룹전[3]을 통해 최초로 발표되었다. 1912년 건설 후 확장과 해체를 거듭하다 관리조차 쉽지 않았던 그 곳에, 정서영은 바퀴 달린 플라스틱 양동이 조각을 전시한다. 양동이 안의 나무공에는 엇갈려 돌아 나가는 도로 들이 기호처럼 그려졌다. ‘길’은 바퀴, 동그란 나무공의 형태가 암시하는 연속적인 시공간과 한 덩어리가 되고 양동이는 이동하는 이 모든 것들의 컨테이너가 된다. 한국의 주거환경을 소비재로써 축약해 놓은 모델하우스에서 열린 개인전, 《사과 vs. 바나나》에서는 〈싱크대〉(2011)가 전시되었다.

모델 하우스의 가구(furniture)는 사회적 형태의 한 표본이다. 현실과 비현실 어디 즈음에 위치한 장소는 익숙하게 보아온 소비재의 형태를 재고하게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모습을 백지상태와 같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처럼 정서영의 사물은 조각을 만들어내기 위한 구실이 아니다. 여태껏 말해지지 않은, 표피적이고 고정된 대상에 대한 인식을 또다른 통로를 열어 드러내는 것이다.



[1] 이종숭,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사이에서: 정서영의 근작에 대한 단상’, 『공간』 1996년 1월호
[2] 이한범 ‘정서영과 정서영에 대한’, 《정서영전》 연계 프로그램 〈언어활동〉 발표 원고, 2016
[3] Symposion Umspannwerk, Singen,Germany, 1993
[4] 장지한, ‘유령, 사물, 조각: 정서영의 조각적 순간, 『오늘 본 것』 SeMA 도록, 2022
[5] 정서영, Continuity, (2020),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