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가끔은 현재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지만 나무 사이로 스며들던 눈부신 물빛이 얼마나 아름다왔는지 생각하곤
한다.” –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
1947-2006), 『씨 뿌리는 사람의 우화 Parable of the Sower』1
〈News from Nowhere, 2012〉 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문경원과
전준호의 공동 작업은 오늘날의 인간 조건과 그 불분명한 미래,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예술의 역할 등에
대해 심각한 질문들을 던진다. 프로젝트의 제목은 미술가이자 디자이너였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1890년 발표한
예술, 삶, 노동에 대한 사회주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이상에
대한 저서에서 빌려온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윌리엄 게스트(William
Guest)는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 개인 재산이나 권위적 존재, 화폐 제도, 계급 제도 등이 없는 미래의 사회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이 유토피아적
사회는 모리스가 살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는 달리 산업화나 자본주의화를 겪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노동과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모리스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착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도덕적 분노를 대변하며, 이 책의 스토리는 작가가 자본주의와 당시 사회주의의 교조적 권위주의에 대해 지녔던 이중적 비판 의식을 반영한다.2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품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미래를 현재의 상징적 반영으로서 탐색하지만,
그들이 재현하는 미래는 후기-종말적
(post-apocalyptic) 성향을 강하게 띈다. 유토피아에 대한 학문적, 담론적 연구에서는 유토피아, 반(anti)-유토피아, 디스토피아(dystopia)의 세 개념을 분리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다르코 수빈(Darko Suvin, 1930-)은 ‘디스토피아’를 “사회정치적
제도, 규범, 개인들간의 관계 등이 작가의 실제 커뮤니티보다‘현저하게 불완전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커뮤니티(…)‘완벽함’을 정의하는 가치체계를 대표하는, 불만족한 사회 계급이나 분파를 대표하는 이들의 시선을 통해 보았을 때 현저하게 불완전한 공동체”로 규정한다.3
한편 수빈은 디스토피아의
다른 유형으로서, “가상적인, 상상적인 유토피아를 거부하고자
고안된” ‘반-유토피아’를
상정한다.4 이런 맥락에서 문경원과 전준호의 프로젝트는 지구상에서의 인류의
멸종, 적막한 생존 등의 이슈를 다루면서도 일종의 가능성을 남겨 둔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나 반-유토피아적이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시선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묵시록적 미래의 서사에 완전히 몰입하는 대신,
작가들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의 삶에 내재한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실감하고 나아가 이에 대응하게 만든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프로젝트는 영화, 출판물, 아카이브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주제 면에서나 형식 면에서 복합적이다. 독일 카셀에서의 《dOCUMENTA 13, 2012》에서 이 작품은 두 개의 스크린에 투사된 영화 작업, 아카이브이자 폭넓은 공동 작업의 개념적 맥락으로 기능하는 건축, 디자인
모델이 진열된 분리된 공간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영화 〈세상의 저편 El Fin Del Mundo, 2012〉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을 두 개의 분리되었지만 동시에 진행되는 스크린 위에 보여준다. 남자는 작가의 작업실처럼
보이는 침침한 방 안, 그러나 미술 재료는커녕 음식이나 물 같은 생존의 필수품들이 전혀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바깥에서 쓸 모 없어 보이는 물건들과 죽은 흰 개 한 마리를 트롤리에 담아 온 그는, 아상블라주(assemblage) 조각 같은 작품을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소파에 앉기도 하다가, 결국 남자는 갑자기
방 안에서 사라진다. 한편 여자는 하얀 불빛과 전자 장비가 가득한 정결한 흰 방 안에 흰 보호 의류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죽은 나뭇가지들과 말라붙은 풀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면서, 여자는 차츰 큰 벽 하나를 격자 모양의 견본들로 채워 나간다. 설명할
수 없는 존재감에 잠시 동요한 여자는 방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벽 뒤의 한 방을 발견하는데, 이
곳은 남자의 마지막 거처를 닮았다. 이 순간 남자와 여자 간의 공간적 거리는 무너지고, 처음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들간의 시간적 거리 또한 보다 불확정적으로 변한다.
남자의 부재하는 존재에 대한 설명되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강렬한 여자의 반응은 이런 상황을 심화시킨다.
영화가 보여주는 연기, 촬영, 미장센(mise-en-scène), 편집 등 측면에서의 전문가적 인상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공상 과학 영화 장르의 독특한
어휘를 곧 인식하게 만든다.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A Space Odyssey, 1968〉, 〈미래 소년 코난 Future Boy Canon, 1878〉 같은 영화들을 연상시키며, 〈세상의
저편 El Fin Del Mondo〉은 묵시록적 재앙의 한 가운데 놓인 외로운 생존자, 독재적인 후기-종말적 기업의 힘,
전반적으로 부재하지만 때때로 디스토피아적 미래 속에서 재부상하는 인간적 속성 등 공상 과학 장르의 특징적 줄거리와 캐릭터들을 다룬다.
《dOCUMENTA 13》의 예술 감독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기브 (Carolyn Christov-Bakargiev, 1957-)는
참여 작가들에게 상당 수의 신작을 커미션했고, 문경원과 전준호의 프로젝트도 이런 신작 중의 하나다. 포위, 후퇴, 희망, 무대 같은 여러 주제가 이번 도큐멘타에서 다루어지는 가운데, 이런
주제에 대한 참여 작가들의 대응도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전시 전체를 관통하며 한 가지 지속되는
아이디어는 예술이 어떻게 세계를 반영하고 세계와 소통할 것인가 하는 점이며, 이 질문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 아랍의 봄, 지속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충돌
등 역사의 폭력에 의해 더욱 현장감을 지니게 된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프로젝트는 최근의 재난과 위기를
강조함으로써 종말적 세계가 그리 먼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다루면서, 이번 도큐멘타의 주제에 성공적으로
상응할 뿐 아니라 이를 더욱 풍요로운 질문으로 만든다.
문학이나 영화 장르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욕구와 연관된다. 우울한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은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품에서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특징이다. 의도적으로 실용적이고 해결책 중심적인 접근은 이들의 작품을 단순한 분석이 아닌 가능성과 연결시키며, 변화를 향한 작가들의 욕구는 이 프로젝트의 다양한 협력자들과 조언자들이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전개해 왔던 노력들과
교차된다.
작가들은 선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대안과
가능성들이 등장할 수 있는 논쟁과 의논의 기회를 만들어 낸다. 달리 말해, 이 프로젝트는 자각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맞닥뜨려 이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독려한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상 과학은 언제나 현재의 우화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도입하여 오늘날의 이슈들을 다루고 싶었고, 특히 예술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문제와
연관시키고 싶었습니다.”5
이들이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의 패러다임과 관련하여 예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이들의
상상적 미래가 지닌 극단적 성향이 보다 광범위한 사회정치적 이슈들, 즉 자연 재난이나 인공적 재앙, 인간 존재에 대한 그 영향 등과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그러나 작가들의 질문은 예술의 의미와 역할이 가장 극단적인 조건, 예컨대
세상의 종말과 같은 상황에서도 인류에게 있어 중요한 질문으로 남을 것이라는 전제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이미
인간 존재의 조건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세상의 끝’은
사실 ‘인류의 종말’이지만,
작가들은 세계의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단순한 비판에 문제를 한정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예술을 창작하고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런 속성이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덧붙여 “우리는 처음부터 이런 질문들이 쉽게 답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인, 영화 감독, 과학자, 디자이너, 건축가 같이 다른 분야와 학제들에 속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미술의 내적 서클을 벗어나는 것이 보다 광범위한 예술에 대한 이해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라고 설명한다.6
프로젝트의 출판물 『News from Nowhere: 미래를 위한 플랫폼과 현실의 내적 성찰
News from Nowhere: A Platform for the Future & Introspection of the
Present, 2012』은 다수의 프로젝트 협력자 및 조언자들로부터의 기고와 인터뷰 등을 포함한다.7 기고가들은 이창동(李滄東, 1954-), 유사쿠 이마무라(Yusaku Imamura, 1959-), 고은(高銀, 1933-), 토시 이치야나기 (Toshi Ichiyanagi, 1933-),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Hans Ulrich Obrist, 1968-) 등 건축가, 영화 감독부터 철학자, 음악가, 과학자까지 다양하며, 이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하여 스스로 선택한 형식을 통해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예견해 본다.
문경원과 전준호가 MVRDV, 토요 이토
(Toyo Ito, 1941-), 타크람 디자인 엔지니어링 (Takram Design
Engineering) 같은 건축가 및 제품 디자이너와 협력하는 것은 특히 이 프로젝트를 실제의 현재 세계와 강력히 연결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스크린 옆의 공간에 〈공동의 진술 Voice of
Metanoia, 2011-12〉 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된 작품들은 일종의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미래주의적인
라이프 스타일 제품, 기술적으로 진화된 의류, 일본의 토호쿠
지역을 위한 재건 모델 등이 여기 포함되며, 문경원과 전준호가 제시한 테제에 대한 협력자들의 해석이
반영되는 한편 대안적 미래의 버전들이 추가로 제안된다.
예술에 대한 질문이 추상적인 노력으로 보일 수
있는 데 반해, 본질적으로 기능성에 연관된 아이디어는 그것이 현재의 실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무관하게 확고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에서 일어난 최근의 지진과 해일, 전지구적인 규모로 지속되고 있는 재정 위기 등은 대안적인 삶과 사고에 대한 이들의 아이디어에 타당한 배경과
필요성을 제공한다. 도요 이토의 건축 프로젝트처럼, 이들
아이디어 중 일부가 이미 재난 후의 일본에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으며, 이 아이디어들이
가상이 아닌 실제 해결책이 되지 않을지, 그 때가 언제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2010년 처음 선보인 이래, 문경원과
전준호의 온라인 ‘뉴스레터’는 이들의 프로젝트 발전과 경과를
밀접히 추적했다.8 지금까지 나온16편의
뉴스레터는 영화와 출판물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들의 초기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한편, 그들과 협력 작가, 조언자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들을 기록해 왔다. 협력자와 조언자들은
지난 2년간 작가들이 조직한 세미나, 워크샵 등에도 참여하여
프로젝트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을 토론하였다. 프로그램의 진행 과정에서 이들이 보여준 정신적, 시간적 관대함은 이들이 공유하는 악화되는 세상에 대한 염려와 그 위급함을 반영한다. 이들 사이에는 학제간 협력에 대한 필요성이 공통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며,
이는 우리가 직면한 이슈와 위기들이 개별적 학제에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가 지닌 전반적인 어조는 탐색적이고
비결정적이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개별 작업이 지닌 특성, 이를테면
렌즈에 바탕을 둔 미술의 형식적 언어에 대한 문경원의 사색적 접근, 미술 제도 및 권력 관계에 대한
전준호의 비판적 시각 등을 이 프로젝트에서 발견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러나 두 작가는 예술 창작이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이라는 관례적 인식에 대항하여, 예술적 협력이 지닌 자명한 어려움들을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의 본질 자체가 학제간 공동 작업이라는 점은 물론 이들의 공동 작업을 더욱 타당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두 개별 작가들의 시선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대답이나 확정적 위치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듯하다. 이창동
감독은 작가들과의 대화에서, “예술이나 창작 행위는 어떤 답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답은 각자가 찾는 것이지요. 정해진 답을 주는
것, 또는 답이 있다고 믿는 것은 예술적 혹은 창조적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라고 이 문제를 지적했다.9
문경원과 전준호의 프로젝트는 라이먼 타워 사전트(Lyman Tower Sargent)가
제시한 ‘비판적 디스토피아’ 개념을 연상시킨다.10 이는 현재의 담론들이 세계를 교정할 수 없음을 밝히고 가능성과 선택,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담론들을 제안하는 비판적 서사의 형태로서 디스토피아를 재규정한다. 이런 진보적 가능성은 디스토피아 서사에 내재한 속성이며, 문경원과
전준호는 〈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를 위한 나은 비전을 제안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현재의 문화적, 사회정치적 상황에 담긴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을 보여주면서, 이 프로젝트는 디스토피아적 현재를 넘어 유토피아적 단층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1. Butler, Octavia, Parable of the Sower, (New York: Warner,
1993), pp. 235-36
2. Vavinskaya, Anna, “Janus-Faced Fictions: Socialism as Utopia
and Dystopia in William Morris and George Orwell,” Utopian Studies, (March
2003), pp. 83-98
3. Suvin, Darko, “Utopianism from Orientation to Agency: What Are
We Intellectuals Under Post-Fordism To Do?,” Utopian Studies, (December
1998), p. 170
4. Ibid.
5. 2011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가졌던 작가들과의 대화 중에서.
6. Ibid.
7. Mediabus, Workroom, LEE Sunghee ed., News from Nowhere: A
Platform for the Future & Introspection of the Present, (Seoul: Workroom
Press, 2012)
8. 홈페이지
www.newsfromnowhere.kr 참조
9. 문경원과 전준호, 「현실과
환영, 태도로서의 리얼리즘 – 이창동 감독과의 두 번째 대화
」, 『뉴스레터 7』,
www.newsfromnowhere.kr
10. Sargent, Lyman Tower, “The Three Faces of Utopianism
Revisited,” Utopian Studies, (June 1994), pp.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