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P21

P21은 오는 8월29일부터 10월12일까지 김지영의 개인전 ‘밤의 목덜미를 물고’’를 개최한다.

김지영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의 근원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개인의 생존과 연결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는 기호화된 관념으로 대상을 왜곡하는 이미지의 스펙터클을 경계하되, 망각되거나 은폐되는 존재를 가시화한다. 미술의 언어로 현실을 기록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그가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은 형식의 변주를 통한 몽타주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드로잉, 회화, 사운드, 영상,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로 기존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고정된 의미로 환원시키지 않고 우리가 (다시) 보고, 읽어야 할 이미지를 제시한다. 작가의 시각적 결정에 따라 대상을 재현한 이미지에서 대상의 기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김지영은 현실의 이야기 구조를 재배치하여, 끊임없이 ‘여전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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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는 부사가 덜컹거린다.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났던 비극의 기시감은 왜 도통 멈추지 않는 것인지. 사회적 사건의 희생자는 왜 항상 비슷한 자리에 있는 것인지. 약한 존재들과 미래의 희망을 상실할지라도, 누군가의 굳건한 의지는 망각과 무력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작은 신호를 우리가 놓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둠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이 사라질 수 없는 세계라면, 어둠을 표백하지 않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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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성난 파도를 의미하는 연작 제목 〈노도(怒濤)〉(2024)처럼 격동적으로 휘몰아치는 자연력과 현실을 직시하는 언어적 힘을 드러낸다. 그것은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시적이다. 이미지에 선행하여 전면에 드러난 텍스트 조각은 한데 모여 음절이 되고, 단어와 문장으로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아크릴과 오일파스텔 6점으로 구성된 〈노도(怒濤)〉(2024)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는 등가로 대체되지 않는다. 한 화면 안에 존재하는 역동적 파도 이미지와 서정적 텍스트의 대립과 충돌은 구체적 형상과 추상적 언어 사이에서 일련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화면을 가득 채운 고딕 서체의 분절된 형태소들은 이미지를 설명하지 않는 비지시적 텍스트로 존재한다. 말은 언어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되, 이미지가 의미화되는 과정에 참여할 뿐이다. 작가가 시도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합하는 기법은 불일치성에 기대어,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가 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낯섦과 어긋남의 상황은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만들어내고, 관람객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여기서 작가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보기를 제안한다.

Installation view ©P21

김지영이 작업에서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시각화한 것은 비단 이번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가령, 그는 〈증언1〉(2010)과 〈증언2〉(2010)에서 잘게 자른 신문지와 영수증을 조합하여, 권력의 폭력과 무력함에 저항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친절한 제안〉(2014/2018)에서는 전래동요 〈두껍아두껍아〉 노랫말을 셀로판지로 글자를 만들어 위장과 약탈을 일삼는 뱀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존재인 두꺼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에서 텍스트는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 즉, 시각적 이미지의 권능을 의심하고, 발언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김지영의 작업에서 ‘파도’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작가는 〈파도〉(2015)에서 목탄으로 죽음을 소재로 그렸고, 〈4월에서 3월으로〉(2015/2019)에서는 일 년 동안 파도의 변화를 관찰하며 연필로 그렸다. 영상 작품 〈빛과 숨의 온도〉(2020)에서는 팽목항의 파도와 풍경소리를 담았다. 작가는 매번 반복을 통한 ‘체현(embodiment)’ 과정을 거쳐 현실을 재구성하고, 그의 손끝에서 반복되는 움직임은 시대적 상황을 기록한다. 〈노도(怒濤)〉(2024)에서 재등장한 파도는 언제든지 미물들을 삼켜버릴 수 있을 듯한 자태로 ‘여전히’ 넘실거린다. 고요한 바다는 언제든지 폭군으로 돌변할 수 있는 파도를 품고 있다.

 
“속임수를 강요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휩싸이게 하는 시대라면, 사색하는 자는 자신이 읽고 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거나 들은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함께 따라서 얘기해 본다. 그러는 사이 그는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그는 어느새 올바르게 읽고 듣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매우 실제적인 방법론에 해당하는 이 문장은 브레히트가 1934년 쓴 글 「진실의 재구성」에 나오는, 읽고 듣기의 사용법을 묘사한 내용이다.² (얀 크노프, 〈전쟁교본이 나오기까지〉)


브레히트는 「전쟁교본」(1955)에서 보도 사진, 사진에 관한 객관적 설명, 그리고 4행시로 구성한 ‘사진시(Fotoepigramm)’ 형식을 사용했다. 그의 ‘사진–텍스트 몽타주’ 기법은 사실을 왜곡하는 미디어를 비판하고, 사진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독자가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한편, 김지영의 작업은 ‘텍스트–이미지 몽타주’ 기법으로, 파도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해설하지 않되, 시적인 텍스트와 결합을 시도했다. 작가는 텍스트를 통해 왜 파도 형상인지, 이 이미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람객이 스스로 의미를 획득하기를 바랄 것이다.

밤의 목덜미를 물고 / 우리는 잠시 살아있다 / 과거는 미래의 얼굴로 / 돌은 나약한 곳으로만 떨어지네 / 으스러진 연둣빛 미명 / 노래는 잊히지 않고 / 숨결은 바람이 되어 / 밤의 목덜미를 물고​

하나로 이어지는 문장을 비로소 다 읽게 되면, 파도의 소용돌이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지영이 제시하는 읽고 듣기의 사용법은 이미지가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우리가 이미지를 응시하면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갈 때, 이미지 표면 너머에서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미술이 ‘미술 아닌 것’마저 감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말은 휘발되지 않고 여기에 남았다. 그의 말은 여전히 간명하다. 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또 선명하다. 우리는 여기서 굳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할 필요조차 없다.



¹“그날은 겨울의 어느 추운 보통 날 중 하나였고,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은 나의 일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전시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기억에서 빗겨 나기 시작한 세월호가 떠올랐다. 그 사건을 내가 한동안 잊고 지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 사실이 순간 끔찍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잊혀지고 지나간다는 진부한 말이 맞는 것일까 생각했다.”–김지영 개인전 《닫힌 창 너머의 바람》(2018, 산수문화) 서문 중.

²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 배수아 역, 2007, 워크룸 프레스, p. 193.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