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이
작업에서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시각화한 것은 비단 이번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가령, 그는 〈증언1〉(2010)과 〈증언2〉(2010)에서 잘게 자른 신문지와 영수증을 조합하여, 권력의 폭력과 무력함에 저항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친절한 제안〉(2014/2018)에서는
전래동요 〈두껍아두껍아〉 노랫말을 셀로판지로
글자를 만들어 위장과 약탈을 일삼는 뱀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존재인 두꺼비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에서 텍스트는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 즉, 시각적 이미지의 권능을 의심하고, 발언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김지영의
작업에서 ‘파도’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다. 작가는 〈파도〉(2015)에서
목탄으로 죽음을 소재로 그렸고, 〈4월에서 3월으로〉(2015/2019)에서는 일 년 동안 파도의 변화를 관찰하며 연필로 그렸다. 영상 작품 〈빛과
숨의 온도〉(2020)에서는 팽목항의 파도와 풍경소리를 담았다. 작가는 매번 반복을 통한 ‘체현(embodiment)’
과정을 거쳐 현실을 재구성하고, 그의 손끝에서 반복되는 움직임은 시대적 상황을 기록한다. 〈노도(怒濤)〉(2024)에서
재등장한 파도는 언제든지 미물들을 삼켜버릴 수 있을 듯한 자태로 ‘여전히’ 넘실거린다. 고요한 바다는 언제든지 폭군으로 돌변할 수 있는 파도를
품고 있다.
“속임수를 강요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휩싸이게 하는 시대라면, 사색하는 자는 자신이 읽고 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거나 들은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함께 따라서 얘기해 본다. 그러는 사이 그는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그는 어느새 올바르게 읽고 듣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매우 실제적인 방법론에 해당하는 이 문장은 브레히트가
1934년 쓴 글 「진실의 재구성」에 나오는, 읽고 듣기의 사용법을 묘사한 내용이다.² (얀 크노프, 〈전쟁교본이 나오기까지〉)
브레히트는
「전쟁교본」(1955)에서 보도 사진, 사진에 관한 객관적
설명, 그리고 4행시로 구성한 ‘사진시(Fotoepigramm)’ 형식을 사용했다. 그의 ‘사진–텍스트 몽타주’ 기법은 사실을 왜곡하는 미디어를 비판하고, 사진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독자가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한편, 김지영의
작업은 ‘텍스트–이미지 몽타주’ 기법으로, 파도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해설하지 않되, 시적인 텍스트와 결합을 시도했다. 작가는 텍스트를 통해 왜 파도
형상인지, 이 이미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람객이 스스로
의미를 획득하기를 바랄 것이다.
밤의 목덜미를 물고 / 우리는
잠시 살아있다 / 과거는 미래의 얼굴로 / 돌은
나약한 곳으로만 떨어지네 / 으스러진 연둣빛 미명 / 노래는
잊히지 않고 / 숨결은 바람이 되어 / 밤의
목덜미를 물고
하나로
이어지는 문장을 비로소 다 읽게 되면, 파도의 소용돌이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지영이 제시하는 읽고 듣기의 사용법은 이미지가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우리가 이미지를 응시하면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갈 때, 이미지 표면
너머에서 사유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미술이 ‘미술 아닌
것’마저 감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말은 휘발되지 않고 여기에 남았다. 그의 말은 여전히 간명하다. 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또 선명하다. 우리는 여기서 굳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할 필요조차 없다.
¹“그날은 겨울의 어느 추운 보통 날 중 하나였고, 전시를 보러 가는 것은 나의 일상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전시를
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기억에서 빗겨 나기 시작한 세월호가 떠올랐다. 그 사건을 내가 한동안 잊고 지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그 사실이 순간 끔찍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잊혀지고
지나간다는 진부한 말이 맞는 것일까 생각했다.”–김지영 개인전 《닫힌 창 너머의 바람》(2018, 산수문화) 서문 중.
²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 배수아
역, 2007, 워크룸 프레스, p.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