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view of 《Scaffoldings》 at Kumho Museum of Art (2023) ©Heejoon Lee

비계는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로 주로 건설현장에서 건축물을 지어 올리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설치되었다가 철수된다. 건축과정에서 비계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며 작업자가 발을 딛고 올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필수적인 구조물의 역할을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비계에 가림막을 덧대어 공사현장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기도 하는데, 도시 경관 속 강관 파이프 그리드를 가로지르는 천막의 색 면은 가변성과 가능성을 상징한다.

최근 이희준은 그동안 자신이 시각적 요소들을 구성해온 방식이 비계의 특성과 맞닿아 있음을 인지하게 되면서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작품 제작 과정에 끌어들여 조형적으로 탐구하였는데, 그 결과들을 이번 개인전 《비계》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이희준은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나 주변 경관의 일부분을 촬영한 뒤 이를 확대하여 사용하였다. 건물의 낡고 갈라진 콘크리트 벽면, 깨지고 일부분이 탈락된 타일, 곡선형 철제 난간, 식물 문양의 건물 외벽 장식, 조경용 돌의 표면 등 모두 어딘 가에서 보았을 법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해서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일상적 풍경의 작은 단편들이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많은 시간을 건축물 안에서 보내며 생활하지만, 대부분 자신을 둘러싼 건축물의 작은 부분들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희준은 무심하게 지나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건축물과 풍경의 부분들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며 새로운 미적 경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이를 위해 작가는 여러 기하학적인 시각 장치들을 사용한다.

포토콜라주 방식은 2020년 〈투어리스트〉 시리즈부터 사용되었다. A4용지에 흑백으로 출력한 사진을 캔버스에 부착하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선, 기하학적인 색 면, 도형과 같은 요소들을 더함으로써 이미지의 일부를 드러내고 가리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건축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미지 아키텍트》 (2021)와 《날 것, 연마되고, 입은》 (2021) 전시의 주제와 연장선 상에 있지만, 《비계》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회화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전작과 차이를 보여준다. 이전 시리즈에서 작가는 공간에서의 경험과 감정을 표현하고 담아내는 것에 관심을 두고 화면을 구성하였고,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동등한 층위에서 유기적으로 배치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조형적 시각 언어를 실험하고 탐구하고 형성하는 데에 보다 집중하여 비계의 특징을 기반으로 사진 이미지 위에 입체적인 공간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작업자가 비계를 딛고 건축물을 완성해가듯이 이희준은 사진 이미지 위에 개별 요소들을 단계별로 쌓아 올려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공간감과 깊이감을 극대화하였다. 작품의 화면을 가로지르는 얇은 수평, 수직, 대각선들은 마치 건설현장에서 도면을 옮겨 놓기 위해 사용하는 먹줄과도 같이 기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선과 선, 그 사이에 위치한 색 면과 도형들은 서로가 서로를 받치고, 지탱하고, 세워주면서 2차원의 평면 위에서 점차 3차원적인 공간을 형성해 나간다. 작가 스스로 미장 행위에 비유하기도 한 스퀴즈를 이용하여 캔버스의 표면에 물감을 밀어 바르는 작업을 통하여 사진 이미지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가리고 드러내며 새로운 시각적 층위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구축된 공간 사이로 자유롭게 배치된 작은 원형의 점들은 수직과 수평의 규칙을 흐트러트리며 화면에 생동감과 긴장감을 부여함으로써 미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비계의 개념은 작품 제작 방식뿐만 아니라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도 적용되었다. 비계와 마찬가지로 전시는 일정 기간동안 임시적으로 공간을 점유하였다가 사라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전시장 내부 바닥을 타이백으로 보양함으로써 가변적인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전시장의 가운데에는 작가가 회색 스티로폼으로 제작한 의자가 가로지르는데, 스티로폼이라는 가볍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재료로 제작된 의자는 전시의 임시적인 성격을 더욱 강조한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오는 순간 화이트 큐브라는 견고한 전시공간이 아닌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에 위치하게 된다. 작가는 모든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예술을 감상하고 경험하며 논의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든 것이다.

이희준은 작업 초기부터 회화를 매체로 작업을 하면서도 공간에 대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그리고 회화 작품을 분할하고 재조립하여 미니어처 조각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물리적 공간을 점차 점유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희준이 보여준 전시장 조성 방식을 통해 작가의 작업에서 공간의 영역이 회화와 조각이라는 매체적 테두리를 넘어 확장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금천예술공장에서 전시하였던 설치작업 〈파란 비계〉(2022)을 기점으로 본격적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란 비계〉는 건축현장에서 보양하는 데에 사용되는 펠트천을 사진 출력물과 함께 벽면에 병치하고 바닥을 펠트천으로 감싸 퍼포먼스와 아티스트 토크를 위한 다양한 용도의 실험적인 공간을 형성한 작업이었다. 회화에서 입체적으로 구축된 공간과 실제 공간 속으로 확장된 회화적 공간. 두 개의 공간이 교차하는 이번 전시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심진솔

전시기획자. 역사에 존재하는 간극에 관심을 두고 현대미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전시기획을 지속하며 예술을 매개로 소통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과 반클리프 아펠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