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Biei no.114,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채, 200 x 200cm ©이희준

이희준의 회화는 별 다른 의심 없이 단번에 기하학적인 추상 회화로 파악되지만, 그 색과 형태에 대한 인상은 또 한참만에 특정 사물과 건축과 도시 및 자연 풍경에 가서 닿는다. 〈Interior nor Exterior〉(2015-2016) 연작에서부터 〈The Speakers〉(2016-2017) 연작과 〈Venetian Blind〉(2017) 연작을 거쳐 〈A Shape of Taste〉(2018) 연작과 〈Biei〉(2019) 연작을 연속적으로 진행해 오면서, 그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추상 회화로 전환하는 일련의 방법에 대해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Floating Floor〉(2019) 연작과 〈The Tourist〉(2020) 연작을 통해 비회화적인 재료를 추가하여 추상 회화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정황은 지금까지 몇 개의 단서들로 그 당위를 드러내 왔는데, 이 단서들이 그의 의도에 의해 선택되어 추려진 것은 맞지만 선언적인 논리로 단일하게 엮여 있는 것은 아닌지라, 어디까지나 이 단서들을 한 곳에 그러모아 그의 그림을 추상 회화로 명명하는 일은 이 사건에서 제 3자인 나/우리에게 맡겨진 몫 같다.

이희준, ‘Floating Floor’, 2019, 설치 전경 ©이희준

이번 전시 ⟪The Tourist⟫에서는 일전의 〈Biei〉 연작과 동일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일정하게 구축된 새로운 회화 연작을 소개한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일본 홋카이도의 비에이(Biei) 지역 여행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시각 경험을, 그는 2015년부터 지속해 왔던 작업 방식에 따라 〈Biei〉 연작의 추상 회화로 한 차례 풀어냈고, 최근에는 〈The Tourist〉 연작으로 재료와 방법을 달리한 추상적 표현의 가능성 혹은 추상적 표현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환기시키는 방향으로 끌고 갔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해에 회화 작가 3인전으로 꾸려진 ⟪Painting Network⟫(2019)에 참여해 그가 신작으로 소개했던 〈Floating Floor〉 연작에서의 시도와 어떤 접점을 그려내며 그 흐름을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The Tourist⟫는 약 5년 간 그가 집중해 왔던 추상 회화에 대한 방법론을 재매개하여 이 원리를 스스로 자가-생산함으로써 자율적 시스템에 대한 확장과 갱신을 도모해 보려는 그의 계획된 의도 아래 추진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내 숨은 상상을 펼쳐본다.

〈The Tourist〉 연작이 포괄하는 단서들은, 연속하는 미래의 시간을 가늠하며 일련의 연작을 시즌 별로 내놓듯 그가 구축해온 짧은 역사를 비선형적으로 참조한 것으로서, 새롭게 배열된 회화 방법의 체계를 재매개하는데 크게 쓰인다. 말하자면, 2015년 이후 일곱 번 째 연작으로 공식 기록 되는 〈The Tourist〉는 지금까지의 방법적 성과를 일종의 데이터나 툴로 적용해 새로운 성취로 나아가는 면면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적용된 단서들을 찾아내 제 역할을 추적해 보는 것 또한 〈The Tourist〉 연작의 형식적 체계 안에서 미리 예고된 계획이었을지 모른다. 제목 또한, 여행자로서, 그것이 지시하는 것만큼의 태도와 시선을 즉각 확인시켜 줌으로써, 모호함과 호기심 사이의 긴장을 넘나들며 그의 추상 회화에 대한 감각을 내재화하도록 돕는다.

이희준은 〈Interior nor Exterior〉 연작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추상 회화에 대한 원리를 소개한 바 있는데, 마치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이후의 유럽 초기 추상 화가들을 연상시키면서, 그는 대상의 리얼리티로부터 회화의 매체적 물질성과 형태의 순수성을 서로 참조하며 이른바 “리얼리즘적 추상”의 면모를 내세우는 듯 했다. 열 두 점의 〈Interior nor Exterior: Prototype〉을 일괄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일련의 건축적 형태를 참조하여 색과 기하학적 형태의 추상으로 즉각 환원되는 프로토타입을 설계했다. 이러한 참조적 태도는 1980년대의 포스트 개념주의적 입장을 기반으로 네오지오(Neo-Geo)로 명명되며 기하학적 추상 회화의 한 흐름을 대변했던 피터 핼리(Peter Halley, 1953-)를 재참조하는 설정으로 보여졌다. 오늘날의 추상 회화의 복귀 일면에서 크게 강조되어 왔던 핼리의 시도는, 세기 말의 관점에서 현대 회화의 추상 언어를 모방하고 전유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당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 이희준은, 〈Interior nor Exterior〉에서 핼리가 전유했던 추상 회화의 언어를 (재)모방하되 기호적 이미지로서의 추상 회화로 향하기 보다는 현대적 시각이 탄생시킨 건축물의 구조를 살피면서 적어도 그것의 색과 형태에 있어서 추상적 원리를 포착하여 조형적이고 미학적인 구조로 환원해 보려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를 내비쳤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건축물을 참조해 그 구조 자체가 이미 3차원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추상성을 회화의 2차원적 평면에 옮겨 전면적인 추상 회화로 “변환”시키는 일에 몰두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때, 그는 지각에 의해 파악되는 추상적 조형성의 당위를 구체화 하기 위해서인지 사진-편집을 통한 이미지화 과정을 선회하여 추상 회화로 나아갔는데, 쉽게 말해, 그는 특별히 건축물의 기하학적 구조를 포착한 사진 이미지를 수집하여 편집을 통해서 각각의 사진이 강조하고 있는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를 분석한 후 추상 회화의 조형 언어로 구체화 했다. 화면 위에 색과 면을 분할하면서, 사진에 남겨진 빛에 의한 공간감을 그는 채도 변화에 따른 그라데이션(gradation) 효과와 사선 및 곡선을 활용한 공간적 깊이감으로 극대화 했다. 요컨대, 이희준은 그의 초기 추상 회화 연작에서 건축물을 모티프로 한 기하학적 색면 추상을 시도했는데, 사진에 의해 시각적으로 강조되었던 건축의 3차원적 특성을 실체 없는 추상적 감각으로 추출해내려는 추상 화가의 면면을 나타내 보여줬다.

 추상 회화에 대한 태도와 스스로 구축한 추상 회화의 방법론은 〈A Shape of Taste〉 연작과 〈Biei〉 연작을 거치면서 한껏 탄력을 얻어 자신감을 드러내며 그 지평을 더욱 넓혔다고 보는데, 짐작하건대, 그가 수집된 사진 이미지에서 발견한 추상적 시각 정보의 한계를 넘어서서 사진이 매개하는 3차원의 실제 대상과 2차원의 추상 회화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봉착하여 만족할만한 답을 찾고자 모색했던 회화적 시도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희준은 두 개의 회화 연작을 진행하면서, 직접적인 경험의 대상을 추상 회화의 언어로 변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살피며 사진에 의한 이미지 편집을 매개로 회화 매체의 물성과 조형적 원리로 시지각적 경험을 추상적 감각으로 전환하는, 혹은 그 역으로, (보편의) 추상적 감각에서 (특수한) 시지각적 경험을 다수 환기시킬 수 있는 추상 회화의 (형이상학적 독창성이 아닌) 참조성/관계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더 나아갔다. 도심의 오래된 한 주택가를 특정해 주변 환경의 변화로 쓸모가 바뀌면서 그 형태를 개조하여 변형시킨 주택의 구조를 사진 찍어 그것을 (사물 고유의) 색과 (사물의 질감을 닮은) 물감의 물성과 (사물의 구조에 기반한) 기하학적 형태 등 추상적 조형 요소로 환원시킨 게 〈A Shape of Taste〉(2018) 연작이며, 비에이(Biei) 지역 관광을 통해 직관적으로 경험했던 자연과 도시 풍경에 대한 인상을 임의의 시차를 겪은 후에 남겨진 여행 사진에서 재인식하여 그 시지각 경험에 대한 감각을 적당한 크기로 심사숙고 하여 설계된 캔버스 화면 위에 추상화 시킨 작업이 〈Biei〉(2019) 연작이다.

흥미롭게도 〈A Shape of Taste〉 연작과 〈Biei〉 연작에서 두드러진 시각적 효과는 (그가 의식했는지 몰라도) 캔버스 외곽에 대한 강조였고 더불어 그렇게 선명하게 경계 지어진 회화의 틀 안에서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원대한 공간감을 그려내고 있는 추상적 요소들의 배열과 그것의 시각적 착시였다. 그는 사진-편집에 의해 선택되어진 이미지의 추상적 자기 완결성을 다루는데 있어 이미 충분히 훈련해 왔던 터라, 이 둘의 연작에서 이미지의 완결성은 캔버스의 평면적인 형태(shape)를 강조하는 고전적 수법으로서 그리드의 참조적 출현에 힘입어 추상 회화로 온전히 변환되는 하나의 알리바이로서의 제 쓰임을 다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실제 대상에 대한 사진적 편집에 의해 연루된 추상 회화의 그리드 출현은 (역사 안에서 손쉽게) 제 당위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그리드가 추상 회화의 평면성을 보장해 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평면과의 거리감 혹은 그 평면이 함의하는 공간감을 지탱해 준다는 점인데, 이희준의 최근 작업에서는 그러한 역설이 각기 다른 색면의 (물감) 두께로 인해 실제의 효과와 가상의 착시를 오가면서 감각에 크고 작은 교란을 일으킨다. 한 예로, 〈Biei no.106〉(2019)을 보면, 설산(雪山)의 이미지로부터 기하학적 조형성을 추출해낸 추상 회화로서 수직·수평의 기학학적 선들이 회화의 평평한 그리드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예각을 띤 또 다른 선들이 연쇄적인 중첩 효과를 일으켜 그 대상 간의 공간감 뿐 아니라 그 대상과 나/우리 사이의 상당한 거리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시각 경험은 먼 데 있는 추상적 풍경 이미지를 크게 확대해 앞으로 당겼을 때처럼, 화면 앞으로 바짝 다가가 한 곳을 응시할 때 물감 층의 두께가 먼 거리에서의 시각적 예측을 벗어나 서로 간의 입체감을 달리함으로써 이 추상적 구조에 대한 인식이 시지각의 끝없는 (오)작동과 갱신을 불러오게 된다.

끝으로, 〈The Tourist〉 연작이 포괄하는 단서들을 설명하기 위해 〈Floating Floor〉 연작을 놓쳐서는 안될 것 같다. 이희준은 건축 재료인 테라조(terrazzo) 타일을 직접 가져와서 회화 재료와 매끄럽게 결합시켜 그 특유의 기하학적 추상 회화 연작을 제작한 후 그 신작에 “Floating Floor(유영하는 바닥)”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의 새로운 시도에서 내가 눈 여겨 봤던 것은, 그 문화적 보편성으로 확대되어 버린 테라조라는 인조석이 회화의 물성을 이루는 재료이자 추상적 조형 원리를 산출해낼 수 있는 일종의 데이터화 된 도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이희준은 기성품으로 생산된 테라조를 여러 종류별로 구입해 그것을 단지 회화의 물질적 지지체로 사용할 것을 결정한 뒤 각각의 테라조에 함유된 여러 암석 입자들의 특징적 색과 형태 등에 대한 (임의의) 추상적 재해석을 거쳐 정사각형 크기의 추상 회화로의 확장을 도모했다. 기존의 작업에서는 대상(사물)과 이미지(사진)와 추상 회화의 구분이 긴밀한 인과 관계 안에서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면, 〈Floating Floor〉에서는 일련의 과정이 완성된 추상 회화 안에서(만) 작동됨으로써 추상 회화를 이루는 개별적인 조형 요소로 환원된다. 결과는 또 기존의 작업들과 맞닿는 부분도 상당히 많은데, 특히 공간감과 거리감의 측면에서, 그는 테라조의 물성을 참조해 이 추상 회화의 현실적인 시점과 무게와 밀도감 등이 근본적으로 그의 추상 회화 전반에 걸쳐 나타났던 헤아릴 수 없는 가상적이면서 인공적인 깊이감을 여전히 가늠케 하고 있다. 건축이나 사물의 구조 안에 잠재되어 있던 추상성을 이미지로 치환하여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그가, 실제로 건축적 재료로 생산된 사물을 가져와 그것을 재료로 직접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참조한 추상 회화의 체계를 직접 생산해 보려 한 것 아니겠는가.

자, 이제 긴 이야기 끝에 〈The Tourist〉 연작으로 돌아왔다. 〈The Tourist〉의 화면 구성은 기존의 작업들과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면서 신작의 이질감을 크게 드러내는데, 이 낯선 화면이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은 이희준의 추상 회화가 여러 연작들을 거치면서 공고히 해왔던 추상 회화의 방법론을 스스로 갱신하며 자가 생산성을 시도해 보려는 태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점은 〈Floating Floor〉 연작과의 연속성을 갖는데, 테라조라는 건축 재료가 지닌 (보편적) 추상성을 참조하여 추상 회화로의 변환을 시도하기 위해 그는 그 회화의 대상을 직접 회화의 재료로 사용해 매체 특정성에 대한 모방을 도모했던 것처럼, 〈The Tourist〉 연작에서는 여행을 통해 얻은 사진 이미지에서 추상 회화의 조형 언어를 추출하기 위해 단지 이미지 참조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물질적 지지체로 가져와 그 매체에 깃든 조형적 감각을 화면 위에 구축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A Welcome Orchid〉(2020)나 〈Nikko Hotel〉(2019) 등 구체적인 작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화면을 구축하는 작업의 과정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그는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저장해 두었다가 이번 작업을 앞두고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프린터기를 이용해 A4 인쇄 용지에 흑백으로 인쇄한 후 밑 칠 하듯 그것을 캔버스 화면 전체에 밀착시켜 이어 붙였다. 〈A Shape of Taste〉 연작과 〈Biei〉 연작에서 두드러졌던 대상에 대한 사진 이미지로의 1:1 추상적 전환은, 〈The Tourist〉 연작에 와서 보다 지각적 경험에 대한 재인식의 차원과 그것의 주관적 낙차를 환기시키기 위해 참조되었다. 즉, 앞서서는 3차원의 추상적 구조를 2차원의 추상 회화로 변환시키기 위해 사진 이미지의 매개가 상당한 객관적 당위를 보장해 주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사진 이미지로 추출된 객관성 보다는 현실에 대한 시지각적 경험과 사진 이미지 간의 낙차를 추상 회화로 매개하려는 반전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정황들을 추려, 〈The Tourist〉 연작에 대한 우리의 추상적 인식은 어떤 당위를 갖게 될까? 나는 두 가지로 압축해 보려 하는데, 하나는 시점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색에 대한 감각의 문제이다. 이미 〈Interior nor Exterior〉 연작에서부터 〈A Shape of Taste〉을 거치면서 한껏 두드러진 화면의 특성은,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점진적인 중첩을 과시하며 역설적인 평면성과 공간감을 드러냈었는데, 그 특성이 〈The Tourist〉 연작에서도 반복되긴 하나 어떤 구체적인 작용을 하면서 묘한 기시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마치 매끈한 액정 너머로 펼쳐진 디스플레이 화면 같기도 하고, 그런 탓에, 평면의 간극 없는 압축된 공간감과 저 너머의 한계 없는 부감 시점을 아무렇지 않게 오갈 수 있는 우리의 갱신된 시지각에 대한 역량을 〈The Tourist〉가 보여준다. 또한, 기하학적 형태들로 변환된 회화의 대상이라는 것이, 이번 그림에서는 흑백 사진이 갖는 데이터 정보와 거의 일치함을 유지함으로써 그 근거로 작동하며, 따라서 사진은 여기서 〈Floating Floor〉에서의 테라조와 거의 비슷한 (추상적 매개의) 역할을 감수하는 셈이다. 결국, 흑백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로서의 형태는 실제 현실에서 그 대상이 지닌 색을 추상적인 색채 도구에서 찾아내려는 작가의 기억과 의지를 촉구하며, 또 그 결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태와 색의 효과는 흑백 사진에서 소거된 혹은 열화된 정보를 다시 불러와 복원시키는 프로그래밍을 연상시킨다.
 
이희준은 흐릿한 해상도로 출력된 흑백의 여행 사진을 캔버스 크기만큼 이어 붙여 그 위에 물감과 기하학적 형태를 이용해 열화된 사진이 환기시키는 시지각의 경험을 구체화 하려 애썼다. 말하자면, 사진 이미지를 통해 기억을 복구하고 그 기억 속에서 여행지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추상 회화의 언어를 통해 구체화 하려 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에는 현실의 대상과 추상의 회화 간의 낙차를 사진 이미지가 매개하여 당위를 놓아주었다면 이번에는 현실의 대상과 사진 이미지 간의 낙차를 추상 회화가 매개하여 시지각적 경험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환기시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그가 사진-편집을 통해 추상 회화의 색과 형태를 체계적으로 산출해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는 이번 〈The Tourist〉 연작에서도 사진의 낮은 해상도와 유사한 알고리즘적 색채를 구현해낸다는 점에서 또 그의 방법론은 새로운 당위를 얻어 스스로 확장해 나간다. 결과적으로 낮은 해상도의 흑백 사진과 그 형과 색에 의한 알고리즘적 색채의 중첩이 만들어 내는 물리적 혹은 비물리적 공간감과 거리감은, 이 새로운 연작에서도 추상성에 대한 인식의 틀을 유연하게 개방시켜 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