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에게 회화의 조건과 한계는 서로 동일선상에서 탐구된다.
2016년부터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을 추상 언어로 다뤄온 그의 회화에서 화면의 구축과 질료의 관계는 절제된 감각으로 유지돼 왔다. 그러한 작업에서의 변화는 2020년 《The Tourist》를 시작으로, 2021년 개인전 《Image Architect》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었다. 기존의 색면추상
회화가 점, 선, 면을 조건으로 한 기하학적 구성으로 추상
언어를 탐구해온 반면, 이때부터 그의 작업은 포토콜라주 방식을 통해 이미지와 회화가 병치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프레임 내부의 형식적 도전으로 추구되어 왔다. 이후 일 년 만에 가진
2022년의 개인전 《Heejoon Lee》는 색면추상 작업, 포토콜라주 작업 및 소형 입체 작업까지 회화의 형식적 실험을 사진, 조각, 공간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보여주었다. 여기서 나아가 그가 2022년 금천예술공장의 오픈스튜디오 기간 중 ‘실험 프로젝트’로 선보인 공간 설치 작업은 건축적 요소와 회화적 프레임의 관계를 펠트천을 이용한 임시적 가변 공간으로 재해석하는
등 질료와 공간에 잠재된 추상 언어의 가능성을 발굴해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면, 입체, 공간 등 다양한 차원에 걸쳐 있는 그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추상화의 형식적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 “추상”적 사고와 실천에 도달하는 경로를 회화의 프레임으로 환원해보고자 한다. 본
글은 그의 조형 실험 중에서도 최근에 본격화된 포토콜라주 회화 〈Image Architect〉 연작(2021-)을 분석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로부터 재발굴된 추상화의
동시대적 가능성에 다가가 보고자 한다.
동시대 회화가 캔버스의 프레임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형식적 변주를 꾀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게, 이희준은
캔버스의 정형화된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호해 왔다. 심지어 그가 주로 사용하는 캔버스의 비율은
정방형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러한 조건은 수직 혹은 수평으로 긴 캔버스가 부여하는 화면의 깊이, 원근감, 환영의 유입을 거부하는 평면성의 조건을 파고든 것이다. 주로 260x260cm, 160x160cm, 45.5x45.5cm 등
정방형의 화면은 정사각형에 담긴 절대적이고 직관적인 추상화의 서사와 감각을 연상시키는 기본 틀이다. 이러한
회화의 환원적 프레임에서 그가 이미지를 도입하는 방식은 종이라는 얇은 이차원 면을 배열하여 캔버스에 유동성과 가변성을 부여하는 형식적 실험을 따른다. 아크릴 물감과 흑백 사진이 한 화면을 이루고 있는 그의 작업을 상세히 살펴본다면, 사진이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분리된 A4 종이로 화면 가득히 부착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캔버스의 크기에 따라 100장이
넘는 A4 종이가 부착되기도 하는데, 이 흑백 이미지의 반복
정렬된 배열은 이미지의 프레임을 회화의 프레임으로 재구축하는 과정과 관련한다. 캔버스와 종이, 그리고 잉크를 통합시키는 이 과정은 작가의 신체적 개입과 반복된 노동을 통해 질료와 상호작용하는 회화의 또
다른 지지체를 이끌어낸다.
그 다음으로 화면에서 형성되는 이미지와 회화 사이에서의 관계에 주목해보면, 출력된 사진
이미지는 대게가 작가가 일상 속에서 촬영한 건축물의 흔적을 담는다. 미술 제도를 형성하고 있는 전시
공간의 한 부분과 그 주변부에 남겨진 공간의 특성에 주목하거나, 여행길에서 인상 깊게 본 건축물뿐만
아니라 일상 속 보편적이고 평범한 건축이 갖는 기하학성과 질료의 감각 등 건축물의 형식, 형태, 색, 질감, 구조 등을
다룬 섬세한 시선을 담고 있다. 이때 분할된 면으로 인쇄되어 부착된 흑백 이미지의 총체성은 캔버스 위에서
냉엄하게 파열되고 마는데, 그가 배열에서 의도한 이미지 내부의 미묘한 오차는 형태와 지각의 균일성을
무너뜨리는 요소이다. 이 위로 작가가 스퀴즈를 통해 만들어낸 회화적 자취는 픽셀이 지배한 공간의 환영을
다시 한 번 흐트러뜨리며 불완전과 완전 사이의 긴장감을 화면으로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촉각적 질서를 이끌어낸다. 그
외에도 점, 선, 면에 담긴 추상 언어는 이미지에서 탈구된
시각적 감각과 기억을 새로운 정보 값으로 형성하게 한다. 건축 공간의 구도와 질감, 디지털 이미지의 차가운 성질은 추상화 과정을 통해 회화의 경험으로 전환된다.
이때 경험의 전환은 물질적 차원을 비물질(디지털) 이미지의
차원으로, 이를 다시 회화의 물성으로 경험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완성된 회화는 엄격한 프레임의 조건으로부터 삼차원의 공간을 재감각하는 경험의 통로를 역으로 제시해 보인다.
그렇게 형성된 회화의 자취는 공간이라는 먼 차원의 풍경을 화면에 직관적으로 밀착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대인에게
익숙한 이미지 지각 체계에 질문을 던지는 동기로서 추상 언어의 경로를 제시한다.
이희준의 최근 회화가 갖는 변화는 포토콜라주를 통한 이미지 경험의 재해석 및 디지털 이미지를 분해하는 회화적 접근 등 유연한 경로를
통해 기존에 회화를 규정하던 프레임에 도전해오고 있다. 그때마다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구축한 지배 질서에
질문하며, 이를 위반하고 역설하는 회화적 실험으로서 이미지, 물성, 공간적 요소를 새로운 질료로 적극 도입해오고 있다. “점점 빠르고
선명하게 발전하는 오늘날의 모습에서 추상은 반대로 적은 정보와 불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다.”(작가노트
中)라며 작가가 주목한 추상의 조건은 디지털 사회에서 과도해진 이미지의 존재, 범람하는 이미지의 구체성 및 인식 불가능한 이미지 소비의 피드에 맞서 시도된다. 동시대 이미지의 조건을 전유하는 그의 회화적 도전은 추상화의 역사가 형성한 견고한 형식적 조건을 일부분 계승하면서
프레임 내부의 역설을 통해 추상 언어의 경험적 차원을 재구성한다. 이렇듯 그는 회화는 프레임의 조건과
한계를 동시대적 공간의 차원 및 이미지의 차원과 대조하고 분할하고 포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실시간
이미지 세계의 반대편에서 도모되는 추상화의 가능성과 경험의 장을 열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