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미술작가 이불(35) 씨. 2000년의 해가 떴을 때, 그녀의 작품은 세계 유수미술관 3곳에서 동시 전시된다. 미국 미니애폴리스 워커 아트센터, 독일 본 현대미술관, 오스트리아 메르츠 미술관. 그리고 2001년까지 독일 루드비히 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일본 후쿠오카 미술관등으로 전시는 이어진다.


지난해 자신의 개인전을 열었던 아트선재센터를 찾은 이불씨. 일본 미술그룹 '사랑/섹스/죽음/돈/인생' 앞에 섰다.

"메르츠 미술관에서는 유럽 작가가 중심이 돼 20명이 인체에 관한 회화-사진-설치작품을 선보입니다. 독일 전시는 10명의 큐레이터가 참여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미술 흐름을 보여주는 대규모 이벤트입니다. 베니스의 제 작품을 본 큐레이터가 전시 참여를 제의했어요. 후쿠오카 미술관이 뜻밖에 제 개인전을 하자고 연락을 해왔는데, 2001년까지 대규모 전시장을 채울 작품들을 과연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아직 승낙을 못하고 있어요."

꽉 짜여진 스케줄-. 그래서 그녀는 작업실이 붙어 있는 성북동 집 대문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예술이 영감이나 광기에 의한 것이라구요. 아니에요. 성실과 노력의 산물이지요. 신화는 믿지 않아요. 작업하며, 스스로 실망할 때가 있어요. 나는 왜 좀더 집요하지 못할까, 왜 이리 게으른가. 올 가을부터 시작될 해외 전시회에 내놓을 '사이보그', '사이버 몬스터' 등의 제작 때문에 요즘은 정신없어요. 베니스에서 상을 탄 후, 사실 제 생활이 좀 풀어졌어요. 가장 바쁘게 일했던 예년의 여름과는 달리 쉬었죠. 그래서 반성중이에요. 그만큼 더 일해야죠."

이불 씨의 요즘 생활을 보자. 새벽에 일어나면 독서. 아침 차려먹고 나서 오전 10시부터 작업. 저녁 6시가 되면 저녁 준비. 식사후에는 TV나 비디오 보며 쉬고, 아이디어 충전-. 대학 강의도 일체 않고, 작업만 한다.

"작품 아이디어는 책이나 만화, 비디오에서 얻습니다. 때론 여러가지 스타일을 섞기도 하고, 새 컨셉으로 모양을 창조해내기도 하죠."

그녀의 대표작은 여성로봇의 한 쪽 팔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사이보그' 시리즈에서부터 베니스에서 상을 탄 최근의 '노래방' 시리즈, 살아 있는 생선을 비닐봉지에 넣어 설치한 '화려한 장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과거엔 옷을 벗고, 쇠사슬을 끊는 퍼포먼스도 했다.

"제 작품 주제는 '문명비판' 혹은 '여성해방'등으로 보도돼 왔어요. 그런 표현은 일부 적합한 것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저는 미술작품을 언어란 수단으로는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베니스에서 상을 받았다든가, 2000년의 해가 새로 떠오른다고 제 작품세계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연속선상에서 발전을 해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무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외국 작가와 경쟁하려면 '발명가'와 같은 튀는 발상이 중요해요."

그의 창작은 '거친 스케치'에서 시작된다. 이어 대충의 조각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형태를 잡아내고, 고치고 또 고치는 '지루한' 교정작업이 이어진다.

"대학 전공(홍익대 조소과) 때문인지, 제 작품은 설치 중에서도 손이 많이 가고, 형체도 비교적 뚜렷하죠. 예전엔 실리콘을 재료로 주로 썼는데, 요즘은 우레탄을 사용합니다."

이불 씨는 누드 퍼포먼스나 썩어가는 생선작품으로 대표되는 실험적 이미지를 지닌채, 영상매체 세례를 받고 자라난 30대 작가의 생각과 감성을 작품에 투영시켜왔다. 80년대란 무거운 시대를 관통하면서, 성과 권력, 일상의 정치학에 날이 선 문제의식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때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발랄한 아이디어를 선보여온 게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재래식 페인팅에서, '발명의 게임'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계 미술 경향과도 맥이 닿아 있다.

64년 강원도 영월 출생. 홍익대 졸업후,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예술의 전당 등 국내 전시와 일본 동경 구니다치 아트홀, 영국 에딘버러 푸룻마켓 미술관, 독일 슈투트가르트 수드베스트 란데스방크 포럼,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야외프로젝션, 캐나다 토론토 에이스페이스 등 해외 전시회에 참가했다. 88년 서울 일 갤러리, 98년 서울 아트선재센터 등서 개인전을 가졌다. 97년 1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서 6주간 초대전을 가지며, '무서운 신진작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특정화랑 전속작가가 아닌 그는 이름 값만큼 작품을 팔지는 못하는 편이다. "나도 콜렉터용 소품을 만드는데, 왜 사람들은 몰라줄까"라며, 그녀는 빙긋 웃는다.

이불 씨는 이름 때문에 어릴 때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가 지어준 실명. "이불? 담요는 아니구?" 이런 농담이 지금도 계속된다. 동생들도 마찬가지. 영화 일을 하는 여동생 이경(33),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남동생 이방(30) 씨도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며 살아왔다며, 그녀는 웃었다. 그녀는 "그러나 이름 때문에 자의식이 강해졌고, 어쨌든 튀는 이름 때문에 남이 나를 잘 기억하는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대학다닐 때는 연극, 노래 서클에 좇아 다녔다"는 그녀는 "그 땐 호기심도 많았고, 참 많이 놀았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남편 이름은 공개한 적이 없는데"라며, "작가인 연하의 남편 제임스 리의 외조가 사실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