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에서 장파의 그림들은 2015년 Lady
X series 이래로 그녀가 탐구해온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도착성과 시각적 쾌락이 또 다른 도상적·알레고리적 지대로 확장하고 분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Mama
series, A Common Woman series, Man from
Earth와 같은 제목을 단 새로운 작업들은 그동안 장파가 연구해온 ‘여성성’의 형상을 둘러싼 미술사적, 문화적 기호들을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인용하고 번역하는 작업이라 할 만한다.
뒤집힌 주해이자 오염된 해석학으로 펼쳐놓은 장파의 캔버스는 이번에도
역시 원색적인 붉은 계열의 색과 그로테스크한 형상들을 방사한다. 하지만 중세의 종교적 도상부터 직선
없는 쉐이프트 캔버스에 이르는 다각적인 방법론들은 장파 작가가 모색하고 있는 여성적 회화의 가능성과 그 윤곽을 다시 세심하게 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를 제공한다.
올해 신작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라는 기독교적 도상이 직접적으로 인용된다는 점이다. 200호 캔버스에 그려진 커다란 Triangle of
Lamentation(2022)은 ‘반디니의 피에타’라고 불리는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지는 예수(The
Deposition)를 번안한 그림이다. 신을 죽인 비탄의 절정을 드러내는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 여기서 무너져 내리는 예수의 시신 바로 뒤, 정중앙에 자리하는 자는 (바사리가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을 새겼다고
추정한) 니고데모라는 성경 속 인물이다.
여느 피에타와 달리
어머니 마리아는 왼쪽에 왜소한 모습으로 시신을 받치고 있으며, 뺨을 맞대고 함께 그를 부축하고 있는
오른쪽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다. 장파의 그림에서 그리스도를 둘러싼 이 삼각 구도는 미묘하게 재배치되고, 색과 선의 형태 또한 은밀하고도 이단적인 또 다른 의미망을 발생시킨다. 무력한
그리스도의 배에서는 장파가 그간 그려왔던 비체의 형상들이 터진 내장처럼 쏟아져나온다. 성삼위 일체의
은유인 삼각 구도에서 정점을 차지했던 ‘남자-니고데모-미켈란젤로’는 성별을 알 수 없을뿐더러, 슬픔은커녕 텅 빈 눈과 음산한 표정의 가면처럼 매끈한 얼굴을 하고 있다.
충혈된
피막처럼 번진 물감과 핏줄이 선연하게 엉킨 형상 그 자체로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형체와 이어져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짙고 검은 파란색으로 반쯤 가려 있으면서 형형한 눈으로 보는 이를 오싹하게 응시한다. 이 그림의
원본은 무엇인가. 요한복음이라는 성서의 한 판본인가, 아니면
기원후 33년에 일어난 한 남자의 죽음인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인가. 장파는 이 세 가지 ‘원본 아닌 원본’을 흔들고 재배치하면서 거대한 역사적 상징체계에 깃든 성스러움과 비천함, 탄생과
죽음, 형상과 바탕, 죄와 욕망의 패러다임이 회화의 감각
위에서 어떻게 재설정되고 재맥락화될 수 있는지 실험한다.
A Common Woman Series에서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도상이 화려하고도 이질적으로 구현된다. 지난 2년 동안 장파는 집요한 리서치 작업을 통해 고대로부터 축적되어온 여성 형상의 역사적 지층을 파고드는 한편, 동시대 스크린의 ‘여성혐오’ 이미지들을
훑는 아카이브 작업들을선보였다. 무엇보다 모자상과 예수의 상흔(stigma)은
성스러운 기표 안에 음화된 여성적 부정성의 알레고리로서 기독교에서 여성성 및 모성이 어떻게 기체화(disembodied)되었는지
보여주는 핵심적인 도상이다.
이러한 성스러운 도상을 전유하면서 ‘그냥
여자’, ‘특성 없는 여자’라는 딱지를 붙인 작가의 도발과
지적 능란함에 혹자는 아연실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음란한 미스테리와 신성모독적 유희를 내뿜는 이
그림들은 종교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 육화(incarnation)라는
상징 기호 속에 숨겨진 남성적 공포와 페티시의 실체를 들추는 심문이다. 그것은 기독교적 상징체계가 여성(woman), 엄마(mother), 신체(body), 바탕(ground), 재료(material)의 인과성을 역전시킨 환상으로 구축되었음을, 말하자면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와 죽은 신’, 그리스도의 육화란 그저 신이
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태에 대한 역상(逆像)의 오목거울이라는
점을 통렬하게 폭로하는 것이다.
장파의 캔버스에서 유령 같은 형상의 모자(母子)를 그려내는 거친 붓질과 빛을 발하는 ‘구멍’은 그런 거울을 깨는 고도로 차가운 망치질이라 할 것이다. 금 가고 조각난 이 거울의 표면들에서 솟아난 성모마리아의 모성은 알 수 없는 으스스함을, 모종의 섬뜩한 차가움을 발현한다. 불결하고 음험하고 가차 없는 마리아의
형상이야말로, 고통/비애를 지닌 어머니와 창녀/나쁜 년의 위험한 혼종이자 양립으로서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에 가까웠던 모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가장 통렬한 반격이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Pouvoirs de L’horreur)』에서 주체가 되기 위해 분리되고 버려지는 그 무엇을 아브젝트(abject, 비체)라 불렀다. 종국에
원초적 억압의 ‘대상(object)’으로 자리하게 되는 이 ‘대상 아닌 대상’은 누군가가 되기 전 엄마라는 총체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이자, 주체가 되는 심급에서 엄마를 박탈하는 시도이며, 오로지
도착적으로만 재방문할 수 있는 혐오스러운 경계다. 이는 개체발생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문화사적으로도 오직 일련의 분리를 통해서만 상징체계, 혹은 성스러운
질서에 가담할 수 있다는 여성성의 운명이기도 하다.
희생제의를 통해 부정, 오물, 피는 정화되어야 할 것이기에 고기와 여성은 한 쌍으로 결부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차폐막이 작동하는 고깃덩어리로서, 피흘리는 짐승으로서, 오염의 근원으로서 고기와 여성에게 양립하는 부정성이 궁극적으로 응축되는 장소가 바로 어머니다. 정결한 그릇이자 자애로운 중재자라는 성모마리아를 정점으로 삼는 ‘어머니-기호’는, 문명사회—특히 기독교의 상징체계—가 재생산이라는 강력한 힘을 길들이는 동시에
그 육체가 지닌 통제 불가능성의 공포를 중화시킨 것으로, 여성의 육체를 흡수하고 탈신체화한 방식이다.
다시 피에타를 오염시킴으로써 공포와 아브젝트가 깃든 모성적 지점들을 가시화하는 이번 작업들은 그동안 Lady-X series에서 장파가 보여준 비체로서의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형상화가
터놓은 또 다른 물꼬로서, 또 하나의 위반적 쾌락의 지대를 마련한다.
Lady-X series의 거친 붓질과 구성적 모티프를 이어가는 Mama
series는 피부와 골격을 벗어나 서로 뒤엉켜 쏟아져내리고 밀려나오는 눈알, 내장, 태아, 고환처럼 장기를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이형적으로 얽힌 괴물
이미지로 캔버스를 채운다. ‘엄마’로 명명된 이 징그럽고
소름끼치는, 질척이고 증식하는 모성적 신체성은 회화라는 표면 위에서 눈부시도록 강렬한 빛깔과 잔혹하리만치
무고한 형태 생성의 유희를 발한다.
이 그림들은 숭고함, 정결함이라는
차폐막을 걷어내버리고, 희생 제의를 통해 훑어내버려야 할 오염체들의 얽힘과 역동 그 자체를 도리어 황홀하게
벌려놓는다. 이처럼 신성화, 신비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된 모성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혐오스와 공포가 각인된 신체의 물성을 색과 형태가 주는 감각적 쾌락으로 자리바꿈하는 장파의 전략은 ‘아이러니로서의 신성모독’을 감행한다. 그것은 도나 해러웨이가 사이보그 선언의 서두에서 스스로 선언한 유물론자 페미니스트의 언술 전략으로,
언제나 진지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양립불가능한 모순의 양측을 그대로 감당함으로써 터질 듯한 긴장으로 가득찬, 진지한 놀이이자 신랄한 유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