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규의 작업은 작가 개인이 느끼고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실제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안정하고 어두운 사회의 모습과 연결하고 있다. 이는 가족과 친구 같은 가까운 사람의 일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뉴스와 미디어의 보도 영상을 삽입하고,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대사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여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이어 나가는 모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는 여러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하지만, 주로 영상이 그가 천착하는 주제의 맥락을 잘 드러낸다. 최근에는 기존 작업인 〈나를 지켜줘〉(2017), 〈야생 속으로〉(2020), 〈정월〉(2023)을 묶어 〈After Blue〉(2023)로 다시 선보였다. 이 글에서는 그가 개별 작업을 왜 다시 하나의 영상 〈After Blue〉로 엮었는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마주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편하게 써보고자 한다.
그의 영상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 환경, 문화의 거대 서사를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뒤섞어 다양한 현실의 모습을 녹여내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어떤 징후를 감지하고 느낄 수 있으나, 뚜렷한 사건의 결과는 나타나지 않고 막연히 상상할 수 있는 단서들만 나열된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외부 환경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오히려 이번 작업에서 필자의 눈에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모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가까운 사람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시선과 태도이다.
〈After Blue〉에서는 그가 일본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배우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촬영해 나가거나, 부산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어머니의 생각과 행동을 담아내는 것이 작업의 중심축이 된다. 이처럼 그에게 한 개인을 구성하는 인간관계인 어머니와 배우자는 그만큼 중요한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에서 인물은 한 개인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등장인물이었던 이들은 작가의 작업에서 점점 주목하게 되는 인물로 그 의미가 변해간다. 특히 〈정월〉에서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어머니와 배우자의 관계성을 조금씩 드러내며 계속해서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다시 말해 작가의 새로운 말 걸기가 시작된다. 작가가 바라보는 이러한 인물의 관점에서 본다면 작업의 무엇이 다르게 읽히게 될까?
작가에게 세상은 알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한 시공간이다. 인간은 이성과 같은 논리를 통해 자연의 현상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비롯한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들을 분석하며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비가시적인 힘과 실제를 살아가는 가시적인 개인의 삶의 의미와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 자연적 환경과는 또 다르게 영향을 받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인간의 삶은 혼자가 아니라 타인과 지속적인 관계 맺기로 형성되기에, 안정적으로 고정되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영향을 받는 인간관계도 그가 지속적으로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하게 되는 원인일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삶은 개인의 의지와 관점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고, 순수하게 ‘나’로 구성되기보다는 이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하는 불안정한 갈등의 장(場)이 된다. 따라서 그에게 내적 고리로서 가족관계의 중심인 어머니, 배우자, 여기에 더해 반려동물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자연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들에게 무감각한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의 이상 현상은 그들의 존재를 다시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징후를 내보인다. 이는 가족의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작가에게 어머니는 우리가 자연을 대하듯 원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결혼을 통해 새로운 존재가 가족 구성원으로 들어오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관계를 불러왔고, 작가는 이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작업을 통해 그 새로운 징후의 실체를 포착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그의 작업을 보면, 가족이 가진 개별적 삶에 익숙해지는 것과 그들을 알아간다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불현듯 느끼게 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무엇이 왜 그렇고,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고, 삶의 관성에 따라 무감각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것을 발견하고 알아가기 위해 외부의 대상을 최대한 이해하고 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적극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의 작업이 허상을 향한 끝없는 어두운 갈망이 아니라 가족을 보고, 말을 걸고,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를 다시 돌려보며 편집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 삶에서 얻어지는 구체적 증거를 계속해서 찾아내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드러낸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작업은 개인의 삶과 연관되어,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인 동시에 불명확하고 불가해하고 불안정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가족이 보여주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을 통해 담담하게 인간의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의식의 흐름이 가진 여러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정월〉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새해를 맞아 가족의 복을 기원하고, 재봉을 배우고, 반려동물과 산책하고, 며느리와 술을 마시고, 병원을 가고, 카메라를 보며 독백하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주는 뉴스에 나오는 세상의 이상한 징후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이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불확실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인간의 숙명적 과제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가상과 실제의 세상이 복잡하게 서로를 침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나’를 ‘나’로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내가 경험하는 인간과 대상과의 관계,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과 같이 하나의 존재가 경험하는 것을 통해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공간이다. 이와 같은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세상에서 작가는 이를 관통하는 구체적인 자기만의 답을 내놓기 위해 점점 더 내부적 환경인 가족을 바라본다.
그것은 작가의 고유한 시공간을 고스란히 작업에 담아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과 이어 나가려는 행위가 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우리의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이 될, 아직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이러한 그의 작업과정은 자신의 뒤에 놓인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의 어두움을 밀어내고 삶의 순간을 더 깊고, 빛나고,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토대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황민규는 익숙한 것에서 오히려 낯선 사람, 낯선 공간, 낯선 기억을 계속해서 발견한다. 이는 삶의 일상적인 조건에서 벗어나는 특별함이 깃든 상황이 멀리에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그의 작업에서 드러난 것은 그가 가까운 가족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파일을 꺼내 돌려보며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낯선 것들을 곱씹고 다시 엮어내는 과정이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수행하면서 지금 눈앞에 본인과 함께 존재하는 가족이 예전부터 지속된 불안을 벗어나 살아갈 견고한 의미를 발견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음을 차츰 인식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익숙한 도시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들로 인해 〈After Blue〉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감각들이 뒤엉키는 하나의 다른 이야기로 새롭게 조합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그는 가족을 바라보며 그저 보이는 대로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삶을 지탱하는 본질을 찾으려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이것이 현재의 불안한 감각이 주는 감미로운 우울을 유지한 채, 가족과 있음으로 느끼는 행복감, 외로움, 충만함,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작업으로 〈After Blue〉가 다시 읽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