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리, 〈불온한 별들〉, 2018, 3채널 영상, 16분 16초. 《아직 살아 있다》 전시 전경(청주시립미술관, 2018) © 청주시립미술관

지난 상반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된 전시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How little you know about me)》는 ‘아시아’라는 키워드를 출발점으로 경계의 불분명함, 정의를 내리는 것에 대한 어려움, 언제나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것, 마치 잘 알고 있는 듯 착각하지만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들에 대한 탐구로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이러한 의문들을 안에서 전시는 국가, 국경, 민족, 정체성과 같은 전통적 개념들을 소환하고, 이들이 어떤 보이지 않는 형태로 긴장감을 고조하며 개인들을 고립시키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과거로부터 시작된 이 ‘보이지 않는 힘’은 소리 없이 돌고 돌아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규제하고, 승자와 패자의 역사를 그려낸다.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안유리 작가의 〈불온한 별들〉(2018)은 19세기 말, 한반도를 떠나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조선인들의 이주 역사 속에서 여전히 우리와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이야기로 ‘하나로 정의될 수 없음’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이 영상작업에서 작가는 ‘조선족’의 이야기를 통해 비단 민족성, 국가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 제기를 넘어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과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하여 제안하였다. 3개의 채널로 구성된 이 영상 작업 속에서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은 조선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위치하면서도 이를 바라보는 각기 전혀 다른 관점들을 분절된 인터뷰의 형태로 드러낸다.

한때는 (어쩌면 아직도) 스스로를 ‘단일 민족 국가’로 지칭하는 대한민국에서 민족과 국가를 구분 지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생경한 것인가? 를 지적하며, 인터뷰 속 어떤 이는 중국이라는 대국의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으로서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어떤 이는 대한민국 국민과 조선족은 결국 하나의 민족이라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 아래 본인을 중국인(한족)으로 인식하고자 하였지만, 주변인들로 인해 조선족으로 구분지어졌던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러한 인터뷰들을 통해 〈불온한 별들〉(2018)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조선족의 자리(status)에 관해 이야기한다.

중국 영토를 거점으로 중국인으로 살아가지만 그들의 생활방식은 분명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들의 언어인 조선어 역시 한국어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어도 한국어도 아닌 모습으로 변형되는 상황 속에서 한 작가는 조선어로 쓰인 본인의 글이 한국어로써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어떻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관해서(대해서) 이야기 한다.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족은 누구인가? 또는 조선족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단순하고도 무심한 질문을 넘어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 안에서 누군가를 하나로 정의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결국은 이 국가, 민족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인가? 라는 의문마저 들게 만든다.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경계를 흐리는 존재들, 그로 인해 경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이 흥미로운 상황에 대하여 〈불온한 별들〉(2018)은 나레이션을 통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나는 나의 조국(祖國)을 모른다. 내게는 정계비(定界碑) 세운 영토(領土)란 것이 없다. 그것을 소원하지 않는다. 나의 조국(祖國)은 내가 태어난 시간(時間)이고 나의 영토(領土)는 나의 쌍두마차(雙頭馬車)가 굴러갈 구원(久遠)한 시간(時間)이다”.[1] 바로 개인의 이야기이다. 국가와 개인, 민족과 개인은 마치 반대 개념처럼 종종 대척점을 이루기도 하지만 이러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곧 개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문제가 가장 사회적인 문제에 가까이 맞닿아 있듯, 우리의 생각을 제한하는 기존의 전통과 관념들, 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흐려진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결국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가까운 접근법을 택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족이라는 이름의 위치를 밝힘에서도 개개인이 각자 다른 관점을 취하는 것같이 우리 주변의 상황을 바라보고 하나의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 안에서도 각기 다른, 또는 대안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대상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바로 지금 어디에서든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1] 이용악, “쌍두마차”, 분수령, 1937

2018년 11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비평집
2019년 7월, K-NOTe, 토탈미술관 프레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