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etry Weaver
안유리는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Visual Artist & Poetry Weaver라 소개한다. 시각 예술가인 것은 알겠으나‘시를 직조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자못 흥미롭다. 실을 잣는 직공처럼 시를 잣는 사람, 즉 시를 뽑아 엮는 사람이라는 표현에 호기심이 당긴다. 예술을 ‘가르치는’ 대학과 기관이 즐비하지만 유독 ‘시’는 접근이 어렵다. 고대 그리스 플라톤은 회화를 눈속임의 허상을 만들어내는‘기술’로 보았지만 시는 이성 외부의 존재에게 사로잡혔을때 비로소 탄생한다고 보았다.
시는 인간 개인의 의지나 주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인 뮤즈에게 매혹당했을때 일어나는 설명할수 없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예술도 교육과 훈련을 통해 습득 가능한 기술이나 능력처럼 치부되지만 시는 훈련을 통해서 인위적으로가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며, 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쓰지 않으면안 되는 존재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이다.
안유리는 여러 시인의 시를 읽고 쓰고또 자신의 시를 쓴다. 앞선 시인들의 시가 촉매가 되는 일도 있고, 그 자신의 삶이 다른 시에 공명하기도 한다. 과거의 시와 현재의시, 이곳의 안유리와 과거/현재의 시인, 여기/저기의 시인이 만나 씨실과 날실이 된다는 점에서 ‘Poetry Weaver’라는 자기소개는 간결하지만 명료하다.
# 안유리의 전작들
제주 방언으로 ‘끝’을 뜻하는 〈깍, Writing on the Edge〉 라는 제목의 문집을 냈던 안유리는 2014년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이후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와 금천예술공장,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등 몇 군데의 레지던시를 거쳤고, 아트 스페이스 풀의 개인전 《추수할 수 없는 바다》(2015), 《돌아오지 않는 강》 (2016, 서교예술실험센터) 등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시아 특별전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2018),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2019, 경기도미술관-가오슝미술관 교류 주제전),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2021,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이전의 전시에서 안유리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다루었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갖는 착각과 오해를 세밀하게 다루었다. 《추수할 수 없는 바다》에서 하멜이 출발했던 네덜란드의 테셀에서 제주로 이어지는 여정에 진도를 추가하여 제작했다. 세월호와 말레이시아 항공 격추 사건 등 ‘돌아갈 수 없게 된 존재’들을 다룬다.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존재들의 고통을 다 덮은 듯한 평온하고 담담한 바다를 함께 보여주었다.
한편, 〈불온한 별들〉에서 연변이라는 지역에서 한국인과 한국계 중국인, 즉 ‘조선족’이라고 한국에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루었다. ‘포촘킨 스터디 시리즈’에서도 무심해 보이는 풍경과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흐른다. 서로의 처지에서 나온 미묘한 차이와 오해, 동상이몽,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관념들을 살아서 펄떡거리는 목소리로 건드린다. 우리가 함부로 믿어버린 것들, 무관심에서 그냥 지나쳤던 위선과 착각이 드러나면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낯이 뜨거워졌다. 영상은 담담하지만, 우리 안의 감정이 촉발되어 불편하고 불안해졌다.
# 스틱스 심포니
아트스펙트럼에 발표하는 〈스틱스 심포니〉는 15분 길이의 2채널 영상이다. 먼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의 강을 지키는 여신인 스틱스를 소개한다. 스틱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가장 큰 강이다. 이어서 영상은 일본, 폴란드, 미국, 한국의 네 여성 시인의 시가 낭독된다. 1945년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서 피폭 피해자이자 반전운동가로 활동했던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를 시작으로 프라하의 봄을 지나온 비스와바 쉼보르시카의 시를 소개한다.
이어 흑인에 대한 차별과 각종 억압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삶을 개척했던 마야 안젤루의 시 〈나는 일어설 거야〉에 이어, 마지막으로 광주의 시인 고정희의 〈오매, 미친년 오네〉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살다간 이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지막하게, 담담하게, 결연한 어조로, 또 강한 목소리로 낭독되는 시와 음악, 그리고 변화하는 영상이 조화롭게, 때로는 어긋난 채로 마치4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처럼 흐른다.
#영상과 시의 관계
네 명의 시인들의 시는 일본어, 폴란드어, 영어, 한국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낭독된다. 세상을 떠난시인의 시는 같은 언어를 쓰는 성우의 목소리로 낭독되며, 마야 안젤루의 경우는 생전의 작가 음성 그대로 낭독된다. 고정희의 시는 마치 연극처럼 공연된다. 영상은 작가가 촬영한 여러 지역의 풍경들과 인터넷에서 수집한 과거의 기록영상들이 교차한다. 바다 혹은 강, 숲과 길의 이미지는 지역을 특정하기 힘들다.
영상을 보는 사람은 등장한 텍스트 속 시인과 영상 속의 풍경을 연결 지어 보려 하지만 영상 속 풍경과 시인은 명확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영상 속 이미지들은 텍스트의 배경이 아니고, 텍스트 역시 배경을 지칭하지 않는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글과 이미지, 그리고 음악과 산 자/죽은 자의 목소리가 교향악의 각 악기처럼 존재한다. 보편적으로 영상을 소비하는 관습에 저항하고, 음악과 영상이 있는 시를 소비하는 문화와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안유리의 〈스틱스 심포니〉는 새로운 유형의 영상/예술로 자리매김한다.
#지금, 다시, 그녀들
다시 4명의 시인으로 돌아가 본다. 구리하라 사다코는 그 자신이 피폭을 경험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서의 일본의 위치에 대해 역설했던 반전 평화운동가이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세계 2차 대전과 공산화를 겪으면서 전체를 강조하고 개별적인 고통에 무관심한 문화에 비판적인 관점에서 평범하거나 일상적인 존재와 삶의 중요성과 의미를 역설했던 시인이다. 마야 안젤루는 흑인에 대한 차별 속에서도 진정성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흑인과 여성 인권을 강조한 작가이다.
마지막으로 고정희는 광주와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시로 표현했다.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난 네 명의 시인은 과거에 속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그들이 이야기한 역사 속 순간과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이지만 끝나지 않은 진행형인 현재이고, 현재 속에서 다시 소환되는 과거이다. 이 네 명의 목소리는 대신/함께 읽은 젊은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가 된다.
# 오래된, 새로운
아트스펙트럼은 2022년 한국미술을 대표하여 세계를 향해 진출할 예술가를 선정하기 위한 목표에서 진행된다. 안유리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시’라는 매체와 결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영상에서도 소위 4차 산업 운운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 연예인들을 등장시키지도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흔히 ‘젊다’거나 ‘새롭다’거나 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법한 스테레오타입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롭다. 영상과 시를 엮어내는 표현법이 우선 새롭다.
하지만 안유리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보여주는 더 중요한 차이는 그가 속한 세대 혹은 공동체에 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는 한국어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가 공감하고 자신을 귀속시키는 사람들 혹은 공동체가 한국이나 1980년대생과 같은 특정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몇 년간의 이국 생활을 했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 이전의 시간에도, 이후의 시간에도 그가 계속 밖으로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는 존재로 자신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떠돌아다니는 시인처럼, 제주로, 남도로, 테셀로, 연변으로 돌고 돌았고, 직접 몸이 가지 못하는 순간에도 시와 글을 통해,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공감하고 연대하는 시인들과 함께 존재하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아트스펙트럼2022, 리움미술관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