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s
[비평] 김덕희의 예술 세계는 결코 차갑지 않다
2024
박재용 | 큐레이터, 저술가, 번역가 및 통역사
픽셀과 파라핀, 철학을 통해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열역학 법칙이 지배하는 예술 세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펼쳐 보인다.

김덕희, 〈밤 속에 녹아있는 태양〉, 2021, 파라핀 왁스, 염료, 양초 심지, 가변크기 © 김덕희
“한때는 승려가 되고 싶었어요.” 분주한 프리즈 서울 기간 중 늦은 밤 샌드위치를 먹으며 겨우 만날 시간을 냈을 때, 김덕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개인전과 아트페어 참석을 위해 그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있었다.
약 10년 전 일본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김덕희는 부산을 기반으로 작업해 왔다. 승려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대화 중 무심코 나온 것이었다. 당시 우리의 대화가 특별히 작가의 작업에 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때 품었던 이러한 열망은 영성이 그의 예술적 실천에 어떻게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했다.
198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덕희는 평생 우주를 지배하는 힘에 매료되어 왔다. 이러한 관심은 그의 작업 전반에 과학적 호기심과 철학적 주제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는 언제나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었어요.” 김덕희는 특히 계절의 변화와 불이 지닌 매혹적인 속성 등 자연현상에 오랫동안 매료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바라보며 그 본질이 무엇인지 끝없이 생각하던 기억이 나요.”라고 그는 회상한다.

김덕희 작가 © 김덕희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김덕희는 불교에 귀의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해 2010년 도쿄예술대학에서 인터미디어아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는 열역학과 엔트로피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관심을 자신의 예술적 실천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영적 사유와 과학적 호기심의 이러한 결합은 이후 그의 작업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김덕희는 열을 매체이자 은유로 자주 활용하며, LED 디스플레이와 파라핀 왁스, 산업용 재료 등을 이용한 설치 작업을 통해 에너지의 전달과 변환, 만물의 상호연결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열역학에서 열은 언제나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며, 이러한 일방향적인 흐름은 엔트로피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그는 이어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체계를 지배하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삶과 우주 자체를 이해하는 은유로도 볼 수 있어요.”

김덕희, 〈A Single Pillar〉, 2006, 콘크리트, 히터, 단열재, 135 x 45 x 350 cm © 김덕희
김덕희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인 〈A Single Pillar〉(2006)은 일본 이바라키현의 한 쇼핑센터에 설치된 작품으로, 내부에 히터를 매립한 콘크리트 기둥을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공기 기둥을 형성함으로써 관람객들이 우리 세계를 형성하는 비가시적인 힘에 대해 사유하도록 유도했다.
작가는 요코하마의 뱅크아트 갤러리에서 선보인 〈Form of memory〉(2010)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제를 탐구했다. 이 작품에서는 감열 패널을 이용해 촉각으로 느끼거나 열감지 카메라를 통해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설치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정보의 일시적인 속성과 우리의 인식 및 기억을 형성하는 데 에너지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이끌었다.

김덕희, 〈Umbra〉, 2024, 4면 LED 디스플레이, 전선, 반복 재생 비디오(8분 30초), 210 x 480 x 480 cm © 김덕희
김덕희는 최근 서울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개인전 《사과와 달》에서도 시간성과 서사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다. 전시의 중심 작품인 〈Umbra〉(2024)는 LED 디스플레이 모듈로 구성된 사각형 구조물과, 이를 분해해 바닥에 흩뿌려 커다란 빛의 원을 형성하는 픽셀들로 이루어져 있다.
김덕희는 이 작품이 관습적인 이미지의 해체를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시간이 분자 수준에서는 거의 무의미하다는 자신의 시간관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수많은 개별 LED 모듈과 이들이 모여 이루는 더 큰 이미지 사이의 관계는 각각의 순간이 어떻게 엮여 더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형성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김덕희, 〈부분 일식〉, 2024, LED 디스플레이 25개, 반복 재생 비디오, 가변크기 © 김덕희
전시의 또 다른 주요 작품인 〈부분 일식〉(2024)은 저해상도 이미지와 과도기적 상태에 대한 탐구를 한층 더 확장한다. 김덕희는 벽면에 불규칙하게 설치된 LED 패널을 통해 일상적인 자연의 풍경과 천문학적 이미지가 중첩되는 우주를 관람객이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천체 현상과 그러한 현상이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맺는 관계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반영한다.
김덕희는 LED를 활용한 작업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인 미술 재료에서 벗어난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다. 이러한 특징은 〈밤이 밤에게〉(2024)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검푸른 파라핀으로 이루어진 높이 솟은 두 기둥은 마치 오랜 세월 쌓인 촛농에 잠긴 와인병처럼 연약하고 소외된 인간 형상을 뒤덮고 있는 듯하다.
“저는 파라핀에 끌려요.” 김덕희는 설명한다. “고체에서 액체로, 그리고 다시 고체로 변화하는 파라핀의 성질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감각, 서로 다른 존재의 상태 사이에 놓인 존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요.”

김덕희, 〈To Night, From Night〉, 파라핀 왁스, 염료, 석고, 가변크기 © 김덕희
김덕희는 작업 활동 전반에 걸쳐 관람객들이 물리적 우주와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를 다시 생각하도록 이끌어 왔다. 존재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탐구하며 깊은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생물학적 존재로 인식하기보다 사회적 존재로 인식하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요.” 김덕희는 말한다. “우리가 흔히 잊고 지내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자아’를 의식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생각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집니다.”

김덕희, 〈To Night, From Night〉, 파라핀 왁스, 염료, 석고, 가변크기 © 김덕희
김덕희의 예술적 실천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인상적인 설치 작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작가는 열역학과 양자역학, 불교 철학의 개념을 탐구하며 지적 사유를 자극하는 동시에 정서적 울림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은 서로 다른 학문 분야를 연결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강렬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