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신체’는 꽤 오랫동안 예술의 주요한 과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몸의 형태를 현실의 실체보다 더 완전하고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럼으로써 완연한 아름다움이 깃든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 그리고 르네상스에 이르러 인간은 그 목표를 탁월하게 달성해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 예술이 늘 그랬듯이 - 인간의 몸은 시대, 사조,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와 관점을 거치며 끊임없이 표현되어왔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나타난 ‘천지창조’의 순간에 고고한 자세로,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자태의 몸으로 그려진 아담. 최초의 근대 조각가로 회자되는 오귀스트 로댕도 미켈란젤로의 작품 속 아담의 ‘신체’가 인상 깊었나 보다. 그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과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방식으로 〈아담〉을 창조한다. 매끄러운 피부가 아닌 굴곡지고 뒤틀린 근육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으로, 우아한 자태가 아닌 내면이 서슴없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그리고 인간의 몸, 최초의 인간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아담”이라는 모티브를 데려온 또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스페이스 소에서 9월 17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병호 작가의 개인전 《Three Shades》에서였다. 

이병호의 ‘인체측정’ 연작의 또 다른 특징은 조각사의 여러 작품들을 참조하는 것인데, 특별히 이번 전시의 축을 이루고 있는 두 작품에 드러나는 인체측정의 원형들은 로댕의 〈아담 Adam〉의 포즈를 따르고, 반복 변형해 등장한다. 이 작품들의 참조가 된 ‘아담’들이 로댕의 작품들에도 반복하여 등장하고 서로 결합되어 〈Three Shades〉가 되었듯, 이번 전시에서 ‘아담의 포즈를 따르는’ 이병호식 인체측정-아담들은 〈Following Adam's Pose〉와 〈Two Shades〉가 되어 이번 전시를 《Three Shades》로 완성한다. 

- 전시 서문 중 


이병호, 〈Following Adam's Pose〉, 2020, 폴리우레탄, 나무, 철사, 철, 석고, 235 x 285 x 240 cm © 이병호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공간 중앙을 차지한 〈Following Adam's Pose〉를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다. 만약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담은 신이 창조한 견고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시작을 알리는 완연한 존재의 이미지, 적어도 완성된 상태의 몸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였다면, 이병호 작가의 아담은 마치 세상이 아직 창조되지 못한 카오스의 상태에 불현듯 태어난 아담을 보는 듯했다.

미처 준비되지 못하고 튀어나온 모습을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이병호 작가의 ‘아담’은 안정적으로 누워있는 것이 아닌, 스스로 몸을 지탱해 서 있는 것이 아닌, 뒤틀린 형상 위에 날개뼈 부근만을 겨우 맞대어 뒤집힌 모습으로 놓여있었다.


이병호, 〈The Two Shades〉, 2020, 폴리우레탄, 나무, 철사, 석고, 철 © 이병호 

시간이 잔뜩 스쳐 간 것인지, 거친 곳에서 나뒹굴어 마모된 것인지, 그 자체가 재료들이 겨우 덧대어져 태어난 것인지, 거친 표면에 무채색으로 뒤덮인 〈Following Adam's Pose〉는 너무도 공허해 보였다. 생기 하나 흩날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조각의 바깥으로 잔뜩 뻗친 철근으로 받쳐진 모습이, 형태를 파악할 수 없는 덩어리 위에 놓인 모습이, 겨우 지탱되면서도 “아담의 포즈”를 유지하는 그 모습이 떨림과 긴장감을 전해주었다. 

완전하지 못하다. 모든 것에 완전함이라는 기준이 있다면, 이병호 작가의 조각은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신체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완전한 형태에 담기지 못한 채 뒤틀리고 갈라지며 조각난 상태를 드러내는 작품들은 더 많은 시간과 손길, 재료가 동원되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병호 작가의 조각은 공허함, 완전하지 못한 채 비어있는 부분도 모두 끌어안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모순적인 문장 같으나 미완성의 상태로 완성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전시 서문의 말을 통해 이해하자면 “하나의 작품으로서 ‘최종적인’ 완성형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정해지지 않은, 끝을 알 수 없는 변형을 향해 가는 중에 ‘잠시 멈춘 완성’이다"


이병호, 〈Torso〉, 2020, 조각에 착색 석고, 40 x 110 x 35 cm © 이병호 

전시 동선 마지막에서 마주하는 〈Torso〉는 처음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로 느껴졌다. 조각에 달려 아무렇게 늘어진 끈은 그것이 어딘가에 걸려 전시된 조각이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완전했을 조각 일부를 거칠게 썰어내고 떼어낸 듯한 모습, 도구에 의해 마구 찍힌 듯한 모습, 그것은 〈Following Adam's Pose〉와 〈Two Shades〉의 일부를 이루던 ‘하얀 덩어리’와 닮아있었다. 원래는 조각이었으나 다른 조각의 지지대로, 새로운 형상이 겨우 지탱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놓인 조각의 일부들. 그렇다면 이 〈Torso〉 역시 언제 어떤 조각의 일부로, 다른 이름으로 놓이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이병호 작가의 작업 방식, 기존의 작품이 새로운 작품으로 변모하고 이동하는 과정과 앞서 본 작품들이 어떻게 창조된 것인지 어렴풋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인식 자체가 이병호 작가의 작품이 지닌 미완성 혹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가 일으키는 고요한 떨림을 더 선명하게 이해하게 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작품들은 얼마든지 다른 모습과 상태로 나아가다 다시 어느 시점에서 잠시 멈춘 상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만난 이병호 작가의 ‘아담’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상상하게 된다. 여느 미술사 책을 살펴보면 인간의 몸을 저마다의 예술 세계로 탁월하게 표현한 예술가와 그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곤 한다. “인간의 신체를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감정과 열정, 고통을 드러낸다”라고.

과거 예술가들의 ‘아담’이 인간의 내면을 담아 표현하려 했던 어떤 그릇이라 할 수 있다면, 이병호 작가의 ‘아담’들은 그런 그릇이 아닌 그릇이 되려 했던 파편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느 그릇이 될 수 있던 조각들은 계속해서 다른 조각과 맞물리며 새로이 등장하지만, 그 모습은 온전한 그릇의 형태를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그래서 비어있는 상태인 것일 테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동시에 얼마든지 다른 조각과 맞물려 또다시 다른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을 암시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