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슬(b. 1981)은 동양적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의 연결성을 탐구하며, 현실과 가상, 미디어와 퍼포먼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의 작업은 동양 철학에 내재된 전일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자연·생명체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유기적 흐름 속에 존재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김보슬, 〈Hyper Connection: Embrace〉, 2024, 가상현실(VR) © 김보슬

김보슬은 동양의 원형과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첨단 기술과 매체를 적극적으로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감각적 시공간을 창조해 왔다. 특히 그는 동양 철학, 신화, 설화 등에서 모티프를 확장하여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환경적 위기 속에서 미래 생태계와 존재 방식에 대한 사유를 제안한다.
 
작가는 애니메이션, AI·XR, 모션캡처, 텔레마틱 퍼포먼스, 메타버스 등 다양한 기술 기반 매체를 융합하여 몰입적이고 다층적인 감각 경험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해체하고, 물리적 신체와 디지털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존재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실험들은 예술·과학·철학이 맞닿는 지점에서 탄생하며, 단순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넘어 지각과 감각의 확장을 통해 미래 생명과 환경에 대한 사유를 확장한다.


김보슬, 〈Shadow, My Shadow〉, 2009,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 김보슬

김보슬의 초기 작업인 〈Shadow, My Shadow〉(2009)는 멀티미디어 퍼포먼스로, 자아와 깊은 내면을 맞이하며 겪는 여정을 영상, 안무, 애니메이션의 여러 요소로 결합하여 보여준다. 여기서 작가는 동양화의 미를 캔버스 위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미디어와 결합하여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다.
 
화선지 위 붓자국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생기는 점은 살아 숨쉬고, 주인공은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자아와 그림자, 상상 속의 동물들과 생명체들을 만나며 여정의 끝에 다시 점으로 돌아온다. 이는 지속되는 순환, 성장, 발견의 연속성을 의미하며 원 안에 시작과 끝은 하나라는 것을 표현한다.


김보슬, 〈Changing Tides〉, 2016-2020, 광대역 텔라마틱 콘서트 © 김보슬

한편, 2016년부터 시작된 작업 〈Changing Tides〉에서 김보슬은 미국과 한국에 각각 위치한 음악가와 비주얼 아티스트들이 실시간으로 협연할 수 있는 혁신적인 텔레마틱 공연을 연출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홀로그램 기술, 라이브 페인팅, 데이터 시각화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음악과 영상의 언어를 통해 탈국가적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특히 ‘지구를 위한 진혼곡’이라는 콘셉트 아래 동양의 오행을 모티프로 순환과 하나됨의 원리를 탐구하고, 생명체의 미시적 관점과 현미경적 이미지를 라이브 페인팅 시스템, 비디오 아트, 키네틱 로보틱 아트와 결합했다.


김보슬, 〈Changing Tides〉, 2016-2020, 광대역 텔라마틱 콘서트 © 김보슬

이처럼 김보슬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미시적인 세계를 탐구해 오며,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거대한 우주를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을 동양의 오행과 비유하여 세계와 인간, 그리고 생명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인간을 자연의 통제자로, 미시세계를 사용과 연구의 대상으로 보았던 전통적인 서구의 가치관과 달리, 동양 철학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김보슬의 작업에서 인간과 자연은 동등한 위치에 놓이며, 미시세계는 거대한 우주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보다 더 거대한 존재로 묘사된다.


김보슬, 〈MICRO Cosmos〉, 2020, 미시적 이미지, 데이터 시각화, 6분. © 김보슬

이러한 미시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점은 2020년 작업 〈MICRO Cosmos〉에서도 잘 드러난다. 텔레마틱 퍼포먼스 시리즈 ‘Vital Signs’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작업은 한국과 뉴욕에 위치한 아티스트의 뇌파와 맥박을 실시간으로 데이터 시각화한 결과물과 현미경을 통해 생성된 미시적 이미지를 결합하여 제작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시적 세계의 풍경은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며 마치 거대한 우주의 모습을, 또는 몸속 세포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김보슬, 〈Micro Macro Loop〉, 2021 © 김보슬

그리고 〈Micro Macro Loop〉(2021)에서 김보슬은 고대 동양의 학자들이 우주 모든 만물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오행(五行)의 변화, 순환하는 기운으로 해석한 원리에 주목하여, 철학의 근간이자 동양 만물의 양상인 오행, " 목, 화, 토, 금 수”를 모티프로 연계된 심상을 표현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동양적 관점과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주와 같은 미시적 세계, 보이지 않아도 생명이 이루는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였다. 동양화 실물 작업에 어우러지는 프로젝션 맵핑,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음악이 융합된 작품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더욱 공감각적으로 이끌어낸다.


김보슬, 〈하이브리드 네이처〉, 2022, 메타버스 플레이 © 김보슬

나아가, 2022년작 〈하이브리드 네이처〉에서 김보슬은 인류에게 직면한 기후 위기와 환경에 대한 의식을 동양 고유의 사상과 원형을 바탕으로 풀어내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연결된 가상의 세계를 메타버스 기술을 통해 제안한다.
 
작가는 생명이 내재하고 있는 미시적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안에 깃든 무한한 세계를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하였다.


김보슬, 〈하이브리드 네이처〉, 2022, 메타버스 플레이 © 김보슬

이 메타버스 세계에서 관객은 아바타가 되어 동서양의 신화, 역사, 문화가 혼재된 세계를 탐험하며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물질, 오행을 모티브로 한 가상 세계를 유영한다. 극한의 기후 변화, 유전적 변이와 키메라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동식물이 혼재한 초현실적 환경을 조형과 음악, NFT아트 등 공감각적으로 만나게 된다.
 
김보슬은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발견하고,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성, 그리고 생명의 생성, 소멸, 순환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김보슬, 〈하이퍼 커넥션〉, 2023, 메타버스 플레이 © 김보슬

물의 공간에서 마무리된 〈하이브리드 네이처〉에서의 여정은, 〈하이퍼 커넥션〉(2023-2024)을 통해 다시 물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이퍼 커넥션〉은 동양의 원형 중 생명의 순환과 생성, 소멸이 교차하는 물의 속성과 의미를 메타버스와 몰입형 VR을 통한 가상의 환경 안에서 풀어낸다.
 
김보슬에게 있어서 ‘물’은 생명과 치유, 정화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물을 모티프로 하여, 신화적 상상력에 과학적 근거를 더해 창조한 근미래의 세계에 관객을 초대한다.


김보슬, 〈하이퍼 커넥션〉, 2023, 메타버스 플레이 © 김보슬

이 세계는 과거와 미래,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생명이 하나로 연결된 초현실적 환경이며, Chat GPT, 생성형 AI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 세계의 생명체들은 극한의 기후 변화와 유전적 변이를 거듭하며 나타난 혼성적인 생명체다.
 
관객은 작품 속에서 이들을 관찰하며 먼 미래의 단서들을 찾아감으로써,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작품은 이 같은 가상의 공간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다차원적 감각을 확장하고, 미래의 생명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끈다.


《Altered Nature - 혼합된 미래》 전시 전경(수림큐브, 2025) © 김보슬

나아가, 2025년 수림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Altered Nature - 혼합된 미래》는 그간 작가가 다뤄온 ‘물’의 세계관을 더욱 본격적으로 확장하여 보여준다.
 
전시는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이라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미래의 가상 수중 생태계를 그린 대규모 XR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관객은 LED 스크린과 설치물에 기반한 AR 환경 속에서 인류의 도시 문명이 침잠한 심해(深海) 세계 ‘해이라(HAERA)’를 탐험할 수 있었다.


김보슬, 〈해이라 – 다시 태어난 바다〉, 2025, 디지털 애니메이션, 7분 © 김보슬

‘해이라’는 바다(海)와 순환(來), 햇빛(해)과 존재(이라)의 개념이 결합된 가상 세계로, 물고기와 인간이 융합된 하이브리드 생명체, 산호와 균사체로 이루어진 유기적 건축, 기억을 수집하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대안적 서식지’이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 관객은 빛을 내는 해양 생물과 교감하고, 고대 산수화의 풍경을 닮은 수중 지형을 유영하며, 기후 변화 이후 인류가 비인간 존재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스펙터클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태학적 질문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의 여정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김보슬, 〈해이라-기억의 울림〉, 2026, 디지털 애니메이션, 3분 15초 © 김보슬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전개된 〈해이라-기억의 울림〉(2026)은 푸른 산수의 이상적 풍경에서 출발해, 점차 심해로 하강하며 미래의 해양 생태계를 탐색한다. 하강의 과정 속에서 익숙한 풍경은 해체되고, 자연의 잔해와 문명의 흔적, 기억의 파편들이 혼성된 새로운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과 인공,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생명체들은 파괴 이후에도 지속되는 생명의 가능성을 상징하며,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새롭게 조직되는 생태계의 단면을 제시한다.


김보슬, 〈해이라-기억의 울림〉, 2026, 디지털 애니메이션, 3분 15초 © 김보슬

이러한 서사는 바다를 파괴의 결과이자 동시에 회복의 잠재성을 품은 공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해조류와 잘피 숲, 갯벌로 대표되는 ‘푸른 탄소(Blue Carbon)’ 생태계는 인류가 배출한 막대한 탄소를 흡수해온 보이지 않는 저장고이며, 기후 위기 이후의 대안을 상상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관객은 미디어월에 펼쳐지는 심해의 풍경과 침수된 도시의 장면을 마주하고, 미디어월 앞의 증강현실을 통해 겹쳐 나타나는 ‘해이라’의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증강현실(AR)은 심연에 잠긴 기억을 현재의 공간으로 소환하는 장치로 작동하며, 관객은 파편화된 단서들을 따라가며 선형적 서사가 아닌 스스로 구성되는 내러티브를 경험하게 된다.


《Altered Nature - 혼합된 미래》 전시 전경(수림큐브, 2025) © 김보슬

이렇듯 김보슬은 기후 위기 이후의 세계를 종말의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는다. 대신 변화된 조건 속에서 어떤 서식지가 가능할지,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를 질문한다.
 
나아가 가장 미시적인 생명체에서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순환하며 연결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러한 작업은 자연과 인간이 맺고 있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저는 항상 동양의 철학과 신기술 매체를 접목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전일주의적 관점과 동양의 감성적 색채를 염두에 두고 작업합니다. 몰입적 체험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보슬, 키아프 서울 인터뷰 중)


김보슬 작가 © 키아프 서울

김보슬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및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실험 애니메이션 및 융합미디어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해이라: 심연의 기억》(서울시청, 서울, 2026), 《Altered Nature - 혼합된 미래》(수림큐브, 서울, 2025)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메타플랫폼 – 생성되는 관계들》(KF 갤러리, 서울, 2026), 《불꽃이 타는 곳》(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부산 영화의 전당, 부산; 2026), 《파라다이스 아트페스티벌》(파라다이스시티, 서울, 2024), 《생성 세대》(아트센터 나비, 서울, 2023), 《어느정도 예술공동체-부기우기 미술관》(울산시립미술관, 울산,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보슬은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 전공 부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으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지향하는 글로벌 플랫폼 CultureHub의 한국 디렉터를 역임하며 다양한 국제 협업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