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hun Park, Overheated Windmill, 2020, 3D animation, loop © Jaehun Park

대안공간루프의 2021년 작가 공모로 선정된 박재훈의 개인전은 3D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기술을 활용해 전쟁과 비극, 욕망이 뒤얽힌 동시대 자본주의 풍경을 ‘실시간 연옥’이라는 키워드로 구현한다. 여기서 가상은 일차적으로 물리적 혹은 역사적으로 시공간적 지표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상상의 영토를 지시할 것이다.

하지만 박재훈의 작업에서 가상의 문제는 내용의 층위 이전에 이를 빚어내는 수단인 3D 디지털 기술이라는 형식에 이미 내재해 있으며, 매체 기술의 형식은 제작 방식과 결과물로서의 이미지, 관객의 현상학적 경험 등 작업의 모든 층위에서 가상과 현실의 내부 작용(intra-action)을 매개하며 체현한다.


3D 바니타스

우선 3D 모델링이라는 제작 방식부터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다. 3D 모델링은 사물의 표면을 측정해 이를 가상 공간의 점군(point cloud)으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표면의 모든 점을 스캔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추정에 기반해 빠진 곳을 채워 넣는 허구화의 과정을 포함한다.1) 실제 사물을 측정해 일군의 데이터로 환원하고 이를 스크린상의 비물질 이미지로 구현하는 과정은 3차원이 1차원이 되었다가 2차원으로 귀결되는 기묘한 차원 전환을 내포한다.

이러한 원리를 고려하면 네덜란드 헤이그의 드바이엔코프 백화점의 회전문을 3D 모델링으로 제작한 〈회전문〉(2019)은 실제를 정확히 본뜬 사실적 복제물이라기보다 가상과 실재가 뒤엉킨 기이한(uncanny) 혼성체다.
 
한편 작가 역시 영상의 구성에서 자연스러움과 인위성의 중간 지대를 겨냥한다. 표면상 작업은 사실적으로 보인다. 중력과 충격량, 회전력에 반응해 이리저리 나뒹구는 마네킹, 빛의 변화에 반응하는 그림자, 익숙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물결 등은 눈앞에 보이는 이미지를 무심결에 당연한 듯 수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감지되는 것은 육안으로는 확인 불가능한 앵글과 움직임이다.

작업에 카메라나 드론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미지는 모든 측면에서 기계적이다. 쏟아지는 물줄기의 정반대 방향에서 샤워 꼭지와 점점 멀어지는 촬영 각도와 카메라 워크, 줌 인과 줌 아웃을 자유자재로 반복하며 멈췄다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이미지 연출은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기계의 시선이다.

관객 역시 이 양가성의 유희를 인지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작품과의 조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미지의 독특한 물성이다. 극사실적인 외양을 하고 있으나 실제라고 믿기에는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물체의 질감은 이 영상이 ‘합성’ 이미지임을 강하게 현시한다.

물이라기에는 점도가 있고 비중이 높아 끈적이며 무거운 느낌이 나는 〈샤워룸〉(2019)의 액체, 투명하게 녹아내리지만 얼음보다는 유리 같아 보이는 〈밤을 위한 제의〉(2021)의 고체는 실제와 무관하게 데이터라는 추상 공간에서 태동한 이미지의 출현을 대변한다. 자연과의 끈이 상실된 이미지는 아무리 닮은 외양을 한들 더 이상 재현일 수 없다. 동시대 눈속임(trompe-l'œil) 그림은 이렇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대상이 된다.

박재훈이 구현하는 비/사실적 이미지는 숫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의 ‘실제(authentic)’ 초상이다. 이제 우리의 자연은 최소한 절반 이상 데이터 매트릭스다. 진짜 같다고 믿게 만드는 이미지의 촉각적 물성은 실상 시각을 매개해 유발된 환영이며 그런 의미에서 착시다. 하나 재미난 유비는 박재훈의 작업이 여러 면에서 그가 거주하는 네덜란드의 정물화 전통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값비싼 꽃과 식기, 진귀한 음식을 실감 나게 묘사해 인공적으로 닮음의 정점에 도달했지만 그 이면에는 화려함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박재훈의 3D 애니메이션도 실제보다 강도 높은 극사실적인 외양을 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 후쿠시마 원자력 오염수 탱크, 팔레스타인 폭격, 난민 대피소의 플라스틱 패널, 거대 스포츠 행사의 종이 폭죽 등 동시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를 함축한다. 도구가 자연이 되어버린 이 새로운 실재의 풍경을 박재훈은 소프트웨어와 마우스로 핍진하게 조각한다.
 

네모 속의 네모

박재훈이 가상과 현실의 교직을 이미지 내부에서 실험했다면, 백필균이 기획한 《P는 그림을 걸었다》는 전시라는 플랫폼을 다변화해 가상과 현실을 물리적 공간 차원에서 뒤섞는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P는 그 자체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수의 평형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동시대 미디어 환경과 우리 자신에 대한 메타포다.

P는 전시 대상인 회화(Painting/Picture)를 뜻하기도 하고, 전시 공간인 6개의 플랫폼(Platform)을 가리키기도 하며, 전시 주체로서 상용화 기술의 소비자이자 생산자(Prosumer)인 기획자를 함의하기도 하고, 오프라인 전시장인 낙원(Paradise)상가를 의미하기도 하며, 비대면 온라인 플랫폼이 보편화된 현재(Present)라는 시간성을 지시하기도 한다.

사물로서의 작품과 공간으로서의 전시장이라는 양 측면에서 미술은 워낙 물성의 비중이 강하기에, 일반적으로 온라인 전시는 비대면 플랫폼이 강제된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오프라인 전시의 보조물이자 임시변통의 대책이지 온전한 대체재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전통적인 올드 미디어인 회화를 대상으로 가상 주제의 전시를 꾸리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을 벗어나는 행보다.

기획자가 회화를 가상과 접목시키는 단초로 삼은 것은 ‘그림 속의 그림’이라는 미장아빔 개념이다. 컴퓨터 모니터, 스마트폰, 태블릿, TV 화면 등 동시에 여러 개의 블랙 스크린을 사용하고, 하나의 장치 안에서도 여러 개의 창을 오가며 멀티태스킹하는 하이퍼 매개의 세계는 복수의 프레임이 층층이 겹쳐진 디지털 버전의 ‘그림 속의 그림’이다.

백필균은 다수의 장치와 이미지, 플랫폼이 병존하는 미디어 환경을 자기 참조적인 메타 회화와 중첩한다. 세대와 경력, 기법, 장르가 혼재된 21점의 회화는 모두 그림 안에 그림이 등장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흥미로운 점은 오프라인 전시장이 한편으로 관객과 공간의 실물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디스플레이와 관람 방식에서 실제 전시의 실체성을 자꾸만 지운다는 것이다. 전시장에 배치된 3대의 조명 기기는 관람자의 그림자를 그림 위에 드리우며 실견하는 몸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유리창과 단의 높이 등 전시장의 물리적 규격을 따른 작품 배치 역시 공간의 실물성을 반영하려는 의지다. 그런데 작품에 캡션이 붙어있지 않기에 누구의 작업인지를 알려면 배치된 태블릿으로 구글 드라이브나 인스타그램에 접속해야 한다. 온라인 공간의 정보와 오프라인의 실물을 숨은그림찾기하듯 맞춰보는 행위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내 몸을 동기화하는 경험과 유사하다.

게다가 완전히 성격이 상이한 그림들이 특별한 분류 없이 동일한 간격과 같은 높이로 줄줄이 걸려있는 상황은 검색한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나열되는 구글링 결과를 연상시킨다. 위계 없는 이미지의 연쇄는 오프라인 전시장에 온라인 공간의 성격을 부여한다.

오프라인 전시는 6종의 전시 중 하나일 뿐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믐, 제페토, 메터포트의 플랫폼에서 전시는 매체별 차이를 반영하며 변주된다. 인스타그램은 압축된 파일과 인덱스를 공유하며 전시의 팸플릿 역할을 하고, 유튜브는 관객의 아바타로 전시를 경험하는 모델의 퍼포먼스를 대리 체험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믐은 캐릭터 비율에 맞춰 그림의 크기와 위치를 재설정할 수 있고, 제페토에서는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작품을 공간 속 부속물로 가지고 놀면서 전시 요소와 상호 작용하게 된다. 메터포트는 오프라인 전시장을 3D로 뜬 온라인 뷰잉룸으로, 유튜브와 함께 전시의 또 다른 기록물로서 기능한다.

사진의 등장으로 작품이 유일무이성에서 해방된 지는 오래이지만 물리적 공간인 전시장이 일회성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오프라인 전시를 평행하는 여러 개의 메타버스 중 하나로 귀속시킨 《P는 그림을 걸었다》는 드물고도 과감한 시도다.

박재훈이 서로가 서로를 대리 보충하는 가상과 현실의 상호 관입의 양상을 드러낸다면, 백필균은 하나의 그림이 다른 그림으로 계속 변주되는 모사의 방법론을 디지털 플랫폼으로 구현한다. 거울 앞에 서서 거울과 반사체를 동시에 지각하는 메타적 시선을 전시와 전시 대상에 동시에 적용한 야심한 기획에 진한 좋아요를 누른다.


1)히토 슈타이얼은 이를 사물허구화(objectifiction)라고 지칭한다. 히토 슈타이얼, (문혜진, 김홍기 역), 「현실을 리핑하기: 3D의 사각지대와 깨진 데이터」,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워크룸프레스, 2021), p.230.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