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Real-time Limbo》 (Alternative Space LOOP, 2021) © Alternative Space LOOP

“요컨대 지금이 바로 미래란 말이다.”1

박재훈의 작업은 리서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리서치는 역사, 과학, 문명, 인류학, 문예학을 넘나들며 실제 발생한 사건, 과학적 가설, 기계 장치, 문화적 표상 등 세계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사물과 현상을 아우른다. 전시 《실시간 연옥 Real-Time Limbo》(대안공간 루프, 2021)은 동시대인이 전 지구적으로 겪고 있는 복합적인 현상의 동기가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를 다원적으로 캐묻는다.

무엇보다 작업의 발단에는 발터 벤야민의 글 「종교로서의 자본」(1921)이 자리 잡고 있다. 벤야민은 이 글을 통하여 개신교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주목한다. 그는 종교가 자본에 기생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실제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감한, 동시에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유는 비교적 분명하다. 실제로 역사를 되돌아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는 국가체제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주권을 기반으로 세워진 근대국가의 등장 이후에도 전근대적 현상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은 되돌아보아야 할 지점이다. 요컨대 실시간 연옥1970년대 한국의 유신 시대 국가 원수는 거의 신적 존재에 가까웠다. 심지어 국가 원수를 신격화하는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심심찮게 목격되는 장면이다.

성공을 향한 염원은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절대적인 믿음을 갈음한다. 박재훈은 리서치를 기반으로 종교가 되어버린 자본 또는 과학기술을 표상하는 기호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수집의 대상은 원시적인 돌과 같은 자연물부터 뉴스 영상, 다종다양한 분쟁들, 고도화된 기계 장치, 문화적 산물, 냉전 시대의 잔해물, 종교적 성물, 물리학적 가설,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아우른다.

이러한 참조물들은 시대와 장소를 표상하는 기호에 해당하고, 이를 매개로 근대를 구성하는 자본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이토록 절실한 믿음을 생산하는지를 3D 애니메이션으로 갈무리한다. 데이터는 주로 인터넷의 오픈소스를 이용하는데, 공유재를 원형으로 한 데이터에 추가 작업을 통하여 생동감을 더한다.


모더니티의 기호를 갈무리하다

풍차에서 짙은 회색 연기가 솟구친다. 〈과열된 풍차〉(2020)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풍차를 쉼 없이 회전하는 자본주의의 표상으로 제시한다. 풍차는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바람의 힘을 기계 에너지로 전환하는 엔트로피의 장치를 일컫는다. 북해풍을 이용하여 저지대의 물을 바깥으로 길어 올려야 할 정도로 네덜란드는 16세기 이후부터 지속적인 간척사업을 통해 현재의 영토가 완성되었다. 네덜란드 영토의 확장은 절실한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주시하다시피, 동인도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근대적 자본주의 경제의 초석을 완성한 최초의 국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식민지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과거 식민지배에 관한 국왕의 사과를 표한 바 있다 (2020. 3. 10.) 풍차라는 소재를 통하여 박재훈은 모더니티의 다양한 위상들을 건드린다. 간척에 의한 영토화, 노동이 아닌 주식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원형,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그리고 초국가주의를 감치기하면서 문화연구를 기반으로 한 작업의 성격을 드러낸다.

〈경계 위에서〉(2020)는 판문점 경계석 위에서 남북한 정상이 만나는 장면을 기점으로 과거와 근미래가 펼쳐진다. 이념의 불화로 갈라진 한반도 가운데에서 온갖 사물들은 전쟁의 흔적부터 국가 폭력의 잔해들이 외상의 흔적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폭력의 역사는 또한 인류의 역사로 가릴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다. 세계사는 진보를 향하여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했다고 서술하면서 역사의 진화를 자연의 법칙으로 고정하려 한다.

따라서 폭력 방식의 진화를 통하여 이를 윤리적으로 포장하는 행위는 인류가 막다른 곳에 이미 도달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뿐이다. 실제로 글로벌 문화는 디지털 네트 안에서 무기 없는 전쟁을 벌인다. 끊임없이 경신되는 조회 수, 구독자 수, 관람자 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글로벌 랭크와 같은 줄 세우기는 비가시적인 폭력을 양산한다. 심지어 재난을 보여주는 영상의 조회 수가 늘어날수록 폭력의 강도는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를 위한 장치들

〈회전문〉(2019)과 〈대제단〉(2020)은 자본과 종교의 교차점을 환유한 작업이다. 먼저 〈회전문〉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드바이엔코프(De Bijenkorf) 백화점의 회전문을 모델로 삼아 3D 모델로 제작되었다. 원형의 투명문에 칸막이를 세워 사람들의 출입을 조율할 수 있도록 계획된 이 장치는 1888년 처음 발명되었다고 한다. 19세기 말은 산업을 기반으로 한 공공시설이 곳곳에 세워지던 시기였다. 박재훈이 세상을 관측하는 이러한 방식은 벤야민을 연상시킨다.

그는 시각 기호라는 다소 상투적인 표상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대상을 정밀하게 측량하여 단순히 사실성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의미의 겹을 생성한다. 회전문 안은 인간의 모습을 닮은 대체물인 마네킹으로 가득 채워진다. 원래라면 통로가 되어야 할 회전문은 공포영화의 클리쉐처럼 마네킹을 가둬버린다. 작가는 여기에서 자본주의 폭력성을 투명하고 패셔너블한 장면으로 재연한다. 그렇게 회전문은 과열된 분쇄기가 된다.

한편 〈대제단〉은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의 진열장을 실측하여 3D 모델링한 작업이다. 백화점은 근대를 대표하는 상품의 대성당과 같다. 쇼핑은 가장 열렬한 신앙의 방식이며 자본은 식지 않는 소비의 열정을 동력으로 구성된 종교라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는 소비주의를 대표하는 장치인 진열장을 제단으로 삼고 그 옆에 미켈란젤로의 제자 리지에(Ligier)의 썩은 시체를 재현한 대리석 조각 트랑시(Transi de René de Chalon, 1547)의 형상을 놓았다.

제단에서는 알 수 없는 불똥이 튀고, 그 측면에는 나뭇가지가 타고 있고 그 주변은 공사 현장처럼 어수선하다. 레오 카락스(Leos Carax)의 마지막 영화 ‘홀리모터스’(Holy Motors, 2012)는 시네마에 바치는 오마주로 영화라는 산업이 어떻게 정신과 마주칠 수 있었는지를 질문한다. 성스러운 모터는 영화에 대한 비유이자, 내연기관 산업 시대의 종언을 암시한다. 이는 곧 카메라 없이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과 필름 카메라를 향한 연민이기도 하다.

영화는 카락스의 자전적 성격을 띠는데, 그의 영화적 페르소나 드니 라방(Denis Lavant)을 통하여 영화적 삶을 다원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성공한 CEO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하는 배우의 삶을 연기한다. 그는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종일 거지, 괴물, 암살자, 그린 스크린 연기자 등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렇게 영화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알레고리의 궤적 한가운데에서 프랑스 최초의 백화점 사마리텐느(La Samaritaine)의 내부가 등장한다. 1870년에 문을 연 이 백화점은 당시 가장 화려하고 값비싼 상품을 판매하던 장소였다.

상품은 사람의 지위를 대신하는 훌륭한 훈장이었고 사진과 영화가 일상의 일부로 침투하던 시기였다. 사진술은 세계를 새롭게 보여주는 매체였고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마법적인 환등상(phantsamagoria)과 다름없었다. 카락스는 애나그램(anagram, 철자 바꾸기)을 즐기는 편인데, 홀리모터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파벳 “o”의 불빛이 꺼지자 Holy Motors는 Holy Motrs가 되는데, 이를 다시 재배열하면 Holy Morts (성스러운 사자)가 된다.

이는 마치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을 연상시킨다. 이제 우리에겐 핼로윈데이로 더 익숙하지만, 모든 성인의 날에는 부활한 죽은 영혼으로부터 육신을 지키기 위해 무섭게 분장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2 홀리모터스는 영화의 부활 또는 영화의 죽음 이후의 시대를 질문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리무진 주차장이 등장한다. 리무진이 정렬되고 조명이 꺼지자 침묵이 엄습한다. 잠시 후 리무진 헤드라이트에 불이 켜지고 그들끼리의 대화가 이뤄진다.

초현실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이제 자동차는 더는 기계가 아니다. 자동차가 인공지능을 장착하고 인간 및 사물 간 대화가 이뤄지는 움직이는 컴퓨터에 더 가까워진 시대다. 과연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포집된 자연”(2021)은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회화를 연상시킨다. 구름을 포집한 육면체를 중심으로 낮과 밤, 기온과 날씨의 변화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뉴욕을 개발하던 당시 온도조절장치 기술을 발명한 후 기후조건을 무시하고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더불어 무더위에도 노동의 조건을 바꾸지 않게 된 것은 자연스레 뒤따른 효과였다.


가상세계의 원근법

〈사건의 지평〉(2021)은 총 5개의 장으로 이뤄진 영상 작업이다. 인류의 근원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해 후쿠시마의 미래를 지나 실제 전쟁의 시뮬레이션, 그리고 자본과 과학에 의하여 이룩한 인공의 경지를 벗어나자 폭죽이 터진다. 박재훈은 지질학 연구센터의 오픈소스 목록에서 잠들어 있는 실재 돌의 스캔본을 꺼내어 새로운 가상공간에 위치시킨다. 돌만 말이 없는 게 아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위성사진 내 오염수 탱크 위치 데이터를 기반으로 근미래를 상상하는 장면은 자연과 문명의 변증법과 다름없어 보인다.

현대 전쟁술은 가상공간을 통하여 이뤄진다. 박재훈은 시리아 알레포, 팔레스타인 폭격 현장을 사진 측량술(Photogrammery)로 복원한 뒤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를 이용해 이 장면을 미세입자의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세포처럼 보이는 입자들과 우주선처럼 보이는 기구와 폭격 복원 장면이 교차하면서 장치와 형상, 과거와 현재, 가상과 실재 사이의 생성과 소멸이 반복된다. 마지막을 장식한 종이 폭죽은 무대장치로 승리의 기호로 사용되었다.

작가는 승리의 기쁨을 증폭시키는 이 장치를 두고 쓸모없는 쓰레기를 생산하는 장치로 보았다. 하지만 인류는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일어나는 통과의례의 순간에 제의를 마련했다. 제의는 삶과 죽음, 정신과 물질이 교차하는 과정을 형상화한다. 박재훈은 아마도 자극을 위한 더 큰 자극의 장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 그렇다면 제의가 사라진 시대에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질문해본다.

박재훈은 철저한 리서치를 통하여 맹목적으로 현실을 비판하지 않고 팽창한 자본주의 혹은 고삐가 풀린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을 단서와 참조물을 바탕으로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종교와 자본의 부조리한 관계는 이미 익숙한 주제이지만, 박재훈은 이 낡은 질문을 매우 구체적인 단서들과 정밀한 측량 그리고 디지털 기술을 통하여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반복적으로 묻고 있다. 현실에 천착한 현대 종교가 자본주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신앙생활과 일상 사이에서의 간극은 자주 풍자의 소재로 쓰이거나 인간이 결국엔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근대의 탄생은 새로운 질서의 시작일 수도 있지만 견고한 삶의 윤곽과 배치가 허물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학자에 따라 현재를 긴 모더니티의 끝으로 보기도 하고 모더니티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로 인식하기도 한다.

발터 벤야민을 단서로 전개한 미래적이면서 동시에 고대적인 시간이 중첩된 박재훈의 시각은 자신만의 에피스테메(épistémè)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에피스테메는 미셸 푸코의 개념으로 어떤 사회, 문화, 문명이 형성되는 특정한 순간을 인식하는 앎의 방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박재훈의 작업은 역사, 철학, 문명과 문화의 차이를 가로질러 서로를 연결하여 어떻게 세계가 구성되고 있는지에 관한 전망과 부조리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앎의 실천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아리프 딜릭(Arif Dirlik), 글로벌 모더니티, 에코리브르,  2016, 14쪽
2.Jean-Marc Lalanne, Holy Motors: conquérant et inventif, un lm génial, Les Inrockuptibles, 2012년 7월 3일, (참조) https://www. lesinrocks.com/cinema/holy-motors-23170-03-07-2012 (2021년 11월 6일 방문)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