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숙현(b. 1982)은 현재의 기술 미디어를 ‘물질’로 정의하며, 물리적 영역과 데이터 영역을 연결하고 조작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이를 기반으로 동시대 기술 환경과 시스템이 생산하고 파생시킨 개체와의 경험을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풀어낸다.


양숙현, 〈Sensory, Crystallized〉, 2018, 3D 프린트된 조각, VR 모델링 © 코리아나미술관

양숙현은 신체성을 기반한 감각, 물리적 공간 변환을 통해 경계 흐리기, 기술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글리치 등 물질과 비물질,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놓인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며, 기술이 하나의 환경이 된 시대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기술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감각하는 인간의 신체에 주목하며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2018년 작업 〈Sensory, Crystallized〉는 기술 공간과 현실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로서 물리적 신체의 감각을 탐구한 프로젝트다.


양숙현, 〈Sensory, Crystallized〉, 2018, 3D 프린트된 조각, VR 모델링 © 양숙현

가상은 현실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공간으로 여겨져 왔지만, 작가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의 생산성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했다.
 
두 공간의 상이한 물리적 환경과 구조가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생산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열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두 공간 모두에 개입할 수 있는 공통의 매체를 찾고자 했으며, 그 매개로 ‘신체’를 선택했다.
 
번역될 수 없는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 사이의 괴리는 VR 디바이스를 활용한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기록되고, 그렇게 기록된 감각은 다시 데이터로 변환된다.
 
VR 공간에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모델링 데이터는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현실 공간으로 옮겨지며, 이는 가상과 현실의 공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 들며 감각을 획득하는 인간의 자유로운 ‘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양숙현, 〈Volumetric Data Collector〉, 2018, 미디어 퍼포먼스, 협업: 최진훈, 현박 (서울 라이다즈) © 양숙현

그리고 같은 해, 양숙현은 최진훈, 현박 작가와 협업하여 사물과 공간을 점 구름(point cloud)으로 읽어내는 라이다 센싱 기술과 인간의 감각의 교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작업 〈Volumetric Data Collector〉를 발표했다.
 
세 작가는 라이다 센서를 인간이 수송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하여 이를 짊어지고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는 서울의 다양한 장소로 이동했다. 인간의 운동성과 결합한 이 비효율적 감각장치는 3일 동안 인간의 도시 탐방에 동행하며 인간의 이동 경로를 데이터로 축적하는 간단한 과업을 수행했다.


양숙현, 〈Volumetric Data Collector〉, 2018, 미디어 퍼포먼스, 협업: 최진훈, 현박 (서울 라이다즈) © 양숙현

마치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감각 장치는 후면에 장착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3차원 공간정보를 즉시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신체 외부에서 발생한 감각이 우리의 환경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 감각이 물리적 공간을 규정하는 방식과 인간의 지각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양숙현, 〈만날 수 있는 데이터〉, 2019,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가변크기 © 양숙현

앞서 살펴본 작업들이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가상과 실제 사이에서의 감각에 대해 다루었다면, 2019년도 작업 〈만날 수 있는 데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에 도래할 빅데이터와 개인 소유의 데이터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2017년부터 진행한 ‘기술을 보는 방법’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업인 〈만날 수 있는 데이터〉는 ‘개인이 소유한 다양한 이미지 중 정작 생산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 데이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작가 개인이 조작 가능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오픈 소스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양숙현, 〈만날 수 있는 데이터〉, 2019,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4분 16초 © 양숙현

작가 스스로를 촬영한 2D 이미지는 포토그래매트리 프로그램을 통해 3D 데이터로 재생산되고 이 데이터는 다시 오토 리깅(Auto-Rigging) 알고리즘의 움직임을 입는다.
 
산업에서 활용되는 보편 어플리케이션이 실제를 기반으로 추출된 메타 데이터를 연산하여 만든 가상의 세계는 스티칭 알고리즘에 의해 오류를 발생시키고, 이러한 글리치가 만들어내는 기이함의 형식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언어이자 차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양숙현은 확장된 기술 환경을 활용하여 개인이 생산하는 의도된 데이터와 이것이 기술을 통과하며 의도되지 않은 형식이 발생할 때 생성되는 모델의 특이점을 시각화한다.


양숙현, 〈OOX에서 온〉, 2020, 2채널 비디오, 3D 그래픽스, 6분 35초. © 양숙현

나아가, 양숙현은 2020년도 작업 〈OOX에서 온〉을 통해 기술에 의해 정의될 수 없는 가속된 시대에 동시대 기술이 만들어내는 비인과적 정보와 에러들이 일으키는 이미지 존재,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시각적 편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에 의해서 정의된 ‘OOX(Object Oriented X)’는 브뤼노 라투르의 ‘OOO(Object Oriented Ontology)’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X(Unknown, Error, not named)들의 세계이다.
 
OOX는 인공위성으로부터 얻은 지구의 지형 이미지, 포토그래메트리 모델, 그리고 웹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3D asset을 배치하여 만들어진 임의의 차원으로 정의된다. OOX 세계에는 운동 함수와 게임, 애니메이션 산업에 자주 활용되는 오토-리깅(auto-rigging)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비인간들이 있다.


양숙현, 〈OOX에서 온〉, 2020, 2채널 비디오, 3D 그래픽스, 6분 35초. © 양숙현

작품 〈OOX에서 온〉는 산업용 목적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구축된 우연한 데이터-존재들이 인과성 혹은 개연성 없이 작동하는 5개의 화면으로 구성된다. OOX의 종들은 파종, 전투, 절하기, 춤추기와 같은 인간의 오래된 행위를 반복한다.
 
관객은 소리 없이 재생되는 2채널의 영상에서 인과성과 개연성을 찾으려 하지만 OOX의 세계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에 의해 비동기적으로 발생된 공간일 뿐이다.
 
OOX 세계의 종들이 갖는 기이한 형상들은 기술의 완전함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나 이 시각적 글리치는 데이터 전환 과정에서 발생되는, 기술 세계에서는 자연스럽고 흥미로운 현상이다.


양숙현, 〈사변의 숲에서〉, 2022, 오디오 리엑티브 비디오 설치, 2채널 사운드, 5분 46초 © 양숙현

양숙현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성찰하며, 세계는 우리가 인식하는 인과적 개연성보다는 물질이 만들어낸 시뮬레이션의 사례 중 하나라고 상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객관적일지도 모르는 디지털 장치로 물리적 세계를 기록하고 포착한 가상의 물질을 통해 일련의 세계를 구성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 작업 〈사변의 숲에서〉(2022)는 작가에 의해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추출된 메타 데이터를 사운드와 공진(Resonance)시킴으로써 차원의 해체를 보여준다.
 
2차원의 픽셀이 아닌 3차원 데이터가 가진 메타 데이터의 다양한 차원을 다룸과 동시에 물리적 공간의 입자와 가상의 모델이 교차하는 5개 차원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과적 개연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양숙현, 〈사변의 숲에서〉, 2022, 오디오 리엑티브 비디오 설치, 2채널 사운드, 5분 46초 © 양숙현

이때 3D 스캐너와 2D 이미지에서 생성된 숲의 공간과 작가 자신의 형상은 일반적 재현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지만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추출된 기이한 이미지이자 정보를 갖는 물질이다.
 
기술 장치와 알고리즘에 의해 구축된 불완전한 데이터-물질은 가상 공간에 배치되고, 사운드 주파수와 랜덤 함수, 노이즈 데이터가 만들어낸 운동성은 시뮬레이션을 일으킨다. 가상에 적용된 수(數)의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이 사변적 물질들이 시각화된 공간에서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인식의 논리를 찾는다.


양숙현,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 2023, 3D 프린팅, 전자 회로, 생성 인공지능 비디오, 2분 30초. 《Future media FEST – Singularity》 전시 전경(C-LAB Taipei, 2024) © C-LAB

나아가 2023년도 작업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을 통해 양숙현은 기술 환경의 가속화와 함께 드러난 비인간 존재에 대해 다루며, 근 미래의 새로운 개체와의 공존을 상상하게 한다.
 
‘기술 생태계 내에서 비인간종(Species)의 다양성은 확보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기존의 의인화된 로봇의 형태에서 벗어나, 인공지능 스스로 상상한 로봇 존재의 다양한 모습을 새로운 외래종으로 정의하여 보여준다.


양숙현,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 2023, 3D 프린팅, 전자 회로, 생성 인공지능 비디오, 2분 30초. 《제로원 해비타트》 전시 전경(에스팩토리, 2023) © 양숙현

작가는 인공지능이 합성된 로봇 생태계의 다양성을 영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상상력이 인간의 신체를 공유할 수 있음으로 확장되는 웨어러블 모듈을 제안한다.
 
리어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은 3개의 시퀀스로 나누어져 인간의 신체성을 전제로 하는 근 미래에 존재 가능할 법한 외래종의 영상과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상상하여 만든 외래종, 그리고 인간의 신체성에 기대어 외피와 내피가 동시에 존재 가능한 로봇을 상상하고 그 프로토타입을 3개의 설치물로 보여준다.
 
기술 생태계가 발생시키는 외래종을 인지하는 감각적 행위를 통해 인간이 기술, 기계, 환경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 사이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양숙현, 〈OOX 2.0 – 지구인간물질 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2024, 실시간 생성 인공지능 영상, 한국천문연구소 API, 인터랙션 하드웨어, 디스플레이, 1채널 비디오, 6분 5초. Unfold 2024 《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 전시 전경(문화역서울284, 2024) © 양숙현

이처럼 인공지능을 주체로 삼는 실험은 2024년도 작업 〈OOX 2.0 – 지구인간물질 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에서도 이어진다. 이는 동양의 세계관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을 물질적 존재로 재해석하는 작품으로, 인공지능을 페르소나로 위치시켜 AI의 시각을 통해 관객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참여형 작업이다.
 
관객이 자신의 생년, 월, 일 숫자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이 숫자에 가려진 하루의 물질적 의미의 관계를 적어낸 시를 창작하고, 스크린은 이를 바탕으로 생성된 물질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양숙현, 〈OOX 2.0 – 지구인간물질 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2024, 실시간 생성 인공지능 영상, 한국천문연구소 API, 인터랙션 하드웨어, 디스플레이, 1채널 비디오, 6분 5초. Unfold 2024 《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 전시 전경(문화역서울284, 2024) © 양숙현

서양 분석적 학문과 기계학적 시각의 영향으로 사려져 온 동양의 세계관과 그 감각의 부재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작가는 동양 철학의 순환적 달력 체계와 인간 존재와 물질성 간의 불가피한 관계를 상상하며, 전작 〈인간 물질론과 합성의 존재도〉(2023)를 통해 ‘인간 물질론’이라는 추측적 가설을 만들고 거대 언어 모델(LLM)이 필연적으로 누락할 수밖에 없는 데이터와 비인간의 상상력을 논한 바 있다.
 
작가는 가려져 있던 동양의 세계관을 〈OOX 2.0 – 지구인간물질 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에서 다시 한번 조명하며, 우주에서 생성되어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로서 인간을 은유적으로 상상한다.
 
인간의 연산 능력을 초과하는 데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해낸 이미지와 합성 감각을 ‘사변적 물질’로 정의하며, 비인간과 인간, 물질과 데이터,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인공지능의 사변적 시선을 통해 인간이 바라볼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한다.


양숙현, 〈OOX 2.0 – 지구인간물질 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2024, 실시간 생성 인공지능 영상, 한국천문연구소 API, 인터랙션 하드웨어, 디스플레이, 1채널 비디오, 6분 5초. Unfold 2024 《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 전시 전경(문화역서울284, 2024) © 양숙현

이처럼 양숙현의 작업은 인간 중심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한다. 특히 빠르게 복잡해지고 거대해지는 기술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누락되거나 기록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재고하고 기술 생태계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작가는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부이자 하나의 물질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비인간 존재와 인공지능 등 인간 외부의 대상을 사변적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물질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우연성과 변형 가능성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동적인 존재로 확장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기술이 만들어내는 다층적인 현실과 물질의 가능성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경험하게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상상하도록 이끈다.

"데이터에 의해 학습된 인공지능이 보편적 인간을 추구하여 달려가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경로 위에 놓인 인간 역시 가속되며 변이되는 과정의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기술의 비물질성에 대한 관념적 사유를 넘어 동시대 환경을 생성하는 ‘물질’로서의 기술 그리고 그 속에 데이터나 기술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양숙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억 전달자: 미디어라는 이름의 기계들》 인터뷰 중)


양숙현 작가 © 양숙현

양숙현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영상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소각되지 않은 것들의 방: 부유하는 물질들》(부천아트벙커B39, 부천, 2025), 《사변적 물질들》(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광주, 2025), 《사변적 물질》(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2024)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퓨처 뮤지올로지》(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26), 《기억 전달자: 미디어라는 이름의 기계들》(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6), 《Other Intelligences》(MEET Digital Culture Center, 밀라노, 2025), Unfold X 2024 《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문화역서울284, 서울, 2024), 《제로원데이: 01 헤비타트》(에스팩토리, 서울, 2023), 2022 창원조각비엔날레 《채널: 입자가 파동이 되는 순간》(창원,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양숙현은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1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크리에이터스 인 랩(2015-16),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프로젝트팀(2017)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서울문화재단, 한국과학창의재단, 현대자동차그룹 제로원에서 등에서 작가 지원을 받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