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om : 한 화면에 풍경과 인물이 공존하는 시기는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꿈속의 인물이나 사건들이 현실의 풍경과 섞여 나타나던 때였다. 그러다가 2015년 말 경부터는 관심이 점점 현실의 버려진 장소와 그 안에서 자라는 풀 풍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2019년 이후 풍경 작업에서 인물 작업으로 넘어가던 시기다. 이때는 풍경 속 인물, 풍경만 있는 작업, 인물 중심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세 가지 흐름이 함께 존재한다. 현재는 보다 추상화된 인물 작업과, 비교적 재현에 가까운 인물 작업을 같이 이어가고 있다.
LEE : 꿈에 기반해 그리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공개하는지 궁금하다. 분절적이라 해도 꿈에 스토리가 있을 수 있다.
Beom : 작품마다 다르다. 공개하는 것이 화면에 더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도 있고, 숨겨두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질문대로 꿈이 긴 이야기처럼 이어질 때도 있고 아주 짧은 장면만 남을 때도 있다. 때로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분위기나 감각만 기억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요소들이 서로 섞여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하나의 그림에 하나의 꿈만 담는 경우, 비슷한 방향의 여러 꿈들을 겹쳐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 경우 모두 가능하다. 어떤 인물이나 물건은 원래의 이야기와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적인 이미지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LEE : 꿈이니까 오히려 한 장에 다 담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꿈의 내용을 그대로, 완결된 이야기로 그려주는 그림은 아니니 한 폭의 회화로 그려내면 상상력을 더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계속 보여주는 작품 중에 종교화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림의 크기가 꽤 크다. 작업 초기부터 큰 작품을 선호했는가?
Beom :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의식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화면이 점점 커졌다. 오히려 작은 그림이 더 어렵게 느껴졌고, 마음에 드는 작업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큰 화면에 그린 뒤, 그중 마음에 드는 부분만 잘라 다시 캔버스를 짠 적도 있다.
초기 작업들은 종교화 같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아마 주변 환경의 영향이 있었을 거다. 집 근처에 수도원, 교회, 절이 모두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새벽 절의 종소리, 늦은 오후 교회의 차임벨, 저녁이면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미사 소리와 성가를 자연스럽게 들으며 자랐다. 특별히 의식한 적은 없지만 그런 분위기들이 작업 안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무교다.
LEE : 풍경이든 인물이든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경우가 많은데 사진은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만 선택하는가? 그리고 온라인에서 수집한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 혹은 주변의 누군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주변 사람일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다. 작업 설명을 할 때 그림 속 상황에 작가도 함께했던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그때, 그곳의 현장성이 강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작가의 감정이나 생각이 어느 정도 담긴다고 생각하는가?
Beom : 내가 직접 찍은 사진도 있고 인물사진 같은 경우 주변인들이 찍어서 보내준 것도 있다. 온라인에서 수집한 이미지의 경우 참고할 수는 있어도, 작업의 출발점이 되기는 어렵다. 내가 실제로 지나갔던 장소, 함께 있었던 사람들, 혹은 아주 가까운 거리 안에 있는 장면들이어야 화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다.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인데,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더 오래 남는다. 그렇다고 그 순간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 작업을 진행할수록 기억이나 감정이 개입되어 일부는 흐려지고. 일부는 강해진다. 그래서 작업에는 실제와 기억, 관찰과 상상이 섞여있다.
LEE : 회화나 조각 작업을 하는 작가 중에 자신의 작엄이 추상을 향한다고 말하는 분이 적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범진용 작가는 일정 부분에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을 넘어가는 중에 활동한 화가들이 소재-대상을 대하는 태도와 닮은 것 같다.
Beom : 그 시기의 화가들도 단순히 눈앞의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 순간의 공기나 빛, 기억, 감각 같은 것을 화면 안에 담으려 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인물이나 풍경 자체보다 내게 남아있는 그 장면을 바라볼 때의 분위기, 살아 있었다는 감각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때로는 화면이 흐려지고, 어떤 부분은 남고, 어떤 부분은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추상을 향한다기보다 현실의 장면과 흐릿한 기억 사이를 계속 오가는 느낌에 더 가깝다. 앞으로 더 추상으로 갈지 아니면 구상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갈지 모르지만 지금 나의 그림은 내 안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느끼고, 좋다고 생각하는 질서나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