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큐레이터》 전시전경 © OCI미술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김은형은 이번 OCI 미술관 전시에서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그스키가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그의 친구인 화가 하르트만이 그린 10개의 드로잉으로부터 음악을 만들어냈다. 작가 김은형은 이 음악을 다시 시각 이미지로 그려낸다.

하르트만이 그린 10개의 그림은 각각 다른 스토리를 가지며 서로의 연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소그르스키는 이 다른 이야기의 그림들을 전시장을 거니며 관찰하는 방법적 시점에서 음악으로 이어 붙여 하나의 완성된 곡으로 만들어냈다. ‘프롬나드(promenade)’라고 하는 개념을 음악에 도입하여 그것을 전주나 간주의 형식으로 사용하면서 각 열 개의 다른 스토리의 음악을 통일성 있게 연결하는 고리로 사용한다.

리얼리즘 음악의 대표적인 곡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과 같이 무소르그스키는 전람회에 출품된 여러 그림들, 난쟁이, 고성, 병아리, 마녀, 지하의 묘 등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 이미지들을 관객들이 음악을 통해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가는 그가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 속에서 보고 감응한 느낌 그대로를 음악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각기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프롬나드 부분은 스토리 표현을 위한 리얼리즘 기반의 멜로디가 아닌 매우 주관적이고 스토리와는 상관없는 음악이다. 그렇다고 다른 에피소드들을 연결 하기위한 형식적인 기능만으로 작곡된 것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각기 다른 스토리의 그림들을 묘사한 곡들이 의식의 영역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프롬나드 부분은 무소르그스키 자신이 지닌 무의식의 영역에서 잠겨있는 하르트만과 관계에서 생성된 이미지들을 표현한 것이다.

즉 프롬나드는 갤러리를 거닐며 각기 다른 그림들을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친구인 하르트만과의 관계에서 나온 독자적인 창작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로써 무소르그스키는 단지 그림 이미지들을 음악화 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 하르트만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유작전 작업들 몇몇 단면들을 가지고 말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에게는 하르트만에 대한 의미를 인식하며 친구를 잃은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치유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말이다.

김은형은 이번 작업에서 무소르그스키가 표현한 10개의 음악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회화작업으로 묘사한다. 대상을 시각을 활용하여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청각으로 받아들여 감응하고 이를 다시 시각으로 전환시킨다. 감각과 감각의 전환 과정은 뇌의 인식의 단계에 간극을 만들고 그 사이에 무의식 세계에 있는 주체적인 원초자아가 개입되어 간섭을 일으킨다.

작가는 단일 감각의 반응을 통한 뇌의 인식이 아닌 공감각들을 통한 몸과 마음의 감응을 시도 하려 한다. 의식적이고 논리적인 묘사가 아닌 내면의 무의식적이고 원초적인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무소르그스키가 작곡한 음악을 즉흥적이고 순발력 있는 브러쉬스트로크 기법을 사용하여 표현한다. 작가는 음악의 멜로디처럼 계획적이거나 도식적이지 않은 매우 자유로운 선들을 활용하여 흑백의 이미지들을 창출한다.

그림을 그린 작가 하르트만, 그림을 음악화한 작곡가 무소르그스키, 다시 그 음악을 그림으로 재창작해낸 김은형 이 세 사람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고 다른 표현 매체를 사용한 창작자들이다. 하르트만과의 무소르그스키와 관계성에는 음악이 있다. 김은형과 무소르그스키 사이에는 그림이 있다. 김은형은 개인과 타자, 자신과 사회 간의 관계 사이에 존재론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예술을 활용한다. 단지 관계의 미학이나 음악과 회화의 변환과 융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적 시도를 넘어서 말이다.


김은형, 〈전람회의 그림〉, 2012, 종이 구조물 위에 연필, 먹, 아크릴릭 코팅, 125 x 50 x 5 cm © 김은형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기억들

김은형은 자신의 과거 작업인 ‘Designing egos’에서 사적인 기억의 이미지들을 의도적 기술이 아닌 즉흥적 발상에 의존하여 그려냈다. 그는 무의식적 상황에서 자아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이미지들을 의식의 수면위로 부상시킨다. 이는 무의식 세계의 본질을 엿보고자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많이 사용했던 자동기술 automatism 즉 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적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솟아오르는 이미지의 분류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그러나 무의식 세계의 이미지를 끌어내려했던 초현실주의자와 다르게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본능의 영역인 원초자아(무의식의 세계)와 자아 사이에 머물러있는 자신의 기억들을 끌어낸다. 그가 그려낸 흑백의 이미지들은 무념무상의 수행이 아닌 유념유상의 수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와 세상의 순리와 본질을 이해하려했던 자수화풍의 수행과도 매우 흡사해 보인다.

즉 무념과 유념, 무의식과 의식 경계에서 그려지는 선형적 시간의 흐름 아래서 구성된 내러티브와 비선형적 시간 아래서 파편적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의 경계에서 모호한 상황의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추상적 이미지와 구상적 이미지가 교차하는 정리되지 않은 혼돈적인 이미지들에 원초자아와 자아의 중간계에 자신의 창작 세계를 삽입시키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억의 혼돈에서 정리하고 찾고자 하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긴 획을 그어내는 브러시스트로크는 이러한 경계성의 모호함을 더욱 강화시킨다.


무의식의 기억들을 인식하기 위한 구조적 조형화

무의식과 의식의 중간 영역에서 뽑아진 이미지들은 이차원적 나열에서 다차원적 공간의 형상으로 재구조화된다. 작가는 창작의 순발력에 기인한 무의식적인 평면 드로잉과는 달리 이 조형작업에서는 정교하고 계획적인 공간구성을 시도한다. 조형물들은 예측 가능한 삼차원 구조의 도형으로 구성되지 않고 유기성을 기반으로 비구조적인 형상으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수많은 굴곡이 생기고 다차원적 주름이 생겨난다.

마치 많은 웜홀들을 통해 시간의 제약 없이 기억의 파편들을 연결시키며 시공을 넘나드는 것처럼 김은형의 조각 작업은 삼차원 공간의 x와 y축을 벗어나 공간과 시간을 왜곡하는 중력장과 결합한 듯하다. 다차원적 주름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작가의 기억들은 뒤섞이며 시간과 공간은 뒤얽혀버린다. 이 얽힘은 매우 계획적으로 장면과 장면을 연결시키며 자신의 모호한 사적 기억들을 보다 의식적으로 객관화시킨다. 작가는 뇌에서 이 작업의 형상을 가져왔다고 했다.

인간의 뇌는 무한한 복잡성의 영역이며 하나의 작은 소우주와도 같다. 삼차원적 영역이 아닌 다차원적 시공의 영역인 뇌를 모티브로 자신의 뇌에서 나온 기억들을 다시 물리적으로 구형화 시킨다. 스스로 가진 무한의 복잡성을 이성적 의식 영역에서 구체화시키는 작가는 평면 작업에서 무의식적 드로잉을 나열한 이후 조형 작업에서 논리적인 재구성을 시도하여 기억의 번뇌를 안정화시키고 타인과의 공유를 시도한다.


김은형, 〈프롬나드(Promenade)〉, 2012, 종이 구조물 위에 연필, 먹, 아크릴릭 코팅, 33 x 66 x 33 cm © 김은형 

자신과 타자의 동일화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는 모든 인물들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지며 마치 동일 인물인 것 같은 느낌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각기 다른 스토리와 다른 시공에 존재하지만 작업에서는 같은 시간대와 같은 사회의 영역에서 온 동일인물과 같이 표현된다. 작가는 작품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동일화 과정을 통해 타자와 자신의 구분을 없애 버린다. 개인과 타자의 관계는 자신과 자신을 반사시켜 나타내는 거울과 같은 의미이며 개인의 정체성은 타자에 의해 평가되고 규정지어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동일기제를 통한 인간의 집단화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규정지을 때보다 타인에 의해 그 가치를 부여 받을 때 더욱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는 자신과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연결시켜가며 고립된 상실감을 해체하고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에 의해 찾으려한다.

작가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혼돈적 기억들을 끌어내어 평면 위에 나열하고 펼쳐진 자신의 기억들을 타자와의 관계성 안에서 재조립한다. 자아 영역에서 구체화 된 자신의 기억들은 보다 객관화된 이미지로 정리되어 대중들에게 전해진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과정은 정신과 의사 J.L.모레노가 창시한 심리요법 사이코드라마(심리극)이 취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일정한 대본이 없고 등장인물인 환자가 생각나는 대로 연기를 하게 하여 그의 억압된 감정과 갈등을 표출한다.

타인이 자기를 보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며 스스로를 통찰하기 위한 수단인 심리극은 사회 적응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극의 주제가 공적인 문제를 주제로 할 때 소시오드라마(sociodrama)라고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타인과의 관계성을 전제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사회적 집단 아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와 맥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성적 억압 없이 자신의 내면에 가라앉혀 있는 기억들을 표출하고 그 이미지들을 타인의 시각과 연결시켜 객관화하는 드로잉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한다. 이러한 수행적 되새김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사회 안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자신만의 주체적인 미래를 그려 나아가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