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b. 1981)는 시스템이 특정한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그 결론을 만들어내는 조건에 주목한다. 오작동으로 보이는 결과 역시 주어진 조건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바라보며, 기술의 편향성, 왜곡, 검열 등 사회 시스템의 작동과 오작동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탐구한다.


이정우, 〈아수라발발타〉, 2021, 단채널 영상, 사운드, 컬러, 10분 8초, 드론사진계측 데이터를 통한 3D 공간 스캔 및 렌더링, 4K © 이정우

이정우는 드론과 생성형 인공지능까지 다양한 기술 매체를 매개로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비판적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가로지르는 그의 작업은 그 과정에서 생성된 이미지와 서사가 동시대의 모호한 조건 속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유도되고 자리잡는지를 가시화한다.
 
초기 작업에서 이정우는 대중문화와 미디어, 특히 영화가 허구적 이미지와 인식을 형성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그에게 허구적 인식이란 국가, 역사, 문화, 정치적 맥락 안에서 최근의 SNS나 언론 미디어 등을 통해 변형, 왜곡, 과장되어 현실을 장악하는 풍경이 되어버린 실체 없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공포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2018) © 아트선재센터

이정우는 이러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구조와 그 안에 내재한 허구성을 드러내기 위해 영화의 구성 요소를 해체하고 재조합해 왔다. 익숙하게 굳어진 이미지와 인식의 틈에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령, 첫 개인전 《공포탄》(아트선재센터, 2017)에서는 한국 공포영화의 관습적 문법을 해체하고, 공포영화의 서사가 제거된 이미지들을 조합한 영상을 선보이며 이러한 작업 방식을 구체화했다.
 
영상의 장소들은 공포영화 제작을 위한 로케이션 헌팅 아카이브로, 영화에서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서사가 배제되어 있음에도 공포영화에서 감지되는 익숙한 공포의 환영을 느끼게 한다. 이는 물리적 폭력을 주지 않지만 공포(恐怖)를 유발하는 ‘공포탄(空砲彈)’이라는 동음의 제목과 연결된다.


《공포탄》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7-2018) © 아트선재센터

전시를 구성하고 있던 작품들은 ‘실재와 허구’라는 축을 가로지르며 미디어 장치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원리와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분절과 조합, 파편과 전체의 재구조화로 이루어진 일련의 작업은 의문 뒤에 뒤따르는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이정우는 현실을 장식하는 이미지의 작동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 문화, 정치적 배경에 접근하기 위해 허구와 실재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며, 허구로부터 실재를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올욲억-거꾸로거꾸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9) © 송은

한편, 2019년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린 개인전 《올욲억-거꾸로거꾸로》에서 작가는 과거의 사건과 역사적 이미지가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기록되고 재구성되는지에 주목했다. 역사적 잔재와 파편화된 서사를 영상, 드론, 뉴스, 영화 등의 미디어를 통해 해체하고 재배열하며, 익숙한 이미지와 서사가 지닌 의미를 교란한다.
 
특히 영화의 장면과 역사적 기록을 순행과 역행, 반복과 뒤섞임의 방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원래의 시간적·서사적 맥락을 흐리고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이정우, 〈대난굴시대 - Chapter 2. 두 배우(Two Actors)〉, 2019, 단채널 영상, 사운드, 컬러, 4K HD 변환, 16분 3초. © 송은

예를 들어, 3부로 구성된 ‘대난굴시대’(2019)의 〈Chapter 1. 왕과 무덤 그리고 사라진 보물(King and His Tomb)〉에서는 한 시대에 모든 권력의 집결지였으나 현재는 역사적 존재가 자국처럼 남은 장소를 다룬다. 영상의 중간중간에는 특정 정치인과 관련된 뉴스와 거꾸로 재생된 정치인의 육성이 담겨있다.
 
〈Chapter 2. 두 배우(Two Actors)〉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연기했던 배우들이 본인이 그 인물을 재연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Chapter 3. 올욲억-거꾸로거꾸로〉는 영화의 장면들을 해체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조합, 재배열한 작업이다.


이정우, 〈대난굴시대 - Chapter 3. 올욲억-거꾸로거꾸로〉, 2019, 3채널 영상 설치(싱크로나이즈), 사운드, 컬러, HD, 4분 44초(루프). © 송은

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떤 장면이 서사의 타임라인을 순행하는 것인지, 혹은 역행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시각적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와 사운드, 자막과 같은 요소들은 뒤집어진 채로 뒤섞인다.
 
역행하거나 순행하는 장면들을 깁는 과정에서 본래의 영화가 지니는 서사는 파기되거나, 예상치 못했던 새 서사로 읽히기도 한다. 이는 마치 재편된 지난 타임라인의 사건들을 인식하는 구조와도 닮았다.


《올욲억-거꾸로거꾸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9) © 송은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과거의 것과 실존했던 것, 과거의 재현과 기록 등에 대한 지각을 교란한다.
 
이로써 우리가 실재했다고 믿는 과거의 사건과 그것을 전달하는 이미지 및 기록이 결코 객관적인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드러내며, 미디어를 통해 인식되는 이미지가 사회적 기억과 역사적 서사를 형성하는 방식을 질문한다.


《승선하지 않았다》 전시 전경(TINC, 2021). 사진: 조준용. © 이정우

그리고 2021년 TINC에서 열린 개인전 《승선하지 않았다》에서 이정우는 아직 제작되지 않은 영화제작을 위해 일종의 청사진/제작도면을 제시하는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의 과정을 빌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인 ‘미래’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영상의 주 무대가 되는 공간을 가상의 한 시점의 비공식거주지로 설정하고, 이를 디자인 하기 위한 과정을 다양한 방식(스트림 리핑, 파운드 푸티지, 레퍼런스 이미지, FPV 드론 촬영, 3D 공간 스캔과 렌더링 등)으로 제시했다.
 
전시와 동명의 3채널 영상 〈승선하지 않았다〉(2021)는 달과 우주선, 마천루처럼 새로운 미래를 향해 고도를 높이는 이미지와 재개발 예정지, 사고 현장, 고전 회화 속 난파선의 이미지를 교차시킨다. 작품은 낙후된 풍경과 고층 빌딩이 중첩된 비공식 거주지를 배경으로, 마치 낡지 않는 구전동화처럼 반복되는 재난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정우, 〈승선하지 않았다〉, 2021, 3채널 영상(싱크로나이즈), 사운드, 31분 10초, 4K/FHD 변환. 사진: 조준용. © 이정우

전시장에 들어서면 세 개의 스크린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어 관람자는 한 번에 둘 이상의 화면을 바라볼 수 없었다. 하나의 영상을 보는 동안 반대편에서 어떤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지는 직접 확인할 수 없으며, 오직 소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처럼 관람자의 시각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한편, 화면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소리는 열어둠으로써 시각과 청각 사이에 또 다른 층위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이정우, 〈승선하지 않았다〉, 2021, 3채널 영상(싱크로나이즈), 사운드, 31분 10초, 4K/FHD 변환. © 이정우

또한 이 과정에서 키워드에 따라 분류된 이미지들은 하나의 시각적 레퍼런스로 기능하며, 원래의 맥락에서 분리된 채 서로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한다. 특히 작품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드론의 시선은 이러한 이미지의 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드론은 강남의 상징적인 마천루를 바라볼 때와 화재 현장을 바라볼 때 동일한 방식으로 대상을 훑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야 너머의 것을 포착하지 못한다. 웹페이지를 스크롤하듯 화면 위를 미끄러지며 오르내리고, 대상을 부감으로 납작하게 압축한다.
 
작가는 이러한 시선을 통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의 사전적 이미지를 구성하며, 가능성으로서의 미래와 불확실성으로서의 미래를 교차시킨다. 그 안에서 관객은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거대한 블랙홀 속에 무엇이 가라앉아 있는지를 발견하고, 동시에 그곳에서 무엇을 다시 건져 올려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올해의 작가상 2026》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6). 사진: 홍철기. ©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최근의 작업에서 이정우는 오늘날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오류를 일으키거나 예상과 다르게 작동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오류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낸 데이터와 규칙, 보이지 않는 편향을 역으로 추적한다.
 
이정우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6》에서 일시적 오류처럼 보이는 장면을 통해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내부에 축적된 조건을 드러내고, 오늘날의 면면을 그려내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오르고 또 오르면〉(2020/2026)에서 드론은 비행 가능 범위, 고도 제한 등의 조건에 부딪히며 끝내 추락과 표류라는 필연적 결과에 도달한다. 이로써 물리적 세계에서 확인된 중력의 작용은 데이터의 세계로 옮겨 가며 또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이정우, 〈씌여진 영화, 씌여질 역사〉, 2025-2026, 2채널 비디오 설치, AI 생성 시청각 이미지, 파운드푸티지: 자유만세 (1946,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가변 크기 © 언폴드엑스 2025

그리고 해방 직후 제작된 한국의 최초 독립 서사 영화 〈자유만세〉(1964)에서 검열로 인해 삭제된 장면을 생성형 AI로 재구성한 〈씌여진 영화, 씌여질 역사〉(2025-2026)는 이러한 전환을 더욱 선명하게 짚는다.
 
삭제 장면을 복원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 생성되는 것은 사라진 과거의 정확한 복원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의 밀도와 방향에 따라 구성된 ‘그럴듯한’ 시공간이다.
 
이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AI 복원이 남겨진 단서를 통해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문맥적 추론과 유사한 동시에, 복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서사의 왜곡과 편향, 새로운 형태의 기술적 검열이라는 문제를 드러낸다.
 
작가는 두 개의 스크린을 통해 인간의 이념적 검열과 알고리즘의 편향된 생성을 병치하고, 기술이 역사적 기억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가시화한다. 이를 통해 기술이 과거를 복원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정우, 〈뜬구름〉, 2026,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4K, 31분 25초, 월드 모델(지니 3, 옴니 플래시 – 구글, 해피 오이스터-알리바바)과 레이밴 메타 스마트글래스로 제작 © 국립현대미술관

나아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인공지능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학습하고 예측하도록 하는 월드 모델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유튜브와 게임 등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통계적 시뮬레이션은 실제 세계의 물리적 질서와 유사한 모습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안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발생시킨다.
 
신작 〈뜬구름〉(2026)은 생성된 세계가 일정한 패턴으로 수렴하는 모습을 통해 그러한 공간 역시 데이터 편향이 응축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결국 그 경로에서 포착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야기하는 구조적 환경이며,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구성하는 방식의 기울기다.


이정우, 〈왼손의 사수〉, 2026, 6채널 영상, AI 생성 시청각 이미지, 스마트폰, 링라이트, 루프. © 국립현대미술관

이와 같은 이정우의 작업은 내재된 데이터와 플랫폼 정책 등에 의해 특정한 지점으로 이끌려간 좌표로서, 오늘날 사회의 면면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와 같은 특정한 통계적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어가는 시스템 내부의 힘을 ‘중력,’ 즉 ‘시스템 그래비티’라 칭한다.
 
데이터 기반의 학습과 자동 실행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지금, 그의 작업은 우리의 시선과 기준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이러한 ‘중력’이 앞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지 질문한다.

"순간적인 오작동의 결과를 다루는 데 그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단순 오류로 보이는 현상은 사실 각 시스템에 고유하게 내재한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죠. 전시에서 저는 유사한 오작동이 어떠한 방향성을 지니고 축적되는지, 나아가 시스템이 어떤 유형의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선택 및 누락하는지 추적하고자 했습니다." (이정우, 《올해의 작가상 2026》 인터뷰 중)


이정우 작가 © 국립현대미술관

이정우는 상명대학교 무대미술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예술대학(HBK) 비디오아트 디풀롬 및 마이스터 슐러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Loops of Algorithmic Karma》(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베를린, 2024), 《덤 더미 덤덤》(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서울, 2023), 《승선하지 않았다》(TINC,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올해의 작가상 2026》(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6), 제14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프로그램 《포란》(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26), Unfold X 2025 《Let Things Go – 관계들의 관계》(문화역서울284, 서울, 2025), 《부유-지대》(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정우는 베를린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2024), 인천아트플랫폼(2022),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1)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2026년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뉴 애니메이션 아트’ 부문 영예상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