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관, 〈와이상〉, 2015, 싱글채널 프로젝션 설치, 14분 © 백종관

〈와이상〉에는 두 통의 편지가 등장한다. 하나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 백종관 감독이 친구 와이상에게 받은 엽서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그람시의 글에 영감을 받아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이 자막으로 인용되듯, 〈와이상〉은 와이상의 엽서가 감독에게 불러일으킨 상념들로부터 시작된다.

엽서에 그려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스틸 컷과 엽서에 적힌 구절들이 일으킨 연상 작용에 의해 상이한 이미지들이 작품 안으로 호출된다. 엽서 속 ‘칸트’라는 단어는 〈칸트 씨의 발표회〉의 이미지로 연결되고, ‘니체’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세기말적인 이미지로, ‘그람시’는 그람시가 편지를 쓰는 장면과 이로부터 촉발되는 일련의 이미지들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와이상〉은 연상 작용이 만들어낸 뒤엉킨 이미지의 암호게임인가. 물론 작품에 삽입된 개별 이미지의 출처를 알아맞히는 데서 오는 재미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작품으로부터 감흥을 느끼는 데는 거의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개별 이미지가 (호출된 경로가) 아니라 (호출된) 이미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교섭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질적인 이미지들은 배열 방식에 따라 서로에게 침투하며 그 경계를 허물어나가는데, 이를 통해 두드러지는 것은 배열의 감각과 리듬 자체다.

가령 ‘그람시’에서 시작된 이미지의 연쇄는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과 함께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로 넘어가고, 그것이 스크린에 투사된 장면과 〈펑꾸이에서 온 소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인물이 극장에 앉아있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앞서 말했듯 이때 흥미로운 것은 (그람시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영화 속 인물들이 마치 한 영화관에 있는 것처럼) 이미지와 사운드가 해체되고 결합되는 방식이다.

이처럼 약 14분간 애니메이션과 극영화, 와이상이 등장하는 장면 등이 상호작용하며 시시각각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나가는데, 그 이미지와 사운드의 횡단과 번짐이 만들어내는 감각이 매혹적이다. 더불어 작품 속에 그람시나 와이상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배치와 맥락에 따라 시청각 기호가 본래 지시하던 바와 다른 낯선 것이 될 수 있음에 대한 은유다. 특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와이상의 내레이션에 조응하며 앞서 나왔던 이미지들이 리드미컬하게 재배열되는 작품의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6)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