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관, 〈추방자들〉, 2018, 싱글채널 프로젝션 설치, 27분 © 백종관

16mm 필름 〈Hammering Film〉(2008) 이래 백종관은 약 14년간 실험영화와 미술, 퍼포먼스, 무용, 건축을 넘나들며 다양한 영상 작업을 제작해 왔다. 구조영화를 연상시키는 〈Hammering Film〉, 관찰자적 다큐멘터리인 〈호소런〉(2008), 자전적 에세이 영화에 가까운 〈이빨, 다리, 깃발, 폭탄〉(2012)과 〈와이상〉(2015), 몸의 움직임과 공간의 문제를 실험한 복합장르 영상 〈극장전개〉(2014), 〈#cloud〉(2018) 등이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사례다.

그런 까닭에 백종관 작업 전체를 일관된 키워드나 방향성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 짧은 글에 어떤 작업을 어떻게 떠내야 할까를 생각하다 한 대화가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가장 본인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작업이 무어냐고 묻는 질문에 작가는 〈추방자들〉(2018), 〈순환하는 밤〉(2016), 〈와이상〉(2015)을 꼽았다. 예상과 일치했기에 당시는 재미로 넘겼지만, 위의 작업들이 왜 백종관에게 의미가 있는지는 의외로 논해진 바가 별로 없다. 그런 고로 이들이 백종관의 작업 지형도에서 왜 중요한지에 대해 나름의 짧은 해석을 남긴다.  

〈와이상〉은 초창기 백종관 작업의 대표적인 기법들이 모두 동원된 자전적 에세이 영화다. 파운드 푸티지, 몽타주, 언어유희, 텍스트 삽입, 원천이 다른 이미지 혼용 등 〈와이상〉 이전과 이후에도 즐겨 쓰이는 기법들은 여기서 망라되어 모종의 종합을 이룬다. 〈와이상〉은 주제적으로 90년대 말의 문화적 경험에 대한 시대적 다큐멘터리고 형식적으로는 2010년대 영상 작업에서 주목받던 파운드푸티지 기법을 활용해 좋은 반응과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측면보다 중요한 것은 〈와이상〉이 이미지를 보고 만지는 자로서 백종관 자신의 근원적인 자기성찰과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 숙고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인 친구의 이름에서 유래한 제목은 여러 가지로 함축적이다. 국문 제목인 ‘와이상’은 영상이라는 이름의 영문 약자(Y-Sang)기도 하고, 영상씨라는 뜻의 일본어(Y-さん)를 암시하기도 한다. 영문 제목인 ‘i-image’ 역시 중의적이다.

일차적으로 ‘나는 영상이다’로 옮길 수 있는 어구는 ‘나’가 누구를 지칭하느냐에 따라 이중적으로 작용한다. 표면적으로는 김영상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영상의학과에서 일하는 친구가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그 밑에는 작가인 백종관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미지’로 천명하는 자기반영적 고백이 깔려 있다. 여기서 ‘나는 영상이다’는 영상 이미지가 작가의 문화적 감수성을 형성했고 영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영상을 다루는 것이 본인의 소임임을 가리킨다.1)

기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이미지의 기원을 성찰하는 〈와이상〉의 태도는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의 자기 반영성과 맞닿는다. 백종관은 마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기억과 죽음, 역사, 자기성찰성, 매체에 대한 관심 등 마커를 특징짓는 여러 요소들은 백종관의 작업 곳곳에 직간접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와이상〉에서도 X-레이 이미지를 통해 영상의 시초이자 죽음인 사진에 대해 성찰하고 있지만, 사진과 기억, 역사의 문제를 본격화한 문제작은 〈순환하는 밤〉이다.

작가는 196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거리 시위 사진 중 우연히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얼굴에 묘한 감응을 느껴 이를 선별해 이어붙였다. 〈순환하는 밤〉은 여러 측면에서 마커에 대한 오마주다. 우선 이 작업은 기법적으로 마커의 〈되돌아 응시하기(Staring back)〉(2007)를 순방향과 역방향 모두의 측면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되돌아 응시하기〉가 마커의 기존 비디오 푸티지에서 추출한 스틸 사진을 디지털적으로 변형시켜 정지 이미지로 제시했다면, 〈순환하는 밤〉은 일부는 마커의 방식을 계승하고 일부는 틀어서 층위를 복합화했다.

실사 촬영분의 경우 비디오 푸티지를 스틸 이미지로 추출 및 가공한 마커의 방식을 따랐지만, 기존의 정지 사진에 디지털 변형을 가한 것도 있다. 이 둘 모두 결과적으로 정지 이미지가 연결되어 연속된 영상으로 귀결되므로, 연속 이미지를 정지 이미지로 고착시킨 마커의 방법론을 역으로 뒤집은 것이다. 사진과 사진 사이의 불연속적 간극과 디지털로 변형한 흐릿한 이미지는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킨다.

프레임 사이의 틈은 실제처럼 보일지언정 영상은 결국 정지 이미지를 봉합한 인위적 허구임을 가리키고, 광학 사진의 지표성을 약화시킨 디지털 조작은 대상의 실체성을 뒤흔든다. 결국 이 모든 속성은 유령의 논리로 수렴된다. 현존하지만 동시에 현존하지 않고, 보고 있지만 동시에 보는 것이 아닌 불가능성이 작가를 매료시킨 것이다.

실재했음에도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것, 내가 그들을 보고 있지만 보는 주체가 나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이미지와 역사의 양면성은 백종관이 계승한 마커의 주요 테제다. 이때 진실과 허구의 불가분성을 작동시키는 단초는 응시다. 〈와이상〉이 이미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대를 교차시키며 순환적 시간을 창출했다면, 〈순환하는 밤〉은 이름 모를 인물의 응시를 감독/카메라/관객이 되돌리며 서로의 시간을 교환한다. 

이 바라보기의 변증법은 〈추방자들〉에서 다시 한번 변주된다. 해 질 무렵 후쿠오카의 한 공원 풍경을 27분 동안 롱테이크로 촬영한 작업은 사진에 기반한 〈와이상〉이나 〈순환하는 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기원을 상기시킨다. 고정 카메라로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원 씬 원 컷으로 찍은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Employees Leaving the Lumière Factory)〉(1895)처럼 〈추방자들〉에는 연출도, 카메라 움직임도, 편집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카메라의 열린 셔터와 우연히 존재하는 피사체, 빛뿐이다. 여기서 응시는 일견 일방적으로 보인다. 바라보는 주체는 관객의 시선과 일치하는 카메라다. 하지만 피사체가 카메라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순간 권력 관계는 뒤집힌다. 여기서 진실이 떠오른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나는 보이는 존재다. 이미지(카페 외부)와 일치하지 않는 사운드(카페 내부)는 카메라가 결코 세계에 대한 투명한 창문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는 본다는 행위 자체도 마찬가지다. 편집이 없기에 인물이 여전히 그 자리에 현존하고 있음을 우리는 추론으로 알 고 있지만, 어둠이 내려 빛이 사라지면서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실재와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 지각의 불완전함은 〈추방자들〉의 부제가 왜 ‘지각의 역사’인지 깨닫게 한다. 스크린의 안과 밖, 바라보는 자와 보이는 자,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뒤섞이는 혼성의 장은 재현의 진실성이 애당초 불가능하며 지각과 역사, 기억 모두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임을 가리킨다. 

각기 다른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와이상〉, 〈순환하는 밤〉, 〈추방자들〉은 모두 영상의 기원과 보기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세상 속의 얼굴들에 카메라를 가까이할수록, 우리는 그들의 얼굴, 그 실체로서의 삶과 죽음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이다. 만약 우리가 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이미지로서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일 뿐이다.”2)

최근의 개인전 《파리대왕독본》(2019)에서 실험한 스크린의 물질성, 화면 중첩, 재현 평면의 문제 역시 이미지의 필연적 허구성에 대한 또 다른 모색이다. 그런 점에서 백종관의 탐색이 영화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매이지 않는 점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은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와 재현, 보기의 긴 여정이다. 파리는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백종관의 모든 작업은 이 질문으로 수렴되며 여기서부터 발산할 것이다. 이후 백종관이 이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 우리는 즐겁게 기다릴 뿐이다.


1) 이는 레이몽 벨루르(Raymond Bellour)의 책 『L’Entre-images』(1990) 중 한 구절(“I Am an Image”)이기도 하다.
2) 크리스 마커의 〈내게 만일 네 마리의 낙타가 있다면(Si j’avais quatre dromadaires)〉(1967)의 내레이션. 백종관, 「기억과 역사에 대한 성찰로서의 이미지: 크리스 마커의 디지털 사진 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6, 21쪽.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