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관(b. 1982)은 일상의 사건을 비일상적인 시선으로 접근하여 이미지와 사운드를 채집하고, 그 아카이빙의 변주가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전유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 왔다. 주로 수집한 푸티지들을 활용하여 시청각 매체/장치 자체에 대한 역사와 운명을 사유해 보는 작업, 미학적 혹은 정치적인 경계에 관해 묻는 작업을 전개한다.


백종관, 〈와이상〉, 2015, 싱글채널 프로젝션 설치, 14분 © 백종관

백종관은 16mm 필름과 캠코더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상의 다양한 국면에서 마주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반복적으로 수집하고 그 기록/기억을 재맥락화하는 과정을 통해, 삶을 지배하는 구조들을 돌아보고, 동시에 시각 매체 자체에 대해 사유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예를 들어,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수퍼리미널》(탈영역우정국, 2016)은 ‘슈퍼리미널(Superliminal)’이란 개념을 통해 흘러가 버린 ‘순간’들을 붙잡아 변형함으로써 현재 이미지들이 어떻게 축적되고, 저장되고, 분석되는 정보로 다뤄지는가를 반추한다.
 
수퍼리미널이란 개념은 망각에의 저항을 위해, 이미지의 물결을 되돌려 놓쳐버렸던 프레임(들)을 건져 올리기 위해 제안되었다. 자신이 과거에 완성한 영화들 속에서 다시 개별 프레임을 캡쳐해 ‘사진’으로 만들었던 크리스 마커(Chris Marker)는 그렇게 만든 사진을 ‘수퍼리미널’ 이미지라 명명한다.  


백종관, 〈밤의 예감〉, 2016, 2채널 프로젝션 설치, 17분 © 백종관

《수퍼리미널》의 작품 속 인물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와 관객을 응시한다. 동시에 그들을 ‘지금 다시’ 출몰하게 한 ‘장치’ 역시 어슴푸레하게 정체를 드러낸다.
 
가령 〈밤의 예감〉(2016)은 클로즈업을 통해 이미지 주체들의 눈빛을 마주하고 필름의 그레인과 비디오의 주사선을 주목하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게 한다. 이는 채널과 채널, 프레임과 프레임, 시간과 시간 사이의 보이지 않고, 기록되고, 망각되고, 명멸하고, 사라져간 순간과 존재들을 기억하고 불러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파운드 푸티지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처럼 영상은 끊임없이 뒤틀어진 시간과 빛을 사유한 단테, 제발트, 데리다, 스티클레르, 마커를 유령처럼 소환한다.


백종관, 〈추방자들〉, 2018, 싱글채널 프로젝션 설치, 27분 © 백종관

한편, 2018년에 발표한 영상 〈추방자들〉은 2017년 일본 후쿠오카에 머물던 당시 우연히 발견한 흥미로운 ‘시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우연히 들어선 한 북카페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작은 공원의 풍경이 순식간에 어둠에 덮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창 밖이 밝았을 때와 어두워졌을 때,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다르게 지각되었다고 말한다. ‘순식간’이라는 감각은 이러한 순간을 더욱 생경하고 흥미롭게 만들었다.


백종관, 〈추방자들〉, 2018, 싱글채널 프로젝션 설치, 27분 © 백종관

이후 작가는 10일간 다섯 번에 걸쳐 해가 지는 시간에 그 북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여러가지 앵글을 테스트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하나의 정지된 프레임 안에서, 단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다층적인 내러티브가 촉발되는 상황을 담았다.
 
그렇게 완성된 영상 〈추방자들〉은 27분 길이의 원-씬, 원-테이크로 구성되었다. 해가 지고, 창밖이 어두워짐에 따라 ‘추방’되는 것들, 그리고 새롭게 지각되는 것들을 담아내며, 본다는 행위와 그 행위의 위치, 주체, 지각의 관점에 대한 의문을 풀어낸다.


《파리대왕독본》 전시 전경(온수공간, 2019) © 백종관

나아가 백종관은 2019년 온수공간에서 열린 개인전 《파리대왕독본》에서, 생물학적 광학 시스템(Unique Biological Optical Systems)에 영감을 준 주요한 대상인 ‘파리’를 매개로 이미지와 재현, 그리고 보는 행위에 대한 사유를 더욱 실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어린 지오토가 그린 파리를 스승 치마부에가 실제 곤충으로 착각했던 일화처럼, 중세 유럽 회화에서 파리는 “미메시스적인 재현 수단의 새로운 통제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이러한 미술사적 맥락에서 파리는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대상이자, 재현의 기술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한편,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는 사방에 카메라와 스크린이 존재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생산하고 바라보며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하고 규정한다.


《파리대왕독본》 전시 전경(온수공간, 2019) © 백종관

작가는 파리의 겹눈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시각 환경을 통해, 수많은 스크린과 인터페이스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과 불안을 살펴보았다.
 
《파리대왕독본》에서 파리는 스크린 위에 놓인 작은 이미지이자 실제 공간에 개입하는 물질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과거 회화에서 파리가 화면의 인위성을 드러내면서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환기했던 것처럼, 작품 속 파리는 이미지와 현실, 관객과 화면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파리는 ‘메멘토 모리’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화면 속 이미지와 프로젝터 주변을 날아다니는 실제 파리를 마주하는 경험을 통해 죽음과 소멸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관찰자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일컫는 ‘FLY-ON-THE-WALL DOCUMENTARY’라는 표현처럼, 파리는 보이는 대상인 동시에 무언가를 바라보는 존재로 제시되며, 작품은 이를 통해 누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백종관, 〈무덤이 웃기 전에〉, 2021, 싱글채널 영사, 이미지 패널 설치, 60분. © 국립현대미술관

이러한 이미지와 재현, 그리고 보는 행위의 관계에 대한 백종관의 사유는, 〈무덤이 웃기 전에〉(2021)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행해졌던 여러 관계-맺음을 돌아보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극장에는 관객과 스크린, 관객과 블랙박스 등 여러 관계가 동시에 형성되며,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관객마다 영화가 경험되고 받아들여지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관객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극장 안의 다른 공간에 시선을 두거나 화면에 보이는 장면 대신 이미 지나간 장면과 자신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백종관, 〈무덤이 웃기 전에〉, 2021, 싱글채널 영사, 이미지 패널 설치, 60분. © 백종관

작가는 이러한 다양한 시선과 관람의 조건에 주목하며, 하나의 영화가 관객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는 과정을 〈무덤이 웃기 전에〉를 통해 감각해 보도록 한다.
 
즉, 〈무덤이 웃기 전에〉는 영화가 완성된 하나의 결과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과 극장의 환경, 관람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촬영되는 현장이자, 이미지가 형태를 갖추는 암실이며, 카메라 내부의 공간이자 때로는 실험과학자의 관찰 상자와 같은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영화와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경험되는 여러 층위의 공간을 겹쳐놓는다.


백종관, 〈거의 새로운 인간〉, 2021, 다큐멘터리, 62분. © 백종관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를 겪으며, 백종관은 탈각되는 시간성을 다시 상기해보고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의 범주화, 미래에 대한 사색을 잇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거리와 속도가 서로 상이한, 완전히 다른 스케일에 기반하는 세계들을 오가며 각 세계를 구현하는 도구들, 기술적 환경의 변화 양상을 검토하고,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들 간의 관계를 되돌아 보았다. 이는 전혀 다른 시간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백종관,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 2021, 다큐멘터리, 18분 30초. © 백종관

이를테면 2021년 작업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는 팬데믹 시기 물리적 이동의 제한 속에서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 교감과 소통의 방식에 대해 사유한다.
 
작업은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가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예정되었던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없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직접 무용수들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한 여건에서, 랄리는 온라인 화상 미팅을 통해 한국에 있는 무용수들과 움직임을 하나씩 만들어 나간다.
 
서울과 바르셀로나 사이의 약 9,600km라는 물리적 거리는 실시간에 가까운 소통이 가능한 오늘날 쉽게 감각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는 이러한 ‘거리’의 감각을 무용이라는 신체적 예술의 특성과 연결해 바라본다.


백종관, 〈그들은 우리의 응시에 응답한다〉, 2021, 다큐멘터리, 18분 30초. © 백종관

워크숍에서 안무가 랄리는 바르셀로나에, 무용수들은 서울에 머물렀다. 기술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움직임을 만들어갈 수 있었지만, 안무가와 무용수가 직접 몸을 마주하고 교감하며 동작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한 무용의 특성상 물리적 거리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작업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몸들이 점차 움직임을 맞춰가며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리와 친밀감의 감각을 탐구한다.
 
작품은 서울의 연습실, 랄리가 머무는 스페인의 공간,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세 공간을 오가며 워크숍의 과정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서로 다른 해상도의 카메라와 다양한 렌즈를 활용해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교감하는 순간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긋남, 그리고 서로 다른 거리의 감각이 나타나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화면과 움직임을 통해 가까이 연결되는 몸들을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집단 속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물리적 거리와 감각적 친밀감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백종관, 〈더 베리 메타버스〉, 2023,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콜라주(170x100cm, 130x100cm, 100x100cm),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11분) © 백종관

한편, 2023년도 작업인 〈더 베리 메타버스〉에서 작가는 수년에 걸쳐 수집한 지하철 내부에 부착된 구인광고 쪽지 속 과장되고 텅 빈 문장들을 사회문화적 현상의 징후로 포착해 이 데이터를 작업의 형태로 정리하고 변형한다.
 
〈더 베리 메타버스〉는 여러 장의 스틸 이미지와 한 점의 무빙 이미지로 층층이 구성되어 이들에게 동일한 위계를 부여하면서도, 가장 안 쪽의 무빙 이미지는 프린트된 이미지들의 존재를 지시하고 참조하면서 또 파괴한다.


백종관, 〈더 베리 메타버스〉, 2023,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콜라주(170x100cm, 130x100cm, 100x100cm),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11분) © 백종관

이미지들은 평면의 연쇄를 통해 공간에 입체적으로 제시되고 관객들은 약자를 기망하는 광고 쪽지들의 지층을 연구하는 지질학자이자 왜곡으로 점철된 현재의 모바일 환경에서 쪽지라는 아날로그적인 도구를 재검토하는 역사가로 거듭난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통해 그러한 가상의 말과 이미지들이 플랫폼을 바꿔가며 아직도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 그런 것들이 또한 존재하지는 않는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했다.


백종관, 〈기다리는, 호흡하는〉, 2024,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8분. © 백종관

이처럼 백종관은 직접 수집한 푸티지를 활용해 무빙 이미지의 구조 자체를 탐구하고 시각 재현 체계의 역사를 사유하는 작업을 전개하거나, 일상적 사건으로부터 비일상적 감각을 촉발해 새로운 시간성을 구현해 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그의 작업은 이미지, 언어, 공간, 신체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프레임’과 그 균열을 탐구해 오며, 기술적 질서와 제도적 환경이 어떻게 지각과 의미를 조직하는지, 완결된 해석보다는 충돌과 응답, 실패가 발생하는 조건 자체에 주목하게 만든다.

"작업마다 조금씩 다른 방법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게 주요한 과정은 긴 시간에 걸쳐 무언가를 수집하고 그것을 변형하여 복합적인 ‘질문’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백종관, 작가 노트)


백종관 작가 © 인천아트플랫폼

백종관은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전자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화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편지 쓰는 기술에 대하여》(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3), 《파리대왕독본》(온수공간, 서울, 2019), 《DownTime》(Konya gallery, 후쿠오카,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분해되지 않는 밤》(챔버, 서울, 2026), 《영화 이후》(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전 《모든 섬은 산이다》(몰타기사단 수도원, 베니스, 2024),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3),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3), 《이례적인 시간, 불확실한 움직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백종관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5-2026), 파리 시테 레지던시(2024), 인천아트플랫폼(2023),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1)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영상자료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