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주, 〈STOLEN TIME, CHORYANG〉, 2016, 부산 초량 빈집 공공미술 프로젝트 © 양자주

1930년대에 일본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부산 일맥 문화 재단 건물의 일부로,  1990년대 초반까지 가정집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약 30여년간 사람이 살지 않은 채 페쇄되어 있었다. 2016년 초량 일대의 재개발 사업 중 철거 되었다.  일맥 문화 재단 건물이 철거되기  전, 양자주 작가는  약 두 달간 건물에 머물며, 건물과 그 주변을 리서치하고, 건물의 잔해들을 모아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건물 내부와 외부의 흔적들을 채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양자주, 〈STOLEN TIME, CHORYANG〉, 2016, 부산 초량 빈집 공공미술 프로젝트 © 양자주

재개발 문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 안에서 인간이 지닌 본래의 감각이란 어떤 것일지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도시의 속도는 인간의 신체가 지닌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며,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속도를 강요한다. 어쩌면 폭력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은 인간의 섬세한 감각을 훼손할 수 있다. 부산 도심의 한 폐가에 봉인을 풀고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오히려 도시의 폭력성보다 자연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꼈다.

예상하지 못했던 그곳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 소리, 시각적 요소들은 나의 감각을 매우 예민하게 자극하기 시작했다. 남겨진 흔적들을 경험하고 그로 인해 예민해진 감각이 거듭 되살아날수록, 마치 내가 과거에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낯선 장소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무척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리움이란 무엇인가? 오래된 골목과 건물을 작업하며 낯선 장소를 마주할 때 느끼는 이 그리움의 감각은 무엇일까?

한국어에서 ‘그리움’의 동사형은 ‘그리다’이며, 그 어원은 ‘글’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이는 글쓰기의 본질이 그리움을 표현하는 데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학자들은 ‘글’과 ‘말’이 같은 기원을 지닌다고 이야기하며, 그렇다면 인간의 언어 역시 그리움을 중심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언어의 본질을 ‘테크네(techne, 기술)’가 아닌 ‘포이에시스(poiesis, 창작·시)’에서 찾았다. 시는 그리움을 표현하는 언어다.

그리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인간의 언어에 이르게 된다. 서구에서 흔히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 부르는 심리 상태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향수를 느끼며, 그중 절반가량은 일주일에 세네 번 정도 경험한다고 한다. 향수라는 감정에서 특별한 점은 그 안에서 누구나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향수 속에서 더 큰 온기를 느낀다.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추운 날 더 자주 향수를 느낀다고 하며, 또 다른 연구에서는 더 추운 공간에 있을수록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주장한다. 만약 기억을 통해 신체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이는 진화의 오래된 시기에 인간이 먹을 것과 거처를 찾아다니면서도 기억을 통해 더 잘 버틸 수 있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최근의 한 연구는 또한 향수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더 크게 느끼고, 삶을 더욱 진지한 태도로 대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부산 초량의 ‘빈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익숙한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부터 특별한 경험을 하게 했으며, 이는 다시 내가 도시를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빈집’은 1930년대에 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여러 채의 주택 가운데 하나로 일본식 양식으로 지어졌다. 1990년대까지 개인 주택으로 사용된 뒤 30년 넘게 방치되었으며, 2016년 부산 초량동 일대의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되었다. 철거되기 전 양자주는 해당 장소와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현장에서 발견한 재료를 활용한 설치 작품으로 전시를 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작업 과정에서 수집한 오브제와 재료를 선보이는 ‘Materials’ 시리즈로 이어졌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