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b. 1986)는 전시장, 비전시장, 상업 공간의 건축적 구조에 반응하여 입장/관람객이 느끼는 공간 감각에 개입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공간에 씌어지는 수많은 맥락을 일종의 레이어로서 체현한 유무형의 구조물을 제작하고 설치해 조형된 공간을 비워두어 그 안에서의 새로운 건축적 경험을 실험해 왔다.


김동희, 〈House of Dispersed Layers_The House〉 x 〈INstadio movement x Zorba〉, 2014, performance by INstadio movement, sound by Zorba © 김동희

김동희는 그의 첫 개인전 《나열된 계층의 집》(2014)부터 공간, 플랫폼, 협력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조건을 분리하고 절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스킨과 스킬, 구성체를 얻어 변형 및 발전해왔다.
 
《나열된 계층의 집》은 버려진 공간이나 일상에서는 잊혀져 인식되지 않는 공간들을 찾고 통상적인 계약관계가 아닌 공간 소유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고 전유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개방시키는 프로젝트다.


김동희, 〈House of Dispersed Layers_Garage〉 x 〈103 in Garage〉, 2014, 장소 특정적 설치 © 김동희

전시는 서울시 마포구의 서교동, 동교동, 상수동, 창전동 일대의 5개 공간에서 진행되었고, 그 공간들은 다리 밑 폐선부지, 아파트 쉼터, 비상구, 계단건물 꼭대기, 원룸촌의 주차장이었다. 각 공간마다 여러 작가들과 협력하여 다른 형태의 설치 구조물들이 구상되었고, 이 공간들은 다른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장(場)으로서 작동하였다.


김동희, 〈House of Dispersed Layers_Garage〉 x 〈Leuuuco〉, 2014, 사운드 퍼포먼스: 남현, 장소 특정적 설치 © 김동희

2014–2016년 서울의 ‘신생공간’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김동희는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탈바꿈하고 또 다른 예술 작업이 펼쳐지는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또한 제도권 미술공간에 초대받아 기존 공간의 설계도면과 물리적 현전감을 비틀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는 자신이 작업하는 물리적·공간적 조건의 맥락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그 공간을 예술과 인간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변형하는 과정이다.


《3 Volumes》 전시 전경(시청각, 2017). 사진: 김상태. © 시청각

2017년 김동희는 통인동 갤러리 시청각을 새로운 작품의 좌대로 삼는 전시 프로젝트 《3 Volumes》를 발표했다. 그는 시청각 공간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구조와 공간에 남아있는 발자국, 시선의 흔적을 해체하거나 삭제하는 대신 자신이 설계한 구조물을 덧붙이거나 덧씌우는 방식을 택했다.
 
먼저 작가는 기존 갤러리 공간을 변형하기 위한 요소들을 카테고리로 나누고, 그중 3개를 선정해 도면 위에 쌓아 올린 다음 레이어를 병합해 부피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3 Volumes》 전시 전경(시청각, 2017). 사진: 김상태. © 시청각

그 결과 119.7㎡의 좌대에는 관객이 직접 들어가고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공간적 조형물이 놓였다.
 
계단, 발코니, 벽, 거울, 통로, 창틀, 식물 등 본래의 기능에서 분리된 구조물들은 관객의 움직임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고 충돌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관객은 걷고, 멈추고, 바라보고, 넘어가거나 올라가는 등의 행위를 통해 작품을 활성화한다.


김동희, 〈시퀀스 타입: 1〉, 2020, 설치, 알루미늄, 플리카보네이트, 494x494x555cm © 서울시립미술관

이렇듯 김동희는 자신이 설계한 구조물을 덧붙이고 덧씌우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규격화하며 가변적인 상황들을 구조화한다. 홀수, 기본적인 도형들, 좌대와 본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가의 공간-제작에는 타인이 들어갔다 나오며, 작가가 설정한 레이어의 관계를 자신의 몸을 사용해 기술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제작된 2020년도 연작 ‘시퀀스 타입’은 기존의 건축적 구조와 그 공간이 지닌 유무형의 요소들에 착안해 새로운 공간적 시퀀스를 구성한다.
 
첫 번째 작업인 〈시퀀스 타입: 1〉은 기존 공간의 세 개의 창문을 가진 구조물에 응대하며 제작되었고, 〈시퀀스 타입: 2〉은 건물의 높은 채광창에 투명한 기둥을 설치하여 시간에 따라 들어오는 빛과 구조물에 맺히는 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김동희, 〈시퀀스 타입: 3〉, 2020, 합판, 방수도장, 스테인리스 스틸, 인테리어 필름, 실리콘, 450x450x(h)220cm © 김동희

그리고 아뜰리에 에르메스 기획전 《다른 곳》에서 선보인 〈시퀀스 타입: 3〉은 전시장 내부에서 중정으로 나가 작품에 오르고 중정의 ‘하늘’을 보는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작업은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내부, 통로, 중정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분석해 제작된 내외부가 뒤바뀐 구조물이다.
 
이러한 작업은 건물 외부에서 전시장 내부로, 다시 전시장 바깥의 중정을 지나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까지, 관람객의 동선에 실내와 실외를 교차시킴으로써 시지각적 혼돈을 야기한다. 


김동희, 〈리버스 마운틴〉, 2022, 가벽, 검은기둥, 벤치, 핸드레일, 조명, 위치표식, 동선, 장소등록, 웹상의 비디오, 지정된 시간에 블라인드 작동, 약 1014㎡, 가변크기 © 김동희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2022》의 〈리버스 마운틴〉(2022)은 전시장의 건축적 조건과 가벽, 빛, 동선 등 다양한 요소에 개입해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만든 작업이다.
 
작가는 가려져 있던 천장을 드러내고 가벽의 위치와 각도를 조정해 전시장을 낯선 풍경으로 변화시켰으며, 관객은 구조물 사이를 이동하고 머무르며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또한 SNS와 시간에 따라 작동하는 블라인드 등을 작업에 포함해, 자연광과 정보, 관객의 움직임 등 다양한 유·무형의 요소에 반응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유동적인 조각을 구현했다.


김동희, ‘포터블 창고’ 시리즈, 2022, 《각》 전시 전경(하이트컬렉션, 2022) © 김동희

한편, 2022년 하이트컬렉션 기획전 《각》에서 작가는 선유도에 있는 작업실 겸 전시장인 Hall 1의 공간 일부를 하이트컬렉션 공간으로 옮겨왔다.
 
기존 공간을 벗어난 공간의 일부가 새 공간에 개입하는 작업 ‘포터블 창고’(2022) 연작은 일시적으로 이식되는 공간에서 해당 공간의 구조물이나 표피에 연결되어 공간의 외양에 영향을 끼치는 조각적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Hall 2》 전시 전경(Hall 1, 2023) © 김동희

그리고 2023년 Hall 1에서 열린 개인전 《Hall 2》는 기존 공간이 지닌 건축적 흔적과 그에 반해 화이트큐브로 변화해 가는 공간적 맥락을 되짚어가며 진행됐다. 작업의 토대가 되는 공간 Hall 1은 과거 공장과 창고로 사용되던 건축물을 개조해 만든 전시장이다.
 
이곳은 벽돌 벽과 슬레이트 지붕, 녹슨 대들보 등 기존 건축적 흔적이 남아 있어 완전한 화이트 큐브로 기능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럼에도 전시 과정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배제한 채 작품을 쾌적하게 관람하기 위한 공간으로 다뤄져 왔다.
 
김동희는 이러한 건축적 조건을 바탕으로 기존 공간인 Hall 1 위에 새로운 공간 ‘Hall 2’를 세움으로써 공간과 관객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였다.


《Hide Edges》 전시 전경(YPC 스페이스, 2025) © YPC 스페이스

한편, 2025년 개인전 《Hide Edges》에서는 기존 작업의 일부를 변형하고 재조합해 제작한 대형 설치작품 〈도킹스〉(2024)를 하나의 레이어로 삼아 새로운 공간인 YPC 스페이스 위에 덧입혔다.
 
김동희는 기존 작업 〈도킹스〉의 스케치업 파일에 YPC 스페이스를 동일한 비율로 겹쳐 놓고, 실제 공간에 열려 있는 창문의 수와 크기에 맞춰 가상의 창문을 설정했다. 그리고 각각의 창을 통해 무엇이 보이는지를 관찰하며 공간과 시점의 관계를 탐색했다.


《Hide Edges》 전시 전경(YPC 스페이스, 2025) © YPC 스페이스

작가는 “창과 창을 통해 보이는 것 사이의 미세한 시점을 살피고, 시야의 각도를 조절하여 최적의 장면을 추출”했다. 이후 선택한 장면을 목재, 철판, 하이그로시 표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부조의 형태로 구현했다.
 
벽면에 부착된 네 점의 평면 작업은 도면, 건축물, 그리고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를 관통하며 특정한 시점을 하나의 장면으로 고정한다. 여기서 도면은 더 이상 잠재적인 설계도가 아니라 하나의 실재적인 구조체가 되고, 물리적으로 구현된 건축물은 그 도면이 일시적으로 출력된 결과가 된다.


《Hide Edges》 전시 전경(YPC 스페이스, 2025) © YPC 스페이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자리 제거’는 실제 창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행위와, 창을 하나의 필터로 삼아 서로 다른 환경적 요소와 시간의 층위를 축적하는 과정을 하나의 작업으로 통합한다.
 
서로 다른 조건을 바탕으로 설계된 요소들이 하나의 공간에 중첩되는 모습을 관찰하고, 하나의 레이어가 다른 레이어를 가로지르거나 잘라내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는 과정은 무한한 조합과 변주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다시 도착한 집》 전시 전경(운경고택, 2026) © 운경재단

이렇듯 김동희는 서로 다른 맥락의 공간을 경유하며 자신이 설계한 구조물을 덧붙이고 덧씌우는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공간은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작가의 개입과 관객의 움직임, 주변의 환경적 조건이 만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으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김동희는 작가와 기획자, 관람자가 하나의 일시적 공동체를 이루어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하고, 그 안의 보이지 않는 여러 레이어들을 몸으로써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순간을 미리 발견해두고 구현되도록 구조물을 제작한다. (…) 구조물을 통해서 관객이 어떤 식으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가. 어떤 장면들을 만나는가. 작업마다 전시되는 계절이나 날씨가 실제로 다르고,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김동희, 시청각 랩 인터뷰 중)


김동희 작가.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김동희는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다시 도착한 집》(운경고택, 서울, 2026), 《Hide Edges》(YPC 스페이스, 서울, 2025), 《Hall 2》(Hall 1, 서울,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오프 더 화이트: 주름과 망루》(일민미술관, 서울, 2026), 《현장 속으로: 기억과 사건》(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4), 《극장》(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23), 2022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부산시 일대, 2022), 《각》(하이트컬렉션, 서울, 2022), 《아트스펙트럼 2022》(리움미술관, 서울, 2022), 《숏서킷》(취미가, 서울, 2021), 《다른 곳》(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동희는 극장 공간과 전시 디자인 등 다양한 공간과 상호작용 프로그램을 기획, 설계, 시공, 실행하는 프랍 서울(PROP SEOUL)을 운영하고 있으며, 《Hall 2》으로 제2회 서울예술상 시각 부문 포르쉐 프런티어상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