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 : Froid》 전시 전경 © WWNN

현대는 종교와 신화를 해체하였다. 그것이 올바르게 작동하는가와는 별개로 절대적인 권위와 도덕을 상실한 우리들은 분리된 개인으로서, 기준은 사라지고 권력만이 남은 듯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세상 속에 표류하고 있다.

안재홍의 회화작업은 이렇듯 화합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분리되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표출하는 데서 출발한다. 절대성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1920년대 등장한 초현실주의 회화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구현하며, 동시대에 가해지는 억압을 폭로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구축하고자 했다. 안재홍의 회화는 한 세기 전 초현실주의 회화가 지나온 길을 복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작업은 그 안에서 대립과 분절을 좀 더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Sang : Froid》 전시 전경 © WWNN

작가는 빈 캔버스를 마주하고, 전체적인 화면을 조망할 수 없는 가까운 거리에서 추상적인 조형을 구성한다. 시각적 통제가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흩뿌려지고 중첩되는 물감의 운동성은 일반적이지 않은 화면구성으로 이어지고, 작가는 이렇듯 의도하지 않은 구성을 통해 창출되는 시선과 구도를 포착하여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친다.

화면 위에 대상의 본래 형태나 색상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자유로운 이미지들이 올려지고 나면, 작가는 최종적으로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거나 흑백필름에 인위적으로 색을 입히듯이, 형태를 다듬고 채색을 진행하여 작업을 완성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고전적인 소재와 사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종교화나 신화 속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실재하지 않거나, 이미 그 힘을 상실한 무언가를 지시하는 (또는 지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일례로 전시작품 〈The Giver〉 를 살펴보자. 작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목가적인 전원의 일부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풍경에서 평화로움이나 조화로움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배경의 나무와 식물들은 지나치게 굽이져 자라거나, 공존보다는 서로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듯 공격적으로 뻗어나가는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하늘의 후광을 배경으로 영웅적 자태를 풍기는 양가죽은 정작 그 주인공은 사라진 빈껍데기로 제시되고 있다.

아마도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권위와 사명을 상징하는 망가진 도구들 위에 놓인 양가죽에 엉켜서 자라나는 다양한 생물들은 평화와 공존의 사례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체 위에 들끓는 구더기 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Sang : Froid》 전시 전경 © WWNN

또 다른 작품  〈I Don't Believe It's Him〉도 마찬가지로 기사, 혹은 전통적으로 영웅을 등에 태우는 백마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조각난 신체의 일부분이나 아무런 맥락 없이 조합된 오브제들이 만들어내는 환영적 존재로 그려진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신전 기둥이 무너져내리는 폐허의 풍경은 하늘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통해 실제 풍경이 아닌 무대 위에 연출된 장면임을 파악할 수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태양, 혹은 후광 역시 자연주의적인 하늘의 풍광 위로 고딕 회화에 등장할 법한 날카로운 선으로 표현되며 그 허구성(허상성)을 고발한다.

안재홍의 회화는 고전주의적 고요함과 엄숙함 속에서 발생하는 개체들의 분리와 분절, 절대성의 파멸과 그 결과로서의 죽음으로 인한 공포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고립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지되는 엄숙함과 고요함은, 우리가 분리된 객체로서 서로 떨어져 나오거나 뒤엉켜 경쟁하면서도 어떠한 예술적 균형, 더 나아가 삶에서의 공존을 이루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기대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파국과 종말에 대한 것이기보다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성취할 수 없는 목표에 대한 것이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실보다 더 냉혹한 시선으로 이상향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