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의 사회적 풍경의 면모는 스케일은 달랐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포디즘 방식으로 대량 생산된 미국식 목조 주택이나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보여 지듯, 그것은 인간 몸의 연장이자 지상적 삶의 가장 안정적인 거처가 여타의 상품 생산과 소비의 주기처럼 빠르게 회전할 때, 무엇이 생산되는가하는 문제이다. 그녀의 작품은 그러한 생산과 소비 주기가 폐허와 뿌리 뽑힌 삶을 재생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사회적 풍경에 대해, 단순히 국외자나 이방인의 시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김지은의 작품들은 심란한 도시 풍경에 대한 인상을 단순히 주관적으로 표현하거나,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표현이나 재현이기 보다는, 작가가 발견한 구조에 상응하는 구조를 생성한다. 그녀의 독특성은 생산의 차원으로 고양된 대량 파괴 속에서도 생성되는 것들을 포착한다는 점이다.
여러 곳에 머물며 지역 연구를 작품에 녹여냈던 경험은 파괴 중에 생성되는 것들의 공통성을 추려낸다. 작가가 잠시나마 속해있던 각 지역의 개별 연구를 통해, 가장 공통적인 것 속에서 가장 특이한 것을, ‘가장 특이한’ 것 속에서 ‘가장 공통적인’(네그리) 것을 발견한다. 김지은에게 공통성과 특이성은 상반되는 범주가 아니다. 공통성과 특이성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은 예술의 영원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주어진 조건을 이용하여 최대한의 기능성을 살린 독특한 산물들은 원시적인 듯 하면서도 보편적이다. 김지은이 주목하며 작품 소재로 삼곤 하는 사물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싼 재료로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역이 달라도 비슷한 상황과 조건에 직면하면 그 산물이 만들어지는 방식 또한 비슷하다. 필요에 의해 단순하게 만든 이름 없는 장인의 작품들은 감탄을 자아내며, 작가는 이런 저런 필요에 부응하는 사물에 주목한다.
미술 또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임의적 장식이나 잉여가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던 특수한 물건들이 지녔던 공통 어법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목적이든 수단이든 기계화된 대량생산의 체계로 편입되었을 때의 차원은 달라진다. 김지은의 설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각목이나 시트지 같은 것들은 표준화된 생산체계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이자 건축 재료들로, 질서화 된 구조를 위해 결국은 사라져야할 것들을 전면화한다.
시한이 정해져 있는 내구성 없는 재료들로 얼기설기 엮여진 것들은 현대적 삶을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맨 처음 생활한 디트로이트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예시하는 곳으로, 김지은의 많은 작품들에서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로 돌변하는 원초적 장면들로 각인되어 있다. 디트로이트는 도시 외곽이 점차 확장되고 도심은 공동(空洞)화 되는 특유의 현상(suburbia)을 보여주는 도시이다.
넓은 땅에서 세계의 주요 자원을 다 끌어다 쓰는 자동차 중심 도시 미국은 가장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나라이며, 풍요와 파괴 사이의 거리가 매우 근접해진 우리에게도 이미 도래하고 있는 자본주의 미래상이다. 학업을 마치고, 미국 이곳저곳에서 단기 레지던시를 경험한 작가는 한 장소에 정착하면 그 장소를 철저히 연구하여 그에 관련된 작품을 내놓는 방식으로 일관된 맥락을 가지면서도 새로운 작품을 추가해왔다. 작가는 인간 삶의 흔적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대상을 건축에서 발견한다.
그녀는 건축적 스타일은 곧 삶의 스타일이며, 한 도시의 커뮤니티가 어떤 꿈을 꾸는가가 그 도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위로부터의 결정에 의해 이전 삶의 흔적을 다 밀어내버린 대규모 재개발 지역이든,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마을의 역사가 오롯이 보존된 그림 같은 곳이든, 이 꿈은 집단적인 욕망의 산물이다. 그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면 그 마을의 상태를 전형화 하는 건물을 찾아내 동네 도서관 등에서 사전 조사를 두루 거친 후 작품에 착수한다.
김지은의 작품은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지만, 작업을 막연한 느낌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작품들은 한 지역에서의 경험과 연구가 오롯이 담겨있다. 곧 떠나야 하기에, 있는 동안 최대한 그 장소만의 특성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핵심을 잡아낸 결과물들은 그 대화가 매우 집요하고도 진지했음을 알려준다. 한 장소를 완전히 자기화하는 작업 스타일은 유목을 단순한 배회나 도피가 아닌, 적극적 전진의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작가 말로 ‘소라게 살이’ 같은 이러한 수년간의 미국 유목 생활 및 작업을 2011년 한국에서 발표하고, 이후에도 아시아의 여러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지역성을 계속 탐사하고 예술이라는 보편 어법으로 묶어낸다. 아시아에서 많이 발견되는 국적불명의 도시 역시 그렇게 된 필연적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난지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하면서는 쓰레기장을 만물시장으로 삼아 살아왔던 사람들의 사라진 역사를 관련 소설을 통해 추적하고, 난지도에서 주은 쓰레기들로 재개발 지구에서 많이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의 상징물로 만들었다.
최근 리움의 《아트스펙트럼》전에서 보여준 거대한 대나무 비계나 망루는 원시적이고 전통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주어진 환경을 이용한 산물이다. 그것은 단지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원시적 기능주의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첨단기술의 시대에서도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그러나 맡은 바 기능을 마치고서는 사라져 줘야 하는 과도기적인 사물들이기도 하다.
사용되지는 않고 남아있기만 하는 예술 - 예술이 단순히 어떤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용, 가령 소통 같은 것을 의미 - 보다 이러한 단순한 사물은 얼마나 힘이 있는 것인가. 예술도 그것들처럼 현실 속에서 스스로 굳건히 서있을 수 있을까. 김지은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구조나 건물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작품에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적, 사회적 환경에 대면하여 반응한 산물을 인공 구조물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