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환(b. 1985)은 사물이나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그의 작업은 관계가 만들어내는 경계의 가변적 형태와 그 범위를 추적하며, 경계의 모호성에 접근해 나간다.


감동환, 〈이름들〉, 2025, 도색된 철판에 UV평판인쇄, 편지지, 스지로 제작한 편지봉투, 297× 450mm. 《말하는 머리들》 전시 전경(서울시립미술관, 2025) © 감동환

감동환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경계와 그 경계를 이루는 둘 이상의 대상 사이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며 작업해 왔다. 그는 경계의 크기와 범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형태, 그리고 이러한 경계가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장소를 탐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경계가 지닌 모호성과 가변성을 살펴보고, 서로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경계가 지니는 모순과 오류를 사유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테넌트 북스, 〈유니버설 스튜디오스 재팬〉, 2014, 실버 모노크롬 오프셋 프린트, 중철제본, 120x180mm (36 페이지) © 테넌트 북스

초기 작업에서 감동환은 수집한 사물들을 재맥락화하여 입체 또는 사진의 형태로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초반에는 동료 작가들과 동묘의 재활용 가게에서 발견한 1,500여 대의 카메라에 담긴 필름을 전부 현상하여 책 형식으로 출판하기도 하였다.
 
작가들은 타인의 사진을 현상해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초상권 사용의 문제를 고려하여 빛의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내는 실버 모노크롬 인쇄방식을 선택하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 『들어있던 필름』은 사진을 찍은 사람도,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른 채 드러나지 않는 모호함과 불분명함이 작업의 새로운 주체가 된다.


감동환, 〈공용부엌〉, 2019-2021, 나무, 철, 바퀴, 오븐, 인덕션, 가변크기 © 감동환

이후 감동환은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수행적이고 참여적인 방식을 통해 다양한 작업을 전개해 왔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입주하며 사람과 사람, 그리고 공간 사이의 관계를 실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예로, 2019년도에는 라익스 아카데미 웨스트 홀에 이동식 공용 부엌을 만들어 서로 다른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입주 작가들 사이에서 ‘우리’라는 개념이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공용부엌〉(2019-2021) 기록 사진 © 감동환

이 실험에서 작가는 스스로 주방의 청결 및 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인으로 위치시켰다. 그리고 여름 휴가로 자리를 비우고 난 후 관리되지 않은 주방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사진에는 썩은 음식물로 막혀 있는 주방 싱크대의 모습과 냄비 속 썩어가는 밥 위에 눈처럼 뽀얗게 쌓인 하얀색 곰팡이 등이 담겼다.
 
감동환은 그 사진들을 아주 얇은 종이에 인쇄한 다음, 주방에서 직접 끓인 밀가루 풀을 이용해 벽에 붙였다. 그리고 나서 작가는 다소 불편하고 수치스럽게 다가오는, 벽에 걸린 사진들의 표면을 칼로 긁어내 파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파괴된 이미지 위에는 또 다른 이미지가 겹겹이 쌓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미지는 상처와 흉터로 변모한다.


〈Fermentation Garden〉(2020-2021) 기록 사진 © 감동환

이후의 작업에서 감동환은 미생물과 포자를 이용해 작업을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쳐 그 결과물을 동료 작가 또는 관객들과 나눠 먹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Fermentation Garden〉(2020-2021)은 라익스 아카데미의 정원에서 직접 기른 배추를 이용해 김치를 담그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기록한다.
 
이 작업은 배추를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 발효시키는 과정까지 약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과정이 끝난 후 감동환은 발효된 김치를 사용해 김치전을 만들고 동료 작가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감동환, 〈Plants〉, 2021, 식물들, 가변크기. 사진: Sander van Wettum. © 감동환

이렇듯 감동환의 작업에서 시간과 과정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2021년도 작업인 〈Plants〉 또한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전개되었다.
 
이 작업은 2019년 당시 더 이상 돌봄 받지 못하는, 버려진 식물들을 수집하며 시작되었다. 작가는 수집한 식물들을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공간으로 옮기고 돌보는 과정 그 자체를 작업의 내용으로 삼았다.


감동환, 〈Fermentation House〉, 2022, 나무, 항아리, 메주, 천일염, 물, 건고추, 숯 © 감동환

그리고 2023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서 감동환은 전시장 곳곳에 소형 주택 모형을 설치한 연작 ‘Fermentation House’를 선보였다. 이 작업은 요리, 증류, 발효와 같은 가사 행위가 본질적으로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출발했다.


감동환, 〈Fermentation House〉, 2022, 나무, 항아리, 메주, 천일염, 물, 건고추, 숯 © 감동환

약 6개월의 전시 기간 동안, 이 소형 주택 안에서는 간장이 발효되고 있었다. 그리고 비엔날레가 끝날 무렵 발효된 간장은 만두와 함께 관객들에게 제공되었다.
 
결국 작품이 발효되는 시간과 과정은 다 함께 나누어 먹는 행위를 통해 마무리된다. 즉 이러한 감동환의 작업은 시간과 공간, 미생물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며, 관객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감동환, 〈cook or hoop〉, 2021-2023, 격월로 열린 요리 교실 프로그램 © 감동환

또한 감동환은 라익스 아카데미에 설치해 두었던 공용 부엌을 BOOST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시켜 요리 수업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 작업 〈cook or hoop〉(2021-2023)을 선보이기도 했다.   
 
난민을 위한 BOOST 재단(BOOST Foundation for Refugees)이 운영하는 BOOST는 암스테르담에서 새로 정착한 사람들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교류하고 협력하는 독특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언어 수업과 컴퓨터 수업, 자전거 교육 및 재봉 워크숍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


감동환, 〈cook or hoop〉, 2021-2023, 격월로 열린 요리 교실 프로그램 © 감동환

이러한 공간에 새로 자리를 잡은 감동환의 공용 부엌은 요리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재탄생했다. 감동환은 기존의 역할을 뒤집어 BOOST의 참여자들이 요리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고, BOOST의 직원과 자원봉사자, 라익스 아카데미 작가들이 수강생이 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후 작가는 BOOST에서 진행된 요리 수업들의 레시피와 이야기를 모아 『cook or hoop』라는 제목의 요리책으로 출간했다.


《비버의 집으로》 전시 전경(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4) © 감동환

그리고 2024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감동환의 국내 첫 개인전 《비버의 집으로》는 그가 직접 쓴 동명의 소설에서부터 시작해 어떤 사물이나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비버’는 설치류이지만 뒷발에 물갈퀴가 있어 땅 위에서 생활하는 동시에, 물속에서 헤엄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수륙양용의 다목적 신체 구조 동물이다.


감동환, 〈소금과 후추〉, 2024, 엽서, 옵셋 인쇄, 15x10cm © 감동환

감동환은 이러한 비버의 특성에 착안해 작업 안에서 둘로 나뉘어 있지만 개별 혹은 개체로 분리할 수 없는 대상과 사물들을 통해 이분법적 세계관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경계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다.
 
전시는 소설에 등장하는 단어와 문구를 제목으로 한 설치 작업과 아티스트 북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야기 속 요소들은 성냥개비와 벽돌 등 일상적인 오브제의 형식으로 확장되어 개별 작품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작업의 중심인 소설에 의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감동환, 〈그린룸〉, 2026, 세마 퍼포먼스 《호흡》의 모든 참여자들을 위한 휴식공간, 그린룸에서 발효시켜 만든 먹거리와 마실거리, 발효감물로 염색한 커튼, 가구와 조명 설치. 협업: 권소영 © 서울시립미술관

한편, 기존 발효 작업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신작 〈그린룸〉(2026)은 전시 전체를 인간과 미생물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 움직임으로 구성해낸다.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개관전 세마 퍼포먼스 《호흡》에서 발표된 이 작업은 총 35일, 840시간을 함께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미술관을 운영하고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 2026년 3월 9일, 이 작업을 시작했다.
 
모두가 그가 준비한 작업이자 공간에서 쉬는 중에도 작가는 적정한 레시피를 찾고, 빵을 굽고, 음료를 만들며, 미생물과 발효종들을 매일 돌봤다.
 
〈그린룸〉은 효모와 미생물이 자라고 발효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호흡》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몸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상상한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이 먹는 음식 대부분은 효모와 균에 의해 분해되고 발효된 것으로, 인간의 몸 역시 미생물과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감동환, 〈그린룸〉, 2026, 세마 퍼포먼스 《호흡》의 모든 참여자들을 위한 휴식공간, 그린룸에서 발효시켜 만든 먹거리와 마실거리, 발효감물로 염색한 커튼, 가구와 조명 설치. 협업: 권소영 © 서울시립미술관

작품은 관객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발효 감물로 염색한 천이 공간의 유일한 경계를 이룬다. 피부를 연상시키는 천은 〈그린룸〉의 ‘살갗’이자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로 기능한다. 그 안에서는 퍼포머와 작가, 안무가, 전시 및 운영 인력 등 《호흡》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쉬고 회복하는 동안 미생물과 균이 자라난다.
 
〈그린룸〉에서 길러진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몸속으로 이어지며, 서로 다른 개인들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한다. 관객이 직접 볼 수 없는 이 공간은 공연의 대기실인 동시에 인간과 미생물이 함께 움직이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대기실이다.
 
작품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연결을 통해 《호흡》이라는 전시 전체를 인간과 미생물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바라보게 한다.


감동환, 〈그린룸〉, 2026, 세마 퍼포먼스 《호흡》의 모든 참여자들을 위한 휴식공간, 그린룸에서 발효시켜 만든 먹거리와 마실거리, 발효감물로 염색한 커튼, 가구와 조명 설치. 협업: 권소영 © 서울시립미술관

이렇듯 감동환은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넘어, 무생물과 미생물을 포함한 제3의 행위주체를 발견하고 이를 작업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 중심적·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작품과 작가, 관객,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나아가 이질적인 존재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시공간적 맥락을 만들어낸다.

"근데 이거 말이야,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는데 말이야, 좀 웃기지 않아? 항상 소금 옆에 후추가 있는 거 말이야. 아니면 후추 옆에 소금이 있거나. 소금은 바다에서 나오고 후추는 육지에서 나오지, 심지어 소금은 하얗고 후추는 검지.
 
어쩌다 이런 게 하나의 관계로 굳어져 버린 걸까? 그리고 이런 건 왜 항상 두개가 한 몸인 거야? 그니까 내 말은, 당연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당연해서 이상하다구." (감동환, 『비버의 집으로』에서 발췌)


감동환 작가 © Buro Stedelijk

감동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형예술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오펜바흐 조형예술대학교 Vordiplom 과정을 수료하고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비버의 집으로》(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2024), 《cook or hoop》(BOOST, 암스테르담, 2023), 《Kitchen has escaped, kimchi’s earthing is done, I feel like making pancakes》(이스트윙 프로젝트 스페이스, 암스테르담,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호흡》(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서울, 2026), 《말하는 머리들》(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5),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거 소리없이》(성산아트홀, 창원, 2024), 《Buro Stedelijk Manifestation》(스테델릭 미술관, 암스테르담, 2023), 제7회 싱가포르 비엔날레 《나타샤》(싱가포르 아트 뮤지엄, 싱가포르,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감동환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4), 유-재즈도우스키 캐슬 현대미술관 레지던시(2022), 라익스 아카데미 레지던시(2019-202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레지던시(2018) 등에 입주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