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환(b. 1986)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가속화된 시간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적인 시선을 통해 동시대 도시 풍경을 탐구하고 이를 작업으로 풀어낸다. 특히 작가는 도시 환경 속 평범하면서도 모호한 풍경에 주목하고 이를 창작의 원천으로 삼는다. 


《가슴을 파고드는 공》 전시 전경(새공간, 2024) © 새공간

변상환은 자신의 작업 과정이 마치 사물에 이미 내재된 형태를 파내는 ‘발굴’의 행위와 같다고 여기며, 이를 3차원으로 확장하는 작업에 집중해 왔다. 마치 인류학자가 지층의 세밀한 기록을 연구하듯이, 그의 작업 또한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사소한 풍경을 채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수집된 풍경은 아주 작은 단위로 해체되었다가 시적인 은유, 역설, 유머를 거쳐 조형적 결과물로서 재탄생한다. 이로써 익숙한 사물과 풍경은 예술의 영역으로 재맥락화되고, 낯선 모습으로 등장한 일상의 소재들은 도시와 도시에서의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회상하게 한다.


변상환, 〈설치전경〉, 2012, 혼합재료, 240x120x30cm © 변상환

변상환의 초기 작업은 현재보다 한발 앞선 시대의 오브제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정서와 감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버려진 오래된 물건들을 수집해 탁본으로 옮겨 과거의 시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하는 한편, 고무장갑이나 김장배추, 간장게장처럼 말랑하고 유기적인 형태의 사물들을 시멘트로 캐스팅해 견고한 화석과 같은 형태로 변환했다.
 
이러한 작업은 과거의 사물과 현재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묘한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사물의 변형은 일상적 풍경에 키치적인 정서를 더하며,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감성이 뒤섞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변상환, 〈대사관로 30가길 36〉, 2015, 거울에 반사된 빛, 잉크젯 프린트, 59.4x84.1cm © 변상환

이후의 작업인 ‘돌’(2015) 시리즈에서 변상환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사물인 길거리의 돌덩이들에 주목했다. 당시 그가 머물렀던 동네인 낙산 주변 창신동 골목에는 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변상환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방해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돌들을 새롭게 바라보았다. 그는 평범한 돌들을 인류 역사의 관찰자로서 바라보며, 돌에 거울로 자연광을 반사해 조명을 주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돌들이 위치한 주소를 작품명으로 정해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였다.


변상환, 〈크로커다일〉, 2011, 고무장갑, 시멘트, 43x13x9cm © 변상환

이처럼 변상환은 전통적 도상, 오래된 물건, 익숙한 사물, 돌덩이 등 도시에서 자신과 관계 맺은 대상들을 찾아내고 변형하는 과정을 단단한 조각의 형태로 표현해 왔다. 그리고 한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작가만의 유머러스한 시선을 반영하여 작품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이러한 그의 작업은 사물이 차지하는 공간과 장소를 드러냄으로써 존재의 확실성을 찾아 작가 자신의 삶의 조건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단하고 청결한 용기》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6)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6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단단하고 청결한 용기》에서 변상환은 가벼운 소재(플로랄폼)를 사용하여 전통적 조각에 대한 고정 관념 및 시각적 정보와 일반적 상식에 대한 반전을 꾀하고자 했다.
 
전시 제목은 싸구려 여관방에 구비되어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에 프린트 되어있는 문장에서 가져왔다. 작가는 ‘단단하고 청결한 용기’에서 용기를 容器가 아닌 勇氣로 오해했다고 한다. 전시는 이러한 일종의 농담 같은 일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하고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작가만의 위트 있는 시선으로 풀어나갔다.


《단단하고 청결한 용기》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6)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전시장 전체에는 모래사장 위로 크고 작은 초록색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 바가지의 손잡이 끝부분을 확대한 듯한 형태를 비롯해, 벽돌을 엮어 만든 한 평 남짓한 뗏목, 바닥에 널브러진 소주병, 그리고 돌덩이와 초코볼을 연상시키는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형태의 조각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상반된 기능을 가진 플로랄폼과 방수 페인팅을 재료로 제작되었다. 물을 흡수하는 소재인 플로랄폼으로 만들어진 오브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물을 차단하는 기능의 방수 페인트로 덧칠해지며 가벼운 농담과 같은 인상을 더한다. 전시 작품들의 지배적인 색상인 초록색은 한국의 흔한 옥상의 바닥 색에서 착안했다.
 
변상환은 한국의 삭막한 회색 도시 속에서 ‘초록색’을 발굴하고, 이를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아이러니한 속성의 조각들의 표면에 덧입혔다. 관객은 우리 주변에 대한 그의 시선으로 가볍고 위트 있게 풀어낸 작품들 사이에서 한국의 ‘키치’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몸짓과 흥분의 짧은 역사》 전시 전경(스페이스 소, 2018) © 스페이스 소

그리고 2018년 스페이스 소에서 열린 개인전 《몸짓과 흥분의 짧은 역사》에서는 녹을 방지하는 적갈색의 방청 페인트와 H빔, I빔 등 특정 모양의 형강을 사용하여 제작한 ‘Live Rust’ 시리즈를 발표했다.
 
앞서 살펴보았듯, 변상환은 산업용품을 작품의 재료로 선택함으로써 눈여겨보지 않았던 페인트의 색상이나 질감 등 그 자체의 물성이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두 세 가지의 산업용품들을 함께 사용하여 이것들이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유머러스하고 역설적인 결과를 낳도록 한다.


《몸짓과 흥분의 짧은 역사》 전시 전경(스페이스 소, 2018) © 스페이스 소

방청페인트와 형강을 사용한 ‘Live Rust’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작가는 평평하게 손질한 형강의 단면에 방청페인트를 바르고, 이를 종이 위에 얹고 눌러 페인트를 찍어냈다. 일반적으로는 형강이 녹슬지 않도록 방청페인트를 칠하지만, 작가는 형강과 방청페인트를 판화의 원판과 물감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형강의 육중한 무게와 입체감은 도형으로 전환되고, 평면 형식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고된 노동에 가깝다. 형강을 찍기 위해서는 각각 20여 kg에 육박하는 형강과 모양이 잘 찍히도록 형강을 누르는 누름쇠가 필요하다.


변상환, 〈Live Rust〉, 2019, 방청페인트, 판화지, 형강 활자 인쇄, 70x70cm © 변상환

작가는 종이에 방청페인트를 한 번 찍기 위해 도합 40kg에 다다르는 형강과 누름쇠를 들었다가 내려놓는 고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과정을 100여 번 반복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조금씩 좌표를 이동하면서 겹겹이 찍어낸 방청페인트는 화면에 새로운 공간과 구조를 형성한다. 이 공간과 구조에서 느껴지는 방향성은 형강과 누름쇠를 이동시킨 작가의 육체적인 노동을 직관적으로 연상시킨다.


《생물 은-갈치》 전시 전경(SeMA 창고, 2021) © 서울시립미술관

나아가 변상환은 2021년 SeMA 창고에서 열린 개인전 《생물 은-갈치》를 통해 회화, 조각, 판화, 그리고 퍼포먼스의 요소가 혼합된 ‘Live Rust’ 시리즈를 실제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 실험하였다.
 
본래 평면의 형태로 제작되었던 ‘Live Rust’ 시리즈는 육중하고 장대하게 전시장 세 개의 방을 가로지르며 공간을 장악하였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공간에서 유영하는 적갈색의 평면들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며, 감각을 다층적으로 자극하였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전시 전경(스페이스 소, 2022) © 스페이스 소

한편, 2022년 스페이스 소에서 열린 개인전 《손은 눈보다 빠르다》에서 변상환은 본디 자연물이었던 것, 혹은 인간에 의해 자연물과 유사한 지위를 가지게 된 것들의 형체에 주목하였다.
 
가령, 작가는 피망이나 양파처럼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재료 등을 석고나 금속으로 본떠 새로운 조각으로 전환하였다. 작가가 부여한 새로운 몸과 함께 등장한 각종 사물은 원래의 색과 향을 가린 채 오로지 덩어리와 질감만을 드러내며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변하면 사라질 사물들의 형체는 작가의 손에 의해 단단하고 썩지 않는 조각으로 박제된다. 그리고 백색 또는 묵직한 광택의 표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빛은 작가의 두 손으로 포착한 물체의 일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지평선 너머 타원의 경계》 전시 전경(스페이스 소, 2025) © 스페이스 소

그리고 최근의 개인전 《지평선 너머 타원의 경계》(스페이스 소, 2025)에서 변상환은 ‘Live Rust’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업인 ‘Live Rust-Odyssey’ 시리즈를 소개했다. ‘Live Rust’의 새로운 전개인 ‘Live Rust-Odyssey’ 시리즈는 기존에 이어오던 프로젝트에 우주적 시공간에 관한 상상력이 더해져 확장된 작업이다.
 
작가는 웜홀을 사이에 두고 이편과 저편의 세계가 공명하는 모습을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같은 궤적을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평면과 빈칸으로 존재하는 알파와 베타로의 복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지평선 너머 타원의 경계》 전시 전경(스페이스 소, 2025) © 스페이스 소

도시에서 얻은 3차원적 감각을 지구, 즉 인간 세계 너머 고차원의 시공으로 쏘아 올리면서, 작가는 궤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충실했던 초기 이미지에 조형적 기교를 더해 ‘Live Rust’의 미학이 지니는 정교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작품들은 3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새햐안 비정형의 공간에서 관객을 맞이하였다. 관객은 이 초현실적이고 낯선 감각의 장을 자유롭게 거닐며 고강도의 육체노동과, 무거운 중력과, 거대한 도시의 뼈대가 남긴 붉은 빛의 일렁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동하는 시선과 붉은 빛 사이에 생겨난 이 미묘한 조응은 창작의 여정에서 존재했을 육체와 물질 사이의 조응, 나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현실 세계 속 인류와 도시의 조응을 빗대어 보게 한다.


《지평선 너머 타원의 경계》 전시 전경(스페이스 소, 2025) © 스페이스 소

이렇듯 변상환은 전통적인 미술적 방법론에 과감한 변주를 더해 도시 곳곳에 새겨진 동시대사를 발굴해 왔다.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그의 작업은 조각의 무게, 부피, 공간, 회화의 표면과 안료, 판화의 공정과 복수성 등 예술적 형식을 규정하는 조건들에 대한 실험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서 낯선 모습으로 등장하는 일상의 소재들은 동시대 도시에서의 삶과 존재 방식을 새롭게 사유하게 하며, 작품에 새겨진 지난한 육체적 수행의 흔적은 생의 고단과 활기를 동시에 연상하게 한다.

"통상적으로 익숙하게, 자주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물 중에서 유난히 동시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것들이 있어요. 한국적 감성을 가진 사물들이라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런 사물들에 유난히 눈길이 더 가는 편이에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소재로 작업하게 되죠." (변상환, 헬로 아티스트 인터뷰 중)


변상환 작가 © 스페이스 소

변상환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지평선 너머 타원의 경계》(스페이스 소, 서울, 2025), 《가슴을 파고드는 공》(새공간, 서울, 2024), 《손은 눈보다 빠르다》(스페이스 소, 서울, 2022), 《생물 은-갈치》(SeMA창고,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생각공간: ThinkSpace》(우민아트센터, 청주, 2025), 《EDITION: Who Sets the NUMBER?》(스페이스 소, 서울, 2024), 《예술사회학을 지나야 예술철학이 나온다-작가편》(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3), 《뼈와 살》(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3), 《판화, 판화, 판화》(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0), 《만렙》(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변상환은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시 프로그램(2019) 및 타이베이 관두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2019)에 참여하였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