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서사, 집단의 기억
우리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서 그 작가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한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 등 다양한 메시지를 한 작가의 인생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최찬숙은 20년 이상 독일에 머물면서 인류 이주의 역사,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기술 장치, 물리적 이동과 함께 따르는
정신적 이주의 문제를 계속 고민해 왔다. 미시적으로는 자신을 둘러싼 낯선 환경들의 변화에 예민해했으며, 거시적으로는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인류 전체의 역사까지 탐구한다. 그는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매체를 사용하여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여성들의 삶을 반추하면서 침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축척해 나가고 있다.
최찬숙의
작업 전반은 인류, 역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로
출발하지만 그 시선은 지극히 인간의 내밀한 역사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통상 인류, 역사, 사회문제를 예술에서 다루게 되면 개인의 내밀한 삶의 시선은
의도치 않게 거대서사 속에 파 묻히기도 하지만, 최찬숙의 작업은 그와는 완벽히 대척점에 서있다. 단적인 예로, 〈약속의 땅(The
Promised Land)〉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자동화되어 제작되는 자동차 회사(를 배경으로 전시장을 기계와 기술로 전시장을 디자인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기계적인 공간에 놓여 있는지를 자각하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그 틀 안에서 인간의 지극히 평범하고 사적인 삶, 신에 대한
경외심, 낯선 곳에서도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평범한 개인의 이야기 영상들을 자동화 시스템 속 장치에
동시에 배치한다. 자동화, 기술지향점 시각에서도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인간애, 주변인들과의 친밀한 대화, 사적인 일상생활
등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기술한다.
즉
최찬숙의 작업은 극도로 산업화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자동화 시스템에서 생성시킬 수 없거나
취급될 수 있는 인간애, 인류애를 다시 찾는다. 이러한 작업은
〈FOR GOTT EN〉에서도 이어진다. 이 작업은 최찬숙이
라이프치히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70대부터 90대 여성들이
신과 믿음, 종교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서술해 나가는지를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물리적인 (이동수단에 의한)이주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신적 이주’에 관해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이 작업은 〈The Promised Land〉에서 제기했던 물리적 이주와 정신적 이주가 모두 공존되고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면, 이 〈For gott en〉은 ‘정신적
이주’의 개념이 더욱 실천적으로 확장된 작업이다. 실제로
이 인터뷰에 참여한 70-90대 여성은 동독에서 라이프치히로 이주한 여성들이다. 작가에게 정신적 이주는 곧 기억을 다시 이식시키거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재조직하는 문제도 포함된다. 작가는 이 여성들과 온전히 신과 믿음에 관한 문제에 집중하고자
별도의 인터뷰 공간을 마련했다. 이 인터뷰 공간은 이동식 도구로 제작되었다. 한국의 가마모양에 착안하여 제작되었으며, 외부와는 차단될 수 있는
특정 기억 기록 공간을 제작한 셈이다.
최찬숙은
현재의 시공간성에서 굳건히 서서 응시하고 직면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과 역사적 사건을 작업의 주요 중심 주제로 삼아왔다. 작가는 과거에 해결되지 않았거나,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다양한
매체로 소환시킨다. 작업을 통해 다시 재소환 되는 문제들은 특수한 시기와 사건들이지만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의 서술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증으로 펼쳐진다. 비무장 지대 경계에 있는 민북 마을에 수개월 머물면서 제작했던 〈양지리 아카이브〉를 비롯하여 위안부의 여성을
주제로 하는 〈밋찌나〉 작업이 그 예이다. 작가가 작업의 소재로 채택한 민북 마을과 거주민, 위안부여성, 이주 등의 주제는 한국사회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들이다. 최찬숙은 이와 같이 중요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국사회 이면의 무거운 주제를 도발적이면서도
절제된 조형언어로 표현해 나가고 있다.
최찬숙은
〈양지리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이주’와 ‘여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몰두했다. 실제로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DMZ의 민북 마을과 위안부 여성에
대한 화두는 한국사회를 둘러싸고 생성되는 사회정치적 논의의 틀을 뛰어 넘어 있다. 작가는 전쟁과 일제강점기
등의 굴곡 많은 근대화를 겪었던 한국사회 이면의 문제를 마치 완결된 것처럼 포장된 해석과 평가에 자신의 사고를 내던지지 않는다. 또한 그는 ‘위안부 여성’이라는
사회적 금기시하고 봉합할 수 있는 내용들에 굉장히 긴밀하게 접근해 나간다. 필자는 작가가 주제에 대해
조심스럽고 내밀한 관계설정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지리 아카이브〉에서도 이 지역이 내포하고
있는 분단, 군사경계지역 등 그 마을을 둘러싼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최찬숙의 작업방식은 개인의 내밀한 삶의 경험과 기억을 돌아보며, 미시적 관점의 삶들이 점차 역사화가 되는 방향성에 표식해 나간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 모든 것이 굳이 역사가 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최찬숙은
자신이 다루고 있는 주제 속에서 특정상황과 사건이 역사의 오브제로 대상화 되지 않도록 작업을 구상한다. 어쩌면
그러한 구상을 시도해 보는 것 자체가 역사와 여성, 사건과 사람들을 작업화 시키는 예술가의 역할일 수
있겠다. 〈미찌나〉는 버마 미치나 지역에 끌려갔던 위안부 여성 20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업은 중국과 인도를 오가던 말로하호의 탑승기록 문서에서 출발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최찬숙의
〈밋찌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밋찌나〉작업은 단 한명의 증언자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존하는 증언이 없기 때문에 작가는 오히려 그 사진 속 인물들의 개인적인 서사와 감정을 이끌어
냈다. 사진 속 여성들이 미치나라는 낯선 지역에서 보았던 하늘은 어떤 풍경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하루 동안 어떤 소리를 들었을까? 등의 질문들로 작업의
서사구조를 조직해 간다. 그들이 보았던 하늘풍경과 전쟁의 공포 등 개개인들의 감정을 되새기는 ‘상상의 기억’을 써내려 간다. 이뿐만
아니라, 영상 속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3명의 여인들은 각각의
다른 이유로 미치나에 있었다. 3인의 여인들이 미치나에 있게된 다양한 입장이 서술된다. 한명은 속아서 끌려갔고, 한명은 위안부 여성 모집 공고를 보고 갔으며, 또 다른 여성은 글을 읽지 못해 모집공고를 읽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의 상황을 두고도 각기 다른 입장이 펼쳐져 있다. 이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양한 층위로 해석하거나,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는 정치적 상황을 설명한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작가가 선정한 가상적 대화설정은 증언 없는 위안부 이야기였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개인의 기억, 실체 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우리의 문제들이 재현불가능성의 원리를 작동시키면
현존한다. 최찬숙의 〈밋찌나〉작업은 한 개인의 삶을 우리의 문제로 이끌어 내기 위해 대상화하는 작업을
소멸시켰다. 최찬숙은 개인의 서사가 어떻게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작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1. 작가에게 있어 ‘정신적
이주(Inner emigration)’는 한 개인이 오랫동안 머물던 땅을 떠나 다른 낯선 세계에 놓이게
되더라도, 어느 순간 낯선 공간을 그 이전에 머물렀었던 공간처럼 익숙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본능적 관능을
가리킨다. 2015년에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렸던 《The
Promised Land》는 「정신적 이주에 관한 보고서 파트1: 이동기술 편」이다. 이은주와 최찬숙과의 인터뷰, 2021년 1월 3일.
2. 영어로 Forgotten이란
단어를 작가는 〈FOR GOTT EN〉으로 표기를 했는데, 가운데 GOTT는 독일어로 신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가는 기억의 문제와 더불어, 그 기억이 신과의 관계에서는 어떠한 설정으로 펼쳐질지에 관한 탐구로 작품
제목에서는 GOTT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