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VP》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4) © 아트선재센터

간접(間接)

사이가 접하다; 사이가 만나다.; 사이를 두고 접하다

김다움 작가는 ‘사이’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2009년 〈Part of You〉에서 작가는 ‘사이’의 물질적 측면에 주목했던 것 같다. 제습기로 전시 공간에 있는 수분을 모아 일정 시간 후 다시 분사하는 이 작업에서, 전시장에 온 사람들 ‘사이’를 채우던 공기, 그들의 몸이 배출한 열과 그들이 들이마시고 내쉰 숨은 제습기에 의해 한데 섞여 들어가고, 그렇게 섞여 만들어진 ‘물질화된 사이’는 다시 사람들 사이로 내뿜어진다.

여기서 ‘사이’는 공기와 수분의 형태로 모이고, 담겨지고, 다루어졌다. 그렇게 물질화된 사이, 공기나 수분은 물질이면서 또 어떤 비물질보다 투명하다. 그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니 눈에 보이 지 않기에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그들을 서로 접하고, 만나게 하는 것, 작가는 그런 ‘간접’의작동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작업에는 이후 김다움 작가의 다른 작업들에서 일관되게 등 장하는 특징들이 이미 다 등장하고 있다.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그 사이의 만남 혹은 그 사이를 두고 만나기.

‘사이’는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람이 접해서 만들어내는 무정형의 시공간이다. 그렇기에 사이 자체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사물을 만나고 접하게 해준다는 수많은 매체와 인터페이스들이 작동하고 있다. 김다움 작가가 2010-2011년에 행한 일련의 채팅 – flirting 작업은 사이에서 작동하는 매체에 대한 실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그 매체를 통해 ‘사이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향한다. 〈리카〉(2010년)에서 작가는 ‘궁합’앱을 통해 리 카라는 21살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프랜져〉(2010년)에서는 ‘Who’s here‘ 앱에서 만난 ‘프랜져’, 〈벨라〉(2011)에서는 “뻐꾸기” 앱이 만나게 해 준 ‘벨라’와 7개월 동안 대화를 나눈다. 여기서 작가와 그녀들의 만남은 채팅이라는 간접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우리가 채팅에서 접 하는 것은 표정과 목소리를 가진 신체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나의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문자들이다. 얼굴도, 제스쳐도,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는 탈 육체화된 문자가 오히려 flirting의 긴장감을 높이는 – 이 문자를 본 그/그녀는 어떤 표정일까? – 효과를 갖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채팅을 할 때 우리는 교환되는 문자의 간접 속에만 있다.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에 의거, 자동적으로 답글을 생성하는 〈심심이〉(2011)와의 채팅 작업은 이러한 점에서 나머지 채팅 작업에 대한 아이러니적 반전이다.)

이 채팅 작업을 할 때 작가의 관심은, 간접이 갖는 진정성에 있었다. 작업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작가는 채팅이라는 간접의 소통이 갖는 긍정성을 이렇게 이야기한바 있다. ‘직접 만나지 않기에 자신을 꾸미지 않게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말, 더 정확히 말하면 ‘문 자’ 밖에 없는 이 간접의 소통은 ‘좀 더 쉽게 빨리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게’ 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더 가깝게’ 한다‘고. 말하자면 김다움 작가에게 ‘간접’ – ‘사이의 만남’, 혹은 ‘사이를 두고 만남’ – 은 꾸미지 않는 자아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채팅 작업 이후 작가는, ‘간접’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자신을 〈Part of You〉에서의 공기처럼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은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들면서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에 머무르는 것 말이다. 〈여기는 언제나 월요일/차가운 친밀성〉(2013)과 〈IF SOMEONE HATES U FOR NO REASON GIVE THAT JERK A REASON〉(2014)에서 작가는 전시 장 벽에 글자를 새기고는 그를 다시 메꾸어 ‘거의 보이지 않게’, 혹은 ‘가까스로만’ 보이게 만들었다.

이 ‘겸손한’ (혹은 ‘교활한’) 작가의 작업은 그로 인해 이후 이 전시장에 놓이게 될 다른 작가들 작품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의 작품들 ‘사이’에 ‘거의 보이지 않게’ 남아서 그 ‘사이를 두고’ 늘 새로운 관객들과 접하게 될 것이다. 〈컴필레이션〉(2014)도 같은 전략을 따른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장 플로어 플랜을 모아 만든 이 작업에서 작가는, 과거에 행해진 타인 들의 전시의 흔적과 관객들 ‘사이’에 있다.

이 작업에 적용된 간접의 원칙은 위의 두 작업 – 〈여기는 언제나…〉와 〈IF SOMEONE…〉 – 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 공간에 서 작가의 ‘간접’이,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작가들의 전시와 관객 사이에서 작동한다면 〈컴필레이션〉에서 ‘간접’은, 이미 행해진 과거의 전시들과 현재의 관객 사이에서 작동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거의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간접은 그를 통해 다른 만남과 관계가 일어나게 한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이루어진 미니멀리즘적 설치작업 〈RSVP〉(2014)에서 작가는 이러한 간접을 꽤 강하게 밀어붙였다. 먼저 작가의 스테이트먼트를 읽어보자. 그건 두개의 병렬적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텍스트는 누군가를 초대한 사람의 텍스트다. 그런데, 정작 그는 그 손님과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공간을 정리하고 분류한 방법에 의해 자신이 드러나는 데에 더마음을 쓴다. 두번째 텍스트는 누군가를 방문하는 사람의 텍스트이다.

여기서도 그는 직접 만날 그 누군가 보다 그의 책장에 꽂힌 책의 분류, 특정 페이지의 사진, 포스트잇, 밑줄, 메모, 책 사이에서 우연 히 발견한 영수증에서 ‘주인의 삶을 발견하는’ 데 더 관심을 갖는다. 두 경우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과 손님의 직접적 만남이 아니라, 그들이 정리하고 분류해 놓은 공간- ‘사이’ – 를 접하는 것이다. “분류에는 나름의 선형적 또는 비선형적 규칙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똑같은 책 7권을 어떻게 배열하는가 어디에 보관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직접 대면한 두 사람 보다그들이 정리, 분류해 놓은 “공간이 더 많이 듣거나”,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여러 개의 책상과 그 위에 놓인 파일 상자들에 환대와 관련된 책과자료들을 깔끔하게 분류해 놓았다. 책이나 잡지 사이 사이에는 포스트 이 붙어있으며, 또 어떤 책의 갈피 사이에는 메시지가 담긴 카드가 꽂혀져 있다. 함께 전시된 〈병합한 순서들〉, 〈병합하는 순서들〉, 〈더빙된 순서들〉, 〈리버브하는 순서들〉(2014)에서는 컬러필름, 포스터 들이 ‘일정한 순서에 따라’ 알루미늄 프로파일에 걸쳐져 있다. 말하자면 이 전시는 간접의 공간, 사이가 만나는 장소로 기획된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그가 분류해 놓은 자료, 붙여놓은 포스트잇, 책 어딘가에 꽂아놓은 메모지와 카드를 통해서만, ‘거의 보이지 않게’ 드러난다. 그가 구성해 놓은 사물의 이 미미한 질서만이 ‘가까스로’ 작가를 이야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작업은 작가가 지향하던 간접의 전략을 충실히, 위험스러울 만치 철저히 따르고 있다.

왜 위험스러운가? ‘환대’ 받는다는 느낌은 얻지 못한 채 – 전시장에는 앉을 의자도 마련되어 있 지 않았다 – 분류된 책과 잡지 속에 작가가 붙여놓은 포스트잇, 숨겨놓은 카드를 발견하는 관객 에게 작가는 지나치게 드러났거나 동시에 지나치게 감추어져 있다. 작가가 직접적 만남의 진정성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건 알겠지만, 어쨋든 작가는 전시를 통해 관객을 그 간접의 장소로 초대한 것이 아닌가?

누군가를 부르거나 만난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는 행동”이자, 동시에 “숨기고 싶은 모습을 감추는 행위”라는 작가의 스테이트먼트는 자칫 냉소로 돌변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간접의 진정성에 대한 이전의 믿음까지 흔들 수 있을 불길한 뇌관이 숨겨져있다. 누군가를 부르거나 만나는 것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숨기고 싶은 모습을 감추는’ 행위이기만 한다면, 그래서 초대하거나 초대받는 것의 ‘긴장’이 ‘설렘’을 압도해 버린다면, 회답을 기대하는 “RSVP”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