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움(b. 1983)은 지속적으로 ‘인터페이스’ 개념을 기반으로 물리적 공간과 가상 환경, 사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 사이의 경계를 가시화해왔다. 특히 작가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과 장소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흔적과 감각에 관심을 가져오며, 이를 영상과 소리, 설치 등의 매체로 다뤄왔다. 


김다움, 〈잠걸음〉, 2021, 철에 분체 도장, 스피커 5개, 인조 깃털, 130x200x140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김다움은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엮이게 되는 다양한 ‘관계망’을 탐구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감각의 형태로 풀어내 왔다. 여기서 관계망은 가상의 영역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하고, 전시 공간처럼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각종 관계망이 얽힌 영역의 구조를 관찰, 수집하고 분류하여 전시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해 왔다.


김다움, 〈인체연성〉, 2017, 8채널 사운드 설치 (8개의 스피커, 미디어 플레이어, 오디오 인터페이스), 오디오: 8분 4초, 가변크기 © 김다움

특히 김다움이 주목하는 ‘영역’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교차하는 경계의 장소이다. 이는 살아 있는 유기체들이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럽게 형성해가는 현실이자, 다양한 물질과 감각을 통해 구체화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파편과 흔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과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미지와 데이터, 사운드 등이 공존하는 김다움의 ‘영역’에서는 다양한 기호와 정보가 서로 연결되고 교환되며, 때로는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촉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사건과 관계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소멸과 변화를 거듭한다.


김다움, 〈정일〉, 2012, 비디오, 16분 50초 © 김다움

초기 작업에서 김다움은 인터넷 채팅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흔적을 장기간 리서치하고, 이를 수집·분류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이를테면, 〈리카〉(2009-2010), 〈정일〉(2012) 등의 작업에서는 SNS를 통해 이루어진 채팅과 그로부터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여 영상 작업으로 재구성했다.
 
이러한 작업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 채팅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나 ‘사이’를 채우고 있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진다. 작가는 이를 통해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 목소리도 드러나지 않는 ‘탈-육체화’된 간접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는 직접 만나지 않기에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고, 보다 쉽고 빠르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게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한다. 즉, 작가에게 ‘간접’, 즉 대상과 ‘사이’를 두고 만나는 행위는 꾸미지 않는 자아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RSVP》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4) © 아트선재센터

이후의 작업에서는 작가로서 자주 발을 딛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 장소이자 관람객-작가-작품이 조우하게 되는 장소인 ‘전시장’을 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작업에서 김다움은 자기 자신은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사물들 ‘사이’에 머무는 방식을 실험해 나갔다.
 
예를 들어, 2014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RSVP》는 전시 공간 자체를 ‘환대’의 역할, 조건, 그리고 다양한 가치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인터페이스’로 제안한다. 김다움은 이 전시를 통해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는 현대인의 삶에서, 환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RSVP》 전시 전경(아트선재센터, 2014) © 아트선재센터

김다움은 다양한 전시와 교류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모인 책과 자료들을 이용하여 전시 공간을 하나의 열람실로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선형적 또는 비선형적으로 분류한 책과 자료들 사이에 카드, 영상 등의 작품을 숨겨 두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시장 자체를 ‘간접’의 공간이자 ‘사이’가 만나는 장소로서 작동하게 한다. 여기서 작가의 존재는 그가 분류해 놓은 자료와 그 사이 사이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 책 어딘가에 꽂아 놓은 메모지와 카드를 통해서만 가까스로 드러난다.
 
즉, 작가는 사물들의 질서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관객과 매개되며, 이러한 간접의 방식으로써 오늘날 환대의 의미를 다룬다. 


《대나무 숲 옆에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5)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한편, 2015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열린 개인전 《대나무 숲 옆에서》에서는 ‘대나무숲’이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불완전한 삶의 현실적 조건에서 적응 및 순응하는 모습을 다루고자 했다.
 
작가는 ‘디자인 회사 옆 대나무숲’, ‘출판사 옆 대나무숲’ 등의 ‘옆 대나무숲’을 이용하는 사용자들로부터 수집한 다양한 이야기와 물건들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옆 대나무숲’ 이용자들은 하나의 계정을 사용함으로써 익명의 상태로 자신이 일하면서 겪은 고충과 고민들을 토로하였다.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직종에 ‘옆 대나무 숲’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관찰하던 작가는, 이 공간이 단순한 도피처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수많은 익명의 이용자들이 각각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토로하는 ‘옆 대나무숲’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그들의 텍스트를 ‘소리’라는 청감각적 기저로 치환하여 이를 위한 물리적 장치를 통해 시각화 했다.


《대나무 숲 옆에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5)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김다움은 ‘옆 대나무숲’이라는 인터페이스는 녹음을 할 때 외부 그리고 내부(연주자 자신이 내는)에서 발생하는 특정 소리 또는 소음, 잔향 등을 차단, 흡수, 분산 시키는 다양한 음향장치들과 닮았다고 생각하여 다양한 어쿠스틱 디퓨저들을 소재로 한 설치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어쿠스틱 디퓨저〉(2015)와 〈무향실〉(2015)은 ‘옆 대나무숲’과 음향 장치 모두 사용자가 내는 소리를 차단할 수도 있고, 더 잘 들리게 할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가진 매체이자 시각적 은유를 내포한다.
 
전시장 내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작품 〈무향실〉은 분리되고 동떨어진 파편들-흡음판-간의 거리에 대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물리적 형상들은 하나이면서 다수이고, 전체이면서 부분으로 존재했다. 따라서 분산과 집합을 거듭하는 이 작품은 한 번에 파악되기보다는 흩어진 작품들 사이를 눈과 머리로 연결하면서 하나의 구조물로 인식된다.


《대나무 숲 옆에서》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5) ©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어쿠스틱 디퓨저〉는 각종 책들 혹은 사무실에서 흔히 사용되는 파일 정리함을 미니멀한 방식으로 조합하며 만들어졌다. 책이나 파일 정리함을 배치하고 외형적으로 음향을 분산시키는 장치를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틈으로 감정과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어쿠스틱 디퓨저〉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익명의 공론장으로서 대나무숲을 표현했다면, 〈마리〉(2015)와 〈미교〉(2015)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대나무숲을 보여준다.
 
두 작업 모두 기구한 사연으로 개명을 하게 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각각 영상화한 것으로, 이들의 불완전한 삶의 조건과 사회적 연속성에 저항하며 새로운 관계 그리고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김다움, 〈맹지〉, 2016, 4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9분 9초 © 김다움

나아가 김다움은 영상 작업 〈맹지〉(2016)에서 여러 사회 환경과 조건들에 둘러싸인 개인의 상태와 심리를 도로에 접해 있지 않은 땅인 ‘맹지’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맹지란 따로 통로가 없어 안팎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타인 소유의 땅을 지나야 하는 땅이다.
 
김다움은 맹지를 부동산의 개념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문화적 관계를 설명하기 적합한 일종의 인터페이스로 접근하고 사회와 사람들을 둘러싼 다양한 맹지와 그와 얽힌 경험과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왔다.


김다움, 〈맹지〉, 2016, 4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9분 9초 © 김다움

〈맹지〉에서 작가는 서울과 홍콩, 대만이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가진 곳에 거주하는 세 명의 화자를 등장시킨다. 이들은 자신의 공간에 다른 이를 들이거나, 특정 공간을 떠나는, 더 나아가 남겨진 공간을 마주하는 이들이다.
 
내레이션을 통해 공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등장인물들은 공간의 점유 혹은 소유와, 거기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 기억의 서사를 가로지르며 물리적 공간에 내재하는 심리적 밀도와 깊이의 정서를 환기한다.


《눈먼 길》 전시 전경(팩토리2, 2019) © 팩토리2

그리고 2019년 팩토리2에서 열린 개인전 《눈먼 길》에서 김다움은 목적지를 알지 못해 길을 잃은 본인의 경험과 그 때의 감정을 바라보며 시작하며 맹지와 다른 영역 또는 대상을 연결해주는 길에 주목하였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확실한 목적지 또는 맹지로 설정함으로써 어떠한 대상이 자신을 찾아오는 과정과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다뤘다. 대상을 유인하는 작가의 행위를 시적으로 녹여낸 4편의 영상과 이를 엮어주는 사운드 작업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dazzled & muddled》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3) ©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이처럼 시공간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감각이나 정서에 주목해온 김다움의 작업은 2023년 개인전 《dazzled & muddled》에서도 이어진다. 여기서 작가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축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 이를테면 우울, 희열, 분노, 희망, 좌절 등의 여러 감각적 편린을 동원하여 전시라는 시공간 위에 펼쳐 놓았다.


《dazzled & muddled》 전시 전경(프라이머리 프랙티스, 2023) ©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일상에서 비롯된 여러 불가해한 정서의 조각들은 노래 가사의 형식으로 기록되고, 이는 다시 선과 이미지로 해체, 재구성되며, 출처가 불분명한 영상 클립과 연동된다. 이러한 작업 간의 연쇄적인 구조는 개별 작업으로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의미를 새롭게 획득하며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이로써 평면 위로 압축된 서사는 영상과 사운드로 변주, 증폭하며 매체와 장르 사이에서 진동한다. 현실에서 이탈하려는, 하지만 이상에 진입하지 못한 채 방향 감각을 상실한 이곳에서 소리와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은 고요함 가운데 떨림으로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일상을 일깨운다.


김다움, 〈Measure〉, 2024, 캔버스에 아크릴, 165x140cm © 파이프갤러리

최근의 작업 ‘Measure’(2024-) 시리즈 또한 일상에서 경험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이 시리즈는 작가가 경험한 내면의 소리와 감정을 ‘측정’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시각적 질감, 추상적인 선, 색의 농도 변화를 통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괴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각화한다.
 
김다움은 ‘측정’을 내면의 감각을 포착하는 은유로 삼으며, 선과 색, 질감을 감정의 파동처럼 화면 위에 펼쳐놓는다. 회화적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은 고정된 이미지라기보다 소리와 진동, 기억의 흔적이 살아 움직이는 장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표면에는 물감이 고여 얕은 웅덩이처럼 빛을 머금은 부분과 상대적으로 높이 솟은 질감이 교차한다. 이러한 미묘한 고저는 영상과 사운드, 공공미술과 설치를 통해 축적해온 그의 언어가 회화 속에서 거시적 파동으로 번역되는 순간을 드러낸다.


김다움, 〈리미널〉, 2022, 멀티 채널 영상과 사운드 (모니터, 미디어 플레이어, 형광등, 스피커, 우퍼), 영상: 14분 51초, 가변크기 © 김다움

이렇듯 김다움은 우리 주변의 다종다양한 관계망으로부터 파생된 흔적과 기억, 감정과 경험 등을 예술이라는 감각의 형태로 번역해 왔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가로지르는 그의 작업은 단순히 미시적 차원의 기억이나 경험으로 머무르기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공유될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되어 왔다.
 
작가가 작업을 통해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양한 매체와 전시 공간, 그리고 관객의 신체, 시선, 동선이 유기적인 연결되는 과정에서 더욱 ‘공감각적’으로 구현된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관계를 맺고 감각을 교환하는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일상 속 관계망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나는 작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를 포함한 이웃사람들이 사회와 관계를 맺고,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김다움, 작가 노트)


김다움 작가 © 예술경영지원센터

김다움은 국민대학교 입체미술과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dazzled & muddled》(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3), 《눈먼 길》(팩토리2, 서울, 2019), 《대나무숲 옆에서》(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5), 《RSVP》(아트선재센터, 서울, 2014)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이마프 2026 《천만은죽: 기후의 시간》(이화여자대학교, 서울, 2026), 《멜랑콜리아》(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2025), 《경계 그리기, 경계 흐리기.》(MO BY CAN, 서울, 2024), 《프리즈 필름 2023》(아트스페이스 보안1, 서울, 2023), 《기록하는 기억》(SeMA 벙커, 서울, 2022), 《완벽한 최후의 1초 – 교향곡 2번》(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2),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다움은 캔파운데이션 명륜동작업실(2025),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3), 금천예술공장(2022)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