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선필은 조각을 중심에
두면서도 레디메이드 사물, 피규어, 영상, 글, 출판물, 진열 구조와
전시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 초기부터 기존 피규어를 자르고 결합하거나 새로운 형태를 덧붙이고, 이미 존재하는 산업 제품의 크기와 표면을 변형하는 방식이 중요했다. 《민메이
어택: 리-리-캐스트》의
재가공된 피규어에서 출발한 이러한 방법은 《끽태점 喫態店》에서 보다 적극적인 혼성 형태로 발전한다.
피규어와
유사하지만 피규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합성수지 조형물, 기존 사물과 조각적 형태가 같은 진열장 안에
놓이면서 무엇이 상품이고 무엇이 조각인지, 제작과 창작의 기준이 어디에서 갈리는지를 흐린다. 〈디버깅 스테이션 (6/1 스케일)〉(2019)처럼 실제 산업 장비를 확대해 관객과 비슷한 크기로 만드는 방식 역시 피규어의 ‘축소 재현’이라는 관습을 역전시키며, 사물의 기능보다 형태 자체를 앞세운다.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도 작품의 중요한 일부다. 《METAL EXP: 외톨이의
움직이는 시간》에서는 소파와 TV, 게임 콘솔, 로봇청소기
같은 공산품을 배치해 건조한 안방과 같은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연히 움직이는 ‘메탈’의 모습을 통해 시간과 운을 경험하게 한다. 《끽태점 喫態店》에서는 유리 진열장과 상점의 구조를 빌려 관객이 실제 상품을 구경하듯 조각 사이를 이동하게
했으며, 2024년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Electronic
Tomb Raider》는 전시를 실제 상업 공간 안으로 옮겼다.
이처럼 돈선필은 작품을
독립된 조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이 원래 유통되고 소비되는 환경까지 작품의 형식으로 끌어들인다. 개인의 수집과 소비, 전시와 판매,
작업실과 상점의 경계가 겹치는 구조는 피규어가 미술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최근 개인전이 제도적 전시장뿐 아니라 국제전자센터와 같은 장소에서도 이어졌다는 점은 이러한 공간적 관심과 맞닿아 있다.
영상은 조각이 가진
형태를 설명하는 보조 수단이라기보다 사물의 배경에 있는 시간과 제작 과정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축으로 사용된다.
《포트레이트 피스트》에서는 영상과 조각을 통해 얼굴, 캐릭터, 현실의 인물 사이의 차이를 살폈고, 《괴·수·인》에서는 ‘하카세
박사의 과학방송’이라는 형식을 통해 추상적인 상태가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나는 과정을 다뤘다.
《인더스트리얼 미소녀》에서는 영상 속 엔지니어 J가 미학적 취향과
산업 규격,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제작 방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반면, 전시장에는
완성된 피규어보다 머리가 제거된 바니걸, 동일한 형태를 다르게 도색한 조각, 생산 과정에서 분리된 듯한 파편들이 놓인다. 영상이 제작 과정의
사고와 시간을 담당한다면 조각은 그 과정에서 나온 물질적 결과를 담당하는 셈이다. 특히 완제품보다 제작
중간단계의 형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기존 피규어 문화에서 잘 보이지 않던 원형사와 생산자의 노동을 드러낸다.
《음울한 귤》에서는
이러한 매체 간 관계가 더욱 느슨하고 순환적으로 구성된다. 개인의 경험과 취미에서 나온 이야기가 글이
되고, 영상과 조각으로 옮겨졌다가 다시 사물의 형태로 돌아오며, 서로
다른 시기에 제작한 작업들이 하나의 전시 안에서 재결합한다. 〈FFWS_Dreary
Tangerine〉(2025)처럼 광경화성 수지, 레진, 목재, 플라스틱 키트와 도색 재료를 함께 사용한 조각에서도 하나의
재료적 순수성보다 산업 제작물과 수작업, 기존 부품과 새로 만든 형태의 결합이 중요하다. 표면의 균열이나 재료 간 이질감도 매끄럽게 감추지 않는다. 이는
완벽한 재현을 목표로 하기보다 현실의 조건을 통과하면서 생긴 차이와 흔적을 작품의 일부로 인정해온 그의 태도와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