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의 수》 전시전경 © 호기심/유머감각

회화와 사진은 모두 신체가 도구를 경유해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 붓은 손의 연장으로 작동하며, 붓끝의 움직임이 신체의 리듬, 호흡, 필압에 직접적으로 반응한다. 사진에서의 행위 또한 기계와 협응하며 드러나는 행위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나, 도구의 질서 안으로 신체가 편입되는 형태에 가깝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렌즈 링을 미세하게 돌리는 손목, 노출을 조정하는 휠을 부드럽게 굴리는 엄지의 압력, 히스토그램의 드리프트를 따라 커서를 옮기는 손가락의 지연된 움직임 등의 동작이 기계적 절차에 봉속된 의식처럼 수행된다. 신체와 기계는 서로의 조작 범위를 넘나들며 미세한 진동을 교환한다. 그 진동이 여과된 형태로 기계적 절차를 통과하며 이미지로 이행된다. 그 과정은 표면을 밀어붙이지 않으며, 사소한 마찰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인화된 사진의 표면에는 붓질처럼 눌린 자국이 아니라, 압력을 잃은 행위의 여파가 잉크의 미세한 입자들의 형태로 변환되어 분사된다. 인화지에 완전히 흡착하지 않고 표면에 얇은 막을 드리우며 살짝 떠 있는 이미지는 어딘가 유령적이다. 현실을 복제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기억을 품고, 절차상의 작은 편차들을 하나의 표면으로 결집시키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안착하지 못하는 주저함이 있다.

서동신 작가의 ‘Entropy’ 시리즈에 등장하는 피사체들—겹겹이 적재된 건축 자재, 과일의 단면, 막 숨을 불어넣어 습기가 응결한 비닐장갑, 공사 현장을 가리는 가림막, 열화된 스크린—이 모든 것은 일상의 퇴적과 물질의 중량을 간직한 대상들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옮겨진 이 대상들은 극도로 얇다. 세계의 층위는 잉크의 미세한 입자 막으로 환원되고, 대상이 있던 자리에는 중량감에 대한 기억과 함몰되지 않은 평평한 깊이만이 남는다. 그의 사진에서 사라지는 두께는 물질의 두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물의 의미가 가진 층위, 언어가 대상을 붙잡아 쌓아올리던 깊이, 경험이 표면 위에 눕히던 여러 겹의 감각들 역시 하나의 얄팍한 막으로 평탄화된다. 이 얇은 표면은 물리적 두께의 붕괴이면서 동시에 언어적 두께의 상실, 의미의 층위가 더 이상 세계를 조직하지 못하는 자리다. 질서가 붕괴되고 남은 것은 흩어진 입자들이 이루는 임시의 평형 상태이며, 보는 사람은 이 얇음을 오히려 두께처럼 느끼게 된다.

두께를 얇음으로, 얇음을 두께로 착각하게 만드는 이 역전은 ‘이상한 평온 속의 불안감’을 자아낸다. 얇음은 단순한 물리적 결손이 아니라, 실체가 표면으로 밀려나며 남긴 가장 바깥의 겹이다. 그 가장자리의 표면은 유령의 피부처럼 어디에도 완전히 닿지 않은 채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 걸터앉아 있으며, 현실의 잔여이자 이미지의 시작점이 된다.

서동신 작가는 인화지의 표면을 단순한 재현의 장이 아닌, 의미가 증발하고 남은 입자들의 필드로 다룬다. 사진이 표면 위에 얇게 펼쳐놓는 두께의 기억, 평행 상태의 입자들이 붙잡는 이미지들은 선별되고 절개되고, 병치된다. ‘Equation’ 시리즈는 ‘Entropy’의 잔해 위에서 질서와 무질서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평형 상태를 획득한다. 입자들은 더 이상 단순한 표면의 노이즈가 아니라, 언어 이전의 구조로 재편된 감각의 수식이 된다.

‘Malfuction of Fuctional Fuction’(이하 ‘MFF’) 시리즈에서는 기능적 세계의 언어를 직접 호출한다. 정확해야 하고, 명료해야 하고,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 상품 이미지의 문법은 표면 위의 모든 요소를 효율과 설명으로 환원시키려 한다. 그러나 기능이 너무 충실히 재현될 때, 기능은 기묘하게 비틀린다.

설명은 과도하게 정확해지고, 명료함은 지나치게 명료해져 오히려 이미지의 내부 논리를 압도하지 못하고 균열을 만든다. 상품 사진의 목적론적 조형성은, ‘Entropy’의 얇은 막과 ‘Equation’의 입자 구조를 통과한 이미지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과잉하여 결국 스스로 무력화된다.

앞선 세 작업을 통과하며 생성된 감각적·구조적 잔여들은 또 하나의 장면으로 이동하는 지점에 놓인다. ‘Entropy’의 얇은 막, ‘Equation’의 입자적 구조, 그리고 ‘MFF’의 기능적 언어의 실패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을 만들며, 이미지들은 단일한 방향으로 귀결되지 않고 여러 갈래의 가능성으로 흩어진다. 여기서 ‘경우의 수’는 고정된 해답의 목록이라기보다, 이미지가 스스로 선택하고 미끄러지고 분기하는 경로들 즉 표면 위에서 잠재적으로 열려 있는 감각의 배열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그의 사진은 이 지점에서 하나의 결과보다 ‘결과가 될 수 있었던 것들’의 지형을 드러낸다. 이미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방향들이 얇은 막 위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들, 말로 고정될 수 없는 가능성의 지층이 ‘경우의 수’라는 이름 아래 확장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