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라, 〈Mediation IV〉, 2023, 3D 프린트된 나일론, 모래,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 알루미늄 트레이, 90x60x90cm © 박나라

2024년 박나라 작가와 두 번에 걸친 대화는 모두 인터넷으로 진행되었다. 2024년 봄 박나라 작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작업실에서 그의 작업을 실견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봤던 작업들은 이미지와 실제 물성의 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작가는 근래 몰두하고 있는 재료가 구강청결제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작가는 2024년 〈운명소독〉이라는 신작을 제작했다. 밀랍과 병원 카트, 데오드란트, 유리 수조와 펌프를 재료로 한 이 작업은 작가가 줄곧 탐구한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모두 수평적으로 펼쳐져 있고 조각 자체가 내부에서 다이내믹을 갖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작업은 향(향기)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향은 공간 안에서 날마다 똑같을 수 없다.

한편 나는 2024년 9월 27일부터 11월 10일까지 열린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에서도 작가의 작업을 오래도록 보았다. 이 오랜 시간 작업을 보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박나라의 작업이 언제나 ‘변화 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로 2023년 제작이라는 크레딧을 달고 있는 〈Kneaded Reflections(기다림)〉은 밀가루와 효소, 설탕과 계란이 재료이기 때문에 곁으로 다가가면 냄새가 난다. 그렇기 때문에 2024년도에 새롭게 만들어진 작업이라고 캡션을 달 수 있으며 앞으로 다른 곳에 전시될 때마다 특정장소의 공기, 냄새와 어우러져 변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작업이다.

〈Kneaded Reflections(기다림)〉은 만질 수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봉긋하게 올라와 있는 이 ‘빵-신체’ 조각은 촉각과 후각의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임신과 수유의 기간 동안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통해 이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업의 또 다른 재료인 인조 손톱과 인조 개미가 전시 기간 중 어디론가 도망가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맞다. 이 분홍빛 손톱과 개미는 부엌이었던 창원조각비엔날레의 한 전시장에 그대로 있기는 했는데, 눈앞의 안개가 걷혔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자꾸만 슬며시 움직이는 듯했다.

조각비엔날레의 전시장에 있던 또 다른 작업 〈Mediation IV(매개 IV)〉(2023)는 변화와 이동의 욕구를 자극한다. 철제 트레이 위에는 모래가 있고 눈, 코, 귀, 입의 감각기관들이 각각 조각난 사물처럼 흩어져 있다. 작가는 자신의 신체를 3D 스캔하고 산에서 가져온 돌을 3D 출력해 이러한 장면을 구성했다. 바퀴가 달려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마치 접시 위의 해조물처럼 올라와 있던 이 감각기관(눈-코-입)들은 마치 어디론가 도망갈 태세를 마친 꼿꼿한 병사들 같았다.


박나라, 〈기다림〉, 2023, 벤치, 밀가루, 효모, 베이킹 파우더, 버터, 설탕, 소금, 계란, 물, 바닐라 추출물, 올리브오일, 식품보존제, 인조손톱, 인조 개미, 가변크기 © 박나라

《큰 사과가 소리없이》 전시에 초대되었던 두 작업의 공통점은 이렇듯 변화, 이동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두 작업은 모두 관객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으며, 그 자체로 수평적인 구성의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은 벤치와 밀가루 효소를 활용한 〈Kneaded Reflections(기다림)〉은 물론이거니와 층층의 트레이 구조로 모래 위에 올라온 〈Mediation IV(매개 IV)〉 또한 관객이 이 작업과 대화하면서 주변을 서성일 수 있는 일종의 ‘환경’(surrounding)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조각을 통해 어떤 형상이나 이미지를 ‘구축’하기보다는 해체한다. 자신의 몸 그리고 타인의 몸이 변화하고 때로는 소멸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그것을 수평적인 조각의 어휘들로 분절시킨다. 작가에게 산에서 데리고 온 진짜 돌과 가짜 돌은 언제나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도구인 감각기관이 세상과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우리가 죽은 후에도 남아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는 작가의 말에서 왜 이 작업의 제목이 ‘매개’인지 가늠할 수 있다. 박나라는 2020년에 ‘Mediation I(매개 I)’ 시리즈를 시작했고 이 작업에서는 절단된 발목 형상 위에 돌 덩어리가 올라와 있다.

지난여름 두 번의 대화를 인터넷상에서 진행하면서 나는 두 가지 이야기에 집중했다. 첫째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작가에게 ‘조각’ ‘조각성’이라는 문제가 어떤 시각 어휘를 획득해 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질문하고 나누었다. 그에게 미국이라는 공간은 실로 오랜 시간 거주했던 지역(로컬)인 동시에 조각이라는 시각 언어를 습득해나갔던 장소였다. 작가에게 미국의 경험은 큰 땅덩어리 안에서 다양한 자연적 환경, 땅, 돌, 자연의 역사 등을 탐구했던 기회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업 〈The Beginning of Everything〉(2021)에서 작가는 약 5만여 년 전 미국 애리조나에 떨어진 운석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작품의 표면을 도로 표시용 유리 비드로 덮어 주변의 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산하도록 하였다. 이 작업은 2021년에 미국 워싱턴 D.C.의 더 워싱턴 하버(the Washington Harbor) 입구에 전시되었다.

〈Parallels IV〉(2021)라는 작업에서도 작가는 미국 아칸소 주에 떨어진 운석에서 영감을 받아 3D 프린트, PVC 파이프 등으로 작업하였다. 진짜와 가짜, 이미지와 덩어리감을 지닌 실체, 인공물과 자연물의 관계가 박나라의 오랜 질문 대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문화적 조건보다는, 보편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물질의 관계에 집중하며 사물의 차원에 세밀하게 접근한다. 이를테면 작가는 이렇게 작가노트에 쓴다. “최근에는 인공 체리 향이 나는 밀랍과 치즈로 만든 신체 부위를 사다리 위에 배치하여 신체와 사물을 연결 짓는 등 신체의 물리적 한계와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이뤄진 대화에서 또 하나 포인트는 2018년 제작한 평면 작업 〈The Clock Store〉였다. 작가가 어린 시절 그린 시계 그림을 스캔하는 데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가장자리가 해진 캔버스에 디지털로 인쇄되었다. 작가는 바위 사진 위에 유년 시절 그린 시계 그림을 디지털 콜라주 해서 마치 돌 위에 그린 자국처럼 표현했다.

홈페이지에 올라온 다른 잉크젯 프린트 사진 작업들을 보면서[예를 들어 2018년도의 〈Transference I(전이 I)〉, 작가에게 조각하는 손과 돌을 만지는 손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실제 산에 있는 돌이든 가상 이미지로 출력된 돌이든 우리는 현실의 서로 다른 ‘층위들’과 매번 낯선 감각을 통하여 매개된다.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작가가 작업 중이던 소독제의 향이 줄곧해서 생각났던 이유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