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라는 조각을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로 만드는 대신, 보이는 외형과 실제 물성 사이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초기에는 종이, 스티로폼, 플라스틱, 비닐, 인조식물, 합성
패널처럼 가볍고 일회적인 재료를 사용해 돌, 벽돌, 나무, 폭포 같은 자연물이나 건축적 구조를 재현했다.
〈It Was Written On the Wall〉은 종이를 돌처럼 보이게 하고,
〈Waterfall〉은 플라스틱 포장 상자로 자연 풍경을 구성한다. 이처럼 시각적으로는 무겁고 영속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볍고 빈 구조를 만드는 방식은 ‘부피감 안의 비어 있음, 시각적 무거움 안의 물리적 가벼움’이라는 작가의 조각적 언어를 형성한다.
돌은 이러한 형식적
실험을 오래 이어온 핵심 모티브다. ‘Presence’(2019) 연작은 스티로폼 비즈와 폴리스티렌
패널로 묘비나 기념비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만들고, 표면에 연노랑이나 하늘색 같은 인공적인 색을 입혀
자연석의 모방이 완벽하게 닫히지 않도록 한다. 《I Live》(Plain Sight, Washington D.C., 2021)에서는 〈Presence
V〉와 ‘Promises’ 연작, 시 낭독 오디오가
함께 놓이며 조각이 기념비의 이미지뿐 아니라 소리와 기억까지 포함하는 환경으로 확장된다.
〈The Beginning of Everything〉(2021)과 〈Parallels IV〉(2021)에서는 운석을 3D 프린팅과 PVC, 반사 유리 비드 같은 산업 재료로 재구성해
자연의 역사와 첨단 제작 방식이 한 화면에 겹친다.
2023년
이후에는 재료의 변화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 〈기다림〉은 밀가루와 효모, 설탕, 계란 같은 식재료가 실제로 발효되고 냄새를 만들어내며, 전시 장소의 공기와 시간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Mediation IV〉에서는 3D 프린트된 나일론으로 만든 감각기관과
돌, 모래, 스테인리스 트레이가 수평적으로 배치된다.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성산아트홀, 창원, 2024)에서
두 작품은 관객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주변을 서성일 수 있는 낮은 환경으로 구성되었다. 이때 조각은 하나의
완결된 형상을 세우는 방식보다 분절된 사물과 신체가 놓이고 변하는 상황 자체를 만드는 쪽으로 이동한다.
《제스처들》 이후에는
기성 가구와 모터, 생활용품이 적극적으로 들어온다. 의자의
시트를 벗겨 척추와 갈비뼈 같은 구조를 드러내고, 잘려 기능을 잃은 매트리스를 기계적으로 진동시키며
사물에 어색한 생명감을 부여한다. 의료용·미용용 도구와 공구를
한 장식장 안에 놓거나, 바디케어 제품과 청소용품을 같은 색의 체계로 묶는 방식도 신체와 사물이 관리되는
방식의 유사성을 드러낸다.
〈운명 소독〉(2024)은 구강청결제와
병원 카트, 펌프, 밀랍,
데오드란트 등을 사용해 냄새와 순환, 소독의 이미지를 조각 안에 끌어들인다. 〈The Cult of the Surface〉(2026)와 〈변화한 몸으로 걷기〉(2026)에 이르면 화장품, 비누, 크롬 파이프 같은 물질이 신체의 표면을 관리하고 규격화하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하면서, 조각은 몸을 직접 만들기보다 몸을 둘러싼 산업과 소비의 환경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