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라(b. 1985)는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인 세상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그곳에 남겨지는 흔적을 탐구한다. 작가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신체와 사물,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탐색해 왔다.
 
또한 그의 작업은 자연과 인공, 실제와 모방의 경계 사이를 오가며,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과 그 이면의 진정성의 의미를 질문한다.


박나라, 〈Disillusioned I - V〉, 2017, 플라스틱 라미네이트, 모노필라멘트 © 박나라

이러한 경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가족의 죽음과 출산을 직접 경험하면서 존재론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는 그러한 사건들을 겪으며 마치 존재와 비존재가 교차하는 듯한 미스터리한 순간들을 겪었고, 그 속에서 물리적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박나라는 초기의 작업에서 자연을 직접적으로 모방하는 재료를 사용하며, 인공적인 것으로부터 생명성을 환기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판에 나무의 결을 모방해 새긴 다음, 이를 사용해 오래된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재현하는 키네틱 조각을 제작했다.


박나라, 〈It Was Written On the Wall〉, 2012, 종이 상자, 고무장판, 인조식물, 환기구, 가습기, 2.9x2.75x1.8m © 박나라

또 다른 작업에서는 돌의 표면 이미지를 프린트하여 제작한 종이 박스를 벽돌 삼아 마치 왕릉과 같은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It Was Written On the Wall〉(2012)). 이 작품은 겉에서 보았을 땐 견고한 벽돌로 만들어진 돌 무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볍고 연약한 성질의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인식의 균열을 일으킨다.
 
또한 작가는 작품 내부에 가습기를 설치해 종이 박스가 습기를 흡수하고 점차 훼손되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보이는 것’ 이면의 현실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박나라, 〈Waterfall〉, 2013, 플라스틱 포장박스, 물, 펌프, 3.8x2x3m © 박나라

이러한 인공 재료를 사용해 자연물을 모방하는 그의 작업은 삶의 덧없음을 환기하는 동시에, 일회적이고 표피적인 동시대의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감각적 효과를 통해 지각과 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탐구하며, 우리가 재료와 그것의 재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눈속임 기법(trompe-l’œil)을 통해 박나라는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속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가짜에도 생명을 불어 넣어 외면 지향적인 현대인의 욕구에 의문을 제기한다.


박나라, 〈Presence I - X〉, 2019, 스티로폼 알갱이, 폴리스티렌 패널, 아크릴 물감© 박나라

박나라의 작업에서 줄곧 모방의 원형이 되어온 ‘돌’은 많은 문화권에서 죽은 이를 기리는 데 사용되며, 견고함과 안정성, 영속성을 상징하는 사물이다. 작가는 인공 재료를 통해 돌의 외형을 재현함으로써 기념과 영원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암시해 왔다.
 
앞서 살펴본 작품 〈It Was Written On the Wall〉에서는 종이를 이용해 돌을 모방했다면, ‘Presence’(2019) 시리즈에서는 스티로폼을 주재료로 삼아 돌로 제작된 기념비와 같은 형상을 제작했다.
 
바닥에 세워진 일련의 조각들은 묘비나 기념비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지니며, 스티로폼 알갱이로 구현된 표면은 오랜 세월을 거쳐 울퉁불퉁해진 돌의 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완벽하게 돌을 재현하기보다, 연노랑과 하늘색 등의 아크릴 페인트로 표면을 채색함으로써 그것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대상임을 더욱 직접적으로 표면화한다.


박나라, 〈Mediation IV〉, 2023, 3D 프린트된 나일론, 모래, 스테인리스 스틸 테이블, 알루미늄 트레이, 90x60x90cm © 박나라

한편, 2020년부터 전개해 온 ‘Mediation’ 시리즈는 작가의 감각기관(눈, 코, 입)과 산에서 주운 돌을 3D 프린트하여 제작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작업에서 그는 세상을 인지하는 도구이자 매개체인 감각기관을 인간의 죽음 이후 남겨지는 최후의 것으로서 묘사한다.
 
본 시리즈의 2023년도 작업인 〈Mediation IV〉에서는 실제 자연물인 돌과 신체를 모방하여 만들어낸 조각들을 모래 위에 반쯤 묻어 놓음으로써 사후에 남겨진 흔적들이 발견된 것처럼 연출한다.


박나라, 〈기다림〉, 2023, 벤치, 밀가루, 효모, 베이킹 파우더, 버터, 설탕, 소금, 계란, 물, 바닐라 추출물, 올리브오일, 식품보존제, 인조손톱, 인조 개미, 가변크기 © 박나라

한편, 2023년도 작업인 〈기다림〉은 플라스틱, 스티로폼, 나일론 등의 합성 인공 재료를 다뤘던 기존 작업과 달리 밀가루와 효모, 설탕과 계란 등의 식품을 주재료로 다룬다.
 
밀가루 덩어리를 반죽하여 형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효모로 인해 조각은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다. 만질 수 없는 작품이지만, 빵처럼 부푼 조각은 관객의 후각과 촉각의 감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박나라, 〈기다림〉, 2023, 벤치, 밀가루, 효모, 베이킹 파우더, 버터, 설탕, 소금, 계란, 물, 바닐라 추출물, 올리브오일, 식품보존제, 인조손톱, 인조 개미, 가변크기 © 박나라

〈기다림〉은 작가의 삶과 긴말하게 연결된 작업이다. 이 작품은 임신과 수유 기간 동안 작가 자신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확장되며 늘어지는 등 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경험한 데서 출발한다.
 
그는 수유 중에 움직이지 못하는 몸의 무력감을 실감했고, 개미들이 지나가도 가만히 있는 몸을 상상하며 자신의 변화된 몸을 캐스팅하고 몰드로 만들어 사용했다. 점차 발효되며 부풀어 오르는 작가의 ‘빵-신체’ 조각은 여성의 신체가 겪는 변화와 변형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제스처들》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2, 2025) © 아트스페이스 보안

그리고 2025년 박나라의 국내 첫 개인전 《제스처들》은 그간의 조각적 실험을 한층 확장하며, 신체와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이전 작업들이 주로 신체가 지닌 사물적 성격을 다뤘다면, 본 전시에서는 사물이 지닌 신체성과 생명력을 주제로 확장한다.
 
전시장에는 기능을 잃은 사물들에 인간적 행동을 암시하는 제스처가 덧붙여져 놓여 있었다. 작가는 이 제스처를 통해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것들이 마치 신체처럼 감각하고 반응하는 존재로 다가오게 했다.
 
의자, 침대, 식탁과 같은 기성품 사물들은 기존의 용도에서 벗어나 변형된 채 배치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의자는 편안한 착석을 돕는 겉표면의 시트가 제거되어 그 아래 앙상한 뼈대가 드러나 있었다. 기능을 잃고 척추와 갈비뼈를 닮은 뼈대만 남은 의자는 사물 그 자체로도 인간을 닮았으면서, 텅 빈 존재감을 드러냄으로써 이전에 그 ‘자리’에 있었을 신체의 흔적을 떠오르게 한다.


《제스처들》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2, 2025) © 아트스페이스 보안

침대 또한 껍데기가 벗겨진 채 내부를 드러내고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치 꽁꽁 감싸 두었던 내부를 드러낸 듯 취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조각은 사물로서 침대가 지니고 있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나아가 작가는 벗겨지고 절단되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매트리스를 진동하게 하여 움직임을 부여했다. 기계 모터에 의해 일어나는 반복적인 움직임은 진짜 생명력이 있는 움직임처럼 보이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는 대상을 어떻게든 움직이게 하려는 애처로운 몸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스처들》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2, 2025) © 아트스페이스 보안

한편 작가는 우리가 신체와 사물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신체와 사물의 유사성을 다루기도 하였다. 가령, 그는 신체와 비슷한 높이의 장식장에 피부와 같은 막을 씌우고 그 안에는 여러 도구를 진열했다.
 
모양이 비슷한 도구들에는 인체용 미용 도구, 수술 도구와 사물용 공구가 섞여 있었다. 형태도 용도도 비슷한 도구들은 각각 신체를 위해, 사물을 위해 사용된다.
 
또 다른 선반에는 파란색의 바디케어 용품, 스포츠 음료, 청소 용품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신체의 위생을 위한 제품과 사물을 위한 청소 용품이 공통적으로 파란색을 띤다는 점에 주목하여, 인체와 사물을 대하는 방식의 유사성을 이야기한다.
 
여러 제품의 명칭에서 따온 제목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향과 색을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아이러니한 욕망을 드러낸다.


《제스처들》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2, 2025) © 아트스페이스 보안

이러한 비인간 존재로서의 조각들은 신체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신체적 특징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신체 조각과는 다른 생명력을 발산한다.
 
관객은 어떤 좌대도 없이 동일한 바닥에 놓인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자신과 비슷한 스케일의 작품들과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이로써 관객과 작품 사이의 위계를 사라지고, 관객은 비인간 존재로서 작품과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완전한 당신》 전시 전경(THEO, 2026) © THEO

나아가, 최근의 개인전 《완전한 당신》(2026)에서 박나라는 ‘인간이 표면을 관리하도록 요구받는 강제적 수행(performance)’에 주목하였다.
 
깨끗해지고, 건강해지고, 더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 우리는 매일 비누를 사용하고, 화장품을 바르며, 위생과 미용을 수행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돌봄과 자기 보호의 언어로 설명되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자기 최적화(self-optimization)’의 압박이기도 하다.


박나라, 〈변화한 몸으로 걷기〉, 2026, 크롬 파이프, 메탈 조인트, 비누, 100x114x108cm © 박나라

박나라의 작업은 이러한 지점을 조용하고 물질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비누, 코스메틱, 위생 및 미용용품은 그의 작업에서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신체를 관리하고 규정하는 언어로 기능한다. 작가는 ‘클린,’ ‘내추럴,’ ‘헬시’와 같은 표어들을 활용하는 마케팅이 어떻게 개인의 욕망을 설계하고 유통하는지 주목한다.
 
박나라는 신체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을 둘러싸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사물과 물질을 통해 신체성을 우회적으로 호출한다. 특히 작가는 이전 작업들에서 인간의 신체를 미용 제품, 비누, 위생 제품으로 덮거나 치환함으로써, 신체가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리되고 가공되는 대상임을 드러내 왔다.


박나라, 〈The Cult of the Surface〉, 2026, 화장품, 바디케어 제품, 아크릴 물감, 나무 패널에 아크릴 미디엄, 313x163x356cm © 박나라

《완전한 당신》에서 회화적 평면은 하나의 피부이자 광고판처럼 작동한다. 표면 위에 배치된 색과 이미지들은 색조 화장품 분말, 비누, 치약과 같은 미용 및 위생제품으로 이루어졌으며,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신체의 단면이자 벽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그 표면은 매끄럽게 정제되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존재의 불안과 결핍이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박나라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끝없이 닦고, 바르고, 관리하는 이 표면은 과연 우리를 보호하는가, 아니면 더 쉽게 소비되고 교체 가능한 존재로 만드는가?’ ‘아름다움과 건강을 향한 욕망은 어디까지가 개인의 선택이며, 어디부터 사회와 산업이 설계한 심리인가?’


박나라, 〈운명 소독〉, 2024, 리스테린, 물탱크, 펌프, 의료용 카트, 석고, 데오도란트, 플라스틱 네일, 왁스, 도자기 © 박나라

이처럼 박나라는 조각을 통해 신체와 사물,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자연을 모방한 인공 재료와 의인화된 가구, 움직이는 사물 등을 통해 생명과 물질, 실재와 환영, 자연과 인공 사이에 놓인 모호한 경계를 드러내며, 우리가 당연하게 인식해 온 존재의 조건을 되묻는다.
 
결국 그의 작업은 물리적 표면에 드러난 형상을 넘어 그 이면에 존재하는 내면과 본질을 탐색하는 조형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나는 우리 삶의 피상적이고 인공적인 측면을 시각예술과 연결하고자 한다. 예술 작품은 하나의 가상 세계와 같다.
 
이미지는 현실의 모방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단순히 삶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독자적인 현실성을 획득한다. 작업을 통해 이어가는 여정 속에서 나는 삶과 시각예술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을 넘어 그 이면에 존재하는 진정성에 대해 더욱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 (박나라, 작가 노트)


박나라 작가 © 박나라

박나라는 미국 메릴랜드 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조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완전한 당신》(THEO, 서울, 2026), 《제스처들》(아트스페이스 보안2, 서울, 2025), 《I Live》(Plain Sight, 워싱턴 D.C., 2021), 《Presence》(VisArts, 락빌, 메릴랜드,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성산아트홀, 창원, 2024), 《Highlights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필립스 컬렉션, 워싱턴 D.C., 2023-2022), 《There, There》(IA&A at Hillyer, 워싱턴 D.C., 2021), 《Mapping the Future World》(Transformer Gallery, 워싱턴 D.C.,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나라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4) 입주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필립스 컬렉션 및 DC Commission on the Arts and Humanities (DCCAH)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