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lvin Kyungkun Park, A Dream of Iron, 2013 © Kelvin Kyungkun Park

영상을 매체로 작업하는 아티스트, 박경근의 첫 개인전, 《철의 꿈(鐵夢, Dream of Iron)》이 소격동에 있는 옵시스 아트 갤러리에서 2월 23일 저녁6시부터 시작된다. 3 채널 비디오 인스톨레이션과 싱글 채널 비디오, 유리 위에 투사되는 이미지로 이루어진 비주얼 스컬프쳐, 사진을 철판으로 프레임한 오브제, 디지털 콜라주 등, 영상과 사진을 사용한 다양한 작품들이 갤러리1층과 2층에 전시된다. 전작 〈청계천 메들리〉처럼 이번 작품도 영화와 함께 제작되었다. “청계천 메들리” 영화가 먼저 완성된 뒤에 5채널 비디오 인스톨레이션과 싱글 채널 비디오 및 디지털 콜라주로 제작되었다. 반면에 이번 〈철의 꿈〉은 비디오 인스톨레이션과 각종 오브제가 먼저 제작되고, 영화가 뒤따라 완성되는 방식이다. 개인전 이후 완성될 영화 “철의 꿈”은 나레이티브로 주도되었던 청계천 메들리와는 달리 서사가 거의 제거된 영상 이미지 연결만으로 편집 완성될 예정이다.


Kelvin Kyungkun Park, A Dream of Iron, 2013 © Kelvin Kyungkun Park

쇠의 연대기, 〈청계천 메들리〉와 그 속편, 〈철의 꿈〉

철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사실적 영상으로 보여주었던 〈청계천 메들리〉와 이어지는 〈철의 꿈〉은 철을 통해 바라보는 산업화의 종언에 대한 영상이다. 〈청계천 메들리〉가 청계천 입정동에 자리를 잡은 구멍가게 규모의 공구상점들이 맞이한 최후에 대한 영상이었던 것처럼, 〈철의 꿈〉은 거대한 인프라 스트럭쳐가 구축된 포스코와 현대 중공업이라는 생산 현장에서 중화학 공업으로 상징되었던 한국적 산업화의 종말에 대한 영상이다. 〈청계천 메들리〉를 위해 청계천 입정동 공구상 주변을 이 년 이상 헤집고 다니면서 영상을 제작하던 박경근이 엉뚱하게도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고래, 그리고 거대한 유조선에 관한 이미지들에 사로 잡혀있었다. 〈청계천 메들리〉가 완성된 후에 그 못 다한 철에 대한 이야기를 철이 꾸었던 꿈의 형식으로 작업을 시작하였고, 그 일차적 결실을 이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영화는 차후 해외 영화제를 통해 상영될 예정이다.


Kelvin Kyungkun Park, A Dream of Iron, 2013 © Kelvin Kyungkun Park

반구대 암각화와 철이 꾸는 꿈

이미 물 속에 잠겨 버린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대인들의 고래와 포경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가 사실상 수렵 사회가 끝나고 농경 시대에 들어선 신석기 시대 후반에 새겨졌다는 데 이입된 박경근은 탈산업 사회란 이름으로 각종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가 붙는 오늘날의 시대 정신을 포착하기 위해서 이미 명목상 끝나버렸다고 선언된 산업자본주의사회를 디지털 카메라로 새기듯이 찍었다. 철광석을 녹여서 쇠를 만들어 내는 전 과정을 자동화 시킨 포스코에서 박경근은 거의 원시적인 신화를 재현하는 것처럼 압도적으로 생생한 공정 과정을 장엄하게 보여 주고 있고, 선박 몸체를 제작하고 있는 현대 중공업에서는 인간 감각으로 감당하기가 버거울 만큼 거대한 산업 제품을 마치 초자연적인 어떤 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정하고 있는듯한 신비로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는 이렇게 거대하고 자동화된 설비 구조와 작업 공정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소외되어 있는 주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소외 자체가 이미 일상화를 넘어 하나의 풍경처럼 구조화된 모습으로 비쳐진다. 공장설비의 자연스러운 부품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인간의 모습과 대비되어 산업 생산 구조물이 거대한 자연 경관처럼 보이고 그 공정과정은 자연의 질서처럼 보는 우리를 지배하고 압도한다. 미학에서는 숭고라는 감정 자체가 거대한 규모처럼 우리를 절대적으로 압도하는 어떤 대상에 직면했을 때 처음에는 무력함에 지배당하다가도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초감성적인 능력’이 환기될 때에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숭고라는 감정은 불쾌만 존재하는 대상에 대응하여 그것을 넘어서는 주관의 능동성에서 오는 쾌락이다. 따라서 우리를 압도하는 대상에 대해서 이미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알고 있어서 우리가 안전한 장소에 있다는 확신 속에서만 생겨나는 ‘자기소외’의 감정인 것이다.


Kelvin Kyungkun Park, A Dream of Iron, 2013 © Kelvin Kyungkun Park

Kelvin Kyungkun Park, A Dream of Iron, 2013 © Kelvin Kyungkun Park

미래를 향한 애도사

암각화를 새긴 고대인들이 고래에 대해 가졌던 그 숭고한 감정이나, 용광로에서 끓고 있는 쇠나,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서서히 이동하는 거대한 선박 몸채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에드먼드 버크의 말대로 “우리의 마음에 내키는 일종의 전율이고, 공포를 섞은 일종의 평정”에 가까운 것이다. 미의 근거를 외적 대상의 형식에서 찾지만, 숭고라는 감정은 대상에 압도되어 무력감에 빠진 감정을 역으로 주체의 무한한 능력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찾기 때문에, 이 숭고는 당연히 우리의 내부에서 생겨난 감정을 외적인 대상으로 투사한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다.

박경근이 산업의 현장을 압도적인 숭고의 절정체로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가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신경제, 후기 산업 사회, 네트워크 사회, 포스트 모던, 유연한 세분화, 유연한 자본주의 등으로 명명되는 산업화 이후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이미 살아가고 있다. 박경근은 산업화 시대에 요구되던 지속 가능하던 조직의 안정과 우리 내면을 지배하던 영속적 가치와 감각 기준들이 이미 낡은 것으로 변해 버린 산업화의 현장을 고대인이 암각화에 새기듯이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박경근은 아직 보내지 못하고 남아있는 현재적 과거와 산뜻하게 이별하고 미래화 되어 있는 현재를 시작하기 위하여 산업사회에 대한 애도사를 디지털로 쓰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