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우(b. 1982)는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는 가구와 같은 사물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사물이 담고 있는 관념적인 의미보다 사물이 다른 사물 또는 신체와 맺는 관계에 주목한다. 사물의 기능과 형태, 그리고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위치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작가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해 왔다. 


《손길 모양》 전시 전경(북서울미술관, 2023) © 이은우

이은우는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는 사물과 오브제를 변형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익숙한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의 풍경과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한다.
 
대량생산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현대사회에서 작가는 사물을 반복적으로 배열하고 분해·조립하는 실험적 방식을 통해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이분법적 관념을 흔들고, 사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은우, 〈300,000,000 KRW, Korea, 2010〉, 2010 © 이은우

한편, 이은우의 초기 작업에서는 정치·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그 예로, 1905년 레닌이 대지주와 소농의 토지 소유 비율을 비교하기 위해 제작한 그래프를 한국의 장애인, 여성, 이주 노동자의 실태로 변주한 〈무제〉(2004-2005), 미국 전시정보국에서 촬영한 폭격 사진 중 화염 부분을 파란 유화 물감으로 캔버스에 옮겨 그린 〈어느 멋진 날 by OWI〉(2007)이 있다.
 
또한 2010년 당시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페이지에 등록된 매매가 3억 원의 전국 아파트 평면도 1,167개를 크기, 실거래가, 준공년도에 따라 재배열한 〈300,000,000 KRW, Korea, 2010〉(2010)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은우, 〈특정물건〉, 2013, 반투명 거울, 무늬 유리, 색유리, 망입 유리, 원목, 260x390x30cm © 이은우

2012년 이후 이은우는 평면에서 오브제로 작업의 매체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2013년도에 발표한 오브제 작업 〈특정물건〉은 수도권에 있는 다양한 아파트 평면도에서 도출된 구조에 여러 형태의 유리를 창의 형식으로 천장에 매달아 설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창문의 폐쇄성과 구획성을 통해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와 그것이 표상하는 중산층의 욕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안에서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으며, 건물로 진입은 철저히 통제된다는 점에서 욕망할 수는 있으나 소유할 수 없는 대상으로서 ‘유리’의 투명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그와 같은 욕망이 부서지고 깨지기 쉽다는 점을 유리의 특성에 빗대어 드러낸다.


《물건방식》 전시 전경(갤러리 팩토리, 2014) © 갤러리 팩토리

그리고 2014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 개인전 《물건방식》에서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의 형태를 빌어 대량생산되는 물건의 ‘표준과 규격’, ‘사물의 관습적 용법’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탐구를 엿볼 수 있었다.
 
작가는 사물의 본질이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 제도와 관습에 따라 상품인지 예술인지, 또는 유용한 것인지 아닌지 결정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작가는 사물이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유통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이러한 관습적인 용법을 포착한 뒤 다른 성질의 사물과 재결합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하나의 아이디어를 작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 사물의 쓰임새와 재료의 물질적인 속성, 각종 표준규격들은 작업의 형태로 결정짓는 원료로서의 역할을 한다.


《물건방식》 전시 전경(갤러리 팩토리, 2014) © 갤러리 팩토리

전시 《물건방식》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기존 사물이 가진 기능이 모두 삭제되고 형태와 색채만을 가진 오브제로 제시되었다. 이는 〈물건〉, 〈푸른 사각형〉, 〈녹색 원〉 등의 작품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심지어 형태 자체가 기능성을 가지고 있는 공이나 바퀴와 같은 사물들은 아예 벽면에 고정되어 그 기능을 거세당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기능이 소거되어 형태, 색채, 재료가 제각기 해체된 이은우의 사물들은 물건의 합당한 존재 방식이라고 여겨왔던 도구로서의 여러 사회적 기준들을 무효화한다.


《긴, 납작한, 매달린》 전시 전경(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5) © 아트선재센터

한편, 2015년 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 《긴, 납작한, 매달린》에서 이은우는 전시 공간 자체가 가진 물리적인 형태를 작업의 주어진 조건으로 삼았다. 작가는 “이 전시가 무질서에 무질서를 더하거나, 비효율적이고 불합리적이지 않길 바랬고, 동시에 공간의 특정함에 결부 되고 싶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서, 그는 공간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먼저 설정하고, 그 제약 안에서 가능한 것들을 작업에 적용해 나갔다. 그 결과 이은우의 작업은 미술관의 제도적 관습이나 문화적 배경이 아닌, 천장 높이, 마감재와 규격과 같은 물리적인 형태에서 건축적인 구조로 환원될 수 있는 형태로 도출되었다.


《쌍》 전시 전경(송은, 2021) © 이은우

그리고 2021년 송은에서의 개인전 《쌍》은 사물의 질서에서 가짜와 진짜, 장식과 실용 같은 수직적/대립적 위계질서를 삭제했을 때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빨강, 파랑, 노랑 3원색의 수직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오브제와 함께, 평범한 선반 형태를 닮았지만 측면에는 나무 무늬 장판을 덧붙인 〈고약한 짓〉(2021), 벽돌 패턴의 합판 구조물에 인체를 연상시키는 석고 블럭을 끼워 놓은 〈동네 리얼리즘〉(2021) 등을 선보였다.


《쌍》 전시 전경(송은, 2021) © 이은우

이 밖에도 즉흥적이거나 의미 없는 무늬들 토대로 한 일련의 스킬 자수 작품과 〈탁자〉(2017-2021), 〈아저씨〉(2021)와 같은 원목으로 제작한 가구와 조각을 통해 평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수공적 노동, 남성적인 일이나 여성적인 일과 같은 사물의 가치와 이분법적 구분에 의문을 제기한다.


《직각마음》 전시 전경(프람프트 프로젝트, 2022) © 이은우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은우는 2022년 개인전 《직각마음》을 통해 일상과 미술, 그리고 노동의 경계에서 도모되는 필연적인 관계성을 암시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거실’이라는 공간을 개념적 구도로 삼으며 구성되었다.
 
작가는 집의 현관과 방을 건축적으로 연결하는 거실에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마구 얽혀 있다고 보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경계 지점으로서의 거실을 전시의 개념으로 가져오며, 작가는 사물의 외피, 즉 물질적 경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계성을 실험하고자 했다.


《직각마음》 전시 전경(프람프트 프로젝트, 2022) © 이은우

전시의 주요 작품은 드로잉 시리즈로, 마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한 그리기의 행위를 상기시킨다. 이은우는 매일 반복하는 생활의 루틴처럼 노트 위에 드로잉을 그려 나갔다. 그의 드로잉 작업은 종이 위의 선과 면을 통제하기보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것들을 자유로이 그리는 일에서 출발한다.
 
5mm 단위로 작은 점이 인쇄된 노트에서 시작되는 이은우의 드로잉 작업은, 점과 점을 잇는 직선이나 호(arc)를 하나 그린 뒤 그것에 맞는 도형 하나를 완성한 다음, 다른 도형을 이어 그리며 앞서 그린 도형과의 관계나 모양을 생각하면서 제작된다.
 
이로써 이은우의 그리기는 도형을 쌓거나 걸치는 모양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도형들에 시트지와 색연필로 재질을 입혔다. 나아가 작가는 이 그리기의 도형들이 지면을 벗어나 크기가 커지고 두께와 부피를 가지게 된다면 또 어떤 관계성을 가지게 될지 상상하며 드로잉과 입체 사이의 형태로 확대시켰다.


《직각마음》 전시 전경(프람프트 프로젝트, 2022) © 이은우

또 다른 전시작인 입체 작품 〈물건 4(나)〉, 〈물건 5(너)〉, 〈물건 6(걔)〉은 가공된 나무와 표면을 갈아 질감을 표현한 황동, 기성품 당구공의 조합으로 기존에 사용되었던 재료와 목적을 상실하고 그것의 판단을 유보한 ‘규정되지 않음’으로 귀결되고자 하는 모종의 장식이 된다.  
 
어떠한 사회적 맥락이나 용도 등이 소거된 사물은 그것이 작가의 신체와 접촉하며 만들어진 물리적 외피와 그에 축적된 교감의 시간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규정되지 않은’ 사물들 사이를 관객이 연결하고, 재생하는 일종의 감각을 통해 ‘공감’이라는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 나간다.


《집안일》 전시 전경(갤러리 SP, 2025) © 이은우

일상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탐구는 2025년 갤러리 SP에서 열린 개인전 《집안일》에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오랫동안 탐구해온 ‘생활’과 ‘조각’의 관계를 주제로, 일상의 리듬과 몸의 움직임이 조형적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드로잉과 소형 조각, 인체 크기의 설치작업으로 구성된 전시작들은 집이라는 구체적 공간과 개인의 일과에서 비롯된 작가의 사유를 반영하고 있었다. 먼저, 작가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사소한 동선 속에서 손의 움직임과 사물의 균형, 반복되는 생활의 구조를 관찰했다. 그리고 드로잉을 통해 이러한 일상적 시간을 기록하며, 조각을 통해 그 기록을 다시 공간으로 확장하였다.


《집안일》 전시 전경(갤러리 SP, 2025) © 이은우

모눈종이 위에서 교차하는 선과 호는 규칙과 우연의 경계에서 형태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생겨난 이미지들은 상자, 집, 주름의 모양을 닮은 조각으로 이어졌다. 작품 속에서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가구, 수집한 오브제, 길에서 주운 사물들이 함께 놓였다.
 
각각의 사물들은 서로 다른 시간성과 물질성을 품고 있으며, 이은우는 그 이질적인 사물들의 균형을 조율한다. 작은 조각들이 드로잉의 태도를 이어받는다면, 인체 스케일로 확장된 조각들은 생활의 구조적 질서를 계승하는 동시에 탈주한다.
 
가령, 약간 좁은 문, 납작한 창문, 두꺼운 창틀 등 일상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형태들을 비정형적으로 변주하여, 익숙한 장면을 낯선 풍경으로 치환한다.


《집안일》 전시 전경(갤러리 SP, 2025) © 이은우

이렇듯 이은우의 작업은 사소한 행위와 손의 노동, 사물의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의 작업은 몸의 반복과 시간의 흐름이 생활의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가 다시 예술의 형식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손과 몸을 사용해 사물과 교감하는 작업으로 완성되는 이은우의 조각은 사물과 인간, 노동과 시간이 교차하는 다층적인 장소로 기능한다. 이는 일상 속 모든 물질이 디지털화될 수 있는 오늘날, 일상의 사물과 신체 사이의 연결감을 환기시키고 활성화한다.

"몸을 움직여 시간을 채우고, 시간을 관통한 몸은 생활을 만든다. 작은 조각은 드로잉으로부터 형태를, 큰 것은 생활의 기하학을 물려받는다." (이은우, 작가 노트)


이은우 작가 © KT&G 상상마당

이은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집안일》(갤러리 SP, 서울, 2025), 《손길 모양》(북서울미술관, 서울, 2023), 《직각마음》(프람프트 프로젝트, 서울, 2022), 《쌍》(송은,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송은 x 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송은, 서울, 2026), 《Balance in Motion》(P21, 서울, 2026), 《흩어진 말들》(기체, 서울, 2025), 《언박싱 프로젝트 3.2: 마케트》(VSF, 엘에이, 미국, 2024), 《언두 이펙트》(하이트컬렉션, 서울, 2024), 《내 책상 위의 천사》(팩토리2, 서울, 2023),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은우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2025), 그레이 프로젝트(싱가포르, 2015) 등에서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했으며, 제1회 서울예술상 시각부문 최우수상(2023) 및 제16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2016)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