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자본주의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거듭 심화되는 야만의 논리에 따라 전개되고 있는 이것을 후기 자본주의라고 명명하는 게 적절할까? 내가 태어난 스페인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자본주의는 전성기를 맞았다. 약속된 발전, 보장된 주체성, 그리고 국가 발전에 기여라는 동기가 부여된 인간 기계, 즉 도시 노동 계급이 가동하는 경제 엔진 덕분에 이들 국가는 빈곤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했다.
우리 할머니는 수많은 젊은 세대가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어떻게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지 이야기했다. 그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특이한 복장, 그리고 가전제품을 사들이려는 욕구와 함께 여름에만 고향으로 돌아온다. 원래 그들의 가정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음식을 건조, 염장, 발효 등과 같은 전통 기법을 통해 보존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서 음식은 거의 항상 모자랐고, 따라서 귀중했다. 우리 부모님이 할머니의 전통식 부엌에 선물로 놓아 드린 거대한 냉동·냉장고는 거의 항상 비어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아침, 냉장고 문을 연 어머니는 안을 가득 채운 갈색 용지로 포장된 무언가를 발견했다. 놀란 어머니는 다소 불안한 얼굴로 할머니에게 냉장고에 과일을 넣어 두려고 하니 포장물을 좀 치우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할머니의 답은 직설적이었다. “안 돼. 나는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은 항상 싫었어. 뭘 마취시킨 것처럼 아무 맛도 안 나거든.” 도대체 포장해서 넣어 둔 것이 무엇인지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트란다. 여름에 시트를 쾌적하게 보관하는 데는 냉장고만 한 게 없어. 아주 훌륭한 발명이야.”
제인 진 카이젠은 (그의 경우,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관 그리고 가치관에 균열을 내고자 한다. 그의 작품을 해석할 때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균열, 예를 들어 냉장고 안에 침대 시트를 넣어 두는 일은 사유의 궤적은 물론이고 세상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현실이란 항시적 실체이자, 변화 없이 인식될 수 있는 무언가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취약한 것이다.
현실은 바라보는 이의 관점이 바뀌면 그에 따라 변모될 수 있는 가변적인 실체이다. 몽상에 가까운 사색에는 기적을 행하는 가능성, 현실의 온갖 문을 개방하고 이를 통해 다른 세계가 도래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내포되어 있다. 지금 이 세계에는 과거 그리고 미래의 모든 세계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목소리, 의식, 인물, 상징물을 활용하는 작업. 이것이 카이젠의 작품을 관통하는 요소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II.
이번 전시에는 일곱 점의 작품이 나선형을 이룬다. 〈잔해〉(2024), 〈수호자들〉(2024), 〈할망〉(2023), 〈이 질서의 장례〉(2022), 〈제물〉(2023), 〈어귀〉(2024), 〈심〉(2024)은 개별적인 작품이지만, 서로 유기적인 단위를 형성하기도 한다. 옛 두루마리 그림처럼, 각 부분의 모티프는 자신만의 고유한 맥락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전체 그림이 관객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의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이미지의 순차적인 나열을 통한 서사 방식은 아시아 고미술의 특징인 반면, 서양에서는 그림이 일단 벽에 걸리는 순간 항시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것이 되는데, 카이젠의 작품은 이러한 동서양 미술의 요소 사이를 유기적으로 횡단한다. 카이젠의 영상 또한 서양 미술의 특징처럼, 각각의 작품을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재현으로서 볼 수 있다. 반면에 다수의 작품을 연결 지어 보는 순간, 그들이 구성하는 전체성은 나선을 형성하며, 한 영상에서 다음 영상 사이의 제례적인 전환을 자아내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해진 순서는 없지만 관객은 전시 공간 사이를 이동하며 관람함으로써, 순서에 대한 감각을 형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순서라는 것 또한, 보는 관객의 재량에 따라 몇 번씩 재해석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작품은 대한 해협에 위치한 큰 섬,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다.
화산에서 솟아난 〈심〉에서, 관객은 마치 자궁과도 같이 섬에 생명을 부여한 사굴(蛇窟)을 마주하게 된다. 〈심〉과 짝을 이루는 〈어귀〉는 모든 생명의 심장을 뛰게 하는 힘, 그리고 그러한 힘이 깃든 설문대할망과 제주도의 창조 신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주도의 탄생 이후에는 역사가 뒤따른다.
〈잔해〉는 태평양 전쟁 당시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며, 〈할망〉은 바람의 신 영등할망과 그녀의 보호를 받는 해녀들을, 그리고 〈수호자들〉은 사자(死者)를 보호하고 인도하는 봉헌물을 가지고 노는 화산 지대의 아이들을 보여 준다. 〈제물〉은 변화의 의식이 거행되는 제주 바다로 우리를 데려가고, 〈이 질서의 장례〉는 인간이 망치고 부숴 버린 무수한 질서와 세계를 위한 장례 행렬 사이로 관객을 이끈다.
각 작품은 섬세한 관람 방식을 유도하고, 과거의 고통에 대한 감응과 기억의 힘을 상기시키면서도, 자연 질서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믿음과 의식에 대해 조명한다. 또한, 신화를 통해 인간의 취약함과 제주도와 같은 지역 내 인간 사회의 고대 기원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도록 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재연하고 수행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일깨운다.
카이젠의 작품 속에서 제주도는, 이 행성에서 하나의 종(種)으로서 지닌 우리의 책임과 우리의 터전에 관한 사유의 보고로 거듭난다. 2백만 년도 더 전에 수중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이 섬은, 한국 사회 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탐라국이라는 독립적인 나라가 존재하던 제주도는 처음으로 섬에 말을 데려온 몽골 제국에 의해 침략당하고, 이후 고려와 조선의 관할 아래 있었으며, 1910년에는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고 해방 이후 1946년에는 한국의 행정 구역인 ‘도’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제주도는 육지를 갈구하는 타자성(otherness)과 본토에 대한 대응성(counterpart)을 나타낸다. 제주도는 전통과 자연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노력이 계속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강도를 더해 가는 착취와 관광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곳, 그리고 한 공동체에게 귀중하고 신성한 모든 것이 자본주의화되어 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제주도는 해녀의 땅이기도 한데, 이러한 바다 여성의 공동체가 연령과 젠더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창출해 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이 여성들이 가진 놀라운 힘은 ‘유산’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간다. 원래 유산이란 우리가 속하고 싶은 과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이며, 보통 이러한 과거의 중심에는 여성이 부재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지만, 물려줄 유산의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이러한 상징 서사는 여신의 이름에서 기인하는 어원을 통해 전복되고, 인간을 포용하는 바다와 바람의 여신, 화산 속에 잠들어 있는 불의 어머니, 그리고 해녀의 존재에 의해 대체된다.
패류 채집과 작살 낚시라는 고된 노동 속에서 여성의 존재가 공동체 전체에 대한 이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 그지없다. 나 또한 스페인 북서쪽 해안 지역의, 여성들이 절벽 바위에 줄로 몸을 묶고 물속으로 들어가 따개비를 채집하는 문화권 출신이다. 이런 직종을 가진 여성의 존재가 어디에 기원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거센 물살, 춥고 어두운 바다의 위력을 극복하는 힘, 가파른 절벽에 난 길을 능숙하게 오가는 기동력을 가진 이 여성들은, 사회 태도의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은 누군가의 결혼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에 의해 좌우되는 자립성 없는 존재로서 여겨지지만, 제주도 바다의 여성들은 변화의 능동적인 주체이자,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 자연과의 소통에서 주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III.
제주도는 타자성을 상징한다. 카이젠의 작품에 깃든 힘은 이러한 측면을 포착하는 데 있다. 카이젠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의 강렬함은 재현적 혹은 시각적 역량이라기보다, 무언가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에서 기인한다. 구체적으로는 과거의 이미지, 심상, 몽상, 그리고 욕망의 이미지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이러한 힘은 역설적이게도 영화나 영상 미술보다는 시의 특징에 가까운 것이다. 영상은 세상에 깃든 어떤 기운을 자아낸다기보다는, 현실을 드러내 보이는 힘이 더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강렬한 이미지와 선명한 색조가 특징인 카이젠의 작품에서 그는 대지, 공기, 물, 그리고 신체 등 화면 안의 모든 요소 사이의 대비가 드러나게 한다. 백일몽처럼 느껴지도록 이미지 환경을 조성하는 사운드, 즉 음악이 강조하고 있는 작품의 내재적 리듬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마련한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와 같은 곳이 몇이나 더 있을까? 어떤 장소와 그 장소가 가진 잠재력을 서사를 통해 소진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오히려 발굴해 낼수록 더욱 특이하고 놀라운 서사와 신화가 생성될 수 있는 걸까?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경제적 잉여 및 가치 창출의 체계 아래에서 우리의 삶을 형성해 온 다양한 관계망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생산과 소비를 위한 자연 착취에 맞서, 소유욕과 탐욕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수련, 의례, 수행의 창조를 통해서 말이다.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시선을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적인 충동을 억제해야만 한다. 카이젠의 영상에서는 흰색 면직물인 소창이 등장하는데, 이는 강렬한 관계성이 만들어 내는, 이전과는 다른 길로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이끌 실의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와 교감하는 모두를 하나로 이어 낸다. 실은 탯줄을, 바다는 태반을, 그리고 흰옷은 순수성을 상징하며,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순환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직물 그리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기운은 생성적이고 개방적이며 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카이젠의 작품에는 인간의 말소리로 된 대화가 부재하며, 영상 내 등장인물이 서로와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를 대신해 소통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리적인 접촉, 부스럭거리는 바람, 피부, 표정, 신체의 움직임, 물, 식물, 하늘, 아이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형상, 아카이브에서 건져 낸 이미지, 목소리, 제례 음악, 그리고 강렬한 소리와 같이 ‘말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통해 형성되는 연결 방식이다.
또 다른 세계에서도 살아 있다는 감각과, 자신이 있는 장소를 파악하고 다른 존재나 생명체들과 공존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바로 카이젠 작품의 핵심이다. 반면, 말과 대화는 그러한 이해의 공간에서 우리를 밀어내고 언어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유일한 종, 즉 인간종의 영역으로 배치시킨다.
자연의 노래에는 말의 언어가 없듯, 인간 또한 자연과 같은 방식으로 노래할 수 있다. 자연이 움직이듯 인간 또한 움직이고, 자연이 살생하듯 인간 또한 살생하며, 자연이 의례를 치르듯 사람도 의례를 치른다. 카이젠의 작품은 단순히 인간의 오감으로만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감각의 힘을 마치 직물처럼 엮어 낸다.
IV.
강도(intensity)라는 것은 정동과 관련된 개념이다. 정동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신체의 역량을 가리킨다. 카이젠의 전시 방식에는, 그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 ‘뿌리 찾기’와 ‘연결하기’라는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서 뿌리 찾기란, 누군가의 삶에 중요한 장소가 상징하는 것을 깊이 파고들어, 그 장소와 비로소 연결되는 것을 뜻한다. 연결하기란, 신체를 맞닿아 인지와 감정의 동기화를 이루어 신뢰와 온기의 감각을 형성하고, 그로부터 즉각적인 보람 및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중세 유럽의 제단화나 아시아의 두루마리 그림처럼, 카이젠의 작품은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같은 화폭에 속해 있는 다수의 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넓은 전망을 제시한다. 재현과 언어의 위기라는 것은 다른 언어를 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의 필요성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으며, 우리를 둘러싼 파괴의 역학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우리는, 결국에는 삶에 대한 관용을 담은 언어, 적절성, 존엄성에 대한 우리의 바람을 정박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제주도이지만, 아직은 구축되어야 하는 장소이다. 제주도는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뿐만 아니라 하나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또한 우리의 보금자리를 구성하는 바다와 땅의 지혜, 의례, 신화, 여러 세대의 사람들, 폭넓은 지식 체계의 연결을 보여 주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연상적 사유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방법론이다.
카이젠의 작품은 오늘날 우리의 삶의 양상과는 대조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그의 예술 언어는 과거를 회상하지만, 향수를 유발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자행된 참사를 다루지만, 이에 초연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은 변화를 담고 있지만, 이는 급격한 변혁이라기보다, 태도와 행동의 차원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변화에 가깝다. 또한 카이젠의 작품은 다른 현실의 가능성, 즉 우리가 현실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을 산산조각 내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 변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또 다른 현실을 생성해 낼 수 있는 코드의 위력을 믿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것이다. 인공 지능의 적용을 상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그에 앞서 이러한 위력을 포착해 내는 예술, 퍼포먼스, 영상이, 현존하고 있는 세계를 대체해 버릴 만큼 방대한 세계의 도래로 이끄는 코드를 구성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공상 과학 영화 한 편, 아름다운 시구 하나가 현상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7점의 작품이 가진 공통점은 바로 이러한 힘이다.
‘7’이라는 숫자는 고대부터 코드, 즉 상징체계를 만들 때 쓰인 바 있으며, 거기에는 모든 힘, 신화, 그리고 영적 영역을 언급하는 대상들 전부를 신호화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다. 이 코드는 은유적인 힘이 아니라 지금도 실질적인 것으로, 실재와의 연결 지점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상징하며, 외부 세계로부터 솟아 나와 인간 정신 내부로 스며들어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식과 계몽을 만들어 낸다. 이 7점의 작품은 나선을 형성하며 우리의 선택, 가치, 그리고 목표를 결정할 정신성의 진화와 성장을 상징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